<전남타임스 104>
<김진수의 들꽃에세이 104>
꽃과 열매가 함께 만나자 - 호자나무(虎刺)
학명: Damnacanthus indicus C.F.Gaertn.
목련강 꼭두서니목 꼭두선이과 호자나무속의 상록활엽관목
『호자나무』의 속명 담나칸투스(Damnacanthus)는 예리한 가시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중국 명(明)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저술한 의서《본초강목》에서도 「호자(虎刺, 생약명)」의 가시가 ‘호랑이 수염처럼 길고 예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채 1m도 안 되는 작은 키로 자호(刺虎) 또는 격호자화(膈虎刺花)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이다. 또 하늘 침(天針), 잎 위의 침(針上葉)이라 하여 ‘바늘’에 견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복우화(伏牛花)는 선명하지 않다. ‘복(伏)’이 낮은 나무의 형상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면, ‘우(牛)’는 소의 뿔 또는 두 귀를 상형한 글자이므로 뾰족한 호자나무 가시에 닿고, 우(牛)의 다른 뜻인 ‘희생’에서도 역시 위협적인 가시에 대한 경고로 읽혀진다. 호자나무속은 세계에 수 종, 우리나라에는 수정목과 함께 2종이 제주도와 홍도에서 자생하며 일본, 타이완, 중국, 인도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꽃은 5~6월에 피며 꽃부리가 1.5cm 가량인 관상루두형(管狀漏斗形, 대롱처럼 속이 빈 깔때기꼴)이다. 흰 꽃이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암수한그루인 양성화이다. 열매는 핵과로 빨간색이며 둥글고 9월 이후에 성숙하여 이듬해 꽃이 필 때까지 남아 있다. 잎은 길이 1~3cm로 작고 마주나며 끝이 뾰족하다.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원형에 가깝다. 앞면은 짙은 녹색의 가죽질이며 광택이 있고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큰 잎과 작은 잎이 번갈아 달리는 특징이 있다. 묵은 줄기는 회백색인데 비해 미세한 털이 밀생하는 새 줄기는 녹색이다.
같은 속(屬)의 다른 나무 수정목(壽庭木)은‘정원에서 오래 사는 나무’의 뜻으로 뜰에 심어 관상하기 좋은 나무임을 암시하지만 호자나무와 함께 내한성이 약하여 내륙지방에서는 월동하지 못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의 어두운 상록수림 하에서 자라는 내음성 수종이다. 종소명 마조르(major)는 크거나 넓다는 뜻으로 호자나무에 비해 꽃과 잎(난형)이 다소 크다. 그러나 가시의 길이는 절반이하로 작아 대조적이다. 이름이 비슷한 호자덩굴은 잎과 빨간 열매가 비슷하지만 덩굴성이며 초본이다. 또 다른 유사종으로 1978년에 처음 발견된 국내 희귀보호수종 무주나무가 있는데 제주도에서 자란다. 호자나무와 수정목에 비해 잎(긴 타원형)이 3~4배로 크고 가시가 없으며 열매 색깔도 파래서 많이 다르다.
호자나무는 이 셋 가운데서 수형이 가장 단정하다. 마주나는 가시는 줄기의 아래와 위로 각각 돋는데 특히 하늘을 향한 가시바늘의 위세는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서슬로 압권이다. 게다가 원줄기가 수직으로 미끈하게 솟아 상부에서 우산처럼 활짝 펴는 분지의 미감은 독특하여 품격이 느껴진다. 잎새마다 알알이 붙는 구슬열매 역시 보통 이듬해 꽃이 필 때까지 남아 있는데 종종 1년 내내 매달린 채로 나무 위에서 빛이 변해가기도 한다. 생장이 더딘 만큼 조직이 치밀하며 전정을 하지 않아도 수형이 자연스러워 분경이나 분재로 다룰 만큼 관상가치가 높다. 씨앗은 떨어진 자리에서 절로 나지만 10월에 따서 흙에 묻어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심으면 된다.
꽃말은 ‘공존’이라 한다. 꽃과 잎과 열매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매우 드문 특성을 표현한 것이라면 꽃도 대단하고 꽃말도 멋지다. 꽃이 필 땐 잎이 사라지고 잎이 무성할 때는 꽃이 돌아오지 않아 안타까운 초생들이 많고,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고 열매가 사라져야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이 식물세계의 풍속이지만 애틋하게도 호자나무는 열매가 꽃을 오래 기다리고 꽃은 또 이에 화답하듯 활짝 피어서 이색적인 오월의 풍경을 자아낸다. 뿌리·줄기·잎·꽃·가시·열매가 한 데 어울리는 다복한 모습에다 땅속에서 옆으로 길게 뻗던 뿌리가 머잖은 지점에서 새 개체를 발생시키는 생태에 이르면 온가족이 두루 만나는 우리들 전통의 설 풍경과도 썩 닮았다. 잡귀를 물리치는 매서운 가시와 장수하는 생명력을 의미삼아 집안의 웃어른과 이웃에 선물로 작은 분을 만들면 참 좋을 것 같은 호자나무이다.[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