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국의 비전
고대 로마인들은 많은 패배를 당했다.
역사의 다른 위대한 제국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은 전투에서는 지고 또 지면서도 전쟁에선 이길 수 있었다.
타격을 입더라도 버티고 유지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제국이라 불릴 수 없다.
그런 로마인들도 기원전 2세기 중반 이베리아반도 북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참을 수 없었다
반도의 원주민 켈트족이 사는 누만시아라는 시시한 산동네가 감히 로마의 굴레를 벗어던진 것이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 분지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패자(覇者)였다.
마케도니아 제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을 무찌르고, 긍지 높은 그리스 도시국가를 복속시켰으며,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들었다.
누만시아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곤 자유를 향한 깊은 사랑과 험한 지형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곳곳에서 로마에게 거듭 항복을 받아내거나 굴욕의 후퇴를 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기원전134년 로마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원로원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로마에서 제일가는 장군이자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든 인물을 보내 누만시아인들을 손봐주기로 한 것이다.
그는 3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진격했다.
누만시아인들의 투지와 전쟁기술을 높이 평가한 그는 불필요한 전투를 별여 병사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누만시아를 에워싸는 요새들을 건설해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굶주림은 그의 편이었다. 1년여가 지나자 누만시아의식량이 바닥났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스스로 마을을 불태웠다.
로마의 기록에 의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로마인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자살했다.
누만시아는 나중에 스페인의 독립과 용기의 상징이 되었다.
《돈키호테》를 쓴 미겔 드 세르반테스는 〈누만시아〉라는 비극을 썼는데,
그 결말은 읍의 파괴지만 장래 스페인의 위대함에 관한 비전을 함께 담고 있다.
시인들은 강인한 방어자들을 칭송하는 찬가를 작곡했고,
화가들은 포위 작전을 장엄하게 묘사한 그림을 그렸다.
폐허 터는 1882년에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엇으며 스페인 애국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책은 슈퍼맨도 스파이더맨도 아니고
고대 이베리아 반도에서 로마의 압제에 대한한 상상 속의 영울 엘 자바토였다.
오늘날까지도 고대 누만시아인들은 소페인의 영웅적 행위와 애국심의 귀감이며,
젊은이들의 역할 모델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이 누만시아 사람들을 찬양하는 언어는 스페인어다.
스키피오가 썼던 라틴어의 후손인 로망스어 중 하나다.
누만시아 사람들은 켈트어를 상용했지만, 이 언어는 오늘날 사어가 되어 잊혔다.
세르반테스는 〈누만시아〉의 대본을 라틴어로 썼으며, 이 극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모델을 좇았다.
누만시아에는 극장이 없었다. 누만시아의 영웅적 행위를 칭송하는 스페인 애국자들은
또 대체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실한 신도이기도 하다.
첫 단어인 '로마'에 주목하자,
이 교회의 수장은 여전히 로마에 앉아 있고, 그 신은 라틴어로 진행하는 예배를 선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스페인의 법은 로마법에서 유래했다.
스페인 정치는 로마인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그 요리법과 건축은 이베리아반도의 켈트족보다는 로마의 유산에 훨씬 큰 몫을 빚지고 있다.
누만시아인들이 실제로 남긴 것은 폐허밖에 없다.
심지어 오늘날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오로지 로마인 역사가들 덕분이다
이야기는 자유를 사랑하는 야만인 소재를 즐기는 로마 청중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다.
로마는 누만시아를 상대로 너무나 완벽한 승리를 거둔 나머지,
패자들의 기억마저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스토리가 아니다.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 대부분은 늦든 이르든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들 문화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다.
제국도 마침내 무너지지만, 대체로 풍성하고 지속적인 유산을 남긴다.
21 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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