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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가시더
-재경안동향우 산우회 9월 산행
중랑천 벚꽃길을 걸으며 (2019, 9, 7)
권 옥 희
내가 처음 재경안동향우 산우회 산행에 참가한 것은 2016년 가을산행인 대모산 산행 때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산행후기를 쓰면서 <우리는 하나였다> 라고 제목을 정했다. 산행 인원이 150여 명으로 늘어났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하나였다. 산행 뒤풀이도 거해서 나는 첫 산행이지만 정말 즐겁고 유쾌했었다.
향우님들도 잘 모르고 낯선 때였지만 고향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즐거움에 그 높은 산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벌써 전임이 되신 손요헌 회장님은 이 산행을 준비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임원진들이 여러 번 만나 토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사전답사도 수없이 했다고 하셨다.
먹자골목에 식당예약을 했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식사하고 여흥을 즐길 장소를 짧은 시간 안에 찾는 일이 쉽지 않아서 애가 탔다고 했다. 그래서 힘겹게 얻은 장소가 강남주민편의센터였었다. 그것이 그리 쉽게 얻어질 장소가 아니기에 회장님이나 임원진들의 노고가 크게 와 닿았고 더 뜻 깊었다.
그리고 어느새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가을 산행이다. 연임으로 4년간이나 산우회를 이끌며 향우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게 만드신 손요헌 회장님의 임기가 끝나고 안동향우회 회장님이 되시면서 김영식 향우회 특임부회장님이 새로이 산우회를 이끌 회장님이 되셨다. 김영식 호에 탑승해서 배를 바다가 아닌 즐거운 산으로 이끌 임원진들이 정해지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향우님들과 드디어 첫 산행 일을 맞았다.
5월 산행은 향우회 정기총회 겸 체육대회로 대체되고 여름산행은 무더위로 넘어갔다. 응봉산에서의 즐거운 봄 산행 이후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많은 향우님들이 기다려 왔고 설레는 산행인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도 들고 나누는 마음도 깊어진다. 향우님들 개개인을 다 알 수는 없어도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것으로도 어떤 소속감이랄까, 그리운 사람을 본다는 것에 즐거움이 밀려온다.
이미 산행대장들이 산행할 산을 의논하고 답사하며 찍은 사진들이 밴드에 올라오고 산행지는 전농동의 110m 야트막한 동산인 배봉산으로 정해졌다. 장한평 벚꽃길은 몸풀이로, 배봉산은 힐링코스로 잡았다는 최경옥 총무의 산행뜻풀이도 예뻤다.
자연미가 덧셈하는 산. 사람과 가까이 있고 동네와 닿아 있어 산이라기보다
산책길로 더 어울릴 듯한 곳이 바로 배봉산이다.
얕은 동산 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배봉산은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산이었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처참하게 죽은 불행한 사도세자가 봉분도 없이 묻혀 있는 곳이어서 효심 깊은 정조가 이 산을 지나갈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절을 하고 백성들도 따라하면서 배봉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또 조선시대 영우원과 휘경원 등 왕실의 묘원이 마련되어 있고 목마장의 울타리가 지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2015년에 군부대가 있었던 정상부근에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 군사시설인 관방유적을 발견하고 서울시의 기념유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어떤 산이든 그 이름과 관련된 역사를 생각하면 내가 딛고 선 곳이 특별하게 여겨지며 그 역사와 통하게 된다. 쳐다보니 아파트 높이에 가려질 정도의 산이어서 가파르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샤방샤방 걸어갈 수 있는 산이었다. 산을 제대로 타고 싶은 사람들이야 그것도 산이냐고 하겠지만 아직 늦더위도 남아 있고 또 우리 향우님들은 연로하신 분들도 많아서 두루 살펴준 답사팀들이 생각을 많이 하고 수고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웠던 8월을 넘어서자 벌써 건조감을 느끼는 살갗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말해줬다. 해는 자꾸 짧아지고 문득 매미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대신 어둠을 뚫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한 것을 알았다. 붉게 여름을 이어오던 배롱나무 꽃잎들도 힘을 잃고 사방을 찌를 듯해서 손만 갖다 대면 피가 방울방울 배어나올 것 같았던 짙은 푸름도 가을의 힘으로 희석된 것 같았다
손요헌 전임회장님과 김영식 신임회장님의 이 · 취임 인사도 있고 새 회장님과의 첫 산행인 만큼 각 면의 회장님들과 총무님들이 향우님들을 열심히 독려해서인지 면마다 경쟁하듯 참가신청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우리 산우회의 산행 기본인원이 되어버린 200여 명을 넘어섰다. 누가 그랬다. 산은 쪼맨한데 이 인원이 다 올라가면 산이 무너질 거라고.
녹전의 임윤수 회장님이 향우님 참석 율에서 곧 일직을 이길 거라고 하더니 진짜 1등으로 일직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향우님들이 참가신청을 했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새로운 1등이 탄생한 것이다. 김한호 새 회장님과 박찬갑, 박미랑 총무로 중무장한 월곡이 같은 면인 김영식 산우회장님께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제일 많은 인원으로 참가신청을 한 것이다. 매번 김순자 부회장님이 혼자여서 외롭다고 우리 임동에서 함께 식사하곤 했는데 이번엔 참 자랑스럽고 어깨에 힘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4년 동안 류필휴 전향우회장님과 함께 특임부회장직도 성실히 잘 수행하시더니 우리 김영식 회장님의 삶이 정말 잘 살아오셨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귀신도 때려잡을 만큼 용감한 사나이가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김 회장님이다.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분단의 비극 앞에 나서야 했고 그래서 몸에 얻은 큰 상처로 지금도 고통 받으시면서 고향을 위하는 일이라면 열일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눈물 많고 정도 많고 시를 쓰고 글을 쓰는 감성도 풍부하시고 수몰로 사라진 고향 월곡에 대한 애향심도 너무나 깊다.
군대 갔다오니 고향은 물에 잠기고 어매도 아배도 어디로 갔는지 다 떠나고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해지곤 했었다.
추석이 오면 / 김영식
늘 그립고 늘 보고픈 고향
둥근 달덩이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추석이 다가오면
발길이 가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다
어린 날
꿈이 가득했던 곳
언제나 사랑을
주려고만 하셨던 부모님
한 둥지 사랑으로
함께했던 형제자매
학교마당, 마을 어귀,
골목길, 냇물가, 뒷동산
어디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모두 다 보고 싶다
추석 명절 고향 길엔
부모님을 그리고픈
마음의 선물 있다
그러나 나는 눈감고라도 달려갈
고향산천이 없다
모두들 남쪽으로 달리는데
나는 눈물겨운 남쪽하늘만
아프게 바라본다.
왠지 가슴 한켠에 외로움이 온다
추석이 오면
수몰민의 애환이련가
고향산천이 그립다
눈물 나게 그립다.
<회장님 카카오스토리에서 옮김>
달 밤/권옥희
모든 게 순조롭게 일사천리로 잘 나아갔다. 그런데 잘 나가는 일에는 뭔가 모를 기운이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떤 행사든 야외행사는 날씨가 변수이다. 가을장마처럼 며칠을 비가 내렸다. 까짓 비쯤이야 폭우만 아니면 무슨 대수랴.
손요헌 회장님 취임하고 관악산 첫 산행 발대식 때도 장대비가 쏟아져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산우회는 날로 발전했고 작년에 청계산 산행 할 때도 비가 와서 우중의 산행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데 이번엔 느닷없이 강력한 태풍이 들이닥친다니~
그 태풍과 맞서 이겨낸다면 우리 산우회 이보다 더 발전하게 될 거고 김영식 회장님은 산행하겠다고 찾아오는 향우님들 어찌 다 책임질까. 몇 번의 태풍이 일본으로 잘 비켜 가다가 하고많은 날을 두고 왜 하필 우리 산행 날에 그것도 중형급 태풍의 위력을 지닌 링링이 우리나라 서해로 들어오냐구요.
곧이어 임원진들이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마련에 나섰다. 원래 산행 날이 추석과 겹쳐서 한주 앞당긴 건데 뒤로 물릴 수도 없고 때려잡는데 귀신인 산우회장님 빽을 믿고 태풍이 와도 일정 변경 없이 맞선다고 했다. 바람 불고 비가 많이 올 때를 대비해서 실내행사, 야외행사, 코스 변경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맞겠금 계획을 세웠다.
회장님이 링링에게 바람은 불어도 이해하니 비는 오후부터 오라고 명령을 내려놨다고 하셨다. 잘하면 이번에 귀신이 아니라 태풍도 한방에 때려눕히는 산우회장님이 되실 지도 모르겠다. 하긴 바람이 심하게 불고 거센 비가 오면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 뷔페에 점심예약을 해 놨으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많은 인원이 움직이려면 불상사는 없어야 했다. 진짜 무슨 반전처럼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되기를 모든 향우님들이 바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계속된 비에 점점 우리나라로 다가오며 위력을 떨치는 태풍 경로를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재난방송을 켜놓고 자다 말다 하며 눈을 뜨니 아침 하늘은 흐려도 비도 안 오고 바람도 마치 폭풍전야처럼 잠잠했다.
장한평역 4번 출구로 가는 동안 밴드에는 산행을 걱정하는 향우님이 온 나라가 태풍여파로 전전긍긍하며 예약했던 모든 행사를 취소하는데 위험한 산행을 감행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으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새로이 계획한 일정을 미리 밴드에 올려놨으면 좋았을 것을. 아마도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니까 염려의 마음으로 쓰신 글일 게다. 직접 와 보셨으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만약을 대비해서 1안에서 3안까지 대안을 세워놓고 철저하게 준비된 과정에서 하는 산행이니 크게 걱정은 안 됐다. 비를 맞아도 좋고 바람에 밀리면 뒤에서 받쳐주고 오히려 더운 야외보다 시원한 실내행사가 더 좋을 수도 있다. 우리의 산행이 산에 가는 게 목적이긴 하지만 그 보다는 소통의 장으로 향우님들과의 만남과 교류에 더 목적이 있는 건 사실이다. 매번 산행 때마다 낯선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면 새로운 향우님들이 많이 참석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추석 명절 앞두고 같은 면민들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고향 얘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는데 태풍인들 대수일까.
그런데 우리 생각과 달리 모든 산과 둘레길에 입산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뉴스에 뜨자 우리의 일꾼 영만 대장은 일찍 가서 그 아침에 뚝방길에서 배봉산 입구까지 단걸음에 답사를 다시 갔다 왔다. 다음은 그 순간의 감회를 쓴 권대장의 글이다.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라는 예보를 전날부터 뉴스가 시끄럽고 밤새 걱정스러웠는데 새벽에 일어나보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바람만 조금 불었다. 서울에 있는 산에는 입산을 금지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배봉산은 높이가 아파트보다도 높지 않은 얕은 산인 듯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 향우님 한분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다. 그래서 일찍 장한평역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답사를 하였다.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서 배봉산까지 갔다.
배봉산 입구는 통제하지 않았고 많은 시민들이 자유로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재경안동향우 산우회가 아닌가? 작은 위험이라도 최선을 다해 피하고자 하는 회장님의 의지를 알기에 대체코스를 찾아야 했다. 배봉산을 대신하여 중랑교를 건너서 강변산책로를 발견하고 아침 9시 30분 집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우회코스를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걸어서 안전을 확인했다. 강물이 넘칠 위험도 없고 간판이나 물건이 날아올 것도 주변에 없었고, 고목이 쓰러지거나 나뭇가지가 날아올 염려도 없어 보였다.
답사를 다행히 시간 내에 마치고 김영식 회장님과 홍기대 총괄대장 등 임원들과 협의하여 산행코스를 일부 수정했다. 그래서 갈 때는 장안 벚꽃 길을 걷고 돌아올 때는 중랑천의 반대편 강변 산책길로 오려고 했는데 아침에는 통과한 중량교에서 강변산책길 입구가 봉쇄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태풍예고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끝에 배봉산을 선택했듯이 여러 가능성과 방안을 세우기 위해 서로 고민했었고 세 차례의 답사와 당일 현장점검까지 하면서 실시한 산행이기에 결코 경솔한 산행추진이 아니었다. ]
<밴드글에서 옮김>
영만 대장은 이렇듯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급하고 마음 졸였던 태풍과 맞서는 산행일 아침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그런 애씀이 없었다면 어찌 우리 향우님들이 태풍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같이 가시더~ 하며 200명이 가까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날씨가 날씨인 만큼 100명이 넘으면 많이 오시는 거라고 식사도 넉넉잡아 160명 분을 예약했다는데 향우님들 모두 산우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의 일처럼 깊었기에 함께 했고 그것은 모두가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장한평역 4번 출구 앞 건물 주차장은 우리 안동인들로 시끌시끌하고 김영식 산우회 회장님 취임을 축하한다는 프랭카드가 우리 임동향우회 이름으로 걸려 있다. 가운데는 <손요헌 회장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문구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렇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 또 생각해내면서 모임은 발전해가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반갑다고 손잡고 인사하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몸이 열 개였으면 좋겠다는 은희 특임부회장 말이 맞았다. 보고 또 봐도 반가운 사람들이어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초록색 점퍼가 멋진 손 회장님은 언제나처럼 금요철야 기도로 제발 우리 산행하는 동안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하셨다. 참 신기하게도 그 듬직한 기도 빨이 또 먹혀들어가는 것 같다. 그동안 공을 들인 산우회 자리에서 물러나도 안심해도 될 만큼 비바람 몰아치는 것조차 신경 안 쓰고 모인 이 많은 향우님들을 보며 흐뭇하신 듯 했다.
그것은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밤새 걱정하느라 잠을 설쳤을 김영식 회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주시고 다른 향우님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경산악회 김은숙 회장님과 부회장님, 사무총장, 총무들도 축하차 와 주셨고 언제나 씩 웃는 모습이 정겨운 이준석 고문님, 너무 바위를 사랑하다가 무릎을 다쳐 여름내 병원에서 고생하신 김용현 산우회 고문님이자 가객님도 오시고 이경국 작가님과 결혼식이 있어 못 오신다고 하던 우리 임동의 류건덕 감사님도 사모님을 먼저 식장으로 보내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기쁜 걸음을 하셨다. 또한 박종숙 논객도 제주도 출장이 비행기 결항으로 비싼 걸음 했다고 해서 반가웠다.
어디 우리 임동만 그럴까. 다른 면의 향우님들도 오래도록 보지 못하던 사람들을 이때 만나 회포를 푼다.
우리 류필휴 전향우회장님을 퇴임 후 한번도 뵙지 못해 많이 보고 싶었는데 다른 일정이 겹쳐 못 오신다고 해서 많이 아쉬웠다. 늘 바쁘시던 분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많은 향우님들이 나처럼 뵙고 싶고 근황을 묻고 싶었을 거다. 아침 일찍 답사를 갔다가 땀을 흘리며 헐레벌떡 달려온 영만 대장이 안심해도 된다는 말에 우리는 긴 행렬을 이루며 산행 길이 아닌 뚝방 길을 산책하듯 나섰다.
배봉산은 오르지 못 하지만 서울의 10대 걷기 좋은 길로 뽑혀서 봄이면 벚꽃 길로 유명하고 가을엔 낙엽 길로도 유명한 중랑천 뚝방 길로 들어서자 누군가 아파트에 가려져 꼭대기만 살짝 드러내는 배봉산을 보고 "에게~ 무덤 같네!" 하며 웃었다. 바람은 살살 불기 시작해도 습도가 높아 그런지 몇 걸음 가지 않아서 땀이 났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길에서 길게 줄을 이루며 삼삼오오 걸어가는 향우님들 모습이 행복으로 가득 찬 듯 했다. 뉴스만 보고 미리 걱정해서 안 오신 분들이 밴드에 올라온 사진보고 이 글을 보면 많이 아쉬워 할 것 같다.
오늘 내 배낭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가족공원이라 음주는 허용 안 된다고 했고 비가 오면 펼쳐놓고 먹을 데도 마땅찮을 것 같아서 과일조차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녹전면에서 지평막걸리 세 박스를 찬조해서 김 회장님이 밤중에 향우회관까지 가서 실어오고 각 면에 두세 병씩 돌아가는 걸 보았다.
평소 같으면 가족단위로 산책하는 사람들로 길이 가득 찼다는데 날이 날인지라 오늘 이 뚝방 길은 우리가 전세 냈다. 모두가 우리 식구들. 그래서 막걸리 한잔씩 마신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막걸리가 없었으면 어쩌면 재미가 조금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은희야, 목마르다. 막걸리에 홍어 먹자!” 했더니 “오늘은 홍어 없다~” 하는 게 아닌가. 은희도 어설플까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침 한 번 꿀떡 삼키고 걸어가는데 금경수 회장님과 임하섭 회장님과 우동연 대장 등 앞서가던 일행들이 벌써 전을 펼쳐놓고 맛나게 막걸리를 들고 계셨다.
한잔 건네주기에 목마르던 차에 단숨에 마셨다. 안주는 복숭아 한쪽~ 그게 또 그렇게 맛있다. 누구는 동충하초술도 가져왔는데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바로 이 분위기와 이 맛이 좋았다. 뒤쳐져서 부지런히 가는데 곳곳에 운동기구도 많고 벤치며 평상도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구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만큼 우리 향우님들 휴식도 취할겸 가다 말고 곳곳에 전이 펼쳐져 있다.
이번엔 서후면 식구들이 평상에 전을 펼쳐놓았다. 음식 솜씨 좋은 정춘 총무에게 “오늘은 맛있는 겉절이가 없네?” 했더니 여기도 오늘은 없단다. 대신 생땅콩과 알밤 삶은 거~ 그것도 맛있다. 고동주 부회장님이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삶은 밤을 넣어주신다.
언제나처럼 손 회장님은 앞서 가던 걸음을 뒤로 늦춰서 기어이 우리와 만났다. 그래서 달게 막걸리 한잔을 드셨다. 산에 가는 재미는 바로 이런 거다. 여름 가고 가을에 발을 담근 주변의 풍경도 돌아보고 높은 산이 아닌 곳으로 쉬엄쉬엄 걸으며 배낭에 짱박아 넣은 막걸리 한잔 향우님들과 함께 나눠 마시는 재미, 이런 게 우리 재경안동향우 산우회의 산행이다.
태풍이 점점 서울로 가까워지는지 가끔 몰아치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이 발밑에 가득하고 모자가 날아갈까봐 한 팔로 꾹 누르며 만보를 넘게 걸어 턴할 지점이 되었을 때 앞서가던 향우님들이 가던 걸음을 되돌아오고 있었다. 중랑교를 건너 밑에 강변산책 길로 가야 되는데 아침에는 건널 수 있었던 다리가 봉쇄되어서 돌아 나온 것이다.
졸지에 꼴찌로 가다가 선두에 서게 되었다. 시간은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예약된 근처 뷔페 식당으로 바로 가도 되었다. 하늘은 간간이 해도 보였다가 빗방울도 뿌렸다가
또 한바탕 바람도 들이밀면서 변덕을 부렸지만 우리는 이미 할 건 다했으니
맘대로 올 테면 오라고 했다.
드디어 태풍이라는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도 우리 향우님들 모두 별 탈 없이 산행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콧노래로 흘러나왔다. 룰루랄라 식당으로 가니 널찍하고 시원한 홀이 200명 향우님들이 다 들어가고도 남았다. 식당으로 바로 오신 우리 임동 류창식 회장님이 계시고 오래도록 못 본 동생도 있어서 반가웠다. 언제나 언니처럼 다정하게 먼저 다가와 정을 주는 안동여고 회장이자 우리 향우회 특임부회장인 이옥분 회장님도 동기 여러분과 함께 자리를 채워주셨다.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향우님들 모두가 오늘 태풍 링링과 싸워 이긴 승리자들이었다. 아니면 착한 바보들이 예뻐서 비바람이 참아주었을 수도 있다.
기념패와 꽃다발을 두 분 회장님께 전달하며 이 · 취임식이 많은 축하 속에 끝나고 회장님들은 각 면 테이블을 돌며 기념사진도 찍고 격려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우리 테이블에 오신 두 분 회장님이 향우회 산우회 우리 이대로 쭉 같이 가시더~ 하며 손을 감싸잡아서 나는 속으로 ‘그래~ 이번 산행후기는 이 제목으로 써야지~’ 하며 흡족해 했다.
오늘 산행이 오늘 하루만 행복한 게 아니라 계속 향우회 산우회 행사 때마다 우리 향우님들께 많은 행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산행 아닌 산행이었지만
마음 졸이며 애써준 산우회 김영식 회장님과 고문님, 자문위원님, 본부지원팀, 부회장, 대장, 총무님 모두모두 수고했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많은 찬조를 해주신 회장님 이하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우리 이대로 주욱 같이 가시더.
사진: 김은희, 남효용, 권영만 #행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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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 안동향우회
금싸라기 향우님
행복 하세요⬆
웅도 경북
안동문화권
훈련받은 양반'
선비정신 염치'의
원조 도성을 출향하시고'
자의반
타의반 두고 떠나신 내고향의 부흥발전을
위하시어
동,분, 서,주 하여 주시니 감사 합니다😅
귀하신 향우님께서 움직이는 손길마다 실족치 아니하시고'
복의복이 넘쳐나시도록 축복 합니다⬇️
백범 김구선생님 다음으로 제일 훌륭하신 출향 유지 어르신을
모셔 왔습니다😅
<링링은 떠나도 추억은 남는다>😅
멋진글과 사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