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 남자
박경주
남자는 스크린 앞 의자에 나를 앉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세요. 자, 웃어보세요. 살짝. 그리고 셔터가 몇 번씩이나 불을 뿜었다. 드디어 사진관 모니터에 한 노파가 보였다.
‘저게 나라고?’
‘어쩌면 좋아.’
‘입이 삐뚤어졌네.’
축 처진 눈꺼풀이며 뺨에 다닥다닥 붙은 기미하며. 웃으라고 해서 살짝 웃었더니 입이 한쪽으로 삐뚤어진 것이다. 당황한 내 모습을 보고 사진관 남자는 말했다.
“수정할 수 있어요.”
남자는 화면 속 내 얼굴에 마우스를 갖다 대고 올라간 오른쪽 입 꼬리를 짠 하고 내려서 반듯하게 고정시켰다. 분명 방금 생각으론 입만 반듯하면 되겠구나 했는데, 입이 반듯해지자 얼굴은 더 이상해졌다. 웃을 때 치켜 올라간 건 입만이 아니었던 게다. 코와 눈도 입 꼬리와 함께 올라간 탓이었다.
“다시 찍어주세요.”
“한 판 값을 더 내야 되는데요?”
나는 그냥 사진을 입이 틀어진 원래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삐뚤어졌어도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입이 틀어진 새 여권을 가지게 되었다.
마리아 사진관.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스무 해 전. 집에서 가까운 사진관을 찾다 낡은 건물 계단 2층에 있는 사진관을 발견하고 부터다. 삐꺽대는 나무 계단이 정겨웠고, ‘마리아’라는 이름이 좋았다. 길 건너에는 블론디 사진관이 있었지만 거긴 길을 건너야 했다. 사진관에는 똥똥하고 작달막한, 날카로운 눈매의 사진관 남자가 앉아있었다.
계속 그 사진관을 찾은 것은 아날로그적인 분위기가 내겐 편해서였다. 낡은 탁자와 소파엔 옷이며 신문, 사진을 오려내고 남은 종잇조각으로 늘 지저분했다. 꽃 한 송이 꽂혔던 적 없는 것 같은 삭막한 공간엔 오래된 전자시계가 늘 재잘대고 있었다. 벽에 걸린 액자들도 언제나 그대로인 듯. 어쩌면 돌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저 아이는 벌써 성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처음 왔을 때와 달라진 건 구형 컴퓨터가 17인치 모니터와 함께 나란히 정중앙에 떡 앉았다는 거였다. 그는 독수리 타법의 명수였다. 그 컴퓨터에 막 찍은 사진을 저장하고 값을 지불하면 원본 파일도 메일로 보내주었다.
마리아 사진관에 다시 갔다. 그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아들이 이메일로 보내온 원판사진을 인화해주기 위해서였다. 사진관남자는 여전히 내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주문을 들었다.
“반명함판 열 장, 명함판 열 장이요.”
“증명사진은요?”
“그것도 열 장요.”
나는 내 메일 안에 있는 아들의 사진을 사진관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해 주었다.
“사장님, 많이 뽑는데 싸게 좀 해주세요.”
“그런 얘긴 하지도 마세요. 남는 것도 없어요.”
“다른 사진관들 다 문 닫았어요. 쫄딱 망해서 문들 다 닫은 거 안 보여요? 한땐 잘 나갔지요. 지금은 어림도 없어요.”
“아, 사진관들이 정말 안 보이던데요, 저 앞에 있던 것도요.”
“요즘 다 핸드폰으로 찍고 컴퓨터에 저장하지 사진관에 안와요.”
남자는 투덜거리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잠시 후 프린터가 찍찍 소리를 내며 사진을 인쇄하며 뱉어내고 있었다.
“프린터가 좋은가 봐요. 사진이 아주 선명하네요.”
“저것이 보통 프린턴 줄 아세요.”
“아주 비싼 것인가 봐요.”
남자는 히죽이 웃었다.
“충무로 사진관 가도 저런 건 없어요.”
내가 프린터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장소에서 2대째 사진관을 하고 있다는 것, 문 닫고 싶어도 선친이 하던 거라 그러지 못했다는 것.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지금은 벌이도 없고 소일거리로 한다는 것, 남자는 나이가 벌써 예순 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저도 예순 다섯인데요.”
“그럼 토끼띠세요?”
“그런데요.”
“이런, 저랑 동갑인데요. 하하.”
남자는 갑자기 내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스무 해도 훌쩍 넘은 세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던 눈길이 오늘 왜 마주쳤을까? 사진관 남자는 동갑내기 여자가 얼마나 늙었나가 궁금했을 것이다. 내가 남자의 프린터에 관심을 보여서인지 그날은 싹싹하게 나를 배웅했다. 사진 값도 깎아주었다.
어쩌면 사진관 남자에게도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시간을 잊은 듯 의자 한 개 달라진 적 없는 일터에서 날마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남자. 웃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또래 사람들과 장기를 두거나 잡담하는 일로만 소일을 하니 답답하진 않았을까. 새 단장을 하거나 아예 다른 가게를 차릴 법도 한데. 그저 거울 한 개, 빗 몇 개, 넥타이 몇 개를 문가에 걸어두고 귀신 나오게 생긴 소파에는 짜장 묻은 신문지와 우산이 나뒹구는 곳. 마리아 사진관은 마을의 고목처럼 세월과 함께 늙어가며 우리 동네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