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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또는 한 사람의 행복한 남자 / 알베르 카뮈
아침 열 시였다. 빠트리스 뫼르소는 규칙적인 걸음걸이로 자그르가 살고 있는 별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 시각이면 간호사도 시장에 나가고 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절은 햇빛이 눈부신 4월이었고, 지금은 차갑고 아름다운 봄날 아침이었다.
그는 별장 출입문 앞에 멈춰 서서 장갑을 꺼내 끼었다. 그리고 자그르가 열쇠를 잠그지 않은 채 놓아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서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문을 노크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자그르는 어김없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안락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잘려진 두 다리 위에 무릎 덮개를 덮고 앉아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자그르는 조금도 놀란 빛이 없는 둥근 눈으로 다시 닫혀진 문 옆에, 이제 막 들어선 뫼르소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뫼르소는 벽난로 반대쪽에 있는 장롱 근처로 다가가서 불구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는 자신의 다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굽혀 장롱 문을 열었다. 흰색 천 위에 놓여 있는 권총은 마치 잘 가꾸어 손질한 고양이처럼 모든 곡선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 권총은 전과 다름없이 자그르의 유서 위에 놓여 있었다.
뫼르소는 왼손으로 그 유서를, 오른손으로 권총을 꺼내 쥐었다. 잠시 주춤하다 그는 권총을 왼팔 옆구리에 끼고는 유서를 읽었다.
"제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남아 있는 반쪽뿐입니다. 따라서 부디 저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의 작은 금고에는 지금까지 저를 보살펴 준 사람들에게 지불하는 데 필요한 액수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불하고 남은 돈은 사형수들의 처우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쓰여졌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가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뫼르소는 무표정한 태도로 유서를 다시 접었다. 뫼르소는 몸을 굽혀 금고 열쇠를 돌리고, 신문지로 싼 꾸러미 한 모퉁이로 가장자리만 보이는 몇 다발의 돈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권총을 옆구리에 낀 채, 한 손으로 차곡차곡 들고 온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권총을 빼들며 불구자 앞으로 다가갔다. 자그르는 그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자그르는 몸을 꼼짝도 않은 채, 이 4월 아침의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겨냥하고 있는 총구를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눈길을 그리로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지켜보던 빠트리스는 그의 눈에 눈물이 흠뻑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것은 자그르가 아닌 빠트리스 뫼르소였다.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방아쇠를 당겼다.
광장에 다다르자 그는 갑자기 한기를 느꼈고, 얇은 웃옷 밑으로 떨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는 두 번 재채기를 했다. 그러자 골짜기는 비웃는 듯한 또렷한 메아리로 가득 차고, 수정같이 맑은 하늘은 그 메아리를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띄워 보냈다. 파란 하늘에서는 수없이 많은 창백한 미소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인간이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이란 살아야 하는 것이요,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가 처음 자그르를 만났을 때, 그는 몹시 조급해 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자그르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연인이 당사자인 그 여자 앞에서 함께 만난다는 것으로 상상력에 미치는 거북살스러운 기분을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므로 그는 마르뜨를 '양갓집 아가씨'처럼 다루면서 크게 웃어 보임으로써 뫼르소에게 동류의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뫼르소는 계속 반발심을 느끼고 있었다. 마르뜨와 단 둘이 앉아 있을 기회가 오자마자 그는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실토했다.
"나는 반편 같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 난 그 사람이 거북스러워. 기분 잡친단 말야. 게다가 허세까지 부리는 병신은 더욱 싫어."
"오오, 이봐요.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라고 무슨 소린지도 다 알아듣지 못한 마르뜨가 말했다.
그러나 그후 자그르의 집에서 그를 처음 불쾌하게 했던 그 쾌활한 웃음소리가, 점점 뫼르소의 관심을 끌고 자그르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뫼르소의 내심에 품고 있던 숨기기 힘든 질투심도 자그르를 만나는 동안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가 자그르와 사귀기 시작할 시절의 이야기를 아주 순진한 마음으로 들려주는 마르뜨에게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 나는 이제 더 이상 두 다리 없는 그런 사람에게 질투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어. 설사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상하는 일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은 너에게 달라붙은 커다란 벌레처럼 보일 뿐이야. 이제 알겠지? 그런 일은 배꼽을 쥐고 웃을 일밖에 되지 않아. 공연스레 열내는 일 없도록 해."
그 후 그는 혼자서 자그르의 집에 또 찾아갔다. 자그르는 수다스럽게 큰 소리고 지껄이고, 웃고, 그리고 침묵을 지키곤 했다. 뫼르소는 자그르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이 불구자에게서 받은 강렬한 인상은, 그가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 것들은 억제된 정열, 그리고 이 우스꽝스러운 몸뚱이의 주인공에게 불어넣어 주는 강한 생명력이 뫼르소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내면세계에 무엇인가를 탄생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일 그에게 좀더 허심탄회하게 대했더라면 그 무엇인가를 그는 우정이라고 단정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일요일의 오후, 유난히 말도 많이 하고 농담도 많이 지껄이고 나서 롤랑 자그르는 하얀 무릎 덮개를 걷어치운 채 벽난로가에서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길 저쪽에서는 우유 배달차가 덜커덩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창문을 두드렸다. 벽난로가에 앉아 도자기처럼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내, 그리고 방 안에 흐르는 고요함, 이 모든 것이 어떤 과거의 모습을 일깨워 주고 있었으며 그 과거의 침울하고 쓸쓸한 우울감은 마치 조금 전 빗물에 신발이 젖어 물이 스며들고 얇은 옷을 적셔 무릎이 시리는 것처럼, 뫼르소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의 바지 주름은 비에 젖어 이미 없어졌고, 그와 동시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어울리는 세상 속에서 한결같이 이리저리 지니고 다니는 그 정열과 자신감도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당신은 몹시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하고 자그르가 말했다.
뫼르소는 수치심 같은 것을 느끼며 다만, "네, 조금 심심하군요"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나는 결혼도 하고 싶고, 자살도 하고 싶고, 또 "일류스트라씨옹" (역주: 당시의 유명한 삽화가 있는 잡지)지의 구독 예약도 하고 싶어요. 이런 것은 절망적인 몸부림이겠지요."
자그르는 미소를 지었다.
"뫼르소, 당신은 가난하군요. 그것이 당신이 심심하게 지내는 원인의 절반이겠지요. 나머지 반은, 당신은 싫지만 자기의 가난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인하고 있어요."
뫼르소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이란 육체의 욕구와 정신적 욕망 사이에서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을 알고 있으며, 그 형편에 따라 언제든지 판단하는 법이지요. 당신은 지금 자기가 자신을 판단하는 중이요. 그것도 지독하게 말이요. 뫼르소, 당신은 서툴게 살고 있어요. 아주 거칠게."
이 계절에는 아직 철이른 파리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쳐 날개를 떨고 있었다. 자그르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 게 싫어요. 그땐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꼭 하나밖에 없거든요. 즉, 자기의 인생을 정당화시켜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리지요."
"저 역시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뫼르소가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자그르의 시원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고맙소. 당신은 아무런 환상도 나에게 남겨주지 않을 것 같소." 그는 어조를 바꾸었다.
"그러나 당신이 냉혹하게 되는 것은 옳은 일이요. 하지만 당신에게 해 둘 말이 하나 있소." 그리고 자그르는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날 봐요.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용변을 보지요.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나를 씻겨주고 닦아줘야 하고. 나는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해주고 있어요. 다행한 일은, 내가 이제 그만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생명을 단축하기 위한 짓을 나는 결코 할 수 없겠지. 지금보다 더 큰 불행이 닥쳐와도... 즉 내 눈이 멀거나 벙어리가 되어도, 아무튼 어떻게 돼도 상관없이 무엇이든 감수할 것이오. 만일 그 덕분으로 살아 있는 나 자신이 그 타오르고 있는 듯한 불꽃을 내 몸 속에서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아직 불태울 수 있도록 해준 생명에 대해서 감사드릴 수 밖에 없다오."
자그르는 숨이 가빠서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런데 뫼르소, 당신같이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면, 당신은 산다는 것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유일한 의무로 알아야 할 겁니다."
"웃기지 마시오. 여덟 시간이나 사무실에 얽매어 일하고 있는데. 아, 내가 자유로운 몸이라면!" 하고 뫼르소는 말했다.
뫼르소는 이렇게 말하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때때로 그랬듯이 희망이 되살아났고, 그러면서도 오늘 그 희망은 자기가 어떤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으로써 이전보다 더욱 강렬한 희망에 설레었다. 드디어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어떤 감정이 그에게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든 것이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었어요. 사람들은 나의 생활이나 나의 미래에 관해서 말해 주고 있었어요. 저는 그저 네, 네, 했지요. 물론 그들이 말한 대로 착실히 해나갔지요. 그러나 웬걸. 이젠 모든 희망이 어설프게 되어 버렸지요. 나 자신의 개성을 죽이도록 노력하는 일, 그것만이 나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역으로 행복해지려 하지 않고 그 반대를 추구하게 된 거죠. 설명이 잘 안 된 것 같습니다만, 이해하시겠지요? 자그르씨."
"이해하고 말고요." 하고 상대가 말했다.
"아직까지도, 만일 내게 시간이 있다 해도... 나는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겠어요. 만일 그 이상 내 신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모두 저 작은 조약돌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것이겠지요. 빗물은 돌을 씻겨줄 것이고,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언젠가 또다시 조약돌은 뙤약볕에 불타게 되겠지요. 나는 언제나 행복은 마치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불구자는 흥미있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육체는 언제나 그것에 합당한 이상을 가지게 마련이요. 말하자면 그 조약돌의 이상이라고 하는 것을 유지해 가려면 신에 가까운 육체가 필요한 것이지요. 당신은 행운아요. 자기 육체의 한계를 아는 것, 그건 진정한 심리학자이지요. 한편으로 보면 그와 같은 일들은 중대한 것이 아니지요.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인간답게 살 시간을 못 가졌어요. 우리들에겐 다만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간밖에 없어요. 그러나 당신의 그 개성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나에게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을까요?"
"양해해 주십시오, 자그르씨. 저는 꽤 오래전부터 어떤 종류의 일에 대해선 말할 수 없게 되어있어요. 내 인생과 그것이 품는 남모르는 색깔의 배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 자신도 마음속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지금 이 하늘처럼. 그것은 동시에 비도 되고 태양이 되기도 하여 정오이면서 한밤중 같은 것이지요. 아하, 자그르씨! 나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당신도 그것이 나라고 분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극단적인 불행과 한계가 없는 행복에 사는 나에게 무어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럼 당신은 동시에 여러 개의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격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서툰 솜씨는 아니지요." 하며 뫼르소는 흥분조로 말했다. "나는 생계를 꾸려가야 합니다. 나의 직업이, 남들에게 참고 견디어 주는 그 여덟 시간이 나를 그르치고 있어요. 나는 내가 어느 정도의 생활까지 다다르게 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인생을 경험으로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저 자신이 제 인생의 경험이 될 겁니다. 이제는 행동한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괴로운 것은 바로 살아간다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투철해야 하고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정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당신은 일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거요."라고 자그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반항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나쁜 점이지요."
자그르는 침묵을 지켰다. 비는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자그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네요."
그리고 뫼르소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말을 뚝 끊었다. 뫼르소는 어둠 속에서 격한 어조로 말했다.
"비록 사랑을 받고 있다 해도, 그것으로 나를 속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확실한 걸요. 당신도 언젠가는 홀로 있게 될 거요. 그것이 전부요. 자, 앉아서 내 얘길 들어요. 당신 이야기에 내가 충격을 받았어요. 그것은 인간으로의 내 경험이 지금까지 나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요. 당신의 육체 때문일지도 모르겠죠. 당신의 육체야말로 당신에게 그와 같은 모든 것을 가르쳐 준 겁니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툭 터놓고 말할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려."
뫼르소는 천천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넓은 하늘을 마주 보며, 자그르의 기이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확실한 것은" 하며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돈이 없으면 누구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는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느낀 것은, 어느 엘리트 중에는 행복해지는데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스노비즘(속물근성)이 있어요. 그것은 바보스러우며, 원시적이고 그리고 어느 정도 비겁하기까지 해요, 뫼르소? 잘 태어난 사람에게는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 복잡한 게 아녜요. 모두 자기의 운명을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이지요. 그것만은 가짜 위인들처럼 체념하려는 의도가 아닌, 행복해지기 위한 의지만 있으면 얻어지는 거죠. 다만, 행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많은 시간이죠. 행복은 또한 길고 오랜 인내에서 오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어요. 실은 돈으로 시간을 사야 하는데 말예요. 바로 그 문제가 내가 지금껏 관심을 기울인 단 하나의 문제였지요. 이것은 정확하고, 명백한 사실입니다."
자그르는 거기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뫼르소는 집요하게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길거리와 들판에서 나는 소리가 좀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자그르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선 아무런 분별력이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돈을 가졌다는 것은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어요. 시간은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살 수 있어요. 부자거나 부자가 되는 것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 만할 때 시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빠뜨리스를 바라보았다.
"뫼르소, 나는 스물다섯 살 때 행복에 대한 감각과 행복을 향한 의지, 행복하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어떠한 사람도 부자가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어요. 행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도 가장 고귀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모든 것은 그와 같은 필요에 따라 정당화된다고 봅니다. 다만 거기에 순수한 마음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러면서 자그르는 벽난로와 접해 있는 조그만 장롱을 열고, 열쇠가 달린 커다란 갈색 강철 금고를 가리켰다. 금고 위에는 하얀 편지와 검은색의 큰 권총이 놓여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뫼르소에게, 자그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자기의 육체를 앗아간 그 비극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날이면, 그는 자기 앞에 그 편지를 꺼내 놓곤 하는데, 그 편지에는 날짜는 없고 죽고 싶다는 그의 심정이 담겨져 있었다.
자그르는 책상 위에 권총을 꺼내 놓고, 손에 쥐어 보고, 총구를 이마에 갖다 대고는 관자놀이에서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고, 또 차가운 총신으로 뺨의 열기를 식혀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방아쇠 고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기도 하고, 안전장치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편지에 날짜를 쓰고 방아쇠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또한 죽음이 어처구니없이 쉽다는 것을 인정하는 활기찬 그의 상상력은 그에게 있어서 생명의 부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공포감 속에서 또렷하게 되살리고 있었다.
"분명 나는 인생을 실패했어요. 하지만 나는 정당했어요.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것은, 어리석음과 폭력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항하는 길이었지요. 뫼르소, 우리 문명의 모든 비열함과 잔혹함은 행복한 백성에겐 역사가 없다고 하는 그 어리석은 원리에 측정되는 것이죠."
불구자는 긴 이야기에 지쳐, 남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싶은 거요. 나는 돈이 행복을 만들어 낸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나는, 어떤 계층에게 있어서는 행복하게 되는 것은 '시간을 가졌다는 조건'으로 가능한 일이고, 돈을 가졌다는 것은 그 사람을 돈에서 해방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극적으로나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다만 행복뿐이오. 그걸 잊지 말아요, 뫼르소. 당신에겐 순수한 마음이 있어요. 그걸 생각해 봐요."
뫼르소는 졸음에 휘말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밤의 깊은 심장으로부터, 그를 향해 손짓하는 소리와 침묵이 한꺼번에 솟아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졸음에 눈 붙이고 잠자고 있던 세계의 한 끝에서 한 척의 배가 사람들에게 떠나가자고, 그리고 다시 새 출발하라고 오래오래 외쳐 대고 있었다.
그 다음날, 뫼르소는 자그르를 죽였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오후 내내 잠을 잤다. 그는 열이 나서 잠을 깼다. 그리고 저녁에도 여전히 누워서 동네 의사를 불러오게 했는데, 의사는 그에게 감기약을 처방해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모든 것이 정리 되었다. 신문에도 났고 조사도 받았다. 모든 것은 자그르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일주일 후 뫼르소는 베르사유로 가는 배에 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프랑스에서 요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타향에서 사는 고독이란 그에게는 단지 불안이 쌓여 이루어지는 행복이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 속에서 왠지 막연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친구라도 있어 두 팔을 크게 벌려 그를 맞이하여 준다면, 눈물이 쏟아지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러나 그 눈물은 그가 내던져져서, 사랑 부재의 세계에 접한 경계선까지만 와서는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손과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어린애 같은 여러 가지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 솟아 올아왔다. 그것이야말로 태양과 여자들로 가득 찬 도시, 녹색 저녁이 오면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도시, 그와 같은 도시를 향한 향수임이 분명했다.
그는 제네바를 거쳐 알제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중대한 결심을 한다든가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도박을 걸기 전에 고독을 필요로 하듯이, 고독과 이국에서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생활에 진저리가 난 뫼르소는 자기의 유희를 개시하기 전에, 우정과 실리 속으로 자기를 끄어들여 안정을 맛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런데 뫼르소는 비엔나를 떠난 후 단 한번도, 자기 손으로 죽인 자그르를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는 어린이나 천재, 무고한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망각의 기능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되었다. 죄책감 없이 기쁨에 들떠 있는 그는 이제 자신이 행복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디어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집은 언덕 맨 꼭대기에 매달리듯 세워져 있어서 항만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빠트리스와 까트린느는 테라스의 햇볕을 받으며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태양의 맛을 핥아 봐" 하며 빠트리스는 한 팔을 내밀어 까트린느에게 권한다. 그녀는 그 팔의 살갗을 핥아 본다. "그럼 내 팔의 햇볕 맛도" 하며 그녀가 팔을 내민다. 그도 핥아 본다. 동네에서는 이 집을 '세 여학생의 집'이라고 부르고, 로즈, 끌레르, 까트린느, 그리고 가르손은 그 집을 '세계를 바라보는 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는, 세계는 하나의 역할 수행하는 인물이 되어 우리들이 누구에게서보다 기꺼이 충고를 받아들이고, 균형이 사랑을 말살시키지 않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그들은 세계를 증인으로 삼고 있다. "나와 세계는 너희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빠트리스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까트린느에게는 벌거벗는다는 것이 편견은 떨쳐버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세계 앞에서 난 옷을 벗어 봤어." "알겠어, 여자들이란 원래 자기들의 감각보다는 관념을 더 좋아하게 되러 있으니까." 뫼르소가 경멸조로 말한다. 그러면 까트린느는 펄쩍 뛴다. "이 계집애가 바로 자연아란 말야." 하고 끌레르가 계속 먹어 가며 말한다. 그러고 나서 모두 일광욕을 하러 가서는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낸다. 인간은 인간의 힘을 약화시켜 버린다. 그러나 세계는 그 힘을 그대로 간직한다. 로즈, 끌레르, 까트린느, 그리고 빠트리스는 그들 집의 창가에서 다양한 영상과 외관 속에 살면서, 자기들 사이를 연결시키고 있는 어떤 형태의 유희에 동의하고 있고 부드러운 애정에 부응하도록 우정 속에서 히히덕거린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과 바다의 너울거리는 춤을 바라보며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자기들 운명의 은밀한 색깔의 배합을 또다시 발견하고, 그들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깊숙한 것과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루는 바다 위에서 시작되어 언덕 너머에서 저물러 간다. 왜냐하면, 하늘은 바다에서 언덕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밖에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는 결코 한 가지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계는 흥미를 끌게 했다가는 곧 싫증나게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반복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고, 그 끈기의 칭찬에 얻어 걸리는 기회가 언제나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웃음과 소박한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사치한 천으로 짜여진 '세계를 바라보는 집'의 나날은, 별들이 총총이 들어찬 밤하늘을 바라보는 테라스에서 끝나게 된다. 아직 날이 채 밝기 전인 이른 새벽에 뫼르소의 자동차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해변가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좀더 속력을 내서 차를 달리게 했고, 새벽도 빨리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길에서 클랙슨을 울리고 또 다른 구릉을 향해,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는 바다를 향해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한 달 전에. 뫼르소는 '세계를 바라보는 집'에 자기가 떠날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우선 여행을 떠났다가 후에 알제시 교외에 정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몇 주일이 지나 그는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이번 여행이 이제부터 다른 생활을 그에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알제시에 돌아오자 그는 우선 자기 생활의 외면적인 무대에 뛰어올랐다. 사업은 그럭저럭 잘 되어갔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체면만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나태와 비열함이 나머지 일을 맡게 된다. 값싸게 털어놓을 수 있는 두세 마디 말만 주고받으면 자립을 누릴 수 있는 대가를 얻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뫼르소는 류씨엔느의 운명에 걸려들게 되었다. 그가 알제시를 떠나기로 작정했던 날, 그는 그녀에게 함께 살자고 했고, 그가 그녀를 필요로 할 때만 자기 집에 와서 동거하자고 제의했다. 그녀는 뫼르소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일주일 후 그는 그녀를 아내로 삼아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류씨엔느는 그동안 푸른 바다에 나가 파도를 가르며 노젓기 위해 오렌지색 카누를 샀다. 출발 전날,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집'에다 떠나는 것을 알리고 호텔에서 혼자 하룻밤을 잤다. 빠트리스는 가방 고리를 잠그고 난 뒤 두 팔로 창문 기둥을 잡고 빠져들 듯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떠나려고 하는지 알 수 없군요. 이곳 생활이 행복하다면서요" 하고 까트린느가 그에게 말했다. "여기 있으면 나는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될 거야, 까트린느. 그렇게 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내가 바라는 것은..." 하고 그녀가 말을 꺼냈으나, 거기서 그치고 그녀는 빠트리스를 바라보았다. "까트린느, 절대로 단념해선 안 돼. 너는 자신 속에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그리고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행복에 대한 감각이야. 너는 오로지 남자에게만 기대를 걸어선 안 돼. 그것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속고 있어. 하지만 너는 너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야 해." "나는 신세 한탄을 하는 게 아니에요, 뫼르소.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에요. 몸조심해요." "뫼르소는 그때 자기의 확신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를 느꼈다. 그의 심정은 이상하게도 메말라 있었다. "너는 지금 그런 말을 해선 안 되는 건데..." 뫼르소는 두 시간도 채 못 되어 슈누아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한가하게 살았으며, 고작 그를 도와주는 일꾼들과 만나거나, 카페 주인과 잡담을 나누는 게 전부였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는 이 순간이, 또한 내일이 그에게는 무섭고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하고 자신에게 설득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저녁, 그는 류씨엔느에게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쓰고 자기가 그처럼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그 고독과 관계를 끊었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그는 남모르는 수치심에 휩싸였다. 그러나 류씨엔느가 도착하게 되었을 땐 그런 수치감도, 곁에 있는 한 사람의 존재와 또한 그 곁에 있는 존재가 가져다주는 안일한 생활을 또다시 맛보는 것으로써, 어떤 바보스럽고 성급한 기쁨에 빠져들면서 그 기쁨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간 속으로 도피해 버린 뫼르소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은밀한 공포로부터 벗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겨우 이틀이 못 가서 이번에는 류씨엔느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런 계기를 만난 듯이, 그녀는 곁에서 함께 살아도 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때 그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뫼르소는 접시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빠트리스는 괴로움과 함께, 이제 막 지나가버린 며칠이 이처럼 마음속에 역겨움을 남겨주던 일은 이전엔 결코 없었다고 느꼈다. "류씨엔느, 너는 아름다워."라고 뫼르소가 말했다. "나는 그것보다 더 앞을 내다보지는 않아. 나는 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어. 우리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해." 그는 그녀에게도 다가가서 그녀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내 말을 믿어 주기 바래. 커다란 고민도 없을 뿐더러 대단한 원한도 없어. 위대한 생각이란 또 뭐란 말이야. 모든 것은 잊혀지고 마는 거야, 위대한 사랑까지도. 따라서 인생에 있어서 슬프고도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이야. 요컨대 어떤 종류의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그래서 때로는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위대한 사랑을 겪거나 불행한 정열을 간직한다는 것도 결국 좋은 일이야. 그런 것은 적어도 우리들을 짓누르는 그 이유 없는 절망에 대해 하나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녀는 갑자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당신은 행복하지 않네요."라고 했다. "나는 곧 행복해질 거야." 하고 격한 어조로 뫼르소가 말했다. "난 행복해져야 해. 이 밤과 이 바다, 그리고 내 손에 있는 이 목덜미에서." 행복에는 하나의 선택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선택 내부에는 일치된 명확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는 '체념의 의지가 아닌 행복을 위한 의지에 의해서'라는 자그르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뫼르소는 슈누아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바다의 활기와 갑자기 나타나는 둔덕을 보며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침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되기를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을 마음 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정신이 해이했던 나날들에 대해 그는 그런 날들이 위험했었지만 필요한 날들이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파멸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고,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유일한 정당성을 저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어떻든 모든 상황에 적응했어야만 했다. 그는 초인간적인 행복을 꿈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가 그리는 곡선을 넘어서는 영원을 넘보지 않았다. 행복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영원은 일상적인 것이다. 요는 하루하루의 리듬을 우리들의 희망의 곡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그날 그날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정지할 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도에 이르러서는 조각에 더 이상 손을 대어서는 안 되는 순간과 시기가 항상 닥쳐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면 지성에 대한 의지가 투시라고 하는 가장 섬세한 수단보다도 예술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행복 속에서 하나의 삶을 완성하려면 최소한의 지성이 필요하다. 지성이 없는 사람은 노력에 의해 그것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1월에는 편도나무꽃이 피고 3월에는 배, 복숭아, 사과나무들이 꽃으로 뒤덮인다. 6월이면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햇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진열되기 시작한다. 세찬 비바람이 9월에서 11월까지 대지를 씻어낸다. 연말이 되자 땅 위에서는 이미 보리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뫼르소는 처음으로 병석에 누웠다. 늑막염이 발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달 동안 방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그가 병석에서 일어났을 때는 슈누아의 맨 끝 비탈에 꽃이 만발한 나무들이 무성하고, 꽃구름이 바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자기의 인생이 한없이 멀게 느껴지는 이 시각에 그는 홀로 자기 자신에게도 초연하게 되어 자기가 바라고 있는 것에 드디어 도착한 것 같은, 그리고 또한 지금 그를 가득 채워주고 있는 마음의 평화는 자기 자신을 끈기 있게 방임한 데서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같은 자기 방임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한결같이 추구해 온 것이었으며, 분노하지도 않고 그를 부인하던 이 정성어린 세계의 도움을 받아, 이제 겨우 그것에 도착한 것이었다. 세계에서의 그의 지난날의 여러 발자취, 행복을 향한 그의 욕구, 골수와 두개골이 드러난 자그르의 무서운 상처, '세계를 바라보는 집'의 감미롭고 은밀한 시간, 그의 연인, 그의 희망과 신봉하는 신들,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지금 그의 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특별히 선택한 하나의 이야기와도 같이 꾸밈없이 은근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로써, 마음 속 제일 깊숙한 곳을 어루만져 주고 또한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주는, 필경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책처럼, 마음에 드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의식하면서도 자신이 낯선 것처럼 느껴지고, 정에 탐닉하면서도 무관심한 채 자신의 삶 자체와 운명이 이미 거기서 막을 내려 앞으로는 그와 같은 행복에 만족하고, 그 무서운 진실을 감당하는 데 자기의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뜨거운 바다 속에 빠져서 자기 자신을 내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발견해야 하며, 달과 물 속을 헤엄쳐 자기 속에 남아 있는 과거를 잠재우고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행복의 노래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무의식 중에도 바라고 있던 것은 혈기와 건강함이 충만 되어 있는 생명을 갖고 죽음과 대결한다는 것이었다. 결코 그는 이미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부엌에 가스불이 아직도 켜져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라고 되뇌이고 있었다. 정신의 각성 또한 오랜 인내였다. 무엇이든지 얻어지고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었다. 그는 주먹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인간을 결코 강하게 태어나지도 않았고, 약하게 그리고 의지적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요는 강해져야 하고 현명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몸이 아픈 데서 오는 불가사의한 무기력이라고 해야 할지, 어쩐지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져서 그는 어린애처럼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행복이 절망으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 주었고, 빠트리스는 거기서 일종의 덧없는 영원을 발견해내고 있었다. 그는 그와 같은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지 않았고, 또한 그러한 이미지가 그가 죽어 사라진 후에도 계속되길 바라지 않았다. 반항과 연민에 가득 차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자그르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세계가 부르는 소리는 분명 죽음에 대한 그의 공포를 완화시키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에게 모든 생존의 이유였던 것에서만 죽음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뜨자 한낮이 되었고, 작은 새와 벌레들이 더위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는 류씨엔느가 바로 이날 오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밤이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환상들이 떠올랐다. 몇 마리의 커다란 환상적 동물이 사막과 같은 황폐한 데서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뫼르소는 고열 속에서 그와 같은 환상을 조용히 뿌리치고 있었다. 그는 다만 피어린 우정을 가지고 자그르의 모습만은 떠오르는 대로 그냥 놔두었다. 그에게 죽음을 주었던 자신이 이제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그르가 그때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가 지금 자신의 인생을 향해 명확하게 바라봐야 할 것은 한 사람의 인생, 그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인생의 초기에 그렇듯이 그가 자기 속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인간상 중에서 도대체 어느 것이 자기였던가 하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인간 속에서 운명이 만들어내는 이와 같은 선택을, 그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점에서 살아가는 행복과 죽은 행복의 모든 것이 있었다. 그 죽음을 그는 짐승의 공포로 이제까지 바라보고 있었으며,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그 탄생을 두려워한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 속에서 생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삶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무력함을 두려워하고, 또한 삶을 과시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관여하지 않던 삶에 죽음이 가져다 주는 심판 때문에 충분하게 살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죽음은 갈증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는 여행자에게서 영원히 물을 빼앗아 버리는 손길과도 같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반항을 향해 미소지어 보내는 것과 같이, 감사함에 미소지으며 재워 없애려고 부정하는 숙명적이고도 부드러운 행위였다. 그는 침대 위에 앉아 침대밑 탁자에 팔을 올려놓고, 머리를 파묻고 하루 낮과 밤을 지냈다. 드러누워서는 호흡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옆에 류씨엔느가 앉아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뫼르소는 가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가 죽은 뒤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는 첫 남자가 그녀를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그 사나이 가슴에다 파묻고 그녀가 자기에게 바쳤던 그 몸을 바쳐버리겠지. 그리고 반쯤 열린 그녀의 따뜻한 입술이 주는 열기 속에서 세상은 변함없이 계속되어 가겠지. 병든 고양이와도 같은 그의 시선이 유리창에 가 닿아 있었다. 그는 숨을 쉬고 류씨엔느 쪽으로 돌아앉았다. "괜찮아요?"하고 류씨엔느가 꺼져 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때 그는 두 팔로 다시 어둠을 향해 몸을 돌려 앉으려 했다. 자기의 힘과 저항의 한계에 다다르자 그는 비로소 내부적으로 자그르와 일체가 되어 갔다. 그는 그처럼 멀게 느끼고 있던 그 남자에게 우정에 찬 격렬한 사랑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써 자기와 그를 영원히 결합시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삶과 죽음이 뒤섞인 맛과 같이 보였던 눈물이 이제 자기에게서 무겁게 뚝뚝 떨어지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르는 열이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최후의 순간까지 의식을 차리고 두 눈을 크게 뜬 채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자랑스러운 확신이 이제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자그르도 역시 그날 두 눈을 뜨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몫을 누리지 못한 사나이의 최후의 나약함이었다. 그러나 빠트리스는 그런 허약함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육체의 한계점의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서, 언제든지 정지해버릴 그의 뜨거운 혈기의 맥박 속에서, 그는 아직도 그 나약함이 자기의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새삼 되새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의 임무를 이행했고 오로지 행복해야 한다는 인간의 유일한 의무룰 이행했고 오로지 행복해야 한다는 인간의 유일한 의무를 완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분명 얼마 남아 있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시간이란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시간은 기껏해야 장애물이 되거나, 아니면 그런 때의 시간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장애를 타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 속에 잉태한 몸 안의 형제가 두 살이건 스무 살이 되었건, 이미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행복이란 그가 존재했던 그 자체이기도 했다. 류씨엔느가 일어서서 뫼르소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간 모포를 덮어 주었다. 그는 그 손길 아래서 몸을 떨었다. 그가 자그르의 별장 근처 작은 광장에서 재채기를 하던 그날부터 이 시각까지 그의 육체는 그에게 충실히 봉사해 주었고, 그를 세상을 향해 개방시켜 주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타고난 인생과 다른 고유한 삶을 살아 온 것이다. 의식하고 있는 것은 기만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고--다만 일대 일로 자기 육신과 마주보고--죽음을 향해 두 눈을 바로 뜨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자기 할 일이 문제였다. 사랑도, 배경 장식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있는 것은 고독과 행복의 무한한 사막일 뿐, 거기서 뫼르소는 마지막 카드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숨이 꺼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숨쉬는 동작에 따라 가슴 속 여러 군데서 녹슬어 사그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자기 장딴지가 몹시 차가워지고 손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밝아오기 시작한 그 아침은 새들과 신선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태양이 성큼성큼 떠올라 대번에 지평선 위로 올라섰다. 한낮이 되어 바람이 잦았다. 하루는 마치 잘 익은 과일처럼 무르익어 있었으며, 급작스럽게 울기 시작한 매미의 합창 속에서 걸쭉한 과즙처럼 흘러내렸다. 뫼르소는 그의 침대에서 이러한 충격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그는 바다를 향해 두 눈을 뜨고, 한없이 크고 넓은 곡선을 그리면서 강렬하게 빛나며 신들의 미소로 넘쳐흐르고 있는 바다를 보았다. 그는 갑자기 그가 침대에 앉아 있다는 것과, 류씨엔느의 얼굴이 바로 그의 얼굴 가까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쏠렸다. 마치 자기 속에서 조약돌 같은 덩어리가 복부로부터 올라오듯 천천히 위로 이동하여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그는 호흡이 가능한 순간만을 이용하여 점점 빨리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덩어리는 여전히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류씨엔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경련하지도 않고 미소지었다. 그 미소 또한 그녀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침대 위에 털썩 쓰러졌다. 그는 류씨엔느의 부푼 입술을 보며, 그녀의 뒤에 펼쳐진 대지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한결같이 같은 시선, 전과 다름없는 욕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1분, 나머지 1초 하며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올라오던 것이 멈췄다. 그리하여 그는 조약돌 속의 조약돌이 되어 마음은 기쁨에 젖으면서 그 부동의 세계의 진실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