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은 우리 요리의 정수(精髓)다. 맛은 물론, 색감, 식감 모두 먹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값이 비싼 게 흠이다. 고급 한정식집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 메뉴는 빼 가격을 확 낮췄으면…’이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북촌마님’은 한정식 가격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을 고려, 가격을 확 낮춘 캐주얼 다이닝(Casual Dining)을 표방하는 음식점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를 나와 헌법재판소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안국선원 맞은편에 멋스러운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큰 대문 없이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대청마루를 개조해 만든 북촌마님의 실내가 나온다. 일단 식당 구조부터가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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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가회동 북촌마님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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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의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만든 북촌마님 내부.
제철 재료 사용하는 퓨전 웰빙 한식
식품영양학에서 한식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을 표방하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먹는 것이 곧 약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양념’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약념(藥念)에서 왔다는 주장은 그런 면에서 꽤 설득력이 있다. 북촌마님은 인사동 유명 한정식집 두레의 자매 식당이다. 그래서인지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뒷맛이 개운하다.
이 집의 음식은 코스가 아닌 단품 메뉴로 구성돼 있다. 숯불등심 등 구이 요리부터 간단한 술안주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북촌마님을 운영하고 있는 이숙희 대표는 “가장 신선한 식(食) 재료를 기본으로 하며, 때마다 제철 음식 위주로 식단을 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양념 맛을 강하게 내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도록 한 것도 북촌마님 음식의 특징이다. 가령 코다리구이(1만5000원)는 달달한 간장으로 소스를 냈다. 일반 음식점에서 나오는 코다리구이 하면 찹쌀로 옷을 입혀 튀긴 코다리(내장을 빼 반 건조시킨 명태)에 매콤한 고추장 소스를 듬뿍 뿌리기 때문에 매운 맛이 강하다. 코다리는 식감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반면, 북촌마님은 양념장 맛이 강하지 않다. 이 집에서 양념은 말 그대로 보조재 역할만 한다. 남은 양념을 밥에 비벼 먹어도 될 정도로 뒷맛이 개운하다.
겉절이샐러드(중-8000원, 대-1만5000원)도 인기 메뉴 중 하나다. 봄동(불결구배추), 상추, 토마토를 썰어 넣은 샐러드에 유자청을 소스로 얹었다. 봄동의 억세고 거친 식감을 유자청 소스가 살짝 감싸주는 느낌이다. 대신 소스는 유자청과 간장, 고춧가루를 함께 넣어 달콤함과 매콤함, 그리고 짭짤한 맛이 한꺼번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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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코다리구이도 간장으로 맛을 내, 코다리 본연의 식감을 잘 느낄 수 있다. / 북촌마님의 비빔밥은 밀양식이다. 간장을 사용해 비비는데, 재료 본연의 맛이 잘 살아나 있다. / 손두부로 만든 두부정식, 돼지고기 제육볶음과 맛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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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올라온 보리굴비는 둥굴레차, 녹차물에 말은 밥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
또 다른 인기 메뉴 중 하나인 보리굴비정식(2만 5000원)은 보리굴비에 부침개, 된장찌개가 한 세트다. 보리굴비에 쓰이는 굴비는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공수해온다. 최상품 천일염을 써서 숙성을 하는데, 보통 차가운 둥굴레차나 녹차 물에 밥을 말아서 먹으면, 짭짤하면서 고소한 보리굴비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음식 궁합으로 볼 때 바닷물은 뜨거운 성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바닷물고기는 음양으로 보면 음(-)의 성질에 가깝다. 바다 생선으로 만든 음식의 뒷맛이 시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음의 기질을 가진 보리굴비를 먹을 때 찬 물에 밥을 말아먹어야 제 맛이 나는 것도 아마도 이런 궁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은 유기그릇에 담겨 나온다. 흔히 비빔밥처럼 만들기 쉬운 음식도 없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한식전문가 중 우리 음식 중에서 가장 맛을 내기 힘든 음식으로 비빔밥을 꼽는 이들도 꽤 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양지차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모두 살려내면서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해주, 평양, 밀양, 안동, 진주, 전주 등 지역마다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북촌마님의 비빔밥은 고추장이 아닌 된장으로 맛을 내는데 이는 굳이 따지자면 밀양식(式)에 가깝다. 시금치, 당근, 양배추, 미나리, 우엉, 버섯, 달걀, 소고기 등 아홉 가지 재료로 만든 구절비빔밥(1만 2000원)은 관광차 북촌 일대를 찾아 왔다, 이곳에 들리는 외국인 사이에 인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먹어본 것은 두부김치(중-1만 8000원, 대-2만 5000원)다. 집에서 직접 만든 손 두부를 사용해서인지, 느낌은 투박하다. 절단면이 고르지 못한 것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멋스럽다. 돼지 뒷다릿살로 만든 제육볶음과 볶음김치에 두부 한 점을 곁들여 먹으니, 막걸리 한 사발이 절로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