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건 분석보고서 (1)
헬기 투입할 때 이미 상황은 끝난 거다
(서프라이즈 / rhetoric / 2011-03-17)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헬기로 바닷물을 투입한다고 한다. 치누크 헬기가 한 번에 물을 100톤 정도 나를 수 있다면 모를까 TV로 보니 고작 해야 방 한 칸 정도 채울 수량을 싣고 뜨던데, 한 20톤이나 될까?
그것도 자위대 수송헬기 수십여 대를 총동원해서 2~3분 간격으로 파상 물 공격을 퍼붓는 것도 아니고 달랑 2대라니… 이건
그냥 쇼라고 보면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뭔가는 보여줘야 하므로 자위대원 몇 명 피폭 정도의 희생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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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 헬기를 동원한 바닷물 투하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냉각수조에 이 물이 제대로 들어가느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정말 정말 쉽게 생각하기로 한다.
70년대 이전 생들은 모두 기억 한편에 또렷이 남아 있을 한겨울 교실의 벌겋게 타오르는 갈탄/조개탄 난로를 떠올려 보자.
토요일 4교시 수업임에도 욕심부려 교실까지 잔뜩 실어 나른 조개탄이 아까워 주번은 1교시부터 펑펑 불을 때기 시작했다.
처음엔 좋다고 하던 아이들도 2교시가 될 무렵 너무 덥다고 난로 주변에서 슬슬 책상을 옮긴다. 어쨌든 수업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은
주번에게 난로재 정리 잘하라고 당부하고는 종례를 마친다. 아이들은 집으로 가고 주번은 빨리 난로를 끄고 집에 가고 싶다. 우선
벌겋게 달아오른 강철 난로 표면에 주전자 물을 조금씩 부어본다. 물이 닿은 부분이 조금 검어지긴 하지만 수증기만 잔뜩 피어오르고
별반 소득이 없다. 다급해진 주번은 뜨거움을 무릅쓰고 뚜껑의 철사를 집어 난로를 조금 열고 주전자로 물을 부어 본다. 재가 좀
날리긴 하지만 효과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하도 불이 센 난로에 주전자를 오래 올려놔서 그런지 아침에 꽉 채운 주전자에 물이 얼마
없었나 보다. 곧 바닥이 난다.
이때 교실 뒤편에 대걸레 자루가 담긴 양동이에 가득 든 물이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에서는 누구야 빨리 나오라고 친구들이
부른다. 과감하게 뚜껑을 확 열고 양동이의 물을 콸콸 붓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은 수증기와 함께 날아오른 잿가루로
온통 엉망이 된다. 새하얀 교탁보와 교실 천정은 시커먼 잿물이 튀었고, 난로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출입문 앞 책상도 탄가루가
뿌옇게 앉았다.
난로 아래 재를 모으는 통은 물과 타다만 조개탄이 섞여 장마철 흙탕물처럼 꾸역꾸역 쏟아져 나온다. 주번의 얼굴은 막장에서
나오는 광부 얼굴처럼 온통 꺼먼 재투성이고, 놀란 수위 아저씨가 뛰어 온다. 주번은 오늘 선생님께 매타작 좀 당할 거다.
억지 비유지만 쉽게 얘기하고자 꺼낸 얘기다.
그렇다면 주번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으로 난로를 끄는 방법이었을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뒤처리가 두 배는 힘들겠지만
물을 부을 것이 아니라. 복도에서 방화사(모래)를 가져다가 난로에 부어 불을 끄는 게 맞았다. 치워야 할 잿더미가 늘어
쓰레기장까지 두 번을 왕복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도 마찬가지다. 수소 폭발이 생기고 격납 건물이 날아간 직후에, 내부 압력과 밸브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의
비정상적 작동 때문에 잘 주입 되지도 않는 바닷물을 넣을 게 아니라 원자로 6개를 즉시 포기하고 남아있는 건물 구조물을 기반으로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높이 100m짜리 석관을 쌓아 올려야 했다는 얘기다. 마치 지하핵실험 상태로 말이다.
물론 원전 반경 30km 이내는 수백 년간 no men’s land가 되겠지만 방사능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선택은
이것뿐이었다는 생각이다. 수소 폭발 이전, 즉 최초 발전소에 전원이 차단되었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전)소 외 전력을
끌어와야 했다.
쓰나미 먹고 퍼진 비상발전기를 수리할 게 아니라, 지금도 작업하고 있는 끊어진 고압송전을 당기려고 할 게 아니라, 후쿠시마
시내로 뛰어가서 방송용 발전차를 징발해오던가, 방위청에 긴급 지원을 요청해서 해상 자위대 상륙함을 불러 원전 앞바다에 얕은 수심에
횡좌하던 말던 최대한 해안에 붙여 해상 전원을 끌어와야 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들, 후쿠시마와 같은 상황이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그 어떤 국가에서 발생했어도 지금처럼
비슷하게 상황이 흘러갔을 듯싶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서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아 그전에 과감하게 무슨 무슨 조치를
취해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건 그 분야의 어떤 전문가보다 기자들이 훨씬 잘한다. 상황이 지나고 더욱 악화된 상황이
닥친 다음에야 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원래 사고라는 게 그렇다. 수백 가지의 예기치 못한 재수 없는 상황이 하필 한꺼번에 딱 맞아떨어져 발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필 지진이 난 지역도 재수 없게 오래된 원전이 있는 지역과 가깝고, 해상이 아닌 육상에서만 지진이 났어도 건물 피해는 더
크겠지만 쓰나미로 인해 비상발전기가 먹통이 되는 일도 없었을 테고, 4호기는 왜 하필 점검기간이라 원자로에서 노심을 수조로 빼놓은
상황이며, 며칠 전 때마침 기름이 똑 떨어져 2호기에 바닷물 주수가 중단되었을 것이냔 말이다.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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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가 위험에 처해 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의 1-4호기 모두가 폭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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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사고의 수습도 그렇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 같아도, 우연하게 작은 희망이 살아나 상황이 수습되는 경우도
많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최후의 실낱같은 희망에도 끝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현재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사태를 예견하여 과감하게 선제적 창의적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그게 사람이고, 인류가 그 무수한 대형 사고를 겪어온
방식이니까.
혹시 앞날을 예지할 수 있는 백마 타고 온 초인이 있어 ‘앞으로 사건이 이렇게 저렇게 전개될 터이니 요렇게 막도록 하라’고
지시할 수 있으면 모를까, 사건을 수습하는 당사자들은 수소 폭발까지만 하겠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상황이 악화되면 그래 그럼
격납용기까지만, 조금 더 나쁜 상황까지만… 이러한 단계가 반복되어 온 게 지금 상황이다.
어쩌면 사고 수습의 직접 책임자인 도쿄전력도, 간 나오토 총리도, 관방장관도, 원전 내부의 현 상황을 정확히 모를지도
모른다. 설사 안다고 해도 절대로 아는 만큼 알려줄 수 없다. 다만, 직원의 대부분을 철수했다는 것, 쇼에 불과한 헬기 동원을
시작했다는 것에서 유추해 본다면,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일단 50명-추후 추가로 100여 명 증원-만 남겨두었다는 얘기는 직접 원전 내부로 들어가 밸브 조이고 바닷물 집어넣고 하는
몸으로 하는 인원, 즉 방사능 피폭에 의한 희생을 각오한 노가다 인원이다. 상황 해결에 도움 안 되는 1000여 명의 볼펜
엔지니어와 넥타이 사무직들은 최악의 상황 시 방사능 피폭에 의한 즉사 인원으로 잡히기만 할 뿐 ‘원전 붕괴, 직원 1000명
즉사’라는 브레이크 뉴스 타이틀로 일본 국민과 전 세계인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잉여인력으로 판단인 듯싶다. 다시 말해 도쿄전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제스츄어, 극적인 자기희생의 모습을 일본국민과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뿐, 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헬기 투입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달랑 두 대로 구멍 뚫린 원자로 위에 물을 부어 봤자, 무슨 효과가 있느냔 말이다. 그야말로 코드 꽂혀 있는 가열된 다리미에 분무기로 ‘칙’하고 물 한번 뿌리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rhetoric
첫댓글 그랬군..잠깐 생각해보면 짐작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는데말야.원전에 물 뿌리는 헬기를 보며 어설프다라는 느낌은 있었다.티비에 내 한 몸 희생하여 일본을 구하겠다며 원전 처리반(?암튼)에 자원한 영웅남편이 남긴 말을 담담하게 말해주는 처의 모습을 보며 가미가제가 떠올랐다.그의 처의 입을 통해 듣는 영웅의 마지막말은 미국의 영웅우대주의와 닮은 듯 다른 느낌이었다.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소용없을텐데 싶기도하며 암튼 일본인들이란.. 여러가지 생각들이 일순간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