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암과 늑대/ 민 혜
서른 무렵에 재소자를 돕는 봉사 단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전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분들이 보내오는 편지에 답장을 한다든지 혹은 가족이나 연고자가 없는 이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는 게 내 주된 일이었다.
편지를 보내오는 이들은 거의가 남성이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가족이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버림받은 상태여서 외로운 처지를 호소하는 수많은 편지들이 날아들었다.
일손은 턱없이 모자랐다. 나는 일주에 두어 차례 사무실을 찾아가 내게 배당된 재소자의 편지를 찾아 읽고 답장을 써 보내곤 하였다. 일종의 재능기부라 할 수 있었지만 애당초 그들을 교화시키겠다는 낭만적 기대를 품고 한 것은 아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나는 다만 내 편지가 그네들의 황폐하고 짓눌린 삶을 잠시라도 식혀줄 수 있기를 바랐다. 거짓 위로나 거짓 희망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느낄 뼈 속 깊은 단절감에 한 송이 눈발처럼 와 닿는 가볍고도 미세한 무엇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새의 깃털 위를 스치다 굴러 떨어지는 미미한 물방울만큼이라도 그네들을 적셔줄 수 있기를.
전과 경력이 무려 다섯 번이나 되어 소위 '별 다섯'이라 불리던 어떤 재소자가 있었다. 편지에 의하면, 그는 시골에서 고아로 자라나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어느 날 무작정 상경했는데 연고자 없는 서울에서 폐품을 모아 근근이 살아가던 중 주택가에 놓여 있는 기계를 슬쩍 훔친 게 발각돼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전과자 딱지가 붙고 보니 출소 후 살길은 더욱 막막해지고 호구지책을 고민하던 그는 교도소에 들어가면 일단은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두 번이 세 번 되고 세 번이 네 번 되고 현재 다섯 번째 옥고를 치르고 있다는 수감자였다. 참으로 가슴 먹먹해지는 시놉시스. 편지 말미에 쓰여 있는 그의 하소연이 마침내 내 심장을 깊숙이 건드렸다.
'지금 이 편지는 제가 쓰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말하는 것을 같은 감방 동료가 대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한글을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라 제 손으론 편지를 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의 몸이 풀리는 그날까지 열심히 한글을 깨우쳐 사회에 나가 열심히 살면 저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생길 것이고, 그러면 사랑의 편지도 쓰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으로 열심히 한글을 배우고 있으니 부디 저에게 용기 주시고 답장을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새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천주교 교리도 배우며 영세 준비를 하고 있는 수감자입니다.'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했다면 바닥 중의 바닥 인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일사천리로 답장을 써 내리기 시작했다. 첫머리를 이렇게 적어나갔다.
'보내주신 편지 잘 읽었어요. 저는 군대 간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입니다.'
미안한 일이나 내 나이를 스무 살 쯤은 부풀려 연만한 부인의 티를 내며 거짓말로 서두를 떼었다. 상대가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혹시라도 그가 나에게 품을 수 있는 이성적 환상을 지레 염려한 때문이었다. 나는 내게 명했다. 배암처럼 슬기롭게, 배암처럼. 가슴이 더워질수록 감상성을 차단하고 일단은 내 정체를 섣불리 드러내지 말 것.
답장을 받아 본 뒤 그는 감동의 편지를 폭풍처럼 보내오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열심히 살고 싶은 희망이 생긴다고, 글 익혀서 언젠가는 제 손으로 직접 답장을 써 보내겠다고, 몇 달 후엔 영세를 받게 되는데, 대부도 정해졌고 세례명은 '요셉(가명)'으로 하기로 했다고….
편지마다 자기 같은 죄인에게 편지를 보내주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고마움과 기쁨을 전해왔다. 비록 내 신분을 각색하긴 했지만 편지에 임하는 자세만은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의 결심에 응원을 보내면서 나는 간간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려주고, 변해가는 자연을 소묘하여 봄꽃이 피어나면 꽃이 피었다고, 여름날이면 아스팔트가 눅진거린다고, 낙엽 지는 가을이면 거리를 쓸고 가는 낙엽의 스산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갇혀 지내는 그에게 세상 공기를 실어 나르는 한줌 바람결이 돼주고 싶었다. 영세 날짜가 가까워 미리 묵주를 보내주었더니 이번엔 먼저와 다른 필체로 쓴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묵주 선물을 받고 기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머리털 나고 선물이란 걸 이번에 처음 받아보았습니다. 버러지만도 못한 저에게 이토록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나겠습니다. 이게 다 저같이 쓰레기 같은 인간을 보살펴주신 소피아 아주머님(세례명도 다르게 알려줬다) 덕분입니다. 편지 자주 보내주세요. 이제 형기도 거의 다 마쳐 사회로 들아 갈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너무도 행복해서 요새는 잘 때도 묵주를 배에 감고 잡니다.'
묵주를 배에 감는다니? 갑자기 그 한 마디가 맨살 위를 기어가는 파충류의 감촉처럼 섬뜩하게 감겨왔다. 모종의 직감이 전신을 관통하며 요셉 씨로부터 나를 화들짝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다. 나는 구토라도 할 것처럼 듯 캑캑거리다 그에게 보낼 편지를 써나갔다.
'작은 선물을 기쁘게 받아주시니 저도 고맙습니다. 출소할 날이 머지않았다니 정말 기쁜 일이군요. 축하드립니다. 한데 서운하게도 머잖아 이 봉사 일을 그만 두게 될 것 같습니다. 남편이 직장 일로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어 이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며 출소하면 꼭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나는 솔직히 반가움에 앞서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내가 남자라면 흔쾌히 그를 만났겠으나 겁을 먹은 내 눈앞엔 그에 대한 숱한 상상의 얼굴들만 나타나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일어나도 괜찮을 일이 아닌, 일어나선 안 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결국 원장에게 내 뜻을 밝혔다. 원장은 오랫동안 좋은 편지로 여러 사람들을 교화해 왔는데 될 말이냐고 만류했으나 나는 뒤처리를 부탁하며 그날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달포쯤 뒤,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처신을 아주 잘한 것 같다며 요셉이란 사람이 어느 날 아무 연락도 없이 사무실로 나타나 다짜고짜 나를 찾더라고 했다. 그 아주머닌 멀리 이사를 갔다고 해도 그는 코웃음 치며, 나를 꼭 만나야 하니까 매일 찾아오겠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 했다는 것이다.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그 여자 얼굴만 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어요. 언제고 이곳을 찾아오겠죠?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다 압니다."
인간이 한정된 장소에 오래 갇혀 지내다 보면 특수한 기능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일까. 소스라칠 노릇이었다. 한 때는 매욱한 야생 고라니가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의 밭고랑을 헤집다 걸려들었나 보다고 여겼던 그가 급기야는 한 마리 늑대가 되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요셉 씨는 나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겠다며 1년 넘게 사무실 주변을 얼씬거렸다고 한다. 나는 꼬리까지 자르고 땅굴로 꼭꼭 숨어들어야만 했다. 그는 무슨 허기와 망상으로 낯모르는 나를 1년여씩이나 기다리며 무모하게 서성였던 걸까. 편지글의 순박함과 달리 그의 인상은 거칠고 왜소하며 겉늙어 보였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이 결핍된 나머지 기형의 인생을 살아가게 됐을 터나 내 깜냥으론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와 달리 재소자들에게 감상적 동정으로 임했던 일부 여성 봉사자들은 쓰디쓴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그들의 진심이 안타깝게 통속적 결과를 빚고 만 거였다.
거리의 노숙자들 곁을 지나칠 때면 혹시나 그 무리 속에 요셉 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스치곤 한다. 지금쯤 반백의 노인네가 되어 있을 그는 마른 가랑잎처럼 거리나 헤매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전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두 가지의 영상이 오락가락 내 눈앞을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