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 최고古의 동네
서촌방향 西村方向
서울의 숨겨진 보물
“이곳에서는 시간도 머물렀다 간다”
동네와 사랑에 빠진 어느 이야기꾼의 서촌 탐구기
“서촌은 바람마저 좋다!”
서울의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서촌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중인들이 머물고, 이후에 이상, 윤동주, 이중섭 같은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곳.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개발제한으로 묶여 있어 오히려 그 덕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 서울시내에서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지적도와 현재가 일치하는 서울의 가장 오래된 동네가 바로 서촌이다.
둘러볼 곳도, 이야기 거리도 풍부한 이곳을 동네에서 나고 자란 30대 청년이 블로그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이 좋은 동네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나아가 보존하는 것. 서울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 동네를 원래의 시간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지키기 위해 저자는 인터넷 블로그를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동네 소식지까지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그의 이런 작업을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격려해줘서 지금까지도 서촌지킴이, 동네 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 《서촌방향》(이덴슬리벨)은 서촌의 이야기꾼 설재우 씨가 지금까지 조사하고 발굴한 동네의 숨겨진 이야기와 토박이들만 아는 서촌의 명물, 맛집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동네 주민인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하고 기록한 살아있는 서촌 안내서이다.
골목마다 담긴 추억을 돌아보며
현재를 읽어낸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모든 일의 시작은 미국 유학 중에 책방에서 발견한 《위어드 플로리다Weird Florida》라는 관광안내서라고 한다. 동네 주민들이 직접 자료를 모으고 소개한 독특한 관광안내서인 그 책을 보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서촌’에도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둘씩 자료를 모으며 동네에 몰랐던 곳,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에 빠졌고, 글로 정리하며 어릴 적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랐다. 마치 어릴 적 뒷산에 꼭 있는 귀신이나 구미호의 정체를 거꾸로 파헤치는 어린이 기자단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그의 추억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많은 이들을 만난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두가 공감할만한 추억의 장소가 여전히 서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추억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린 날의 자신과 만날 수 있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새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이 시대에 서촌의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은 현재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사소한 1%가 99%의 일상을 채운다
소소한 것들이 일상을 이끌어간다. 어느새 물든 나뭇잎을 발견한 순간, 누군가의 손을 맞잡은 순간, 따뜻한 커피를 마신 순간. 그런 순간의 따뜻함, 설레임, 편안함이 일상을 윤기 나게 한다. 이 책은 그런 소소하지만 알고 나면 서촌이 달라 보일 것들을 담았다.
1부에서는 저자가 기획한 ‘서촌을 보는 창’이란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담았다. 옛날 서촌에서 찍은 사진을 현재 그 장소로 찾아가 사진을 겹쳐 다시 사진을 찍는 작업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서촌이라 가능했다.
2부에서는 서촌의 숨어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서촌의 상징 인왕산을 비롯하여 숨어 있는 예쁜 카페와 얼마 전 개방한 수성동 계곡 등을 소개한다. 그 장소들의 최근 사진과 함께 저자의 관련한 이야기들, 역사적 사실 등을 들을 수 있다.
3부에서는 서촌의 명물 맛집들을 소개한다. 모두 2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서촌의 토박이 음식점들로 그와 관련한 저자의 추억담도 들을 수 있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 맛집 주인 분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도 그대로 전한다.
4부에서는 서촌의 토박이들만 아는 이야기를 담았다. 서촌의 마지막 오락실, 지금은 사라진 예술가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었던 해장국집, 남몰래 선행을 하시는 떡볶이 할머니 이야기 등이 가득하다.
5부에서는 현재 서촌의 변화를 살피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또한 저자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역사적 사실의 결과를 담고, 과거의 서촌을 되살리는 작업을 소개한다.
또한 각 부의 끝에는 저자가 직접 만나고 인터뷰한 서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속으로
서촌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서울에 이런 동네도 있냐고들 한다. 청와대와 밀접해 개발 제한이 있는 덕분에 한옥과 골목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경복궁과 어울려 도시 같지 않은 예스러운 동네 모습을 보고 방문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건축물 고도제한이 있어서 인왕산과 북악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보이고, 서울 시내에서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깊이 있는 음식은 천천히 먹을수록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서촌에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 외에도 가슴 깊이 느낄 거리가 있는 곳이다. 나는 30년 동안 살아온 서촌 토박이로서 서촌을 찾는 방문객들이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경복궁과 청와대만 보고, 인터넷에 알려진 유명 맛집만 왔다가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 p. 7 <프롤로그>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서촌의 매력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서촌은 힐링 플레이스healing place다. 서촌에는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힐링 플레이스의 근원은 바로 골목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에서 우리는 모진 풍파를 견디고 버티며 힘겹게 살아왔던 시간 동안 잊고 지낸, 이제는 다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추억과 순수함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에 정화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난 서촌 골목길을 걸으며 위로받고 치유 받는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조만간 봄이 올 것 같다. 골목을 걷기엔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 p. 67 <마음이 치유되는 곳, 서촌 골목길>
인왕산의 높이는 해발 338미터다. 한달음에 오르기에는 약간 벅차고, 등산복 제대로 갖춰 입고 오르기에는 낯간지러운 애매한 높이다. 인왕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가닥이다. 어느 쪽으로 오르든 한 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서고 두 시간 정도면 산행을 끝낼 수 있다. 몸풀기에 딱 좋은 정도다. 하지만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었고 구간에 따라 경사도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다.
높이는 낮지만 산세가 험한 편이고 군데군데 바위가 많아 우리나라초기 산악인들의 좋은 등반 훈련장이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인왕산은 1968년 발생한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다. 간첩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25년 동안 평온한 잠을 잔 인왕산은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3월 25일 다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인왕산이 재개방되던 날,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 끼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동네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니 예전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헐벗은 산이었는데 지금은 숲이 대단해졌다고 한다. 그 뒤 인왕산은 2007년에 ‘서울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이유로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인왕산이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인왕산의 경치는 나라에서도 인정한 셈이다. - p. 90 <어머니처럼 푸근히 안아주는 곳, 인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