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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66권 기초공사(125)_생명에서 사랑으로(2) _그 이종사랑이 나를 통해 흘러갑니다(요일4:7,히2:11)_장바울목사_말씀과기름부음교회
아멘 달려갈 준비가 됐습니까? 오늘 나눠드린 걸로 보도록 하죠. 지난 시간에 동종 사랑과 이종 사랑에 대해서 함께 나눴습니다. 동종 사랑은 조건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 상대방을 자신에게 원하도록 무조건 용해시킨다고 그랬습니다. 자신에게 맞춰 넣는다고 그랬습니다.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변화시켜서 내 원함을 이루려고 하는 일종의 성취욕에 해당하는 게 동종 사랑입니다. 그게 없이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이종 사랑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의종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고 나를 변화시켜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그랬죠. 동종 사랑은 상대를 나에게 끌어들여서 내 원하는 대로 맞춰 놓는 것이고. 이종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 비유로 개와 인간관의 사랑이라는 걸 말씀을 드렸죠. 동종사랑은 말 그대로 종이 같은 사람은 사람끼리, 개는 개끼리 이런 사람이 개를 사랑한다. 그게 이종사랑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사랑이 이종사랑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생명을 가진 존재와 이 땅에서 난 우리의 존재는 종이 다르죠.
거기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DNA를 가진 종이죠. 이 땅에서 난 우리는 아담의 DNA를 가진 종이죠. 종이 전혀 다릅니다. 그 종이 다른 이종 사랑을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을 스님 기준에 맞게 변화시켜서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에요. 그러려고 했으면 동종 사랑이죠. 그런가요? 우리 마치 몸은 입었지만 종은 다르잖아요. 예수님이 만약에 동종 사랑을 했더라면 우리는 살아있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를 자기 기준에 맞춰야 되니깐 답이 없잖아요. 그러면 다 죽여버리고 새롭게 만들어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은 이종사랑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도 이제 동일하게 그 이종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이종사랑을 비유로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개와 사람 간의 사랑 여러분 동물을 많이 사랑하죠? 개뿐만 아니라 요즘은 뱀도 사랑해서 뭐라고 그래요? 애와 애완동물 중에 많죠. 그렇죠? 돼지 새끼도 집에 데려다 놓고 꿀꿀. 그러면서 그러면 그 돼지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사람이 돼지가 되어서 돼지 우리에 같이 자고 돼지 먹는 걸 같이 먹고 돼지와 뽀뽀하고 이렇게 해야 동종 간의 사랑이 이루어지죠. 그런가요? 사람이 어떻게 돼지가 되는 이종사랑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렇죠? 종이 다른데 돼지는 먹는 것만 잘 주면 주인을 사랑하잖아요. 그렇죠? 먹는 걸 안 주면은 해도 들이받아버립니다. 그렇죠? 그게 이 정도 아니에요. 사람이 강아지가 된다든지 사람이 개가 돼지가 된다든지 이종사랑이 가능한가 과연 본문으로 들어가서 보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하셨다라는 거예요. 이와 같이 종이 다른 존재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를 거룩하지 않은 우리를 아들의 신부로 받아들여 주셨다. 그래서 거룩하신 아들과 그를 통해 거룩함을 입은 우리를 한 근원에서 나게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핵심이에요. 그게 바로 히베리스 2장 11절 보죠.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근원에서 났다는 거예요. 한근원. 근원에서 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동종입니다. 예수님과 나는 동종이에요. 종이 같아졌다고요. 그럼 예수님이 이종 사랑을 한 사랑을 우리가 할 수 있죠.
그렇죠? 충분히 가능하죠? 쉽게 가능하죠? 아닌가요? 안 된다. 하지 마세요. 여러분 됩니다. 그냥 안 되는 걸 하라고 절대로 안 그래요. 왜냐하면, 한 근원에서 나서 그러므로, 형제라 부른대요. 예수님과 우리가 형제가 됐어요.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에서 십자가를 지고 난 다음에 우리를 형제라고 불렀죠. 그 형제는 부모가 같아야 형제죠. 그러니까 한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맏아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그래서 근원이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있죠.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 아담으로부터 나긴 했지만, 창조된 자죠. 그건 원래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낳았잖아요. 그런가요? 말씀으로 다시 낳았잖아요. 그러니까 물과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니까. 하나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다시 낳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전 것이 아니죠. 이전 것은 지나 갖고 보라 새 것. 이게 예수님처럼 예수님 예수님처럼이죠. 우리도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종 간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예요. 이제는.
그러니까 나는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사실은. 가끔 가다가 안 되기도 한다. 이렇게. 그건 아직도 옛날에 그것이 남아 있어서 안 되고 있지만 결국은 되어갈 수밖에 없고 보세요. 베드로도 못했지만, 성령이 충만하니까 하잖아요. 그렇죠? 누군가를 위해서 십자가 있고 꼬로 매달려 죽잖아요. 그 제자들이 다 그랬거든요. 동일하게 다 죽든지 뭐 이렇게 여왕만 끝까지 살았지만 그건 하나님이 필요하니까 살려 놓으신 거고요. 우리도 동일한 능력을 이제 DNA를 가지고 있다라는 거예요. 본성이죠. 본성. 그래서 이종 간의 사랑은 이제 본성인 거예요. 우리의 본성. 이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천 번에 한 번에 나타나더라도 그건 이 순간의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우연히 나올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이 개가 우연히 하루 되었다가 364일은 안 되고 이게 가능합니까? 안 되죠. 그렇죠? 그런가요? 아직도 그런 이종 간의 사랑이 잘 안 되는 것은 옛것이 남아서 아직도 그 옛날의 성품이 마치 이렇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지속적으로 그것이 마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이렇게 습관처럼 기억의 한 부분에 남아있는 것처럼 이렇게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다 죽었잖아요. 그런데 이 시간 안에서는 아직 살아 있잖아요. 그렇죠? 죽을 몸이.
그래서 매일 죽음을 통해서 결국은 이제 동종의 모습들이 점점 형상화되어 가는 그게 6날이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게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라니까 6날, 7날로 가기 위해서 우리 이거를 불로 적격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거거든요. 지금 제자들도 다 만들었거든요. 그렇죠? 거기 제자 열두 얼마나 있었습니까? 많았어요. 여러분 일반 집사들이 다 했다니까요. 목사들은 못해도 집사들은 다 했다니까요. 스테반 집사, 빌립 집사. 그렇죠? 병신 다 했다니까요. 목사들은 좀 힘들어. 이기적이라 잘 안 되는데 여러분들은 그런 게 없잖아요. 아메. 스테반이 성령 충만하니까 그랬죠.
우리도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그런 게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게 바로 오늘 말씀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친히 이종 사랑을 행하신 아들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한 근원에서 나서. 그러므로,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옛날 얘기 나는 돼지의 형이 이 돼지의 형 돼지요 이렇게 하기가 부끄러운데 지금은 그렇죠? 내가 개요 부끄러운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죠? 왜냐하면, 그 이종 간의 사랑하는 DNA가 내게 들어와서 종자가 받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게 가능하다라는 거죠.
그런가요?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이중사랑으로 사랑을 하게 될 때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 바로 그 피를 내가 그 DNA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 맞다. 라는 걸 증거한다는 거예요. 그게 영생이죠. 하나님으로부터 난 게 영생이잖아요. 그래서 그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영생이라고 그랬죠. 우리도 그 안에 있을 때 그 생명을 가진 자로서 영생의 존재가 되는데 이제 그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이종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 라는 거예요. 그럴 때 너는 맞네. 이종이 맞다. 넌 나는 우리하고 다른 종자가 맞다. 그러죠. 그런가요? 우리 시무룩하게 대답을, 아니 꼬라지는 아닌 것 같아도 맞다. 그 말이잖아요. 언젠가 나올 거니까.
거기에 권로자 3장 12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께 이종 사랑을 받았습니다. 권로자 3장 12절 다 찾아보셨나요? 식사하면서 식사만 하셨어요? 잘하셨어요. 밥이라도 먹어야 힘을 내죠. 고려세스의 3장 12절 보시죠. 고려세스 3장 12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율과 자위와 겸손과 은유와 오래 참음을 입고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받은 자죠. 그런가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랑을 받은 자 그 사랑으로 사랑한다.
여기에 글로세스 3장 12절 이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셔서 완성됐다. 이런 시제가 그래요. 완료 이미 완료 수동형이에요. 내가 사랑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사랑해서 그 사랑을 부어서 내게 이미 완료됐다라는 그런 의미의 그러니까 이종사랑의 본성을 받아서 완성이 됐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완성이 됐으니까 할 수밖에 없죠. 이게 이미 영원 안에서 완성된 거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한 사실이에요. 이게 실제 사실이라고요. 그래서 요한일서로 가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종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자.
이종사랑으로 이게 NIV 버전에 보면 이종사랑으로 사랑하자. 여기 들어가 있어요. 번역을 그렇게 해놨다고요. 이런 것도 가끔 필요하죠.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동종 사랑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으로 사랑하자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으로부터 온 사랑이라니까 이미 왔다라는 거잖아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이 와 있다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와 있기 때문에 하라는 거예요. 없는데 너 돼지가 돼 돼지가 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거죠. 이해갔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종사랑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가 영생이 우리 안에 있음을 증거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었죠. 요한복음 15장에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렇죠?
예수님이 처음에는 나의 아날 거하라 했다가 15장이 좀 뒤로 넘어가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15장 8절 9절에 보면 나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듯이 너희도 사랑함으로 내 아내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나의 안에 거하라 라는 말과 내 사랑 안에 거한다. 라는 말은 동일한 말이에요. 그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 라는 것은 이미 내 사랑 안에 거한다. 라는 증거예요.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내 안에 거할 수 없잖아요. 너희 나를 사랑하니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고 했으면 분명히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종 간의 사랑을 함으로 내가 그 안에 거한다라는 것을 증거로 보여주는 게 열매예요. 그게. 그러니까 이해 가시죠? 이 영생이 우리 안에 있다라는 걸 증가하게 된다면 자연스러운 거죠. 이거는 그렇죠.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맞다. 그게 요한일서에 나오는 내용들이고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내용이죠. 이종사랑은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안에 거하고 있다. 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가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 안에 있다 라고 말 아무리 하면 뭐합니까? 몸으로 한번 보여주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온몸으로 한번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종 사랑을 하지 않는 자는 그 아들의 생명이 없다라는 증거이기도 하죠. 반증이죠. 그게 한쪽은 이게 증거예요. 한쪽은 이게 증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랑을 지금도 하지 못하고 있다.
라는 것은 그 사랑이 없다라는 거고, 그 안에 거하고 있지 않다 라는 거고, 그 아들의 생명이 없다라는 증거예요. 아들의 생명이 있는 자는 산 자요. 아들의 생명이 없는 자는 죽은 자라고요. 그런가요? 요한복음의 그러면 요한일서로 가면 말씀이 아주 강력한 말씀입니다. 우리 입술로 동종 간의 사랑을 아무리 읊어대도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아무리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는 걸 다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그러면 이 이종간의 사랑 없이도 내 것 다 내어줄 수 있죠. 옛날에 일본에서 전철에 뛰어든 이수진 씨인가요?
이수진 이수정 이수영 이수진 이수현 그거 중요하지 않고 나중에 찾아보세요. 그분이 뛰어들고 구하고 자기는 죽었잖아요. 그분이 크리스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크리스찬이 아니라면 그분은 분명히 사랑을 하긴 했는데 동종 간의 사랑, 이종 간의 사랑은 아닌 거죠. 슈바이츠 박사가 크리스찬일까요? 아닐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 이중간의 사랑은 아니에요. 그거는 그러죠.
자 어쨌든 아들의 생명이 없는 자 그 사람은 그 사랑을 어떻게 해서든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내들의 생명은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가 구원받았다라고 하면 안 되는 거죠. 그게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 나오는 말이에요. 자기를 다 내 주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는 대단한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 말이에요. 그게 가치 없다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이해가시죠? 그래서 그 아래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해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안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쉬워요. 형제를 내가 그 이중간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면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죠. 이거는 그런가요? 사랑하지 않은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다 살인하는 마다 영생의 그 속에 거하지 않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람 요한 13장 그래서 오른쪽으로 가서 우리는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이종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건 율법이 아니에요. 그 사랑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타내는 게 맞다. 그런 뜻입니다. 사랑하라 라고 말할 때 강제로 못하는 걸 하라는 뜻이 아니고 율법으로 사랑하라. 그 말도 아니고 율법 안에서 이 사랑하면 복 받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본성이 그거기 때문에 너희들은 서로 그렇게 이종 간의 사랑을 하는 게 맞다. 당연하다 이런 뜻입니다.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이상한 것 같습니까?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죠. 때로는 왜 안 되지? 그런데 안 될 때 여러분 낙심하지 마세요. 제발 그 안 되는 건 내 사람의 아직 그런 것들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지. 세 사람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럴 때도 제가 오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완성된 것을 끌어당겨야 돼요. 나는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걸 해야 될 상황에서 머뭇거려지면 그렇게 선포하셔야 돼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힘을 내게 하나님께서 지금 주실 수 있습니다. 라는 선포하는 게 중요해요. 그럴 때 그게 되는 거예요. 진짜로 되는 겁니다. 해보세요. 작은 것부터 한번 해보세요. 그때 비로소 동종 간의 사랑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서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저 사람을 내 생각대로 자꾸 빚어서 나랑 똑같이 만들어서 내 편한 대로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요. 우리는 이게 주특기잖아요. 지금도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러면 거기에 보열을 뿌리셔야 돼요. 보열로 씻어달라고 애통하면서 계속 기도해야 돼요. 주님 도대체 안 나온다고. 나는 저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그냥 사랑하고 싶은데 내 마음이 더 대체 안 된다고 그렇게 해서 그 이전 것이 이미 지나간 거잖아요. 그게 안 되는 게 일종의 부정성이고 죄악의 존재잖아요. 그거를 씻어 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십자가예요. 왜냐하면, 그걸 안 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씻어 달라는 거잖아요.
그럼 자기 원대라면 이미 미워해버려야 되는 건데 안 하려고 발버둥치는 게 십자가이면서 그걸 없애달라고 하는 게 그게 구설초로 나를 씻으시고 그 말이거든요. 그래서 씻음을 받고 파레시아 들어가서 사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담대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그러면 그 안에서 사랑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연합 연합으로 가서 그 사랑과 하나가 되잖아요. 그럴 때 그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순간순간 멈추면서 그런 걸 하셔야 돼요. 계속.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도 미워하는 것. 처음부터 그냥 무조건 한 건 아니죠. 양육되면서 이 조건은 무조건 미워해야 할 조건이다. 이렇게 해서 길들여지잖아요. 하나씩 훈련되어지고 그렇죠? 마치 그것처럼 이 사랑도 훈련되어지는 거예요.
점점 오늘 한 번 본성을 죽이고 진짜 새로운 본성으로 살게 되고 자꾸 하고 하고 되면 이게 진짜로 양육되어 아브라함처럼 양육되어져 이런 과정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안에 부정성 때문에 우리는 엄청 힘들어하죠. 사랑뿐만 사랑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것들이 막 나타나고 막 분이 올라오고 미움이 막 빗발치고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뒤집으면 뒤집으면 똑같은 거잖아요. 그렇죠? 결국은 그런 것들이. 그래서 계속 그런 적용을 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 다시 하려고 하고 이걸 습관화해서 하면 결국은 습관화돼서 나온다고 그게 나중에는 분노 혈기 내는 이런 것들이 슬슬 없어져요. 진짜로 없어져요. 안 나온다니까요. 요만큼 있어도 올라오긴 하죠.
그런데 점점 없어진다니까요. 점점 아브라함이 아들을 그렇게 바칠 수 있겠어요? 아브라함이. 화란에서 가난 오자마자 바로 이삭을 줘서 아들 툭 낳았으면 바쳐라 하면 바치겠어요. 나를 가져가시오. 하겠지. 절대로 안 바칩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그렇게 존재가 새롭게 창조된 거예요.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이만큼 있어도 우리는 할 수 있잖아요. 어쨌든 아닌 거 빼고 이것만 하면 될 거 아니에요. 빼고 이것만 나오게 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순간 푹 피로 씻고 그것만 나오게 하면 되겠죠. 가능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역사하면 하고도 남습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할 때 그런 것들이 나오는 이유가 성령의 제1성품이 사랑이잖아요.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성령으로 잊어야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라고 그랬죠. 육체 서욕을 쫓는 게 아니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그랬잖아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는 당연히 성령 안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가 이게 죽죽 나오기 때문에 그 성품이 나올 수밖에 없죠. 그런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미 그게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인을 치고 보증수표를 보냈잖아요. 보증인을 보내놨잖아요. 보증이 뭔 뜻인지 말씀드렸죠. 기억나요? 그러니까 보증금이라고 보증금 우리가 어떤 집을 얻을 때 잘 아시겠네?
보증금을 다 일단 전세 보증금을 다 주면 어때요? 그거를 가서 이제 마구 할 수 있죠. 우리 줬잖아. 마구 사용하잖아. 개조도 하고. 그렇죠?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이 보증금이라고요. 그러니까 성령이 보증을 했기 때문에 전국의 사랑을 지금 마구 사용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당겨서 쓰면 돼요. 안 된다. 하지 마시고 당겨 쓰면 된다고. 기쁨이 안 올라와도 희락이 안 올라와도 당겨 쓰시라고 당겨서 미리 쓰시라고 그런 뜻이에요. 그게 보증이라는 게 실제로 원어의 그런 뜻이라고요. 그게 그러니까 저축해놓은 거 인출해서 아까 그랬잖아요. 영적으로 인출해서 쓰시면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없다고 한탄하지 마시고 빨리 인출해서 쓰시라고 당겨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당겨서 내가 상대방이 되라고 내가 개처럼 되라고. 멋지죠. 허탈한 웃음을 웃으시네. 된다니까요. 해보고 안 된다고 하세요. 저한테 따지시라니까요. 그러면 제가 비밀을 말씀을 드릴게요. 쉬워요? 안 해봐서 안 되는 겁니다. 너무 간단하죠? 됩니다. 보증금까지 줬다니까요. 그걸 할 수 있도록 땡겨 쓸 수 있도록 땡겨 쓴다니까요. 땡겨 시작. 뭘 땡겨? 돈을 땡기는 게 아니고 사랑을 땡겨. 아메 희락을 땡겨. 어? 거짓말 같아요. 안 믿어진다는 듯이요.
분노는 땡길 것도 없어. 여기 잔뜩 있으니까. 그냥 입만 벌리면 쑥 나와버리죠. 그렇죠? 틈만 벌리면 쑥 나와버리잖아요. 그런데 사랑은 땡겨야 돼요. 땡기지 말고 그 안에 들어가세요. 그냥 우리는 그 안에 있잖아요. 이미 하나님 로부터 나서 그 사랑 안에 있죠. 우리는 오전에 맨날 하던 거 고린도전서 1장 30절이잖아요. 우리는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속지 마세요. 이런 게 올라올 때 고린도전서 1장 30절을 선포하세요. 나는 이미 그 안에 있고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서 인치심을 소유로 삼아서 그걸 사용할 수 있도록 이미 보증금을 성령님이 지불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려고 한다라는 결단을 해보세요. 되나 안 되나?
그때 반드시 성령의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보증금을 지불한 것은 성령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신 거예요. 그래서 성령께 구하면 반드시 할 수 있게 보증했기 때문에 한다니까요. 그래서 성령을 구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SHG 그거예요. 그러니까 좌로 할까요? 우로 할까요? 이럴 때만 SAG 하지 말고 주님 내가 사랑할까요? 말까요? SAG가 아니고 그건 주님 내가 지금 확 올라오는데 사랑하게 해 달라고 보증했다니까 사랑하게 해 주세요. 주님 보증금 이미 다 지불했잖아요. 그거 3초면 되죠. 3초 안에 그 분노를 싹 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 능력이 있다고요. 이미 아메 안 했죠? 에세이지 안 했죠? 그때 그게 탈이여. 그게 탈이여.
그러니까 방울을 달라고 했는데 제가 여기다 방울을 달면 될까요? 하는 순간에 딸랑 하면서 어디서 올라오고 있어? 될 거 아니에요. 반지 위로 빨리 안 올라와서 올라오면 되는데 그러면 영원히 여기 방울 달고 다니세요. 머리를 돌릴 때마다 딸랑 소리가 들리게 머리를 들 때마다 너 같은 것이 이게 올라왔다면서요. 그러니까 그건 잽싸게 올라오는데 사랑해라. 이건 잽싸게 안 올라오죠. 그러니까 3초가 필요한 거죠. 3초면 돼요. 여러분 죽은 자도 살립니다. 그게 삼처룰이라고 신학자들이 말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동종 사랑의 한계를 벗어나고 상대방을 내 원하는 대로 바꾸려는 그런 욕망이 그때 없어집니다. 아 나는 그런 사람이 이미 아니지 라는 인식이 확 올라온다고요. 그러면 그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 거예요.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건 거룩한 변화죠. 이건 인간이 할 수 없는 거예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만 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우리 그 능력에 이미 와 있기 때문에 드디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스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간음하는 여인이 죄를 지어서 갖다 놨을 때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죽어버렸어요.
자기가 죽어버리고 그 간음하는 여인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다시는 간음하지 않도록 능력을 주신 거죠. 우리가 바로 그 간음한 여인이거든요. 우리에게 그 능력을 부어서 다시 살게 하셨다라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누군가 간음하는 여인을 보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이렇게 암에 한 소리 하고 싶은 생각이 올라오면 죄 없는 자가 둘로 치라 이게 쑥 올라올 거예요. 이제 아멘 그게 될 거예요.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일 때 너는 누구냐 내 이름이 뭐냐 이런 말이 올라올 거예요. 이제 아메 내 이름은 뭡니까?
아담입니다. 없음입니다. 아담이라는 이름 어때요? 거기 폴이죠? 폴. 제가 폴인데 폴창 거긴 폴 유 아담 유 발음하기 좀 힘드네요. 애덤 유 그거 괜찮다. 사랑으로 그럴 때 이제 그걸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이제 하나가 되는 거예요. 받아들이니까. 하나가 되는 거죠. 안 그러면 동종 간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말로 고백을 하지만 속에서는 마음껏 멀어져서 언젠가는 준비를 하고 있죠. 사도행전 4장의 32절 이야기면 성령임하니까 한마음 한 뜻이 되었죠. 바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바로 사랑의 영이기 때문에 그래요. 자, 그 아래 파란 줄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가 이중 사랑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과의 동종인 생명이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없잖아요. 그럼 세상 사람과 우리는 동종관인가요? 유종관인가요? 확실한 것 같아요. 세상 사람은 개고 우리는 사람이잖아요. 무시하는 게 아니고 세상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동물이라고 그랬어요. 생명이 없기 때문에요. 그래서 세상 사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우리하고 종이 달라요. 우리는 새롭게 난 자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같은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들하고는 종이 달라요. 완전히.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이제 정 다수에게 나아갈 때 어떻게 나아가야 되겠어요?
언제든지 그 사람은 나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달려들 수밖에 없어요. 조건에 안 맞으면. 그럼 그때 어떻게 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이종사랑으로 그걸 받아들이라 그 말이죠.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손해보게 할 것 같지만 안 그래요. 여러분 그러면 이제 그들과 이종 관계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세상에 있는 종은 자기 사랑이 근본이죠. 자기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 남들까지도 삶아 넣어야 하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잖아요. 자기를 사랑하는 게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사랑의 근본인 그들에게 우리가 이종사랑을 보여줘야죠. 이상하네.
모든 사람이 이걸 자기를 다 배척했는데 이 사람만 배척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겠어요? 처음에는 속으로 막 생각할 게 얘가 이런 이상한 놈이네 좀 정신 나간 놈 아니야? 그럼 다음에 또 시험할 거예요. 또 그러는가? 이렇게. 그럼 또 그러거든요. 이상하네 세 번 해볼 거예요. 그러면 그러고 나서 또 그러면 야 너네는 우리하고 다르다. 뭔가 다른가 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면서요. 우리하고 다르다. 이게 뭐예요? 드디어 이종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거고,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랄까? 그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남들을 이용하고 착취까지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도 그랬고.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변종이 돼서 좀 많이 달라졌지만 그렇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그거를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거죠. 예수님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들이 우리가 행하는 이종 사랑을 보며 우리 안에 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르긴 하다야 이거 놀라운 일이에요. 그런 걸 우리가 보여줘야 되는 거죠. 그런가요? 그걸 위해서 예수님이 죽고 우리 안에 오셨다는 걸 아세요? 밖에서 하라고 하면 되는데 안 되니까. 우리 안에 오셨다고. 그래서 고린도 후서 2장 15절, 3장 3절에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거예요. 우리가 나가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예요. 그리스도의 향기예요.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서 너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야 된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내가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리스도가 보낸 사람이구나. 이걸 안다라는 거죠.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라는 거죠. 아 이거 참 낙심이 되죠. 이런 거 보면. 그런데 낙심할 게 아니에요. 옛날에 본능이 남아 있어서 나오는 걸 가지고 왜 낙심을 합니까? 그건 곧 제거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죠.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지고 제거될 거예요. 곧 서서히 때로는 빨리 아주 별안간 이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실망하는 거 아니에요. 내 본성인데 왜 실망을 합니까? 원래 나의 본성인데 뭘 실망을 해요? 아우 맞아. 내가 원래 그런 놈이지. 이렇게 해야 맞는 거죠.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런 놈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분이 됐잖아요. 그렇죠? 그걸 봐야지. 새 것을 봐야지.
왜 자꾸 옛것을 보고 넘어집니까? 없는데 그건 이미 천상에는 없는데 그거 속임수예요. 그러니까 마귀를 그거 가지고 속인다고 계속 고자질 안에서 막 난도질을 해버리죠. 네가 그런 놈이지 뭐 그거밖에 더 돼. 이런 식으로. 하나님 음성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하나님 우리를 높은 곳으로 자꾸 들어 올린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본성은 이미 바뀌어져 있는데, 왜 자꾸 거기에 따라가냐고. 그것 자체가 내가 속는 거죠. 제가 속지 말라고 누차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속지마세요.
여러분 그게 나오더라도 담대하게 파레시아 남아있는 거 피로 확 부어가지고 다 씻어버리고 우슬초를 확 해서 지워버리고 이렇게 치워버리고 뻔뻔스럽게 나가서 그 안에서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아메는 잘 하셨습니다. 알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동종 사랑의 한계 안에서 이 세상은 이미 망해 있거든요. 썩어져 있고 다 죽어 있거든요. 그것을 이제 니가 가서 부어 넣어라 그 말이에요. 그걸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거예요. 그래서 복음의 제사장 다리 놓는 자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이야. 그 안에 톨스토이가 쓴 것.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단편소설이에요. 이거 혹시 보신 분 계세요?
톨스토이가 유명한 크리스찬 작가 중에 한 분이에요. 그분이 사상은 상당히 대단합니다. 보면 그래서 다 읽어보셨죠? 구두 수선공 마틴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주님의 없음을 듣고 마티나 내가 내일 큰 길을 한번 쳐다봐라. 내일 내가 지나갈 거다. 이렇게 했는데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구두 닦으면서 아무리 봐도 안 지나가는 거예요. 별 볼 일 없는 사람만 지나가고 계속 지나가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에게도 원래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친절을 베푸고 잘해주고 지나가다가 물 한잔 달라 하면 주고 이렇게 잘해줬다라는 거죠. 그랬더니, 이제 해칠 때까지 예수님은 안 나타나고 안 지나가네. 한 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안 지나가네. 그런데 집에 가서 밤에 묵상을 하는 중에 그게 자기가 선을 베푼 사람들이 싹싹 지나가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죠. 그들이 다 나였다.
이렇게 건 예화 많이 들어봤죠? 이건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실제로. 그러니까 너는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가운데 주님이 계시는 것을 알아라 이 말을 한 거죠. 그래서 마틴이 그걸 깨달은 거예요. 내가 만나는 모든 불특정 다수 우리 아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 보낸 사람이다. 예수님. 이 그 안에 계신다라는 것을 깨달으라 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중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렇게 하라. 아주 작은 것부터 그 말이에요. 옛날에 힐튼호텔 사장 이야기 기억납니까?
힐튼으로 대사장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미국에 가구를 사려고 가구 거리에 쇼핑을 갔는데 쇼핑하다 너무 다리도 힘들고 그래서 눈이 왔다든가 비가 왔다든가 비가 갑자기 쏟아졌대요 그래서 어글렁 그 상점 앞에 이렇게 있는데, 점원이 나와 가지고 어서 들어오시라고 거기 계시지 말고 비 맞으니까 들어오시라고 그리고 차를 한 잔 대접하고 너무 이렇게 친절하게 잘해줬대요 그랬더니, 이제 그 사람이 상황 끝나고 나서 어떻게 했는가 하면 미국에 있는 지사장에 전화해 가지고 그 가구점에 가서 앞으로 힐튼 호텔에 들어올 모든 가구는 거기에 주문해라 이렇게 솔깃하네요. 돈 되는 이야기 나오니까 바로 솔깃하네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 한잔 대접한 거죠. 그래서 냉수한 게 바로 나에게 한 거다. 그게 아래 나와 있는 내용이고 자 그러면 문제는 우리는 어떻게 이걸 할 수 있을까입니다. 여기까지 못 가면 또 이론이 되고 말죠. 이중 사랑으로 형제와 이것을 섬길 수 있는가? 우리는 대제사장 직분으로 섬기는 자죠. 이미 그렇게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게 바로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김으로 가능한 거예요. 이게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방 교제, 골방 교제가 이런 거예요. 말씀을 주야로 묵상을 할 때 그 말씀이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많죠. 살아서. 그러면 관계를 맺잖아요. 그럴 때 그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말씀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거든요.
그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잖아요. 그 말씀 속에 사랑이 이미 있거든요. 예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점점 많아지면 자연히 나오는 거죠. 사랑과 희락과 합병 이런 게 자연히 나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잖아요. 그래서 말씀이 내 안에 부어지죠. 새겨지죠. 그럼 사랑이 부어진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렇죠? 그럴 때 가능하다라는 거죠. 사도영전사장이 지난 시간에 했지만, 성령이 그렇게 확 부어지니까. 전부 다 미친 것처럼 변해버리잖아요. 정상인이 볼 때는 전혀 미친 것 같죠. 그게 변화의 원동력은 성령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고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올 때 그 진리에 따라 성령이 기름을 묻거든요.
그게 성령의 기론보험이고 성령의 능력이에요. 그럼 그 말씀이 살아야 했은 하나님, 예수님 자체고 거기에 성령의 능력과 기론보험이 함께 오기 때문에 그게 진리가 될 때 그 말씀이 사라진 역사에서 말씀대로 내가 행하는 일이 일어나죠. 그리고 말씀이 곧 예수님이기 때문에 결국은 말씀이 그렇게 충만하게 되면 내가 사랑하는 자로 이미 변해져 있는 걸 우리가 보게 되는 거죠. 변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이걸 통해서 우리가 점점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거예요. 사랑하는 본성으로. 그렇죠? 그래서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요. 창조되어서 나오는 겁니다. 그냥. 그건 말씀에 있는 예수님을 만날 때 교재를 통해서 내 안에 형성 창조되어지는 거죠. 그래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그 아래 보세요. 그러던가요?
말씀이 열려서 나갈 때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보여지죠. 계속 우리가 하는 작업이 그런 거잖아요. 보여지면 어떻게 되던가요? 그것 때문에 막 애통하고 울기도 하고 몸부름을 치기도 하고 막 그러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한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고백하고 자백하고 싶고 할 때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했죠. 분명히. 요한일석 일장구절 그걸 기억하세요. 그래서 파르시아 하면 우리를 구원한다고 그랬죠. 구원이 뭐예요? 이 제약된 모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시키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성이 이루어지겠죠. 그리고는 상 준다고 그랬죠? 뭔 상을 준다? 자신을 상으로 주잖아요. 자신을 상으로 주면 어떻게 돼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 거잖아요. 하나님은 사랑이니까. 요한일서 4장 8절, 9절 사랑이니까. 그게 나타나게 돼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묵상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게 생명의 교재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예요. 그냥 이 문법적인 교재, 율법적인 교재. 여기에 있는 말씀. 그냥 문자로는 이게 안 일어나는 거예요. 결단만 해요. 사랑해야지. 맞아. 내가 못하는 동종 이종간의 사랑을 몸같이 사랑하라고 써져 있으니까 그걸 아침에 묵상하면 이제 사랑하려고 노력하잖아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실망하는 거예요.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노력하는 게 아니고 이 묵상을 통해서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본성이 되고 그 본성이 나타나서 행하도록 성령의 기름을 부을 때 그게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성령이 오순자를 그렇게 순식간에 판플레미 플레레스 임하니까 한마음 한때 시대에서 다 팔아서 다 줘버리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막 놓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원래 내 본성이 아니잖아요. 이게 원래 내 본성이 아니잖아요. 이게 본성이잖아요. 그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 성려가 말씀에 따라 역사하는 영이에요. 그러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예정된 대로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옵시고 그게 이미 예정되고 선포된 말씀이었잖아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구하니까 성령이 역사에서 그대로 말씀대로 역사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사랑하라는 이 말이 레마로 우리 안에 들려 들어오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성령이 기록을 보고서 하게 한다니까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하려는 걸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죠.
안 된다라는 걸. 그걸 할 때 나는 반드시 난관에 봉착해요. 그리고 환란과 공고에 빠지게 돼 있어요. 그게 율법이잖아요. 율법을 지키려고 한우가 마기가 거기서 역사한다고 어제 말씀을 드렸죠. 그것 때문에 한랑가 공가에 처해야 돼 하면 할수록 고통과 괴로움이 넘치는 거예요. 그거 역학을 알고 계셔야 돼요. 그래서 그걸 모르니까 하고 실망하면은 그냥 자빠져 버리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럴 도저히 나는 답이 없네. 답이 없는데 원래 답이 있는 걸로 내가 해보려니까 안 되는 거라고. 그게 내 존재의 한계가 그거라는 거예요. 거기서 부딪쳤으면 인정을 해야 돼요. 맞아요. 주님 나는 원래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되는 게 들어왔으니까 되는 거 나타나게 해달라고 해야죠. 그게 맞는 일이죠.
그게 이제 마기적인 거에 그렇게 자꾸 실망하게 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줘요. 그게 자책 마기적으로 예수님 우리 자책 안 해요. 간음한 여인을 팍 때려 죽이던가요? 너 왜 그따위로 살아? 그렇게 하던가요? 아니잖아요. 그렇게 안 하거든요. 우리는 계속 내가 나라는 존재가 강하기 때문에 내 완벽한 성품 때문에 내가 나를 죽이는 거예요. 그게 마귀의 속임수라고 이해하시죠? 그래서 우리는 이걸 깨닫게 될 때 그게 하나님의 구원에 은혜가 내게 임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받으시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는 하나님이 연합되는 대로 내려가는 거예요. 이해가시죠? 그러면 그때 어떻게 되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중 사랑으로 형제와 이것을 용납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점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저럴 수밖에 없지만, 돼지한테 가서 사람처럼 살라고 하면 되겠어요. 안되겠죠? 되겠어요? 그걸 요구하면 되겠냐고 돼지가 막 돼지처럼 하고 있으면 맞아 이렇게 해야죠. 나는 이미 2종이니까. 저거 안 되잖아. 원래 집에 가서 되죠. 이제 저 종자 안 되잖아. 원래 나는 돼지 아니잖아. 이렇게 되는 거죠. 드디어 꿀꿀꿀하면 밥 줘야지 무조건 밥 좀 대충 먹어라. 이 화상아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안 되냐 이렇게 안 한다는 거죠.
이제 드디어 세끼 네끼 오케이 이렇게 이게 조금씩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힘으로가 아니고 그 능력이 들어왔기 때문에 되는 거죠. 돼지에게 이상을 요구하지 마세요. 그 이종에게 이종의 이상의 것을 제발 요구하지 마세요. 아버지에게 내 마음처럼 되기를 요구하지 마시라고 내 마음을 속속들이 읽어서 다 알아서 이해하고 해주기를 바라면 아버지 원수 됩니다. 진짜로 그건 안 돼요. 여러분 절대로 안 돼요. 나도 못하면서 왜 자꾸 하라고 그래요? 우리는 할 수 있잖아요. 이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그다음에 매일 말씀의 묵상이 하나님과의 사김이고 거기에 이종 사랑이 이제 부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하나님과 사김의 실재가 이종사랑을 행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렇게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이종사랑을 행함으로써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여주게 되는 증인의 삶을 바로 성령이 너에게 임하면 나를 증가하게 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게 이게 산제사를 하는 제사장, 복음의 제사장, 영적 애배자, 예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애배자예요. 그 안에서는 제가 며칠 전에 계속 묵상했던 묵상할 때 주셨던 내용들이에요. 그게 내용과 똑같기 때문에 첨부해 놓은 거예요.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라는 그 명령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럼 어떻게 돼요? 사온 애주가 이제 실제 로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내 안에 성육신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왔잖아요. 껍데기는 사랑 그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 그게 이종이죠. 우리도 이제 겉보기는 동종인데 내 안에 그 거룩한 생명이 들어왔으니까 어때요? 우리도 성 육신한 존재죠.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예수님처럼 나오겠죠. 성육신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러면 발걸음이 닿는 곳에 누가 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가는 거죠. 예수님이 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시험을 받고 나와서 짠 하고 나가니까 어떻게 돼? 각색질병을 앓는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과 모두가 다 치료받게 되고 새롭게 되는 역사예요. 우리도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많은 실제로 우리가 오순재를 봤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오순재를 성령이 막 충만했을 때 가면은 다 일어나버리잖아요. 다 나와버리고 다 그냥 풀어져 버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요. 잔느기용도 가면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예술을 영접해버린대요. 그랬대요. 말년에 우리는 안 될까요? 다 된다니까요. 우리도 지금 안 돼도 실망하지 마세요. 반드시 내가 너를 그날에 오게 하리라 온다니까요. 그리고 그 임재가 우리를 이제 이게 되는 거죠. 이건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까 임재를 나르게 될 때 역사가 이익이 이게 역사가 일어났네요.
그 임재를 나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게 되고 그를 나타낼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래서 예수님이 딱 부활한 예수님이 나가면 모든 것이 그 바람이에요. 굴어 굴러 죽고 부활하니까 빌리포스 2절 5절에서 9절이 모든 것이 주로 인정하면서 그 바로 앞에 무릎을 꿇었죠. 우리도 이제 그렇게 곧 됩니다. 될 날이 와야 됩니다. 정확하게 와야 맞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신앙생활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안 하고 못 했을 뿐이에요. 율법 안에서 노력을 통해서 그렇게 하려고 해봤는데 됩니까? 수십 년을 배우자 변하기를 기도 기도 기도 기도 기도 저 화상 제발 좀 변하게 해 주셔서 교회 오게 해 주시고 몇 년 동안 했어요? 50년 했죠.
꿈쩍도 안 해. 꿈쩍 꿈쩍도 안 해. 어째 돼지가 사람 되겠어야 순식간에 안 되지 안 된다니까요. 만화 방법대가 돼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됐잖아요. 정육신을 잊고 이종의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 그거 된 거잖아. 맞나요? 그러면 이제 가면 되죠. 가서 뭐 해야 되겠어요? 예수님이 한 거 하면 되죠. 그 앞에서. 죽으면서 다 이루었도 다 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에게 그걸 하라고 보증 보증 보증하셨잖아요. 하면 되는 거죠. 안 된다. 하지 마시고 성령이 하실 거다. 내가 그 안에 있는 걸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있잖아요. 말씀하셨으니까. 그래서 안에 있고 보증을 이미 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분명히 된다. 가야죠. 그래서 된다라고 했으니까 가서 하라고 하는 거예요. 명령하는 거예요. 지금 이해하시나요? 안 되는 걸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내가 가면 저주가 다 풀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이 저주를 다 감당했죠. 질병도 다 감당했죠. 그러니까 내가 지나가면 질병도 아웃돼야 되고 저주도 아웃돼야 되는 게 맞는 거예요. 그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우리도 점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런가요? 그래서 회복되고 풀어지고 제자리를 찾는 거예요. 질서를 잡히는 거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 아래에 있는 사람도 나를 순종하게 되고 그 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하나가 되고 이게 점점 이루어지는 거예요. 안된다. 그게 아니고 되기 때문에 하라고 한 거예요.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존재가 그런가요? 우린 그런 사람들이라는 걸 아셔야 되죠. 그래서 에베소스 1장 22절 23절 만물을 충만케 하겠다라는 거예요. 우리를 통해서. 만물을 여기에 딱 질서 안에 편입시켜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우리를 통해서 우리 머리가 예수님이니까. 내가 가는 곳에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서 행할 때는 반드시 그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를들면, 오늘 머릿속에 있는 이상한 세포가 다 떠나갈 것이다라고 제안에서 말씀을 했다라고 하면 다 떠나갑니다. 그런데 내가 저 사람 안에 이상한 세포가 하나 있는데, 죄요. 이상한 세포는 떠나갈지어도 안 돼요. 아시겠어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제가 기도할 때 어떤 치유의 말씀을 하잖아요. 그러면 되는 겁니다. 제가 그걸 감동을 받아서 하거든요.
그걸 아셔야 돼요. 내 멋대로 하면 아무것도 안 일어나요. 저 사람 불쌍하니까 고쳐달라고 부처님 고쳐주시고 떠나갈지도 아무래도 그런 거예요. 내 안에 계시면 그 말씀을 주시겠죠. 감동하면 100% 순종하면 그대로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내가 가는 곳이에요. 가는 곳이 평정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구원을 예수님 십자가에 피를 흘릴 때 우리를 죄에서만 구원했습니까? 두리뭉실하게 모든 것이라 하면 아무것도 몰라.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질병은 치유됐어요. 십자가에 죽고 나서 채찍에 맞았어요? 아니면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죽었어요? 그럼 채찍에 맞음으로 어떻게 됐어요?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 어려운 걸 아 성경에 나와 베드로 존스 2장 24절이래 이사에서 53장 3절 그거 몰랐죠? 알았어요? 역시 그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질병으로부터 구원했어요. 죄로부터 구원하고 새 생명을 주신 것도 맞고 질병으로부터도 구원했어요. 그다음에 저주로도 구원 바다 나무 아래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갈라대어서 그걸 안 가르쳤구나. 3장 13장 갈라디아스 313에 그래서 그가 나무의 달님으로 저주를 담당하셨다. 그럼 가난은 어때요? 후한 자로 가난하게 되시므로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가난한 우리가 부우하게 되었도도 그것도 선포하세요. 어디라고요?
팔자구절 다시 찾아봐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가난은 우리 게 아니에요. 저주받은 증상을 통해서 나타난 것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그걸 회복시킬 수 있어요. 그거를 당겨 써야죠. 이미 부여하게 돼 있잖아요. 눈물도 없는 게 있잖아요. 병도 없는 곳에 있잖아요. 우리 존재가 그걸 땡겨 써야 돼요. 그걸 가지고 제가 부흥을 하려고 했는데 다 나와버렸네. 할지 안 할지 몰라요. 그런 거예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이미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그때 보세요. 그때 나는 그의 몸이 된다. 이게 성육신이죠. 부활하셔서 다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거예요. 왜요? 성경에 다 나와 있어요.
예수님의 머리에 우리는 지체의 각품이라고 했잖아요. 우리는 거의 몸이 맞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 때 그리스도의 현현에 연합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던 예수님의 모습하고 똑같죠. 2편에 보면 예수님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어느 날 내가 너를 낳아뒀다. 우리도 이제 아들이죠. 예수님의 형상을 입고 있을 때 똑같은 아들이 된 거예요. 그러면 너는 내 아들이라 어느 날 내가 너를 낳았더라도 그게 내게 현재화되는 거예요. 이것도 묵상할 때 주신 말씀이에요.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했는데 그다음에 2편을 주고 내가 진짜 너를 낳았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내 아들이다. 아들답게 살라라는 거죠. 어때요? 그렇게 낳았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내 삶의 실체가 지금 현재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다음도 일어나요. 너는 내게 구하라. 열방을 내게 유업으로 준다. 그래서 열방을 구하세요. 그리고 가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열방으로 갔을 때 그게 이루어졌죠.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한 게 그거예요. 내가 열방으로 나아. 예수님은 지리적인 한계 안에 묶여 있었잖아요. 그런데 성령은 온 세계로 퍼졌잖아요. 우리한테까지.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보다 더 큰일로 한다라는 게 그거예요. 그 한계를 벗어 난 거 온 땅으로 퍼진 거예요. 그 일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소유가 땅끝까지 일어나. 그래서 예수님의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는데 내가 가는 곳이 예수님의 소유가 되죠. 이 일이 이루어지잖아요. 내가 주님의 것이 되면 내 안에 있는 게 주님의 것이 되죠. 그러면 그 소유가 확정이 돼서 이루어지죠. 그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땅끝까지 이루어지는 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행전이죠.
성령행전. 그래서 소유가 땅끝까지리라 말씀이 현재가 되고 그게 10편, 27편이 아니고 2편 7절 8절 바로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요한법 14장에 나오는 말씀이고 그 다음에 고려대도 3장 21절 23절이 현재화됩니다. 현재화. 이 모든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다시 살리시고 그 다음이 중요해요. 내 안에 들어오신 거예요. 이거는 제게 음성으로 주신 거예요. 이 모든 일을 위해서 내가 죽었다. 그리고 너를 살렸고 다시 너 안에 들어왔다. 그러면 뭔 말이에요? 나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제게 주지 말씀 여러분도 받으세요. 감동되면 됩니다.
하나가 되어서 나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땅끝까지 전파하겠다는 거죠. 내가 발 닿는 곳에 그 일이 일어나도록. 그래서 성령을 보증으로 해서 기록을 부으신 거예요. 그럼 내가 가는 곳에 이 일이 일어나야 돼요. 사실은 일어나야 돼요. 안 일어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세요. 저도 가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날 때 많아요. 반대로 일어날 때도 많고요. 그렇지만 실망 안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때도 있기 때문에 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려고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건 아직 내가 육적인 자아가 있기 때문에 그게 그런 순간 그게 실패할 때마다 제가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이거 저거 해달라고 씻어달라고 다시 그 본성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계속 그렇게 합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잖아요. 사도 바울도 맨날 죽는다고 그랬잖아요.
얼마나 그게 매일 죽을 정도로 그랬으면은 사도 바울도 그것 때문에 엄청 많은 고민을 했다라는 증거예요. 그게 그러지 않나요? 사도, 바울도 그 정도인데 우리도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얼마든지. 그래서 그런 게 올라올 때마다 매일 죽으면 이제 그리스도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러면 평정되는 거죠. 내 아들이라 내게 구하라 열망을. 아니 그러니까 저 아프리카 가서 땅 사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아프리카로 행진할 때 아프리카 인생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걸 말해요. 그럼 돌아오면 몸만 오겠어요? 뭐 땅도 줄 거 아닌가요 그때 취하십니다. 아멘 나 같은 자를 통해서도 누군가를 살리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의 동력자로 이미 부름을 받은 자, 글쎄 형상을 입도록. 그렇죠? 이게 얼마나 엄청난 원인가요? 돼지 같은 나를 불러서 사람 만들어 놓고 나처럼 함께 하자 같이 일하자 나를 통해서 예수님 자신을 좀 나타내주면 안 되겠냐 이거거든요. 그렇죠? 그걸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해서 남은 인생을 살게 되면은 빌리포스 사장 구절 뭔지 찾아보셨어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영광 가운데 모든 쓸 것을 짜잔 짜잔하게 채우는 게 풍성하게 채우신다. 일이 안 일어나겠어요. 예수님의 몸인데 일어나죠.
고린도서 6장 9절, 10절이 일어나는 약할 때 없는 것 같은데, 다 있어. 못 넣은 것 같은데, 너무 잘났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이해 가시죠? 이게 연합되어 있는 자의 특권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모든 쓸 것을 풍성이 달라고 기도를 하고 난리죠. 그렇죠? 4장 19절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밖에서 아무리 수십 년 구해보세요. 풍성이 쓸 것을 주시나? 안 줍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풍속이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죠. 그런가요? 그러면 주게 되어 있어요. 그 말씀을 말씀하세요. 나는 그 안에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그 안에 있을 때 풍성이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풍성함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선포하세요.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봐야죠. 그런가요? 그건 어떻게 해야 지속적으로 그 안에 있는 삶을 살게 돼요? 보증금보증금. 성령의 인을 치고 보정했잖아요. 그런가요? 로마스 팔장일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라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고하는 거예요. 계속 성령 충만하면 우리에게 이거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무조건 이루어지는 겁니다. 말씀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말씀을 갖다 대고 선포하세요. 달라고 막 애걸복걸하지 마시고요.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이미 새로운 사람이 예수님이 달라고 애걸복걸하던가요? 가져오라 나눠라 이렇게 하지. 돌려라 이렇게 하죠. 안 그래요? 선교제에서 그런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가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라 떡이 잔뜩인데 뭐 떡을 떼겠어요? 생선 집에 가면 냉장고에 그냥 냉동돼서 꽁꽁 얼어 있잖아. 1년 먹을 거 잔뜩 있는데, 뭐 생선 가지고 나누겠어요. 여러분 그건 생명이에요. 생명을 나누는 걸 말해요. 그래서 내가 아무리 약해 보여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강한 자 없어. 보여 없는 것 같은데, 다 있는 자 이게 이루어진다니까요. 이루어져야 돼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돼요. 그래서 이런 존재가 된 우리는 바로 고린도서 15장 58절의 삶을 사게 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의 수고가 주 안에서 되지 않는 줄 알면 이게 바로 우리의 삶이 헛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에요. 더 이상 헛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그리스도 임재만을 나르는 자들이에요.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우리는 다 맛보셔야 돼요. 우리는 그걸 맛보고 있어야 하고 성경에는 이미 다 맛봤고 증인들이 잔뜩 있고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보증인이 와 계시고 언제든지 그걸 보증했기 때문에 보증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당겨 쓰시면 되는 거예요. 당겨 써야 돼요. 암에 당겨 쓰셔야 돼요. 쫄지 마시고요. 당겨 쓰세요. 암에 당겨 쓰는 게 뭔지 알아요? 잡고 땡기는 거예요. 그게 땡겨 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그 사랑이 이미 잔뜩 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어요.
1. 동종 사랑과 이종 사랑의 이해
1-1. 동종 사랑과 이종 사랑의 정의
- 동종 사랑은 상대방을 원하는 대로 맞춰 놓는 것을 의미함
- 이종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으로, 나를 변화시켜 상대방을 변화시킴
- 동종 사랑은 종이 같은 사람간의 사랑이며, 이종 사랑은 나를 변화시켜 상대방을 변화시킴
- (중요) 예수님의 사랑은 이종 사랑이며, 이는 동일한 존재인 우리가 해야하는 사랑임
1-2. 동종 사랑과 이종 사랑의 가능성
- 우리는 종이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음
- 이종 간의 사랑은 본성이며, 이것이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음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여 내는 것은 생명을 가진 종이라는 DNA의 증거임
- (중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종이기 때문에 다른 종을 사랑할 수 있음
1-3. 동종 사랑과 이종 사랑의 결과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동종 사랑이 가능함
- 이를 통해 우리는 영생의 존재가 되며, 이종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
-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생명을 가진 자로서의 존재임
- (중요) 이종 사랑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됨
2. 이종사랑
2-1.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임
-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얻음
- 사랑받은 자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함
- 요한일서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함
- (중요) 우리는 사랑받은 자이기에 이종사랑을 실천해야 함
2-2. 이종사랑의 본성과 완성
- 하나님의 은혜로 이종사랑의 본성은 이미 완성됨
- 우리는 사랑받은 자이기에 그 사랑으로 사는 것이 영생임
-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임
-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에서 이종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함
- 동종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 삶의 증거임
2-3. 이종사랑의 실천과 성장
- 이종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아들의 생명이 없음
- 우리는 이종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영생의 증거를 알 수 있음
- 사랑은 형제를 향한 것임을 기억하고, 이를 삶에서 드러내야 함
- 사랑의 표현은 율법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임
- 사랑하는 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사랑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
3. 성령의 역사와 사랑의 실천
3-1. 부정성과 십자가의 의미
-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이기심과 부정성에 대한 반응임
- 주특기를 통해 부정성과 죄악을 씻어내야 함
- (중요) 십자가는 부정성을 씻어내고, 씻어내는 것을 계속하라는 의미임
- 파레시아에 들어가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이미 완성되어 있는 연합으로 이어짐
- 점차 멈춤없이 사랑하는 것이 중요함
3-2. 사랑의 훈련과 완성
- (중요) 사랑은 훈련되며, 길들여지고 점차적으로 진화함
- 자신을 미워하는 것과 부정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은 사랑의 절반임
- 이에 대한 해결책은 습관화하여 본성을 죽이고 새로운 본성으로 살아나는 것임
-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자신을 미워하고 새로운 존재로 창조함
3-3. 사랑의 실천과 보증
- 보증금은 사랑의 신뢰를 보증하는 것임
- 성령은 보증금으로, 사랑을 보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함
- 보증금은 이미 지불되었으며, 이는 사랑의 신뢰를 보증하는 의미임
- 성령의 인도하에 사랑의 신뢰를 사용해야 함
- (중요) 보증이 된 사랑은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진화함
4. 동종 사랑과 복음 제사장
4-1. 사랑으로 하나 됨
- 우리는 간음한 여인처럼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면 죄 없는 자가 둘로 치라 하게 됨
-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
- 우리는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하나가 되고,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이종 사랑을 보여야 함
- 우리는 동종인 사랑을 할 때, 세상 사람과는 종이 달라지며,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이종 사랑을 보여야 함
- 이종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4-2.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
- 우리는 이종 사랑을 통해 세상에 있는 종은 자기 사랑의 근본인 자기 사랑을 채우려 함
- 자기 사랑의 근본인 자기 사랑을 배척한 종에게 우리가 이종 사랑을 보여주어야 함
- 그들이 이종 사랑을 보며 우리 안에 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달라짐
-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를 나타내심
-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보낸 사람이 되어 온몸으로 나타남
4-3. 복음의 제사장
- 우리는 복음의 제사장인 다리우스가 되어 이 세상에 놓임
- 복음의 제사장은 동종 사랑의 한계 안에서 세상에 있는 종을 변화시킴
- 우리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세상에 있는 종을 향한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킴
- (중요)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의 본성과 다른 것을 제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감
-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부어진 존재로서, 그리스도와 같은 관계로 변화되어 다른 종과는 다른 사랑을 보여야 함
5. 사랑의 힘
5-1. 사랑의 자연스러운 발현
- 묵상과 말씀을 통해 사랑이 자연스럽게 발현됨을 설명함
- (중요) 불특정 다수를 섬기는 자이신 예수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
- 예수님이 보내는 이들에게 이미 사랑이 있음을 전함
-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그 사랑을 본받아 사랑해야 함
- 작은 것부터 사랑해야 함을 강조함
5-2. 성령의 역사하심
- 말씀이 내 안에 부어지고 새겨지면 사랑이 자연스럽게 발현됨
- 성령이 진리이자 생명이 되어 사랑과 희락, 합병하게 함
- 성령의 기름과 능력이 내 안에 함께할 때 말씀이 사랑으로 나타남
-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고 역사하심을 믿어야 함
-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역사하는 성령을 알아야 함
5-3. 사랑의 삶으로
-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사랑이 본성으로 나타나면 사랑이 자연스럽게 발현됨
- 사랑하라는 말씀이 내 안에 들리면 할 수 있는 것임
-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행하도록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고 사랑이 나타남
- 마귀가 우리의 말에 역사하려고 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줌을 알려줌
- 사랑의 삶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아닌, 말씀으로 변화되어서 사랑의 본성을 갖춰야 함
6. 성령의 역사와 사랑
6-1. 성령의 사랑과 역사
- 우리는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랑 안에서 변화되어야 함
- 마귀의 속임수는 우리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체되어야 함
-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임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형제와 하나가 될 수 있음
- 돼지처럼 완벽한 모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을 받아들여야 함
- 돼지에게 이상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마음대로 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됨
6-2. 이종사랑의 행함
-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중 사랑을 통해 형제와의 사랑을 용납해야 함
- 예수의 성육신으로 내 안에 거룩한 생명이 들어와야 성육신이 이루어짐
- 예수가 가시면 질병과 귀신이 치료되고,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짐
-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의 삶과 복음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음
-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심
6-3. 성령의 임재와 치유
-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질병과 죄에서 구원하시며, 새 생명을 주심
- (중요) 오순절을 통해 성령이 충만할 때, 예수님이 나가시면 모든 것이 그 주변에 나타남
- 성령의 임재가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는 예수의 삶과 복음을 통해 변화되어야 함
- 예수님의 부활 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이 변화되고, 순종하게 됨
-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의 삶과 복음을 통해 질병과 저주에서 벗어나게 됨
7. 그리스도의 몸
7-1. 저주와 구원
- 저주받은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임
- (중요) 가난한 자도 저주받았으나, 구원의 방법을 알면 부유하게 될 수 있음
- 구원의 방법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임
- 가난한 자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음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임
7-2. 성육신과 부활
-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입고 있는 아들임
- 예수님은 우리가 아들답게 살기를 원하심
-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열방에 들어가기를 원하심
- 열방은 예수님의 소유가 되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됨
- 성령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열방에 들어가도록 부름을 받음
7-3. 하나님의 소유
- 예수님은 열방으로 가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열방에 들어감
- 예수님의 소유가 땅끝까지 이루어짐
-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이루어짐
- 성령의 행전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확정됨
-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위해 부름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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