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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Ⅰ. 절대 다수 대對 일
선지자Jeremiah는 토기장이에게 항아리 하나를 샀습니다. 백성을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급 장로들을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함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갔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당시 성민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땅을 온갖 종류의 우상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우상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과 맺었던 절대적인 언약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破棄해버렸습니다. 우상들을 극진히 섬기며 예배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파렴치破廉恥한 죄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주권을 거부했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모양과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지으신 여호와를 모욕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성민 이스라엘의 땅인지, 이방인의 땅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선지자는 증인으로 세운 장로들을 대상으로 남 왕국 유다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날, 여호와께서는 남 왕국 유다가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마련한 계획과 자구책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완벽하게 무너뜨리십니다. 원수들의 칼과 창에 죽임을 당한 성민 이스라엘의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거리에 쌓이게 하십니다. 짐승의 밥이 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포위당하게 하십니다. 자식의 고기를 먹게 하십니다. 서로 잡아먹게 하십니다. 이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아람과 전쟁할 때, B. C. 586년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한 완벽하게 포위당했을 때, A. D. 70년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포위했을 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한 때, 하나님 영광으로 가득 찼던 예루살렘의 완벽한 파멸을 목격한 이방인이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십니다. 비웃게 하십니다. 조롱하게 하십니다. 경멸하게 하십니다.
이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그야말로 완벽한 파멸입니다. 엄청난 심판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진멸입니다. 그럼에도 성민 이스라엘은 자신의 소위所爲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돌아볼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볼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이 백성은 고집이 세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 이제 이미 말했던 온갖 재앙을 이 도읍과 여기 딸린 모든 성읍에 내리리라.”(렘19:15b)라는 여호와의 절규대로, 여호와의 법을 완고하게 거부했습니다. 완전히 매몰된 정욕과 충동이 이끄는 대로 좇아갔습니다.
지극히 죄 친화적親和的이며, 죄의 경향성傾向性이 농후하고, “죄 곧 나, 나 곧 죄”, 지극히 작은 죄 앞에서도 사족四足을 쓰지 못한 채 달려갈 수밖에 없는 타락한 본성을 여지餘地없이 드러냈습니다. 선지자는 계속해서 들고 있었던 항아리를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한 번 산산조각난 항아리는 예전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남 왕국 유다에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심판을 내리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용쓰는 재주와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피를 토하는 사투를 벌인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회복할 수 없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선지자는 장소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겼습니다. 다시 한 번 남 왕국 유다에 임할 두렵고 떨리는 여호와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외쳤습니다. 제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때, 성전 총감독으로 봉사하고 있던 제사장Pashhur이 나타났습니다. 다짜고짜 선지자를 붙잡았습니다.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차꼬에 채워버렸습니다. 선지자는 나라와 민족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완벽한 진멸을 외쳐야하는 사명이 주어졌을 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도무지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그는 하루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비록 진멸이라는 두렵고 떨리는 심판을 통해서 이루어질 일이기는 하지만 결국 사랑하는 나라와 민족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절규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루도 눈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눈이 짓 물렸습니다. 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뼈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깡말랐습니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었습니다. 치아는 잇몸도 없이 뼈에 겨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라와 민족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평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지도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이 그지없으시다. 심하게 벌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신다. 사람이 미워서 괴롭히거나 벌하지는 않으신다.”(애3:32-33), “...모두 살아 온 길을 돌이켜 보고 여호와께 돌아가자...하나님께 손들고 마음 바쳐 기도드리자.”(애3:40-41)라는 고백에 따르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목이 터지도록 선포한대로, 나라와 민족이 회복될 날을 꿈꿨습니다.
권력에 취한 왕은 물론 장로와 제사장과 선지자와 방백,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절대 다수가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버린 타락한 세상에서, 절대 다수 대對 일이라는 불리한 구조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살아냈습니다. 때가 이르자, 아무리 들러보아도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던 희망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했습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포했던 하나님의 뜻이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역시 성민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 명예, 권세 놀이에 완전히 매몰埋沒되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추구합니다. 벽돌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세운 건물을 추구합니다.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 영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채우기 위한 많은 수단들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희망 되시는 당신을 떠나서 당신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에 빠져 있는 타락한 교회를 향해서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외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EpⅡ. 400 대對 일
남 왕국 왕Jehoshaphat은 바알을 버렸습니다. 많은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유다에서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여호와의 계명대로 살았습니다.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째 되던 해에는 전국에 종교 지도자들을 파견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 속한 성읍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찾아다니며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그를 강력한 왕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동시에, 주변 나라들은 그와 함께 해 주시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와 맞서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엄두를 아예 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은과 함께 무수히 많은 짐승들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남 왕국 유다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강해졌습니다. 남다른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평안이 넘쳤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마음을 다해 섬기고 있는 여호와를 떠나서 바알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던 북 왕국 왕Ahab과 사돈査頓을 맺었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이 바알 숭배에 빠지는 단초端初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두어 해가 더 지나갔습니다. 북 왕국 왕을 만났습니다. 북 왕국 왕은 많은 양과 소를 많이 잡아 성대하게 대접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람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아오려고 하는데 도와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신중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맺은 동맹을 강화하고 싶었습니다. 유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네 것 내 것 찾을 사이입니까? 네 군대니 내 군대니 따질 사이입니까? 물론 함께 나가 싸워야지요.”(대하18:3b)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단히 큰 착각이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회복한 상태였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호와로부터 완전히 떠나서 바알 숭배에 깊이 빠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관계는 유지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유익 앞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그렇기 때문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영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수시로 범하고 있는 실수입니다. 착각입니다. 불신자들과 하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대답한 그는 대신, 전쟁에 나서기 전에 여호와의 뜻은 어떤지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북 왕국 왕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즉시 선지자 사백 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국가 종교를 관장했습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동시에 이방 종교에 대해서도 타협적이었습니다. 북 왕국 왕은 그들에게 아람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아오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도 되는지, 아니면 그만 두어야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구해 보라고 명령했습니다. 명령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들은 국가적인 종교를 관장하는 선지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에 세워졌던 금송아지 우상과 이방 신들까지도 섬기는 우상 숭배자 정도에 불과했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진 즉시 이구동성으로 당장이라도 치고 올라가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돌려주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마치 이런 때를 대비해서 사전에 회의를 하고 입을 맞춰놓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왕이 원하는 대답을 늘어놓았습니다. 남 왕국 왕은 미덥지 않은지 또 다른 선지자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북 왕국 왕은 자신에게 길한 예언보다는 흉한 예언만 하기 때문에 미워하여 멀리하는 선지자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남 왕국 왕은 그의 예언도 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북 왕국 왕은 선지자Micaiah를 불러들이기 위해서 즉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북 왕국 왕의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당장 치고 올라가서 취하라고 예언했습니다. 선지자를 만난 전령은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길한 예언을 하고 있다며 당시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지자에게도 길한 예언을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선지자는 그가 제안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거절했습니다. 그야말로 단호했습니다. 자신은 여호와의 말씀 하나만 액면 그대로 전해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북 왕국 왕은 선지자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미 싸우러 올라가기로 결정한 왕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라고 대답했습니다. 북 왕국 왕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대답 앞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역정을 내며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선지자는 비로소 여호와께서 북 왕국 왕에게 진노를 내리기로 결정하셨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백 명에 달하는 선지자들 입에 거짓말을 넣어놓으셨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진실이었습니다. 순간, 다른 선지자가 다가와 그의 뺨을 후려갈겼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언제 자신을 떠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느냐며 호통 쳤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여호와의 영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의미였습니다.
한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예언을 주실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선지자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거짓 예언을 감추기 위해서 지극히 의도적으로 취한 부도덕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욕과 핍박을 받습니다. 때로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선지자는 동료 선지자의 공격적인 태도 앞에서 조금도 당당하지 않았습니다. 위축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그가 살겠다는 마음으로 골방으로 도망치는 날, 자신이 참된 선지자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북 왕국 왕은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죽지 않을 정도만 먹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선지자는 북 왕국 왕이 무사히 살아온다면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북 왕국 왕은 남 왕국 왕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자신은 일반 병사로 위장했습니다.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사람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의 의도대로, 왕의 복장을 한 남 왕국 왕에게 공격이 집중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지켜주셨습니다.
북 왕국 왕은 일반 병사로 위장했습니다. 아람 군사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남 왕국 왕의 안전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람 군사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쏟아 부었던 무수히 많은 화살들 가운데 하나에 맞고 말았습니다. 일부러 맞히기도 어려운 갑옷 솔기 부분에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예언대로 역사하셨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회복하기 어려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은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였습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기진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다 당한 다음 그야말로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생사 여부는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리기로 결정하신 사람은 무수히 많은 사람의 표적이 되어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죽이기로 결정하신 사람은 자신을 제아무리 교묘하게 잘 숨긴다 할지라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지자는 무려 사백 대對 일이라는 절대 열세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EpⅢ. 하나님께서 찾아내신 한 사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고, 사람을 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탄식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한 사람נֹחַNoah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는 누구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절대 열세적인 상황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비웃음과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무려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전무후무한 홍수로 죄에 찌든 세상을 심판하시던 날, 인류의 새로운 시조始祖로 거듭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기는커녕 오히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11:7b)라고 정면으로 대적하는 지극히 타락하고 인위적인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사람אַבְרָהָםAbraham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침내, 믿음의 조상祖上으로 거듭났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온갖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동족과 함께 아파하며 사랑과 긍휼로 돌봐주기는커녕 오히려 착취했습니다. 이방인을 학대했습니다. “행여나 이 가운데 이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있어, 담을 고치고 틈을 막으며 이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나의 앞을 막아서는 자라도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그런 사람도 없었다.”(겔22:30)라는 여호와의 탄식에 따르면, 타락한 성민 이스라엘을 죄로부터 돌이키고 잘못된 영적 상태를 개혁하여 수습하려는 선지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며 너희 눈으로 찾아보아라. 장마당마다 찾아 다녀 보아라.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렘5:1)라고 약속해 주셨지만, 공허한 울림에 불과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조건도 갖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고 자신 혼자만 남아 있는 절대 열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찾으시는 단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겠습니까?
EpⅣ. 여전이 남아 있는 한 사람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가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일주일동안 대타로 성경 공부를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혈변이 쏟아지고, 입은 부르트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최선을 다해서 인도했습니다. 그때 참석했던 지도자 몇 명이 정기적으로 성경을 가르쳐 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점심 식사 한 끼 외에 받고 있는 왕복 교통비는 물론 한 달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줄 수 없다. 인원은 열 명 이하로 제한하겠다.” 등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건너다보이는 강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여덟 개 교회 지도자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탈북자들을 위한 사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던 사역이었습니다.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마다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는 쌀, 당장 갈아입을 수 있는 옷, 내지內地로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물질 등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떤 때는 가진 것이 너무나 없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습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가진 것이 너무 없습니다. 올 겨울에는 제발 강이 얼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까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공개적으로 압박을 시작했습니다. 교회와 사역자를 등록시켰습니다. 정부가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설명해 주었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원하는 대로 관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언제든지 강제로라도 폐쇄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해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탈북자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각될 때는 이제까지의 사역 전체를 소급해서 1인당 3000위엔(한화 540,000)의 벌금을 거두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교회 안에 발만 들여놓게 하여도 동일한 조치를 내리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루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사역을 하고 있던 사역자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교회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기도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직감적으로 탈북자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부의 경고가 떠올랐습니다. 쉬지 않고 다급하게 두드리는 문을 열어줄 수 없었습니다. 문 두드리기를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갈등하고 또 갈등했습니다.
돌아간 뒤에야 후회했습니다. 그렇게 한심한 일이 있었다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끝내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현재는, 유치원에서부터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설교도 중국어로만 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조선어로 설교하는 교회는 강제로 철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적지 않은 철거 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기는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명을 받았다던 사역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역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평생 만져보기 힘든 목돈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무수히 많은 선교사들이 그동안 현지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하는 과정에서 투자했던 엄청난 물질을 부당한 방법으로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사역자 몰래 철거에 동의하고 비용을 챙기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T지역의 상징적인 교회를 섬기고 있던 사역자(박*진)와 부드러운 이미지로 주변 지역 동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섬김을 받았고 정신적인 지주 역할까지 감당했었던 사역자(평안교회, 이*남)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교회 철거와 함께 흩어진 성도들을 외면하고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현지 상황을 모르는 교회에서 유명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역자는 부당하게 챙긴 물질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Y지역의 교회가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는 이면에 C국 정부의 압박은 물론 열악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유무형의 혜택을 받아 누렸던 사역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비록 지극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힘겨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교회와 성도들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이른 새벽부터 은밀히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두루 찾으시는 한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역시 그다지 밝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붕괴되고 있는 현장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왜곡되는 현장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에게만 집중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그야말로 애타게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몸부림쳐야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에는 “한 선지자”, “그 선지자”, “하나님의 사람” 심지어 “한 사람”이라고 짧게 소개되는 이름 없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쉽게 알 수 있는 탁월한 일군들과는 달리 그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찾아주시는 한 사람,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이라는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에 안성맞춤인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