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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앞의 우주적 역설: 파산 카란 헤게사스데 (πᾶσαν χαρὰν ἡγήσασθε,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이 강단을 내리치며 선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고통 자체를 즐기는 마조히스트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헤게사스데(여기라)'는 감정적인 기분이 아니라, 회계 장부를 작성하듯 '철저한 지성적 계산과 신학적 판단을 내리라'는 뜻입니다! 십자가 군사는 맹렬한 환난(Peirasmois)이 덮칠 때, 이것이 나를 죽이려는 마귀의 공격이 아니라, 내 영혼의 불순물을 태워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용광로임을 계산해 내고! 100%의 절대적인 기쁨(파산 카란)으로 결단하고 선포하는 맹수들입니다!
마라토너의 거룩한 맷집: 휘포모넨 (ὑπομονήν, 인내를)
시험(시련)은 무엇을 만들어 냅니까? 수동적인 체념이 아닙니다! 짓눌리는 극도의 고난 아래서도 결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맹렬하게 지켜내며 전진하는 영광스러운 강철 맷집, '휘포모넨(적극적이고 전투적인 인내)'을 벼락같이 생산해 냅니다! 이 인내가 끝까지 완주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단 1%의 결핍도 없는 '온전한 자(Teleioi)'로 우주 앞에 우뚝 서게 됩니다!
II. 두 마음을 찢어버리는 하늘의 지혜 (1:5-8)
(약 1:5-6, 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고난을 돌파하는 내비게이션: 소피아 (σοφία, 지혜)
환난 속에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고난의 면제'가 아니라, 이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 내고 돌파할 수 있는 하늘의 '지혜(소피아)'입니다! 이 지혜는 꾸짖지 않고 쏟아부어 주시는(후히 주시는) 아버지께 엎드릴 때만 주어집니다.
영적 정신분열증의 경고: 아네르 디프쉬코스 (ἀνὴρ δίψυχος, 두 마음을 품어)
아더 핑크(A.W. Pink)가 기복신앙에 찌든 위선자들의 뇌수를 도끼로 찍어버립니다! 하나님께 구하면서 의심하는 자는 왜 응답받지 못합니까?
헬라어 '디프쉬코스'는 직역하면 '두 개의 영혼(Two-souled)'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평일에는 돈과 세상을 의지하는 끔찍한 '영적 정신분열증' 환자입니다! 하나님은 내 심장을 1000% 올인하지 않는 이런 얄팍한 양다리(바다 물결) 신앙의 기도에는 결단코 단 한 방울의 은혜도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III. 유혹의 해부학과 생명의 면류관 (1:12-15)
이 구절은 외부에서 오는 '시험(Testing)'과 내부에서 솟구치는 '유혹(Temptation)'을 완벽하게 분리하여 해부하는 영적 심리학의 최고봉입니다!
(약 1:12, 14-15)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승리자의 우주적 전리품: 스테파논 테스 조에스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생명의 면류관)
외부의 핍박(Peirasmos)을 인내로 돌파한 자에게는 무엇이 주어집니까?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대장군에게 씌워주는 승리의 월계관, 영원토록 시들지 않는 절대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됩니다!
타락의 소름 돋는 족보: (욕심 ➔ 죄 ➔ 사망)
그러나 내가 죄를 짓고 넘어진 것(유혹)을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셨다"고 핑계 대지 마십시오! 죄의 진짜 원흉은 내 영혼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악한 괴물, '자기 욕심(Idias epithymias)'입니다!
야고보는 타락의 과정을 산부인과의 출산 과정으로 묘사합니다! 욕심이라는 더러운 정자가 내 의지와 결합하여 임신을 하면, '죄(Hamartia)'라는 사생아를 낳습니다. 이 죄가 먹이를 먹고 거대한 괴물로 장성하면, 결국 '영원한 사망(지옥)'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우주 앞에 토해내는 것입니다! 죄는 장난감이 아니라 영혼의 살인마입니다!
IV. 진리의 말씀으로 잉태된 십자가 특공대 (1:16-18)
(약 1:17-18)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절대적 불변의 창조주: 아포스키아스마 (ἀποσκίασμα,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인간의 감정은 아침저녁으로 변하고, 태양과 달조차도 자전과 공전을 하며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쏟아지는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빛들의 아버지'는 단 1mm의 흔들림이나 요동함이 없는 우주적 반석이십니다!
구원론의 눈부신 정점: 아페퀴에센 (ἀπεκύησεν,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5절에서 욕심은 '사망'을 낳았습니다(Apekuesen). 그러나 18절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 위대하고도 맹렬한 '진리의 말씀(로고스 알레데이아스)'이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우리 영혼에 던져 넣으사, 우리를 사망에서 끄집어내어 영광스러운 첫 열매로 '아페퀴에센(새로운 피조물로 강제로 산출하고 잉태하여 벼락같이 낳으셨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창조주의 기적입니다!
V. 거울 앞의 위선자 vs 말씀을 살아내는 맹수 (1:19-27)
1장의 심장이 폭발하는 가장 서슬 퍼런 십자가 실천의 대명령입니다! 더글라스 무(Douglas Moo)의 강력한 강해적 칼날이 번뜩입니다!
(약 1:22, 23-24)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귀머거리 종교인의 파탄: 아크로아타이 모논 (ἀκροαταὶ μόνον,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고, 은혜받았다고 눈물 흘리는 것으로 신앙이 끝났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아크로아타이)'는 고대 대학에서 청강만 하고 학점(열매)은 받지 못하는 유령 학생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추악한 죄악을 보고도, 문을 나서는 순간 그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죄악 된 일상으로 돌아가는 영적 치매 환자요, 스스로를 기만하는 구역질 나는 위선자(Paralogizomenoi)일 뿐입니다!
율법을 뚫고 나온 자유의 맹수: 포이에테스 에르구 (ποιητὴς ἔργου, 실천하는 자니)
그러나 진짜 거듭난 십자가 특공대는 누구입니까?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십자가 복음)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Parakypsas: 몸을 굽혀 미친 듯이 응시하고), 그것을 지식으로 남기지 않고 삶의 처절한 현장에서 피 땀 흘려 '포이에테스(창조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고 맹렬하게 살아내는 자)'입니다! 이 사람만이 그 행하는 일에 우주적인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강단을 증명하는 진짜 경건: 드레스케이아 카다라 (θρησκεία καθαρὰ, 정결한 경건은)
1장의 가장 웅장하고 품격 있는 결론입니다! 기독교의 '경건(드레스케이아)'은 종교적인 코스프레나 거룩한 척하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진짜 경건은 단 두 가지로 우주 앞에 증명됩니다!
아무것도 갚을 능력이 없는 가장 비참한 자들(고아와 과부)의 환난 속으로 뛰어들어 내 것을 찢어 나누어주는 '맹렬한 긍휼의 돌진'!
썩어빠진 세상의 가치관과 탐욕의 똥물이 내 영혼에 단 한 방울도 튀지 않도록(Spill-free), 피투성이가 되어 내 영혼을 사수해 내는 '서슬 퍼런 성결(세속에 물들지 아니함)'!!!
이 두 가지 십자가의 흉터가 없는 신앙은 전부 가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