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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말미암느니라
스가랴 4: 6-9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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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느니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금요일 날 아침 싱가포르를 떠나기 전에 새벽 6시에 긴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보니 말레이시아의 쿠아르름푸르에서 한 은행가 부부가 긴급히 저의 기도를 받겠다고 호텔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로비에 내려가서 이 두 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의 사연인즉 그들에게 아들이 있는데 미카엘이라는 자동차 사고를 내어서 식물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사람으로 할 일, 돈으로 할 일,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오직 이제 그 아들을 도와줄 자는 성령의 능력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를 받기 위해서 쿠아르름푸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는 간절한 사연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힘으로도 능으로도 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한다고 포기하고 앉아 있으면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우리가 해결책을 얻어야 합니다.
인간들은 중세 암흑시대 이후로 문예부흥을 통해서 인본주의적인 신앙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반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은 지식이 개발되어서 인간의 이성과 과학만 발전하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이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지상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일차대전과 이차대전의 비극적인 전쟁을 겪다 보니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도 아닌 서로 물고 찢는 동물이라는 것이 발견이 되고 과학이라는 것이 인간이 자멸할 수 있는 함정을 파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성과 과학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외 설상가상으로 자원고갈과 환경오염과 인구폭발 등이 다가와서 이제는 지상천국은커녕 인간은 이젠 스스로 종말에 처해서 자멸할 수밖에는 없다는 비극적인 예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이런 시점에 도달할 때 우리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는 “이는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나의 신으로 말미암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성령께 의지하면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는 인생문제가 성령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번 살펴봅시다.
첫째로,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는 문제가 죄악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죄악이란 사람이 지식이 없어 무지하고 가난할 때 이것이 죄를 짓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렇게 지식이 보급되고 가난이 물러가고 다 잘살게 된 이 시점에서 옛날보다 더 무섭고 간악한 죄악들이 흉흉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무지와 가난이 죄의 온상이 아닌 것입니다.
요번에 간 이 싱가포르에서 우리 한국보다 싱가포르는 굉장히 잘삽니다. 물질이 풍부하다 보니까 모든 사람이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 윤리와 도덕이 타락하고 부패해서 싱가포르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이 방안을 짜다가 결국에 어떤 방안을 내놓았느냐 모든 학교에서는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나 종교교육을 강제로 시키도록 그렇게 국가에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므로 싱가포르에서는 어느 학교를 들어가나 학교에서 강제로 종교교육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물질만 자처하다가 동물적으로 전락하지 말고 종교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윤리와 도덕을 준수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보자 이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닐라에서도 마르크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 마라카나 궁에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목사님 서구 물질문명이 우리 필리핀에 들어와서 휩쓸므로 젊은이들과 사회의 부패의 타락이 말이 아닙니다. 더구나 젊은 사람들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 우리 국가에서는 좋은 운동경기 즉 스포츠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각하 스포츠를 조장하는 것도 좋지마는 스포츠는 우리에게 건강을 주기는 하나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화는 주지 못합니다. 필리핀이 변화되고 부패가 없어지고 잘 살게 하려면 필리핀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게 해야 참으로 필리핀에 새로움이 다가옵니다. “
그러니까 나를 보고 싱긋이 웃더니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나요? 그렇기 때문에 조목사님 같은 분을 우리가 필리핀에 청해와서 성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제발 우리 필리핀에 자주 와서 성회를 많이 인도해서 필리핀이 온전한 기독교 국가가 되게 해 주시오."
이러한 부탁을 제가 듣고 또 제가 그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주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여러분, 원래 인간본성은 타락했을 때부터 완전히 부패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자 말자 그들의 심령이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의 심령은 부패하고 가증해서 가히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손 치고 마음속이 부패해서 자꾸 죄를 짓고 싶은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맙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죄를 용서받는다고 해서도 그것이 문제의 해답이 안 되는 것은 용서받아도 자꾸 지으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죄를 자꾸 짓고싶은 사람은 자꾸 짓는데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기독교의 위대성은 죄를 용서받는 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육체로서 우리의 죄를 끌어안고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싶은 마음. 죄성을 십자가에서 깨뜨려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삼게 하려함이라”
이 말씀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쳐버리셨습니다. 죄의 힘을 꺾어버리셨습니다. 죄성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제는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예수 안에서 넘쳐 나오는 성령의 역사가 죄와 사망의 법을 멸해 버렸습니다.
로마서 8;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가운데에서는 예수께서 우리 일생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서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육체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성을 파괴하고 죄를 그쳐버렸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그래서 이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싶은 마음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마음속에서 죄 짓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면 그 사람은 숨어서라도 죄를 짓고 말아요.
그런데 죄 짓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사람은 죄를 지으라고 타이르고 협박을 해도 죄를 짓지 않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죄악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해결할 수 없지마는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면 우리가 용서받는 것을 알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죄성이 다 파괴된 것을 알게 되면 "주여, 용서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죄를 다 파괴했으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죄성도 멸하여 주시옵소서 죄짓고 싶은 마음도 도말시켜 주옵소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이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을 도리밖에 없습니다.
어떤 인간의 종교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생활의 지식이나 부요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주의 성령이 오셔서 예수 십자가 보혈의 공로와 죄를 멸하신 공로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기만 하면 이 문제가 해결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대한민국도 점점 경제가 부흥이 되고 잘 살게 되면 사람들이 물질 중심이 되고 동물적이 됩니다.
이래서 부패하고 타락합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믿고 성령 받을 때 우리는 죄를 멸하고 우리는 참으로 주님 뜻대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는 문제가 바로 죽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 살기를 원합니다. 천년만년 살기를 원하고 잘 살길을 원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게 되나요?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다고 태어나서 반드시 사람은 죽습니다.
<생자필멸>이요 <회자정림>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반드시 멸망하고 만나는 사람은 이별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비극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인간의 죽음의 문제만은 해결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죽음의 그늘에 눌리어서 인간은 슬픔의 존재로서 실로 이 죽음의 절망을 어깨에 걸머지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문제도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마는 예수님께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어서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내고 삼일만에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이제는 부활이요 생명인 예수께 우리가 성령으로 접붙임을 받아서 생명의 은총을 받아 죽음을 정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은총을 얻은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죽음의 문제도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신앙을 통해서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 사망이 철폐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바울을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도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지옥으로 던져지지 않습니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죽음의 문제.... 힘으로도 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지마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그리고 부활의 영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증거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죽음조차 정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사는 것이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매일 살아가는 것이 먹고 자고 깨고 먹고 자고 깨는 그 반복에 불과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고 깨고 먹으며 예수를 믿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매일같이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힘으로도 능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미움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미움이 있을 때 인간의 행동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아들 가인이 둘째아들 아벨을 쳐서 죽였습니다.
첫 가정에 큰 비극이 맏아들이 둘째아들을 쳐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롯 유다는 그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팔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했습니다.
미움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미움은 형제간에라도 죽이고 선생과 제자간에도 서로 팔아먹고 죽이고 친구는 말할 것이 없고 나라와 나라가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서 죽이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옷을 먹고 마시면서도 서로 부부간에 미워해서 파괴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움의 문제. 이것을 인간의 지식도 인간의 과학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가장 무서운 병폐인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에 극도로 지식과 과학이 발전했지만 가장 무서운 미움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래서 옛날보다 더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옛날보다 더 무서운 살상의 무기를 만들어 놓고 미국과 소련을 양극으로 해서 온 세계가 목에 서로 칼을 대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의 문제.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은총으로 그 사랑으로 성령의 능력이 우리 마음에 사랑으로 채워주어서 미움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고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그 아가페 사랑. 이것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미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올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되고 성령이 오셔서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 마음을 붙잡아 주셔야 미움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싱가포르에서 참 훌륭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스 박사인데 이분은 싱가포르의 국립대학의 경제학 교수일 뿐 아니라 싱가포르의 국회의원이십니다.
그는 미국에 스탠포드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아주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는 결혼한 지 삼년만에 아들하나 낳고 부부간에 도저히 뜻이 맞지 않아 서로 미워하다가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부인대로 떠나가고 자기는 홀아비로서 어린 아들 하나 데리고서 십 년을 살았습니다.
그 아들이 커서 열네 살이 되었습니다.
부인하고 헤어져서 십 년을 살았으니 아주 남남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수상이 이 사람을 사랑해서 좋은 혼처를 구해서 재혼을 하도록 했습니다. 약혼을 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결혼 전에 전도집회에 나가서 복음을 듣고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나니까 제일먼저 누구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냐하면 전처. 십 년 전에 자기를 버리고 나간 전처. 그 미워하던 전처를 미워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십 년 전에 헤어진 전처 미워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주님이 나를 씻어 주시옵소서."
기도를 하니까 성령께서 말하기를 "미워한 것을 용서했으면 도로 데려다가 살아라."
그러시거든요. "아이고 하나님, 헤어진 지가 십 년이고 지금 수상이 중매를 해서 약혼을 하고 결혼 직전에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그때부터 성령께서 "전처하고 다시 결혼을 해라. 다시 그 전처와 결혼해서 살아라.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 뜻에 합당하니 그렇게 해라."
그래서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전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당신을 다 용서했다. 당신도 예수 믿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내게로 돌아 오라." 그 말을 듣고 그 부인도 회개하고 "나도 예수를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약혼하고 결혼 직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그 결혼날짜 잡아놓은 날에 전처와 재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 된 아들을 증인으로 세워놓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 후에 싱가포르 수상이 노발대발을 하고 예수를 믿어도 희한하게 믿는다고 하면서 수상에게 미움을 받다 정치생명이 끊어질 지경에 놓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십 년 묵은 미움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다시 불쌍히 여겨 십 년 전의 전처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대학강의를 하고 국회에 나가서 정치를 하고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하고 국립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어 노이로제 환자들, 정신나간 환자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나가라고 안수하고 기도하고 해서 학교에 문제까지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이번에 비행장까지 따라와서 특별실을 마련해서 우리를 돌봐주고 다가올 6월 달의 대성회를 위해서 맹렬하게 성회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마음속의 미움을 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고 떠나 있던 부부가 어떻게 합쳐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주의 성령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전도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미움이 파괴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크게 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주의 성령이 오시면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이 우리 문제의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힘으로 능으로 못하는 것은 불안과 공포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환경이 급변하고 그리고 생활의 주변이 늘 변하기 때문에 무슨 불행이 오지 않을까.... 늘 불안합니다. 정치가는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사업가는 망하지 않을까.... 직업인은 직장을 잃지 않을까.... 끊임없이 늘 불안하고 공포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산을 지나갈 때 범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불안합니다. 그러다 범이 '어흥'하고 나오면 불안은 공포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직 대상이 없을 때는 불안하지만 대상이 생기면 공포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늘 불안 가운데서 불행이 오지 않을까?.. 하다가 개인문제, 가정문제, 생활문제, 사업문제가 탁 터져서 인간으로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생기면 불안은 공포로 변해서 우리는 얼어 붙어버리고 맙니다.
이와 같은 불안과 공포의 문제.... 이것은 지식이 많다고 해서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불안과 공포는 불안과 공포보다 더 위대하고 크신 분이 우리를 붙잡아 주실 때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까지 주신 그 믿음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부어질 때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은 아버지고 예수님은 내 주가 되시고 그리고, 하나님을 살아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다 선하게 된다는 이런 신념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은 불안과 공포는 휴지조각같이 아무 힘도 없이 말려서 휴지통에 던져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제하고 마음속이 편안해야 평안이 다가옵니다.
아무리 권력과 부귀가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이 불안해서는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은 바로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점령하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님께서 날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 것을 알게될 때에 마음이 편안하게 되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불안과 공포. 이것이 오늘날 유행병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지마는 오직 이것을 이기는 길은 예수로 말미암아 넘쳐 나오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되고 능력과 권세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여러분, 우리가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는 것은 마음이 낙심되고 좌절 될 때 인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늘날은 산업화, 도시화, 생존경쟁, 스트레스에 눌려서 삶에 지쳐서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들도 사회인도 낙심 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낙심되고 마음이 가라앉고 삶의 의욕이 상실될 때 이러할 때 힘으로도 능으로도 어떻게 일으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같은 사람도 너무 일에 눌려서 지쳐버리자 낙심해서 로뎀 나무 밑에서 나를 죽여달라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하고 다 낙심하고 도망간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도 호렙산 바위굴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자말자 좌절감을 이기고 일어났으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충만히 받자 말자 좌절과 낙심을 물리치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뱃속에서 생수의 강같이 넘쳐 나서 낙심한 마음, 외로운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고 치료하고 경외하고 삶을 힘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슴속에서 흘러나올 때 이생은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눈에는 보이는 것 없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란이 태산처럼 다가와도 우리가 기도할 때 생수가 강같이 성령이 넘쳐나면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그 큰 위로와 생기와 능력이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산을 넘고 골을 건너고 물을 지나고 불을 자나서라도 승리로운 삶을 살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것은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나의 신으로 말미암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예수 믿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장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성령께 의지해야 되고 우리는 성령과 함께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죄를 멸하는 영이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영이요.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영이요. 공포와 불안을 없애는 영이요. 좌절될 때 용기와 힘을 가지고 번창하고 승리하며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게 하는 영으로서 우리 가운데 와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니다.
모셔드리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을 의지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속에 성령이 와 계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돕는 자. 성령이 와 계셔서 여러분과 나를 도와서 진실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주 예수님께 성령이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우리들에게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할 일이 해결이 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여기 주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주의 백성들이 제4부 예배로 이처럼 모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이끌어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원하옵고 기도하오니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 더욱 성령이 충만하고 더욱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해서 아버지 하나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