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화상, 그는 누구인가?
어느 분이 문자 주셨습니다.
포대화상이 누구인가요?
포대布袋(생년 미상-917년(?))는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십국 시대까지
명주(현재의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실재했다는 전설적인 불승입니다.
흔히 수묵화의 좋은 소재로 여겨지며
큰 포대를 멘 배불뚝이 승려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칠복신七福神 중 하나로서 추앙받고 있습니다.
본명은 계차契此 또는 석釋자를 붙여
석계차釋契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항상 포대를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布袋라는 속칭이 붙었습니다.
석명현四明縣 출신이라는 설도 있지만,
출신지도 속성도 불분명하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묘사도니 것처럼 올챙이배를 한 자태로,
절에 산 것도 아니고 처소를 누볐다고 합니다.
또, 그 트레이드마크인 큰 자루를 항상 짊어지고 있었으며,
비린내 나는 것도 상관없이 시주를 받고,
그 중 일부를 포대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은 특이했지만,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을 충만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계차契此에게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 전설에서는 합니다.
또 사람의 길흉을 알아맞혔다는 등의 유형의 일화도 전해집니다.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담은 문답도 남아 있습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따르면
포대는 죽음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합니다.
포대를 선승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후세에서 끌어다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10세기 후반에 쓰여진《송고승전宋高僧傳》21권
‘감통편感通篇’에 쓰여진
“당명주 봉화현 석계차(포대)”의 전기에는
그와 선과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경덕전등록》27권에
“선문달자수불출세유명어시자禪門達者雖不出世有名於時者”로서
양나라의《보지寶誌》,《천태지의天台智顗, 《한산습득寒山拾得》등의
다른 승려, 고승들과 함께입니다.
포대화상은 법명은 차此입니다.
호를 장정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 했습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자루 속에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포대화상은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 사람들과 같이 차별 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자유인이었습니다.
사방을 걸림 없이 다니며,
천지를 내 집 삼아 살던 포대화상은
때때로 길흉을 예언하였는데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어도
스님이 나막신을 꺼내 신고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장마철이라 비가 계속 내리다가
스님이 짚신을 신고 다니면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지만 사람과
어울려 길흉화복에 대해 곧잘 얘기를 했는데 아주 신통했습니다.
한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하셨다면
저회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의 진수이다!”
그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포대를
후다닥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이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기도 하였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 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아이들과 실랑이질하기도 하며 바보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상견相見, 사견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의 게송입니다.
일발천가반一鉢天家飯
발우하나로 천 집의 밥을먹고
고신만리유孤身萬里遊
외로운 몸 만리에 노닌다.
청목도인소靑目覩人少
푸른 눈은 사람을 보는 일 없고
문로백운두問路白雲頭 길을 물으니 백운의 끝이더라.
등등자재무소위騰騰自在無所爲
늠름하고 자재하여 하는일 없으니
민한구경출가아閔閑究竟出家兒
한가롭고 한가로와 출가한 장부일세.
약도목전진대도若覩目前眞大道
눈 앞에 참된 도를 본다 하여도
불견섬호야대기不見纖毫也大奇
티끌만큼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아.
아유일포대我有一布袋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허공무가애虛空無罫碍
허공에 걸림이 없어라.
전개변우주展開邊宇宙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하고
입시관자재入時觀自在
오므리면 관자재로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시시시시인時時示市人
때때로 시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시인자불식市人自不識
시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포대화상은
네 번째의 게송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않은 채로 입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마지막 게송을 듣고
포대화상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중국 악림사 입구에 있는 미륵불은
양반 다리를 하고
크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미륵상 곁에는
“배는 천하의 품기 어려운 일도 다 포용할 수 있고,
늘 웃는 그 입은 세상의 가소로운 인간을 비웃는구나”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포대화상의 전언에는 시대를 초월해
어느 곳에서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닫으면 바늘 하나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를 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음입니다.
포대화상 참배방법도 친근하고 재미있습니다.
포대화상의 배꼽을 만지면서
아랫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며 만집니다.
그렇게 손길이 많이 닿아서인지 배꼽부분이 거무스레합니다.
배를 만지며 세 번 돌리면서
문지르면 아이를 잉태한다고 전합니다.
포대화상이 크게 웃을 때
그 웃음을 따라 함께 웃으면 세 가지 복이 생긴다 합니다.
무병, 장수, 부귀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포대화상은 우리말로 옮기면
“복福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영어로는 “해피 붓다Happy Buddha”입니다.
오늘은 포대화상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2024년 06월 03일 오전 08:17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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