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교회란 건물이 아니다. 교회란 사람들이 그냥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말로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그것은 모임이라는 뜻인데 그냥 모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되어 모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바울이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아 경기장으로 끌려 갈 때 도시 사람들이 다 흥분해서 경기장으로 모였다. 그 때 같이 흥분해서 경기장으로 달려온 사람들 중 아주 많은 수가 자신들이 왜 흥분했는지, 왜 경기장으로 달려 왔는지 모르고 달려 왔다고 한다. 이런 모임은 엄밀히 말해서 에클레시아가 아니다.
교회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단체를 의미한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 집사의 죽음으로부터 생긴 박해로 통해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유대인 신자들이 도망친 곳에서 세운 교회 중 하나인데, 그들은 유대인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 안에는 세상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이루게 된 최고의 교회가 되었다.
(행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행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였다. 로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 제국 내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인구는 약 50만 정도 되었다고 한다. 옛날 50만의 인구라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안디옥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세운 교회는 유대인 교회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다종족, 다인종, 다문화 교회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20절의 헬라인이라는 말은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습관에 따르면 이 사람들의 이름은 그 중요도에 따라서 나열된 것이다.
바나바 – 정통 유대인, 부자,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 초대 교회 사도들과 신도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 안디옥에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세워지자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가장 존경 받는 바나바를 목회자로 파송했던 것이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 니게르는 검다는 뜻이다. 즉 흑인이다. 로마시대에 흑인은 주로 노예들이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 무명의 이방인, 성경의 다릇 곳에서는 정보를 찾아볼 수 없는 사람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 헤롯과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었다. 일제시대의 친일파와 같은 사람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민족의 배신자였다. 헤롯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천하의 악당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헷롯 일당과 같이 어울려 다녔다는 것만으로 상종 못할 사람으로 취급했다.
사울 – 예수님의 교회의 악명 높은 핍박자였다. 지위는 유대 나라에서 최고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산헤드린 의회 회원이었다. 지식으로는 최고의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서는 예전에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오늘날의 국회의원)이었던 사울이 가장 서열이 낮은 사역자였던 것이다.
이들은 그냥 평신도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를 지도하는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살아온 환경이나 신분, 외모, 사상 등으로 볼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부자가 가난한 자가 있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권력이 있던 사람이 권력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애국자가 있었고 매국노가 있었다.
주인이 있었고 종이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 있었고 무명의 사람이 있었다.
로마 시대에는 신분의 구분이 뚜렷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한 교회의 지도자로 함께 일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교회 안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사기꾼도 들어올 수 있고, 깡패도, 살인자도, 전과자도 들어올 수 있고 과학자도 들어올 수 있고 점쟁이도 들어올 수 있고 영업을 하는 사람도 들어로 수 있고 정치인도 들어올 수 있고 검사도 들어올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와서 사기를 치려고 하거나 주먹을 쓰거나 사람을 죽이려고 하거나 자신의 세상적인 지식을 자랑하거나 점을 봐주려고 하거나 물건을 팔려고 하거나 선거 때 한 표 얻으려고 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을 색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교회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고 함께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 교회가 되지 못하고 흑인이 들어오는 것을 밀어내는 백인교회, 가난한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게 하는 부자 교회, 못 배운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는 지식인들만의 교회, 전라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경상도 교회, 연예인들만 다닐 수 있는 특수 교회, 정치적으로 보수 교회와 진보 교회,...... 이런 종류의 교회들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모습을 잃은 교회이다.
가끔 어떤 신도는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워낙 신령하고 말씀이 강해서 보통 교회 다니던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온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해요."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런 말 자체가 그 교회가 이상한 교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다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서로 사랑함으로써 이루어져 가는 곳이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도 역시 그런 교회였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은 서로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열심당원 시몬과 세리 마태였다. 열심당원은 일제 강점기로 말하면 무력 독립 운동가 같은 사람들이었다. 세리는 일제 강점기로 말하면 일본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고 부자가 된 매국노였다. 무력 독립 운동가의 입장에서는 매국노는 처단 대상 1위였다. 매국노의 입장에서는 무력 독립 운동가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었던 지체 높은 니고데모가 있었고, 세상의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창녀 마리아도 있었다. 그렇게 전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 때 당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금식하는 날을 정해 놓고 금식했다. 금식은 예배와 함께 이루어졌다.
주를 섬겨 - 섬긴다는 말 자체가 서비스, 봉사, 즉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뜻이 있다.
그들은 금식하고 예배하면서 어떤 종류의 기도를 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응답하신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성령님은 그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물었다. 성령님은 그들에게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따로 세워 전도하러 보내고 그들을 후원하라는 응답을 주셨다.
성장하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부모의 양육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고 청년이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하게 된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 삼성이나 LH 같은 좋은 직장에 입사해서 그 한 직장에서 오래 있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물론 부모들의 입장에서야 자기 자식이 아무런 고생이나 방황없이 죽 잘나가기를 바랄 것이지만, 아무런 고생을 못해 본 사람들일 수록 나중에 작은 어려움만 와도 자살을 한다. 잘 나가던 사람들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에 한 번 만 불려 갔다 오거나 조사예정만 되어 있어도 자살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실패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LH 비리 사태가 벌어지자, 그 좋은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이 연일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신의 비리가 들어날까 두려워서 겁을 먹고 미리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살해서 죽은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노무현 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자살하자 노무현 씨보다 훨씬 더 많은 죄를 짓고 살았던 전두환 씨는 "죽긴 왜 죽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 남아야지."라고 말했었다. 젊었을 때부터 계속 인정만 받고 산 사람들은 작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급속히 멸망하는 것이다.
젊은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것 저것 많이 해본 뒤에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젊은 이가 직장을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것은 청년의 특권이고 너그럽게 이해해 줄 일이다.
내가 다니는 운전 학원도 원장 아들이 군대 다녀와서 학원에 와서 학원 행정을 배우고 있다. 원장 아들이니까 학원을 물려받을 것이니 좋은 일 같지만, 내 생각에는 젊은 나이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마음껏 하다가 좀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는 것이 본인의 정신 건강에도 좋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가업을 너무 일찍 물려받으면 평탄한 길 같지만 오히려 젊은 시절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젊은 이들이 방황하듯, 안디옥 교회도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목표를 주셨다.
어떤 사람은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는 게으르고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는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큰 교회, 작은 교회라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목표가 없는 목사는 게으르고 목표가 있는 목사는 부지런 하다.
수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아직 자신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님은 그들에게 선교의 일을 하는 교회가 될 것을 지시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목표가 있는 건강한 교회가 되었다.
어린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만 성장한 사람은 하나님이 있어야 자기가 있고, 사람들이 있어야 자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면서 산다.
나의 기도의 내용은 나 자신의 안위만 위한 것인가, 교회와 가족과 이웃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행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의 기둥 같은 목회자, 예루살렘 교회가 파송한 담임 목사 바나바와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위해 세운 사도 사울이 빠진 안디옥 교회는 흑인 시므온과 무명의 루기오, 민족의 배신자 마나엔 등 세 명에 의해서도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다섯 명의 목회자 중 두 명이나 빠져 나갔으나 안디옥 교회는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그들의 결속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선교사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도했다. 보통 자신들이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거나, 자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되면 기도를 멈추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받고서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갈 때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기도는 응답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해야 한다.
안수는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그 소망을 이루려고 앞서서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서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은 보냄을 받았고,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그들을 계속 후원했다. 그들의 후원을 받아서 바울은 4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안디옥 교회의 후원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세계 선교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교회는 목회자에게 자신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전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후원한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받는 돈은 사유재산을 불리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목회 후원금이고 목회 활동금이다. 어떤 활동을 위해서 주는 돈은 수입을 위한 돈이 아니라 비용을 위한 돈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후원을 받아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목회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