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우물 고개서 맥아더장군 월미도 들어가는게 보이더군요”

[김종문 목사]

“찬우물 고개서 맥아더장군 월미도 들어가는게 보이더군요”

발간일 2019.06.19 (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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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용사 화랑무공훈장  김관식 옹

▲화랑무공훈장 을 보이고 있는 김관식 옹

6월은 현충일, 6·25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을 기념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올해로 69주년이 된 한국전쟁을 앞두고 다양한 호국보훈기념행사가 계획되고 있는 가운데, 한 설문조사는 대학생 10명 가운데 4명이 6.25전쟁에 관하여 잘 모른다는 대답을 했다고 발표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요즘 세대들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선조들의 위대한 헌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이와 관련하여 21살의 나이로 6.25에 참전하였던 강화의 김관식 옹(91세)에게 한국전쟁의 현재적 의의를 질문 드렸다.

1950년 9월 사흘동안 하늘에서 포가 폭우처럼 쏟아져

“원래는 1928년생인데, 호적에는 29년으로 올라가 있어요. 올해 92살이니 세월이 참 빠르네요. 고향은 약수터로 유명한 찬우물 고개 인근이에요. 해방 되고 나서 강화에 호국군이라는 일종의 향토방위군이 생겼는데요, 호국군 중대장이 사돈 집안이었어요. 그분에게 군사교육을 받아서 호국군 교관이 되었어요. 옛날에는 강화 장터가 관청리에 있었거든. 거기에서 만세운동도 하고 그랬죠. 장터에 송해면, 하점면, 선원면, 강화읍 사람 중 군사지식 전혀 없는 일반인들을 모아서 군사훈련을 시켰어요. 제식훈련 뿐 아니라 이론도 가르쳤죠. 그러다가 덜컥 6.25가 터진 거 에요. 인민군들이 교인들은 가만 두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면장님이랑 찬우물 고개로 숨었죠. 새벽에 밥 먹고 찬우물 고개로 도망갔다가, 깜깜한 밤이 되면 남몰래 집으로 돌아와서 쪽잠을 자곤 했어요. 그렇게 한 여름 내내 산꼭대기에서 몸을 숨겼는데, 거기에서 월미도가 보이거든요. 9월 중순 쯤, 군함 한 채가 쓱 들어오더니 폭격을 시작 하더라고요. 사흘 동안 하늘에서 포가 폭우처럼 쏟아지더니 인민군들이 길바닥에 여기저기에 쓰러졌어요. 폭격이 끝난 후, 맥아더 장군이 월미도로 그냥 걸어 들어가더이다. 그걸 찬우물 산꼭대기에서 직접 봤다는 거 아닙니까.”

한국전쟁이 터지자 강화에서도 이념이 서로 다른 주민들이 서로를 해치는 비극이 벌어졌다. 호국군 교관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청년 김관식은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관식 옹은 비로소 한시름 놓게 된다. 가족들과 피난을 떠나기로 결심한 김관식 옹. 사흘 동안 걸어서 초지에 도착하지만 인파에 밀려 피난선에 오르지 못하고, 외포리까지 가서 겨우 승선 하게 된다.

“세상에 그렇게 큰 배는 처음 봅니다. 미군이 마련한 함선이었는데, 얼마나 높던지. 사다리 타고 올라갔지요. 그 배로 제주도까지 갔는데요, 결국 제주에서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6.25의 전개[강화전쟁박물관 전시실]

호국군 교관 경력이 알려져 육군 대령에게 소대장으로 발탁 된 김관식 옹. 고향에서 동족상잔의 끔찍한 광경을 목도 했던 터라, 전투에 직접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아귀다툼 하는 것을 봐서, 진절머리가 나더라고요. 소대장 대신 정보계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다행히 받아 들여졌어요. 강원도 화천에 있는 백암산 고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요, 낮에는 아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인민군에게 빼앗길 만큼 치열한 접전 지였어요. 제가 주로 했던 임무는 중대 배치하는 업무였는데, 사실 그건 계급이 높은 지휘관들이 해야 할 일이었거든요. 이제 막 사관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뭘 알겠습니까. 실전 경험이 부족한 지휘관들이 여럿 사망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계급은 없어도 호국군 교관이었던 저에게 그 임무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민간 지도는 알아도 군사 지도는 볼 줄 몰랐거든요. 중대장님에게 배워서 군사 지도를 읽게 되었죠. 나중에는 등고선만 봐도 해당 지역 지형이 눈앞에 그려졌어요.”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총[강화전쟁박물관 전시실]​

계급은 낮아도 실전 경험이 풍부했던 김관식 옹의 기지는 위기가 발생 할 때마다 빛을 발했다.​

“작전상 후퇴가 세 번 있었어요. 아군은 장비도 많고 실탄도 풍부했지만 인민군은 인해전술이었죠. 걔들은 총도 없어. 그냥 땅에 쫙 붙어서 기어 올라가면 아무리 총을 쏴도 안 맞아요. 결국 아군도 포기하고 여러 차례 철수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날도 아침에 올라가서 아군이 이겼는데, 밤이 되니까 또 인민군이 몰려온다는 소문이 들렸어요. 인민군이 대낮처럼 환하게 조명탄을 쏜 거지. 어느 정도 밝았냐면, 개미새끼까지 보일 정도였으니까. 우리 군 전력 보호를 위해 결국 후퇴 명령이 떨어졌어요. 갑작스런 퇴각 지시에 지휘관들이 우왕좌왕 했거든요. 다른 부대 먼저 내려 보내고, 작전 담당인 제가 제일 마지막에 내려갔습니다. 중대장님께 말씀 드렸죠. 걱정 말라고.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띵 한뼘이라도 더 차지하고자 남과북 피말리는 전투

삼복더위에 땀으로 범벅이 된 군복은 발 하나 옮기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육체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 어린 병사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낙오되었다. 

“우리 중대원들을 제가 다 꿰고 있었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았죠. 여기저기에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비명이 속출 했는데, 지휘관들도 본인들이 힘드니까 속수무책이었어요. 한밤중이고, 등 뒤에서 인민군이 쫓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들 겁이 났을 거 에요. 그래서 제가 대뜸 그랬어요. 너 아무개지? 그랬더니 상대방이 깜짝 놀라요. 깜깜한 가운데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이 등장했으니까요. 당장 도망가! 잡혀 죽을 셈이냐?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걷어차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더라고요.”

평야지대였던 서부전선은 미군이, 험준한 산악지형의 동부전선은 아군이 싸웠던 그때. 땅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남과 북의 피 말리는 전투는 계속 되었다. 이 와중에 김관식 옹의 부대는 금강산까지 밀고 올라갔다고 한다.

“금강산에 있을 때는 인민군과 폭 50m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었는데요. 적군이라지만, 한창 혈기 방장한 나이 아닙니까. 그 와중에도 장난이 발동 하는 거죠. 건너편 인민군 향해, 이 자식아, 밥은 먹었냐? 소리 지르면 그쪽에서도, 답이 와요. 그러는 너는 먹었냐?”

평소에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다시 교전이 개시되면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청춘들. 두 번 다시 전쟁의 아픔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유공훈장 모음[강화전쟁박물관 전시실]
 

“인민군이 밀고 들어온다고 해서, 우리가 일부러 후퇴를 했어요. 50리 쯤 물러났는데, 인민군들이 와서 보니 텅 비었잖아요. 아무도 없거든. 옳다구나 하면서 신나게 막 건너 온 거죠. 그렇게 인민군이 우리 쪽으로 다 넘어 온 걸 확인한 후, 강을 향해 비행기가 포격을 가했어요. 강물이 넘치도록. 물난리가 나버리니까 인민군이 어쩔 줄 몰라서 야단이 났죠. 그 틈을 타서 아군이 다시 진격했어요. 인민군은 오도 가도 못하고 전멸 했죠.”

중대장은 물론 대대장까지 도와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한 병사에게 무공훈장 수여는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김관식 옹의 활약을 높이 산 대대장은 화랑무공훈장을 추천한다. 

“중대장님, 대대장님이 계급과 무관하게 개인의 능력을 우선으로 하는 합리적인 분들이셨어요. 그러니 계급이 낮은 저에게 작전계를 맡기셨겠죠. 계급장만 믿고 전투를 얕잡아 본 장교들은 살아남지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수행한 작전 덕분에 많은 동료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훈장보다도 그게 더 값진 선물 아니겠습니까.”

▲(좌)강화군 참전기념탑​, (우)강화유격용사위령탑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겪었던 당사자로서,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여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로 세워진 대한민국입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나라를 위해 싸웠던 젊은이들의 희생을 꼭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