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풍류.
조선 선비의 길은 오로지 인내와 고행의 연속이였을까.
조선 선비는 세간의 즐거움을 외면한채 삭막한 명분에만
골몰했을까. 그들에게도 오락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다.
그들은 사랑채라는 독자적인 생활 공간을 보장 받았다.
사랑채는 선비가 학문에 참잠할 수 있고 뜻이 맞는 벗과
교유할 수 있는 문화적 생활 공간으로서 대체로 간결하고
담백한 품위를 유지했다. 실용적인 목가구로 문방사우를
아우르고 선비 정신의 발로인 백자로 생활 기구를 삼는
이 공간에서 묻어나는 것은 은은한 묵향이였다.
좀더 조건이 좋은 경우에는 연못과 초당을 갖춘 후원이
있어서 풍요롭고 아취 있는 풍류 생활의 여유도 누렸지만
마음에 맞는 벗을 초치하여 詩를 읇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
를 쓰는 것은 건결하고 담백한 선비의 사랑방 기풍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조선 선비 풍류 생활의 기본 자세는 학문과 예술을 일치하려는
학예일치 정신에서 나왔다. 그들은 그림이나 글씨를 손끝의 잔재주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슴속에 만.권의 독서량이 쌓여서 피어나는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券氣)< 책에서 나오는 기운.>가 흘러 넘쳐야 비로서 좋은
그림과 좋은 글씨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은 글을 쓰는 기본 자세인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과
같다. 문장이란 화려한 수식의 나열이 아니라 사상성인 道를 표현하는
매체이므로 道와 문장은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