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에서 배를 타고 강줄기를 따라 돌아보자 했다. 칠월은 시드니 겨울의 중심. 연일 우중이었다가 다행히 날이 개었다. 강물은 장마 끝에 척박해 보이는 황토색 물결로 뒤채고 있었지만 엎드려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은 멀리서 봐도 여문 진초록으로 한껏 둘러싸여 있었다. 반짝이는 날씨에 일행 표정도 밝았다. 바람도 때마침 잔잔했다.
선창가에 들어서자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고 발걸음은 점차 더뎠다. 멀미 걱정이었다. 배를 탈 때마다 혹독하게 치렀던 경험으로 웬만하면 선상크루즈는 피해왔다. 강가는 그지없이 평화롭기만 한데 나만 쿵쿵대기 시작했다. 가파른 철 계단을 통해 이층 선상에 오를 때는 심장이 더 뛰었지만 담담한 척했다. 곧이어 나온 비스킷타임으로 웃으며 들썩거리고 났더니 한결 나아졌다. 이제 배가 좌우로 흔들리지만 않으면 웬만큼 견뎌낼 것 같았다. 민폐가 될까 봐 갑판에 나와 바람을 쐬니 Y는 자꾸 셔터를 눌렀다.
몇 년 전 우연한 오사카 경험으로 멀미는 웬만큼 극복을 했다. 그날은 오사카 항 하버 빌리지에 있는 산토리 뮤지엄 관람이 계획 중 한 가지였다. 도착해 보니 휴관 안내 공고가 붙어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누드 외벽과 치솟은 유리벽 주변만 몇 바퀴를 돌았다. 아는 말이라곤 ‘곤니찌와’ 한 마디뿐, 그냥 돌아가기에도 억울해 바닷가 돌 벤치에 햇살처럼 앉아있었다.
그때 공중을 아래위로 한 바퀴 크게 도는 대관람차가 눈에 들어왔다. 발목을 바닷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아 놓고 푸른 허공을 배경 삼아 수십 개의 흰 꽃이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했다. 그 아름다움에 목을 꺾으며 빠져 있으니 함께 간 선배가 타보자고 했다. 멀미만큼 싫은 울렁증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가 마냥 못 탄다고만 할 수 없어 털고 일어섰다. 그게 터닝 포인트였을까. 내친김에 야간 크루즈도 도전해 보자고 내가 앞장서서 부추겼다. 의외로 멀미를 극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어 여럿 귀찮게 만들었던 일이었다.
정오가 가까이 올수록 물살에 되비치는 햇살이 고았다. 햇살 꽃이라고 속으로 불러봤다. 혹스베리 리버 기차역 근처에서 출발한 배는 희디 흰 강바람을 계속 거슬러 올랐다. 가다가 섬을 만나면 물방개처럼 잠깐 들려 술과 음료 같은 것을 내려주고, 검정 우편가방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게 다였다. 1인 우체국처럼 앙증맞은 선착장에서 일어나는 명랑하고 유쾌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빼고 재미 삼아 내다보다 배가 떠날 때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곤 했다. 섬사람에게는 주요 일상이 우리에게는 드물게 즐거운 볼거리였다. 풍경과 소란에 빠져 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턱수염이 수북한 선장은 마이크를 들고 1,2차 세계대전 시기를 중점으로 이곳 섬에 얽힌 역사와 유례를 레코더가 돌아가는 것처럼 쉬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건성건성 귀 밖으로 흘리다가 알아듣는 몇 마디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포스트맨 보트(Postman Boat)는 일과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쥐고 굽이굽이 섬 허리에 닿았다가 떨어지며 한낮의 혹스베리 강을 누볐다.
대부분 작은 섬들이었다. 많게는 몇 십 가구 적게는 몇 가구씩 모여 살았다. 그들은 주소만 섬사람일 뿐, 대부분 도시적 삶을 살고 있었다. 개인 선착장에 묶어둔 소형보트로 출퇴근을 하며 마트에도 가고 아이들 등하교를 시켰다. 길도 다리도 없는 섬에 자발적 안착을 선택한 사람들, 굳이 이곳에 들어와 불편하게 살아가는 그들 면면이 궁금하기도 했다.
섬을 주거지로 택한 그들도 좋든 싫든 가슴 한 구석에는 어지러운 마른 꽃잎 한두 장쯤 있을 것 같다. 꽃누르미가 되어 가는 특별한 사연 같은 것 말이다, 이도 그도 아니면 그저 섬이 좋다는 싱거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열한 명이 아무 탈 없이 배에서 내렸다. 여기저기서 “탱큐”가 연발했다. 잔잔했던 바람과 터키석 하늘이 한없이 쏟아준 맑은 햇살 덕분이었다. 나 역시 배만 타면 몇 번이나 반죽음이 되어 옆 사람을 고생시켰던 기억에 비추어보면 감사가 넘치는 경험인 셈이다. 이 동네 별미라고 치켜세운 S의 말대로 피시 앤 칩스 바스켓 한 통을 거덜 내고서야 우리는 겨우 헤어졌다.
아련해진 섬 빛을 깊숙이 찔러 넣고 돌아오는데, 한나절 바닷가의 고운 잔영이 몇 장의 그림으로 남아 벌써 아련했다. 마른 누름돌로 앉아 전해주는 저마다의 사연들, 그 일련의 이야기들이 몹시 강렬해서 연말이 아직 멀었는데도 십이월의 카드를 미리 받은 기분이었다. 가끔 혼자 오고 싶은 비밀의 장소로 꼽아두었다.
마음먹은 김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지인들에게 꽃 카드를 보내야겠다. 아직도 이민의 멀미로 가끔씩 흔들리는 친구들. 병치레로 또는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무기력으로 시달리는 날들. 갈수록 현관 밖을 나서지 않는 이 비수와 다름없는 친구들의 일은 곧 다가올 나의 일이기도 했다.
흔들리고 있다는 말을 뭔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듣기로 했다. 흔들리다가도 멈추고, 때가 되면 부드러운 바람의 시간이 곧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햇살 좋은 날, 거리로 나와 수다 꽃이라도 때때로 심어 두면 어떨까. 겨울 석양빛이 귀가 길을 따라오며 마른 꽃잎을 촉촉하게 물들였다.
윤희경 (캥거루문학회 회원·2022년 재외동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