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고, 행하고, 배워서 구하는 근행의 근본
불도수행의 기본이 되는 것이 신(信), 행(行), 학(學)의 세 가지입니다. 정법을 믿는 것, 행하는 것, 배워서 구하는 것, 이상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가 빠져도 바른 불도수행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믿는다는 것은 그의 중심으로 되는 것이며, 불도수행의 근본입니다.
신(信), 행(行), 학(學) 본연적인 자세에 대하여 니치렌대성인은『제법실상초』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염부제 제일의 어본존을 믿으실지어다. 기필코 기필코 신심을 강성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신편어서 p.668)
이 글월에서도 교시하신 바와 같이 대성인 불법의 구극(究極)이신 본존님을 성불의 유일무이의 법이라고 믿는 것이 불도수행의 근본이며, 그 위에 행학(行學)의 이도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信)’은 신수(信受)라고도 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로써 신(信)은 불도수행의 근본입니다.
법화경에 등장하는 석존의 제자 중에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조차도 오직 신수하는 것으로 법화경의 법리를 체득했다고 설하며, 그것을 ‘이신득입(以信得入)’이라고 합니다.
‘신(信)’에 의해서만이 부처의 위대한 지혜와 경애를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불법에서 설하는 올바른 생명의 법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자신이 깨달은 우주근원의 법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어본존으로 도현하셨습니다. 이 어본존을 우리가 성불의 경애를 열기 위한 유일한 연[(緣), 신앙의 대상]으로써 깊이 믿어야 합니다. 어본존을 믿고 창제에 힘쓸 때 묘법(妙法)의 공력(功力)을 자신의 생명에 나타내 성불의 경애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행(行)은 신(信)을 깊게 하고 학(學)을 증진하며, 학(學)은 신(信)을 강하게 하고 행(行)을 바르게 인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대성인은「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의 근본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신편어서 p.1388)고 말씀하셨으며, 또「신(信)이 없이 이 경을 행하는 것은 손 없이 보산(寶山)에 들어가고 발 없이 천리를 가려고 함과 같으니라.」(신편어서 p.8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존님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심이야말로 일생성불의 열쇠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信)'만 있으면 행(行)과 학(學)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26세 니치칸상인(日寬上人)은「가령 신심은 있다 할지라도 만약 수행이 없다면 아직 불가(不可)하니라.」(문저비침초)고 말씀하셨듯이 바른 불도수행의 참된 자세는 신심위에 행학을 일으켜 나간다고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2. 순수하고 끊임없는 실천만이 참된 불도수행
‘행(行)’은 어본존을 신수한 다음에 해야 하는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불법에서는 자신의 생명에 부처와 똑같은 생명의 작용 즉 불계가 갖추어져 있다고 설합니다. 불도수행의 목적은 이 불계를 나타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행복경애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에 갖추어진 힘이라 해도 현실 상황에서 나타내 발휘하려면 구체적인 변혁과 개척이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야구 배팅을 예로 들어봅시다.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휘두르기를 몇 천, 몇 만회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술은 제대로 된 연습방법에 따라 노력해야 비로소 몸에 익혀지는 것처럼 불법 수행도 부처의 경애를 열기 위해서는 도리에 맞는 실천을 지속해야 하고 그 실천이 바로 ‘행(行)’이며, 그것이 바로 자행화타(自行化他)의 수행입니다.
자행(自行)이란 창제행[(唱題行): 근행]이며 화타(化他)란 절복(折伏) · 홍교(弘敎)이고 광선유포를 지향하는 나날의 활동과 실천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신(信)' 과 '행(行)'을 가지고 바르게 증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항상 불법의 가르침에 부합되어 있는가 어떤가를 확인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이 바로 '학(學)'입니다. '학(學)'이란 니치렌대성인께서 신(信) · 행(行)의 자세에 대하여 교시해 주신 ‘어서(御書)’를 신심으로써 배독하는 것을 근본으로 바른 불법의 법리(法理)를 배우고 구도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서(御書)에는 불법의 법리와 신앙을 관철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 그리고 불법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관점과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을 신앙의 양식으로 삼는 일이 중요합니다. 불법에 있어서 ‘학(學)’이란 본래 부처님이 교시하신 법리를 내 몸에 배우고 닦는 것이며 닦고 배운 결과는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끊임없는 행학의 실천에 의해서 신은 더욱 깊고 요지부동한 것으로서 확립되어 가는 것입니다.
신(信), 행(行), 학(學)의 엄한 단련이야말로 일련정종의 전통 정신이며 거기에는 또 불법의 정의를 현대에 소생시켜 세계적으로 흥륭시키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 신(信), 행(行), 학(學)은 따로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심즉실천이며 실천즉교학, 교학즉신심이라는 자세로 융합되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불도수행에 면려하는 하나의 인격상에 겸비되었을 때 그 사람이야말로 순금 같은 신앙자이며 본격파의 불도수행자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