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번째 공유]
23. 네 가지 독특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나 여기에는 다섯 번째 독특점이 있다. 이 경향에 저항하는 것. 이는 단순히 네 번째 독특점 ‘죄짓다’에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둘 사이(죄짓다, 죄 안 짓다)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24. 이것은 다섯 번째에서 다른 셋으로 향하는 이어짐의 선들이 수렴하지 않는다는 것, 즉 공통의 값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정원도, 같은 원시 시대도, 같은 여성의 탄생도 아니다. 어떤 분기가 있다.
25.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에 언제나 ‘충분하다’. 여기에서 무엇 때문에 죄인 아닌 아담이 이 세계와 공존 불가능하다고 상정되는가 하면 그것은 이 세계의 독특점들에 대해 발산하는 독특점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26. 이 세계의 기원에 어떤 계산, 차라리 어떤 신적 놀이가 있다는 것, 이것은 가장 위대한 많은 사상가들이 생각했던 바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놀이의 본성, 그것의 우발적인 규칙, 그리고 우리가 그로부터 재구성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모델에 달려 있다.
27. 라이프니츠에게는 우선 수렴하고 발산하는 것들에 의해 지배받는 무한한 계열들의 계산이 있는 듯하다. 그는 『신정론』의 끝에서 이것에 대한 거대한 바로크적 재현을 제공한다. 이것은 바로크식 설화(說話)의 일반적 규준에 전형적으로 상응하는 텍스트디아.
28. 이것은 (바로크식 – 김재홍) 건축의 꿈이다. 꼭대기는 있지만 밑바닥은 없으며, 그 각각이 하나의 세계인 무한히 많은 나누어진 공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피라미드. 모든 세계 중에서 가장 좋은 세계가 있기 때문에 꼭대기는 있다.
29. 그리고 이 모든 공간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그리고 이 가운데 가장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 없기 때문에 밑바닥은 없다.
30. 각 공간에는 이마에 숫자를 붙이고 있는 섹스투스가 한 명씩 있는데, (루크레티아(Lucretia)를 능욕하는 섹스투스와 그렇지 않은 섹스투스라는 양극단 사이의 무한히 많은 섹스투스들) 이것은 읽히는 것과 보이는 것의 바로크식 조합이다.
31. 모든 독특점들은 서로 간에 발산하며, 그 각각은 다른 것들의 상이한 값들 아래에서만 앞의 것(신전을 떠남)과 수렴한다. 이러한 모든 섹스투스는 가능하지만, 이것들은 세계의 부분을 공존 불가능하게 만든다.
32. 신전을 떠나는 것과 같이, 그 근방에서 계열들이 발산하는 어떤 점을 분기라고 말한다.
(1)라이프니츠의 신봉자인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는 중국의 철학자-건축가인 취팽을 원용하는데, 이 사람은 ‘갈라지는 오솔길이 있는 정원’의 창시자이다.
(2)또 다른 신봉자이자 가장 대중적인 소설가인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64-1941)은 ‘단조로운 철학 교수’ 발타자르의 삶을 묘사했다.
33. 왜 보르헤스가 라이프니츠 대신 중국 철학자를 원용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전적으로 모리스 르블랑과 마찬가지로 그는 신이 동시에 공존 불가능한 세계들 중 하나,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대신 그 모든 세계들을 실존하도록 이행하게 만드는 것을 원한다.34. 그리고 이것은 전체적으로 가능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 아담과 죄인 아닌 아담 사이에서와 같이 국소적인 모순들이 있다. 무엇보다 신이 가능한 모든 것, 심지어는 공존 불가능한 것들까지도 실존으로 이행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모리스 르블랑의 부랑자처럼 거짓말하는 신, 기만하는 신, 사기 치는 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5. 라이프니츠는 기만하지 않는 신이라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논증의 많은 부분을 불신하지만, 공존 불가능성의 수준에서 신에게 새로운 토대를 제공한다. 신은 놀이한다. 그러나 놀이에 규칙을 부여한다. 규칙이란, 가능한 세계들은 만일 신이 선택한 세계와 공존 불가능하다면 실존으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36. 공존 불가능이란 관념에서 개체의 정의, 개체적 개념의 정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37. 각 모나드는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정위 불가능한 포함), 그러나 그 자신의 시선점에 근거하여 부분적인 지대 즉 구역만을 명석하게 표현한다는 것(정위된 地區)을 우리는 앞서 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명석하게 밝혀진 지역은 각각의 신체로 들어가는 듯했다.
38. 그러나 여기에는 개체에 대한 명목상의 정의밖에는 없는데, 이 지역 또는 신체와의 그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개체가 무엇보다도 이 개체의 원초적 술어들이 될 몇 개의 국소적인 독특점들 주위에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39. 이제 우리는 개체가 무엇보다도 이 개체의 ‘원초적 술어들’이 될 몇 개의 국소적인 독특점들 주위에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담의 경우에는 먼저 고려되었던 네 가지 술어가 이 개체에 대한 실재적 정의다.. (①최초의 인간인 것, ②기쁨의 정원에 사는 것, ③자신의 갈비뼈에서 나온 여자를 갖는 것, ④그리고 그 다음 네 번째, 죄를 짓는 것.)
40. 몇 개의 수렴하는 前-개체적 독특성들의 집중, 축적, 일치. 이것은 모나드의 핵과도 같다. 각 모나드의 심장에는, 게루(Martial Gueroult, 1891-1976)의 가설에 따르자면, ‘단순 개념’ 없다.
41.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방법에 반하여 개념들의 사슬 안의 두 극단에 만족하는 것이다. 각 모나드의 심장에는, 매번 개체적 개념의 요건들인 독특성들이 있다. 각 개체가 세계의 부분만을 명성하게 표현한다는 것, 이것은 실재적 정의에서 나온다. 각 개체가 온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42. 각 개체를 구성하는 독특성들은 사실 상응하는 계열들이 수렴한다는 조건 하에서 다른 독특성들에까지 모든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각 개체는 공존 가능한 세계의 전체를 포함하고, 또한 이 세계와 공존 불가능한 다른 세계들만을 배제한다(여기서 계열들은 발산한다.).
43. 라이프니츠는 줄곧 강조했다. 신은 공존 불가능한 여러 세계에 걸쳐 있는 ‘불확실한 아담’ 또는 변덕스러운 아담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는 만큼이나 많은 수의 발산하는 아담들을 ‘가능태의 이유에 따라’ 창조했으며, 각 아담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포함한다.
44. 또 이 세계에 공존 가능한 다른 모든 모나드 또한 이 세계를 포함하면서 거기에 속한다. 요컨대 가능한 각 모나드는 몇 개의 前-개체적인 독특성들에 의해 정의되며, 따라서 이 독특성들과 수렴하는 독특성들을 가진 모든 모나드들과의 공존 가능하며, 발산 또는 이어지지-않음을 함축하는 독특성들을 가진 모나드들과는 공존 불가능하다.
45. 왜 공존 불가능한 세계들 안에서 발산하는 이 모든 개체에 아담이라는 고유명사를 부여하는가? 그것은 한 독특성이 언제라도 자신의 이어짐에서 고립되고, 오려내어지고, 잘려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46. 그러므로 아담이 죄짓는 정원이 아담이 죄지을 수 없는 정원과 같지 않다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독특성은 무규정적이게 되고, 그것은 이제 어떤 정원에 다름 아니고, 또한 원초적 술어는 이제 이런저런 세계 안에 붙잡혀 있지 않고 ‘類의 이유 하에서’만 고려되며, 이와 동시에 그것의 주어는 일반적인 어떤 아담, 어떤 섹스투스 등등이 된다.
47. 개체화는 분화의 규칙 하에서, 유에서 점점 더 작은 종들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체를 이런저런 세계와 관계시키는 수렴 또는 이어짐의 규칙 하에서, 독특성에서 독특성으로 나아간다.
48. 개체적 차이는 종적이지 않고, 개체는 마지막 또는 궁극적인 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