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통일신라 구산선문의 하나. 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의 유물이 출토된 옛 절터! 성주사지(聖住寺址)
『 성주사지의 3탑 배열양식을 통해 본 한국 불교사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3탑 양식 가람! 문경 도천사지 』
-1970년 문경 도천사지서 통일신라 석탑 3기 발견, 도천사 탑지 조사 결과 창건 때부터 나란히 배치
-1탑 가람이 유행했던 삼국시대와 2탑식 가람이 성행했던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양식과 달리 3탑은 역사 기록에도 없어 새 가람양식 이해의 단초
▲ 김천 직지사로 옮겨진 3기의 도천사지 삼층석탑
1970년 1월13일자 한국일보에는 문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 3기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렸다. 석탑들은 모두 무너져있으나 복원하면 8m가 넘는 국보급 석탑이라고 보도하였다. 바로 현재 김천 직지사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3기의 석탑들이다.
▲ 3기의 도천사지 삼층석탑 발견 당시의 신문기사와 사진
신문에 등장하고 4년 뒤 이 탑들은 직지사에 이전 복원되었으나 원래대로 3기가 같이 있지 못하고, 2기는 대웅전 앞에, 1기는 비로전 앞에 세워졌다. 3기 모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안내판에는 문경 도천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 되어있다.
도천사지 삼층석탑은 동일 규모에 동일 양식으로 제작된 3기가 존재한 점은 우리나라 사찰 가람 내 석탑의 배치 및 구성 체계상 주목할 가치가 있다. 통상 1탑 가람이 유행했던 삼국시대와 2탑식 가람이 성행했던 통일신라시대와 달리 3탑 가람의 예는 없다. 다만 충청남도 보령군 소재의 성주사지(聖住寺址)에 4기의 석탑 중 금당지 뒤로 3기의 동형 석탑이 일렬로 배치된 예가 있다. 성주사지 석탑 중 5층석탑은 금당지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문, 석탑, 금당이 일직선상에 놓여 1탑1금당의 고식배치 체계이다. ‘성주사사적기’에 따르면 석가여래사리탑이라고 한다. 그리고 금당지 뒤쪽에 일렬로 배치된 3기의 석탑은 정광여래, 석가여래, 약사여래의 삼존상이 다층방탑형의 석탑으로 배치된 특이한 형태라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성주사지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3기의 성주사지 삼층석탑들은 발굴 조사시 적심시설이 발견되지 않았고, 탑 하부에서 조선시대 자기가 발견되어 조선시대 이후 탑을 이건한 것으로 보여 원위치가 아니고 14세기 이후에 옮겨온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렇다면 도천사지의 탑들은 모두 창건기에 조성된 것일까?
문경시에서는 도천사지가 자리잡고 있는 금천(錦川) 주변의 마을과 유적을 정비하여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우선 탑지에 대한 조사를 불교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하여 시굴조사 결과 석탑 3기가 있던 장소를 확정할 수 있었다. 지상의 탑은 모두 직지사로 옮겨져 아무런 흔적도 없었으나, 지하에서 탑을 세우기 위해 설치한 적심시설을 확인되어 도천사지는 명실공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3기의 거대한 석탑이 나란히 있었던 유일한 사지가 된 것이다.
▲ 발굴 당시 드러난 3기의 도천사지 삼층석탑 탑지와 적심시설
문경지역에 3탑 양식이 발견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지만 현재는 김천 직지사에 옮겨져 있어 학술적으로 탑의 역사적 가치와 배경을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금까지 연구자가 없었던 이유도 도천사지삼층석탑이 3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던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3탑 가람의 존재를 좀 더 심도 있게 조사해 학술적, 불교사적 가치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