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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종교적 박해 기간의 칼빈의 은둔생활(1) 친구 루이 뒤 틸레 집에서의 은거
코람데오 추천 4 조회 273 24.09.02 07:51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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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9.02 08:17

    첫댓글 좋아요. 칼빈의 은둔 생활과 친구에 관한 글이네요.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네요.

  • 24.09.02 17:09

    네, 공감합니다.

  • 24.09.02 08:21

    바젤 Basel

    스위스의 행정구역. 비르스 강과 비제 강의 어귀에 라인 강을 끼고, 프랑스·독일·스위스 국경이 만나는 스위스 라인란트 입구에 있다. 1501년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으며 네덜란드의 학자 에라스무스가 이곳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인문주의와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반종교개혁을 피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숙련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18세기에 이르러 길드가 정치권을 쥐게 되었다. 유통 중심지로서 스위스 총관세 수입의 1/3이 이곳에서 얻어지며, 국제결제은행이 있다. 스위스 화학 및 석유화학 산업의 중심지이며, 전기공학, 금융업, 기계류·견직물 제조업 등의 산업도 중요하다.
    (중략)

    1501년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다. 1521~29년 네덜란드의 학자인 에라스무스가 이곳 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인문주의와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반종교개혁을 피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숙련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길드가 정치권을 쥐게 되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8b3219a

  • 24.09.02 16:53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위치인 것 같습니다.

  • 24.09.02 08:33

    칼빈은 인문학, 성경원어와 성경 읽기에는 매우 탁월했지만 좁은 의미의 신학을 공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섭리에 의하여 신학도들이 필독해야 할 명저를 썼는데요. 이는 오늘 포스팅 기간의 은둔과 독서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전략)
    칼빈은 앙굴렘(Angoulême)에 사는 친구 루이 뒤 틸레(Louis du Tilet)의 집에 숨었다. 루이는 클레(Claix)의 참사회원이었다. 앙굴렘에는 매우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기에 칼빈은 계속해서 학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칼빈은 성경과 교부들의 서적을 연구하였다. 그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강요 초판 작업에 몰두하였다.

    칼빈은 공식적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한 그가 종교개혁 사상을 표출하는 콥의 연설문을 쓰고 난 후 불과 3년 만에 기독교 강요를 썼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공부하는 책들과 연구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 24.09.02 08:35

    그는 우선 1세대 개혁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개혁 사상을 튼튼히 하였다. 그는 루터, 부처, 츠빙글리, 멜랑히톤, 오이콜람파디우스 같은 개혁자들의 자료를 읽었다. 그 밖에 초대교회 공의회 자료,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의 저서를 공부하였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있었다. 불과 27살 되던 해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평신도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였다.
    (후략)

    <--- 배경락 목사 (2017.5.2)

  • 24.09.02 17:01

    @장코뱅 은둔 생활 가운데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하고 기존의 신학을 능가하는 올바른 신학을 정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24.09.02 23:25

    배경락 목사는 칼빈이 공식적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당시 유럽에서의 교육은 어려서부터 라틴어를 비롯한 고전어를 기본적으로 배웠고, 종교가 일상을 지배하던 시대의 영향으로 신학이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신학적이라 할 수 있는 공부를 많이 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칼빈은 수도원 기숙학교인 몽테규대학에서 혹독하게 공부했습니다. 그 학교의 교사들이 수도사들이었을 테고, 어쩌면 지금의 신학교보다 더 원색적으로 고전과 중세철학, 신학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죠. 이후 상급학교에서도 좋은 스승들을 만나 충분히 신학적이고 개혁적인 사상을 접했던 것을 보면 요즘 신학교보다 훨씬 더 깊고 방대하게 공부했다고도 할 수 있겠죠.

  • 24.09.03 16:18

    @코람데오 아마 현대와 같이 교육부 인가 졸업장에 전공과목 신학이 안 적혀 있다는 뜻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 24.09.02 17:02

    책 제목이 마음에 드네요. 하나님이 길들인 사람이고 섭리를 따라 종교개혁의 큰 일꾼으로 예비하신 것 같습니다.

  • 24.09.02 17:11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9.02 22:59

    멋진 댓글입니다!!

  • 24.09.02 17:15

    매우 유익한 글을 올려 주셔서 배우고 좋습니다. 앞으로의 연재도 기대하겠습니다.

  • 작성자 24.09.02 23:27

    감사합니다. 저도 유익하고 재밌는 책의 내용을 통해서 얻는 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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