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뿌리를 찾아서 - 달맞이 와우산
낭만과 슬픔이 깃든 달맞이 와우산 자락
해운대(海雲臺)는 부산에서 널리 알려진 태종대(太宗臺), 몰운대(沒雲臺)와 함께 삼대(三臺)의 하나로 그중에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다. 동백섬 해안의 기암절벽과 넓은 백사장이 조망되는 해운대의 넓고 푸른 바다에 뜬 조각배와 높고 푸른 하늘에 뜬 조각구름과 밤하늘에 풍선처럼 두둥실 뜬 둥근 달은 황홀하며 일대 장관이다.
해운대의 보름달은 대한팔경의 하나이다. 1930년대 경성방송에서 전국 청취자를 대상으로 한반도의 아름다운 곳을 공모하였는데 북한의 금강산 일만 이천봉, 압록강 뗏목, 모란봉 을밀대, 부전고원 부전강, 백두산 천지, 남한의 해운대의 보름달, 토함산 일출, 한라산 고봉이 선정되었다.
◇ 와우산과 보도연맹원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사상의 이념 대립이 극에 달하자 1949년 6월 5일 정부는 좌경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특별히 관리하기 위하여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이나 그 가족들을 도와서 올바른 길을 인도한다는 뜻을 지닌 이 조직은 좌익분자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은 물론 밀가루 등을 주겠다며 선전하였다. 사실상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고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 한해서 이승만에게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전국에서 30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이 중에는 밀가루를 탈 속셈으로 가입한 순진한 양민도 상당수 포함). 그런데 6.25 전쟁이 터지자 이들이 북한에 동조할 것을 우려한 정부는 명단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다 학살했다(부산에서는 7월 자행. 학살지 : 해운대 와우산 계곡, 반송 운봉산, 동상동·회동수원지 입구, 동래 컨트리클럽).
해운대 와우산 양민학살 암매장지는 와우산 형제봉 대봉 깊은 골짜기 산록 배후지 못에서 남쪽 700m 낮은 계곡 자리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돼 그 자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에 의하면 1950년 7월 초순, 매일 트럭이나 버스에 보도연맹원을 30여 명씩 태워 오산마을 앞을 지나 와우산 대봉 골짜기로 올라갔다. 차에 탄 사람은 흰옷에 두 명씩 두 팔을 묶고 한 팔은 머리 뒤로 올려놓은 상태에서 끌려갔다고 한다(1953~1954년 사이에 철사로 엮인 한국인 시체 더미가 대마도 어장 그물에 걸려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기사가 아사히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주영택 향토사학자 글> 옮김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