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스님이,
세상을 향해 열린 따뜻한 가슴으로,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을 이야기하다
「예정된 우연」은 지은이가 아시아 여행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그 사람들과 나눈 문화적 공감에 대한 기행 에세이이다. 지은이 수해는 출가 비구니이다. 부처의 뒤를 따르는 수행자로서, 자기 본성의 고귀함을 깨우치기 위한 수행의 한 방법으로서 행선行禪을 택한 지은이는,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계획된 일정 없이 틈만 나면 훌쩍 떠났다. 그리하여 일본, 대만, 티베트,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네팔, 베트남, 중국의 구석구석을, 곧, 동아시아 전역과 남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여러 나라를 구름처럼 떠돌고 돌개바람처럼 톺아 나갔다. 발길 닿는 곳에서마다 지은이는 그의 마음을 붙드는 문화적 지점과 역사 유적지를 훑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연과 다양한 해후를 한다. 그리고 그 만남과 헤어짐을 문학적 향취가 가득한 글로 표현하고, 따스한 시선이 가득한 사진에 담았다.
지은이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현상계가 자신의 마음 작용이 빚어 낸 환영임을 , 눈앞의 모든 현상이 내 자신의 마음이 비친 거대한 ‘허공거울’임을 알아, 자신의 마음 작용을 았는 그대로 보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다. 많은 출가 수행자들이 선방과 토굴에서 참선하며 자기 성품 안에 본디부터 있는 불성을 깨달으려 하듯, 비구니 수해는 돌개바람이 되어 천지를 떠돌며 행선함으로써 자기의 본성을 여실히 보려 한 것이다. 불성, 그 고귀함이 자기 자신 속에 있음을, 또한 모든 중생의 내면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해 스님의 10여 년에 걸친 행선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그 ‘고귀함’을 깨우치기 위한 수행의 기록이다. 그렇건만, 책은 사람 냄새 짙은 문학적 향기가 먼저 돋보인다. 때로는 시처럼 간결하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수행자의 ‘파격’을 느끼게 할 만큼 극적이다.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지은이가 길 위에서 인연 맺은 그 많은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를 아련한 향취 속에 머물게도 하고, 더러는 예기치 않은 그리움 속에 왈칵 떠밀어넣기도 한다. 출세간에 섰으나 아직 세간의 업業을 지닌 채로 깨우침을 얻으려 하는 듯한 지은이의 뜨거운 가슴이 살아 펄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 잔잔히 흐르는 배경 음악은 어디까지나 자비심과 사랑에 바탕을 둔 것임이 분명하다. 여행자의 낭만과 고독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외감과 감동이, 지은이의 힘찬 발걸음을 따라 다양한 곡조로 변주되는 이 책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속삭이는 그리운 사람들,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풍경들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일본 아스카 지역 순례를 나섰다가 우연히 만난,
날아간 한 마리 새처럼 곱고 아련한 이미지를 남긴 히노마리꼬,
죽음에 홀린 미시마 유키오의 악령,
우에노 공원에서 백파이프를 부는 청년 음악도 고지와 그의 연인 오카무라,
자신의 모든 그리움을 통폐합해서 이름 불러 보는 수미산,
풍금 소리와도 같은 다르질링의 시인 니마라모 스님과 하와이 수행자 타쉬,
오쇼 아쉬람에서 만난 아름다운 영혼의 브라만 사라,
언제나 “노 프로블럼”인 딸각발이 릭샤왈라 라쥬,
쾨아 강의 다리 위에서 만난 이스라엘 사진작가 요셉과 알렉시스,
히말라야 시인 김홍성과 그의 아내 수자타,
고엽제의 상흔을 달래기 위해 베트남을 걸어서 순례하는 뉴욕의 피아니스트 앤서니,
북만주 벌판을 종주하여 우여곡절 끝에 오른 백두산과 천지....
우연히 만난 이 숱한 인연들은 기실 ‘예정된 만남’이었다고 지은이는 확신한다. ‘우주 시민’을 꿈꾸는 수행자 수해의, 세상을 향해 열린 따뜻한 가슴으로 쓴 이 책은, 그래서, 종교적 성향에 관심없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비구니 수해는 오늘도 꿈을 꾼다. 경의선을 타고 북녘땅을 보듬으며 백두산에 올라 저 넓은 아시아로 나아가는 꿈을.... 남북이 가로막혀 꺾이고 만 산경표를 다시 쓸 수 있기를 ...
저자 소개 ㅣ 수해
청도 운문사 강원을 졸업학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 사원을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사학을 전공하고 있다. 길 위에서의 사색과 글쓰기를 통해 꾸준히 의식 지평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시집으로 <산 두고 가는 산>이 있다.
첫댓글 운문사엔 정말 멋진분들이 많으십니다.//
수해스님은 저희 1년 선배님이시지요. 일지스님과는 같은반이구요..운문편집부장을 지내실만큼 실력이 아주 좋으시지요. 이책 좋습니다.
주호스님 정말 오랜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