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없이 수시로 휴대폰을 깨우는 긴급안내문자에 급박한 세상사의 속도감에 대해 실감한다. 하지만 이 분위기가 하루이틀이 아닌 매일 반복되니 나도 모른 사이에 적응했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 내용을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과 오늘 아침엔 모처럼 내가 관련된 문자가 하나 도착해 왠지 모르게 반가웠는데, 그 내용은 10년마다 한 번씩 온다는 운전면허 갱신 안내였다. 필기, 기능, 도로주행의 과정을 통해 따낸 두 번째 신분증 그리고 스무살 여름의 성취, 그땐 막연하게 먼 미래로만 보였던 첫 갱신기간 2020년 9월 1일이 벌써 내일로 다가왔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건 9년차가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차 끌고 도로를 누비기 시작한 건 3년쯤 된 것 같다. 자동차 운전은 대중교통만 고집하던 내 여행 패턴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여행을 위한 시공간적 제약이 완화된 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편의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이 유류비, 보험료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한편 코로나19 상황 개시 이후 여행지로 닿는 나의 방식은 자가용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물론 대중교통 시스템이 미약한 소도시를 주로 다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언택트와 프라이빗의 가치를 가장 확실하게 실천 가능한 이유가 돋보인다. 오늘은 매번 손수 운전해 다녀온 충남 서해안의 이국적인 명소,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에 대한 모처럼만의 기록을 전한다. 사막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매번 신선한 세계 최대의 해안사구, 그곳의 여름은 예상보다 더 뜨겁지만 흰 모래보다 돋보이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나름 기분 좋게 와닿는다.
긴 장마가 끝나고 반짝 덥더니 이젠 일주일에 한 번씩 태풍 소식이 들려온다. 모처럼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탐방로를 거닐었던 지난주엔 8호 태풍 바비가 짧고 굵었던 태안 여행을 함께했는데, 숙소에 머문 시간이 많아 그런지 몰라도 바람만 요란하게 불다가 끝난 것 같았다. 한편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까지 닿는 여정은 매번 그렇듯 천안, 아산, 예산, 홍성, 서산을 거치는 국도 경로로 2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앞서 두 번과 달리 이번엔 동행한 여행벗들과 심심할 틈 없이 유쾌했는지라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 역시 적었다. 그렇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문이 굳게 닫힌 신두리 사구센터 주변 주차장부터 터벅이며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에 들면서부터 엄습한 더운 느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져 직진의 미학을 발휘해 최단코스로 누벼볼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나만 이곳을 몇 차례 둘러봤을 뿐 동행한 여행벗들은 난생 처음이었기에 두 번째로 짧으면서 보편적인 코스를 택했다. 앞서 미리 언급했듯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인데,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상당해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최근엔 충남생태관광 브랜드인 더숨의 태안 생태투어코스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와 함께 언급된 태안 가볼만한곳은 꽃지해수욕장, 솔향기길, 안면도 자연휴양림, 땅끝마을, 두웅습지다. 이번 태안 여행 역시 이들 관광지를 적극 활용한 1박2일 일정으로 계획했으나, 딱 맞춰 찾아든 8호 태풍 바비로 인해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신두리 해안사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날 태안 지역은 오후부터 태풍 영향권에 들기 시작했으므로 우리가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에 머물던 오전 11시 반 즈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풍전야, 하지만 하늘이 맑고 시야는 탁 트여 피부부터 침투하던 더위는 어쩔 수 없었지만 눈은 하염없이 호강했다.
그 이름을 알기 전엔 어느 외국의 사막인줄만 알았을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백미는 두웅습지 가는 길목과 맞닿은 또 다른 입구와 가깝다. 한국의 사막으로 널리 알려지며 무작정 사구 안으로 진입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불과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없던 포토존이 생겼다. 그리고 그 지점이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인생샷 포인트로 여겨지며 누구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희소성 높은 생태계 자원인 만큼 소중히 다뤄져 후세에도 그 명맥이 쭉 이어져야 할텐데, 무분별한 진입을 막기 위한 차악으로 지정 포토존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그 의도가 너무 애달프게 와닿는다. 모두가 똑똑할 순 없지만 또 무지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아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자연의 범위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지난 겨울엔 마른 가지들로 건조하게 채워졌던 그 자리를 초록의 물결이 풍성하게 채운 걸 보며 참 놀라웠다. 이렇게 탐방로 양 옆으로 크고 작은 식물들이 꽉 채운 것만 보면, 사막의 축소판과 같은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가 아닌 제주도의 어느 오름 탐방로로 여길 여지가 크다. 내 시점에선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의 호로고루성이 떠올랐다. 이쯤이면 저 멀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붉은 지붕 집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여유롭게 10분 정도 걷다보면 금새 가까워질 수 있다.
탐방로 입구에서 바로 직행했다면 길어봤자 5분이면 닿을 포인트를 반바퀴 정도 돌아 20분 정도 걸려 닿으며,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보편적인 코스 거닐기가 마무리로 접어든다. 세계 최대의 해안사구를 형성한 모래는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겨울철 북서풍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되었는데, 그 시작으로 추측되는 때가 빙하기라니 최소 1만 5천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자연의 역사인 것이다. 한편 목적지이자 반환점을 통해 우리가 출발했던 그 자리로 향하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 두 마리와 마주쳤다. 크기로만 보면 부모와 자식의 사이인 것 같았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양을 채우기 위해 목줄이 허락한 범위 내로 움직이는데 분주했다. 땀으로 온몸이 다 젖어 정신 없는 우리와 달리, 더운 것도 모르는지 그저 여유롭게만 보이던 소의 눈빛과 행동이 이상할 만큼 신기했던 게 이 여름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에 대한 나의 마지막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