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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 직원신앙부흥회05깔딱 고개를 올라야 보입니다. - 박상길 목사 -
급조된 팀이 너무 잘하는 것 같습니다. 약간 뭔가가 있는 것 같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2024년 봄에 삼육부산병원 가족들에게 보내신 4통의 편지를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버림받지만 버림받지 않습니다. 작은 일의 신실함이 형통입니다.
큰 지혜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낯선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그리고 오늘 다섯 번째 편지의 제목은 깔딱 고개를 올라야 보입니다.
깔딱고개 아십니까? 무슨 뜻인지는 아세요? 무슨 뜻일까요?
깔딱고개 숨이 깔딱 넘어갈 정도로 가파르고 힘든 등산로를 깔딱고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에 다니면 깔딱고개 많습니다. 불암산에도 있고 수락산에도 있고 뭐 여기 부산에도 산이 있는데 제가 하도 다닌 지 오래돼서 금정산에도 있고 은양에 가면 거기도 무슨 산이죠?
신불산 또 영추 네 뭐 하여간 저 젊을 때 다녔는데 하여간 깔딱고개가 산마다 있습니다.
등산에서 가장 힘든 구간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풍광의 전조가 되는 곳이 바로 깔딱고개입니다.
그래서 깔딱고개가 가파르고 긴 산일수록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기억하시면 돼요. 깔딱고개가 정말 힘들더라.
그러면 그 산은 말도 못하게 아름다운 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깔딱고개가 있는 산이 많이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깔딱고개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마등령으로 넘어가는 길에 오세암이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그 오세암 직전에 있는 깔딱고개입니다.
한 20여 분 가파른 고갯길을 계속 올라가면 정말 땀이 비지처럼 흐르고 말 그대로 정말 숨이 깔딱 넘어갈 것 같아요.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깔딱고개를 오르는 동안에는 하늘도 안 보이고 숲도 안 보이고 새 소리도 안 들립니다.
발만 보고 걸으면서 생각하지 내가 미쳤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깔딱고개로 올 때는 항상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신 오지 말아야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서 고갯마루에 오르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여러분 거기 오세암 산마루 위에서 한 20~300m 떨어진 곳에 설악산의 3대 뷰 포인트 중의 하나인 내설악 만경대가 있습니다.
요새가 뭐 한 7~8년 전에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요.
이 만경대에 오르면 정말 아름다운 설악산의 비경이 사방으로 펼쳐집니다.
제가 그냥 잠깐 몇 개만 보여드릴게요. 일단 거기서 내려다보면 이 오세암이 보입니다.
여기 오세암이에요. 근데 거기 올라가야 이거 볼 수 있어요.
다른 곳에서는 이 이 절집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절대 볼 수가 없어 안 보이니까 그다음에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이런 풍광이 있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기에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말 장소 중에 하나인데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입니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공룡능선이 펼쳐져 있고 그다음에 조금 내려다보면 용아 장성 능이 쫙 이렇게 용에
어금니처럼 이렇게 쭉 이렇게 돼 있고 그 끝에 소청봉, 그다음에 중청봉이 있고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 너머에 대청봉이 있습니다.
이게 다 거기서 보이는 설악산의 풍광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깔딱고개를 오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에요.
저는 여기 한 한 10번쯤 갔는데 이재용 씨는 아마 안 갔을 거예요.
이재용 씨는 돈이 저보다 몇 백 배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겠지만 그 사람은 이걸 못 봤다고요.
못 봤을 거예요. 그렇게 위로를 삼는 거죠. 이거는 깔딱 고개를 올라간 사람만 볼 수 있어요.
여러분은 사진으로 여러분 사진으로 이걸 100번 봐도 정말 왜 모릅니다.
여러분 등산만 그런 게 아니라 인생도 똑같습니다.
깔딱고개가 가파르면 가파를수록 그 고개 위에서 깨닫는 것이 크고 얻는 것이 많습니다.
이거 인생의 역설이에요. 그래서 인생의 깔딱고개를 오로지 옳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니 없는 사람은 없어요.
다 깔딱고개를 오르지만 그저 조금 숨 몇 번 가다듬으면 오를 정도의 깔딱고개를 오른 사람과 정말 숨이 깔딱 넘어갈 만큼 가파른 깔딱 고개를 오른 사람이 얻는 깨달음 다릅니다.
우리가 깔딱 고개를 오르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 들리지 않던 것,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딱딱 고개를 올라가서 보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오르는 동안에는 그 길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이건 내가 이 길을 왜 또 왔지? 그런데 올라와서 보면 그 길이 아름답습니다.
고맙게 보여요. 왜냐하면 그 길이 없었으면 내가 지금 여기에서 보는 이 설악산의 이 장엄한 광경을 아름다움을 내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게 다 뭡니까? 깔딱고개가 준 선물이에요. 깔딱고개를 안 오르면 못 봅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런 경험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인생의 행로를 뒤돌아보다가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전에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는 경험 말입니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그때 내가 원하지 않는 그 길로 내 인생을 인도해 오셨구나 그런 깨달음 깔딱고개를 오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경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주일 동안 요셉을 쭉 살펴보고 있는데요.
요셉도 많은 인생의 깔딱고개를 오른 사람인데 그중에 대표적으로 제가 이 4개를 좀 정리해 왔습니다.
1. 미움받는 깔딱고개
정말 힘들죠 여러분 사람이 미움받는 것보다 힘든 게 어디 있습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근데 요셉은 그 미움받는 깔딱고개를 힘겹게 힘겹게 오르다가 드디어 버림받는 깔딱고개까지 갑니다.
형들에게 미움만 받는 것도 힘든데 버림받더니 그다음에 팔려갑니다.
2. 누명 쓰는 깔딱고개
또 보디발르로부터 배신당하는 깔딱고개에 있었죠.
많이 있지만 그냥 제가 이렇게 간단하게 4개만 적은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3. 잊혀지는 깔딱고개입니다.
술 관원장에게 2년 동안 잊혀지는 깔딱고개.
여러분 요셉도 이러한 인생의 깔딱고개를 오르는 동안에는 자기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단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이런 길로 이끌어가시나 기도도 하고 말씀도 보고 나름대로 신실하게 사는데 말하자면 자꾸 꼬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인생의 깔딱 고개를 올라가는 동안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죠.
왜 하나님이 내게 이런 길을 허락하시는지 그런데도 요셉이 이해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그 인생의 길을 그 험하디 험한 깔딱고개를 묵묵히 오르는 것입니다.
미움의 깔딱고개, 버림받는 깔딱고개, 팔려가는 깔딱고개, 잊혀지는 깔딱고개 그 깔딱고개를 다 오르고 나서 이제 요셉이 어느 날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고갯마루에 올라간 것이죠.
그 깔딱고개를 다 오른 요셉이 한 고백이 여기 이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런 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오. 하나님이시라 무슨 말입니까?
요셉도 자기가 깔딱고개를 오르는 동안에는 자기를 열의로 보낸 사람이 형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형들이 자기를 미워했으니까, 형들이 자기를 버렸으니까, 형들이 자기를 팔아먹었으니까.
그런데 다 올라와서 보니까 고갯마루에 와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까 그게 형들이 한 게 아니었어요.
누가 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근데 여러분 요셉이 이 사실을 언제 깨달았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깔딱 고개를 다 올랐을 때 그때 지금까지 자기 인생이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계속되는 깔딱 고개를 올라야 했던 이유를 모르다가 마침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준비요 섭리요 하나님이 그려오신 빅픽처라는 사실을 요셉이 언제 깨달았는가?
그 요셉이 그 모든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바로 여기입니다.
창세기 42장 9절이에요.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이게 언젠가 하면 7년 풍년이 지나고 흉년 2년째에 요셉의 형들이 뭡니까?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오죠. 그 형들이 와서 애굽의 총리 요셉 앞에 무릎 꿇고 절하는 그 순간에 요셉이 그 모든 걸 깨닫게 된 것이 마치 오랫동안 수천 개의 퍼즐 조각이 맞지 않아서 막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헤매다가 그 형들이 자기 앞에 무릎을 꿇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에 한순간에 그 모든 퍼즐 조각들이 다 자리를 잡고 하나의 큰 그림,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려오신 그림 딱 나타난 거예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아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여러분 많은 이렇게 설교하는 분들이
요셉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비전의 사람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건 말이 안 돼요.
여러분 요셉은 꿈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전의 사람도 아니에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두 번 꿨을 뿐이지 요셉은 그 꿈의 의미를 전혀 모릅니다.
언제까지요? 이때까지요 요셉이 난 언젠가는 형들이 나한테 저럴 날이 올 거야 그러고 살았을까요?
그게 요셉의 꿈이었을까요? 천만해요. 요셉은 하나님이 두 번 겹쳐 꾸게 하신 그 꿈의 의미를 모를 뿐 아니라 그 꿈 다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요셉은 꿈을 쫓은 사람이 아니에요. 요셉은 아무 의미도 모르지만 힘든 인생의 깔딱고개를 그냥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순종의 사람이지.
요셉은 무슨 야망의 사람, 비전의 사람 아닙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 뭐예요? 영어 보 팬히리멤버드 히스트림스 그 순간에 그 꿈을 생각해낸 거예요.
하나님이 내가 17살 때 꾸게 하셨던 꿈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구나.
그 순간에 요셉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인생의 모든 깔딱고개의 의미들이 다 선명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미움받아야 했구나. 그래서 내가 버림받아야 했구나.
그래서 내가 팔려갔어야 했구나. 그래서 내가 2년 동안이나 잊혀졌어야 했구나.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그 모든 내가 올라야 했던 깔딱고개가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섭리요 인도하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깔딱 고개를 옳은 사람만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이처럼 요셉의 삶에 일어난 그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신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인도였고 섭리였다는 사실을 깔딱고개를 올라 고갯마루에서 되돌아볼 때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라볼 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술 관원장이 요셉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요셉이 잊혀지는 깔딱고개를 오르지 않았다면, 술 안 원장이 석방되자마자 바로에게 이야기해서 폐하 내가 감옥에서 어떤 놈을 만났는데 정말 똑똑하고 착하고 진실하고 걔가 절대로 그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할 그런 애가 아닙니다.
바로가 이제 여러분 술 관원장은요. 사실은 보디발 경호식장보다 왕에게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항상 뭡니까?
임금 왕이 술 마실 때마다 옆에서 시중을 들잖아요.
그러니까 왕이 언제 제일 기분 좋은지를 알 수 있고, 그다음에 왕이 제일 기분 좋아하는 술을 마시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막 바로가 기분이 제일 좋을 때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줄 만할 때 폐하 예를 좀 꺼내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바로가 무슨 무슨 관심이 있겠어 그래 보내줘.
아무 때나 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그래서 만약에 술 관원장이 요셉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요셉이
금방 나왔을 거예요. 금방. 근데 금방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는 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이 될 때까지 다시 말해서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해서 마침내 그 꿈을 해석할 사람으로 요셉을 데려올 때까지 하나님이 술 관원장의 기억에서 요셉을 지워버리신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섭리예요. 그동안에 요셉은 잊혀짐에 깔딱고개를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가장 힘들고 절망스러운 인생의 깔딱고개를 오를 때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안 하셨나요?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인생의 깔딱고개를 많이 오르셨고 지금도 오르고 계실 것입니다.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같은 일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으십시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새시는 하나님께서 한순간도 우리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으시며 우리의 모든 피로를 가장 적절한 때에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여기 로마서 8장 28절 같이 읽으십시다. 시작.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들의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깔딱고개가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은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무용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하여 꼴지어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휘장이 열려 있어서 거기에는 거기에서 우리는 무대의 상부와 배후는 물론 자비가 충만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인간의 이해관계와 권력과 욕망 등 일체의 승부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본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이용해서 결과적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형들의 미움도, 보디발의 배신도,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도, 술 관원장의 기억, 상실증도 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허락하신 요셉의 인생에 깔딱고개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당장은 그 깔딱고개의 의미를 모를지라도 올라가는 것이 묵묵히 올라가는 것이 인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이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무용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에요.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하여 꼴지어지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우리 병원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장님이 다 결정하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간부 회의에서 모든 중요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지고, 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깔딱고개를 오를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으로 우리는 묵묵히 요셉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우리의 앞길에 다가오는 인생의 깔딱고개와 신앙의 깔딱고개를 오르는 재림 성도가 되기로 결심합시다.
저도 요셉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여러 번 알따고개를 올랐습니다.
제가 30대에 제 아내가 어린 두 아이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는 깔딱고개를 올랐습니다.
40대에는 제가 평생 사역하리라 생각한 고향에서 어떻게 쫓겨나서 타향살이를 하는 그런 깔딱고개를 또 골랐습니다.
50대에는 느닷없이 암 환자가 되어서 수술을 받는 깔딱고개도 올랐습니다.
여러분 이런 깔딱고개를 오를 때 다 힘들었습니다.
슬펐어요. 외로웠어요.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았고 때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일 때가 많았어요. 제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이 있었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제가 포기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서 빨딱고개를 올라왔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제 제가 60대가 됐는데 여러분 제 인생의 깔딱고기가 이제 끝났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진실을 참 정확히 말씀해 주시는 그렇습니다.
여러분 끝이 없습니다. 뭐 앞으로 더 더 가파른 깔딱고개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지나온 깔딱고개를 돌아볼 때 확신하는 것은 앞으로 어떤 고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계시록 14장 1절에 우리가 다 함께 올라야 할 한 산의 이름이 있습니다.
시온산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14만 4천인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여러분 시온산은 깔딱고개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너무 어렵습니까? 여러분 깔딱고개가 없는 산은 가치가 없는 산입니다.
그런 산은 올라가 봐야 볼 거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깔딱고기가 없는 산은 절대 가지 마세요.
아 볼 거 없습니다. 그냥 뭐 그건 그건 산보 그냥 갔다 오는 그래서 와 좋다 이게 이게 감탄사가 나오려면 반드시 빨딱고개가 있는 산으로 가셔야 되고 감탄사를 여러 번 하려면 뭡니까?
깔딱고개가 긴 산 아주 가파른 산, 죽을만큼 힘들게 올라간 힘든 산으로 가면 설악산 깔딱고개 같은 간에 가면 이제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죠.
근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오르라고 하신 시온산에 깔딱고개가 없으면 이 산은 오를 가치가 없는 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온산은 깔딱고개가 제일 가파른 산이에요.
그래서 오르기 힘듭니다.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선 사람들은 깔딱고개를 오른 사람들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인생의 깔딱고개, 때로 외롭고 실망스러운 직장의 깔딱고개, 가장의 깔딱고개, 속썩이는 아들 딸, 마음대로 안 되는 자식들 때문에 정말 밤잠 못 이루는 그런 부모의 깔딱고기, 평생 내게 짐이 되는 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자식의 깔딱고기, 정말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직장 상사와 함께 일해야 되는 깔딱고기, 정말 너무너무 일 잘 못해서 정말 속 터지게 하는 부하직원이라는 깔딱고개도 있을 수 있겠죠.
그 깔딱고기가 무엇이든지 여러분 부지런히 오르시기 바랍니다.
오르면 보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내 곁에 두셨구나.
이래서 하나님께서 그때 내 인생 정말 힘들고 괴로웠는데 그때 그 길로 나를 인도하셨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병원이 있는데 나를 삼육부산병원에 있게 하시고 여기서 살게 하셨구나 지금은 모릅니다.
깔딱 고개를 다 오르라 하면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깔딱고개를 오르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그 모든 의문을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깔딱고개를 올라야 했던 그 모든 이유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부지런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시온산을 오르는 깔딱고개를 올라가는 우리 삼육구산병원의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찬미를 같이 하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문 향해 외치리.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깔딱고개를 다 올라간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예수 인도하셨네. 왜냐하면 과거니까요. 오르는 사람들은 예수 인도하시네라고는 부를 수 있겠지만, 예수 인도하셨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갈대고개를 달아 올라서 고갯마루에 가서 그 모든 의미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 삼육부산병원의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하늘 시온산에서 이 찬양을 함께 부르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인생 여정 건네요. 내
인생 여정 끝내요. 한 언덕 기를 때 하늘 문양에 외치리.
예수님도
찬미가로는 508장입니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이 가시밭길 인생을 허더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난만은 나 예수 인도하시네.
내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지난 날 돌보심같이 오늘도 인도하시네. 곧 천국에서 불려지 은혜 찬송이 있으리.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만 예수 인도하셨는
하나님 아버지 하늘 시온산 향하여 오늘도 믿음의 깔따곡에 신앙의 깔딱고개를 올라가는 우리 삼육부산병원의 모든 가족들에게 오늘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믿음과 용기와 능력을 주셔서 우리 주님이 오르신 이 깔딱고개를 요셉처럼 올라서 마침내 하늘 시온산에서 우리 주님을 향하여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라고 고백하는 함께 찬양하는 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