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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연대기
이종근
<삼육대학 신학부 교수>
I. 서론
A. 연구의 중요성
B. 연구의 범위
C. 연구의 기초
D. 연구의 출처
Ⅱ. 구약 성서 연대기
A. 상이한 연대
B. 연대 계산의 발전C. 홍수 이전의 연대
D. 홍수 이후의 연대
E. 체류 기간 문제
F. 출애굽 연대기
G. 히브리 연대기
H. 연대기 해석 문제
Ⅲ. 결론
1. 서론
A. 연구의 중요성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사랑, 지성과 통찰력, 그리고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무한한 자비의 손길과 섭리로 일관된 삶의 현장이다. 연대기 연구는 역사라는 사실(fact/ story)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이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권고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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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관심과 사랑을 알게 해 주는 "그분의 이야기"(His+story)가 되는 것이며, 곧 인간을 구원하시는 이야기 곧 구속사/ 구원사(Heilsgesichte)가 된다. 주님은 역사의 시작, 과정이며, 끝이자 마지막이 되는 분이시다. 이 연구를 통해 구속사적 방향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와 목적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각 개인과 교회, 그리고 국가 나아가서는 온 세계의 운명이 그분의 수중에 있음을 보게 되고 그분의 영원하신 경륜, 엡 3:2)을 따라서 구원의 대 역사가 진행됨을 보게 된다.
B. 연구의 범위/ 제한
구약 성서의 히브리어 원본에서 전수된 사본들 중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 MT로 略), 헬라어 70인역 사본(Septuagint, LXX로 略), 그리고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 SP로 略) 등의 사본들에 나타난 연대 문제를 비교 연구했다. 아담의 창조에서 노아 홍수 이전까지와 홍수 이후에서 아브라함의 출생 그리고 출애굽까지의 기간, 그리고 고대 히브리 왕정기 및 그 기간의 고대 근동 연대기를 중심으로 구약 시대의 연대기를 조명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관점은 6000년이라는 성서 연대기의 대 구조를 조명하는 것이며, 일부 개인이나 시대에 국한되는 어떤 사실이나 연대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C. 연구의 기초
고대인들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월력이나 시간 측정법으로 일자를 기록하거나 계산하지 않았다. 고대 사건들의 일자를 현재의 BC-AD 방법의 연대로 계산한다는 것은 고대 사건들에 대한 정보의 양과 고대인들의 계산 방법에 대한 이해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성서 연대에 대한 견해에는 종종 차이와 불확실성이 있게 된다. 1. 연대 명칭법
과거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그들의 연도를 계산했다. 어떤 경우에는 연도를 수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불렀다. 한 가지 방법은 중요한 사건을 따서 매 년을 명명했다. 후에 매 년의 관리 이름을 따라 불렀다. 아시리아(Assyria)에서는 이러한 관리를 영예로운 관리, 림무(limmu)라 불렀고 아시리아 연대표를 에포님 리스트(eponym/limmulists)라 한다. 아테네(Athens)에서는 알콘(archon), 로마에서는 컨설(consul, 집정관)이라 불렀다. 그러나 바벨론(Babylonia), 애굽(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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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근동 지역에서는 그들의 왕의 계산된 해수를 따라 불렀는데, 성경에 이러한 방법이 자주 나타난다. 어떤 편지, 계약서 또는 사건의 기록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십구년 오월 칠일에”(왕하 25:8)와 같은 공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방법들은 매년의 이름, 림무, 알콘, 혹은 컨설, 또는 왕이나 왕들의 통치 해수 등의 일람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두 사건의 기간을 알 가능성이 없다. 후에 시대(era)를 표기하는 방법이 B.C. 4세기 셀루커스(Seleucid) 왕조때 쓰이게 되었다.
이때 유대인들도 경외서인 마카비 (Maccabees)서에서처럼 시대를 표기 하게된다. 그리스인들은 B.C. 776년에 시작되었다고 추측되는 올림픽 경기의 시기인 4년의 올림피아드(Olympiads)를 역사적 기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연도를 AUC(ab urbe condita), “로마시의 건국으로부터의 해”(from the founding of the city)란 연대를 B.C.753년부터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나 로마의 시대 표기법은 꾸민 것으로 참된 시작 시기가 잊혀진 오래 후에 고안된 것이며 역사가들에 의해 사용되게 되었다. 중요 연대 표기법은 아래와 같다. 2. A.M.
창세기는 연도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연대기 학자들이 "창조로부터의 해수”를 Anno Mundi("in the year of the world,"AM으로 略)로 계산했다. 이것은 부조들의 족보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족보들이 완전하고 올바르게 해석되어 왔다면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해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AM 표기법은 고정된 기산점을 필요로 한다. AM 표기에 대한 BC의 확산은 각 저자의 사본 선택에 따라 차이가 나고 사본들과 다른 구약의 연대 자료들에 대한 해석에 따라 차이가 난다. 3. A.H.
창조 이후의 인간 출생을 기준으로 해서 계산하는 방법이다. Anno Hominus("in the year of man, AH으로 略). 稿에서는 문자적 6일간의 이 세상 창조 기간 중 6일째 되는 날에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AH 방식을 취하지 않고 AM 방법을 택했다. 4. A.U.C.
이것은 로마시의 건설부터의 해수를 계산하는 연도 계산 방식이다. ab urbe condita(from the founding of the city, °) AUC) AUCE 불리어졌다. 이것은 AD 6세기에 스키시언(Scythian) 수도승 디오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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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엑시구스(Dionysus Exiguus)에 의해서 제안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준으로 해서 그리스도인의 시기로 계산했다. 지금 쓰이는 AD("in the year of our Lord,” Anno Domini)로 계산되었다. A.D. 8세기 샬르망 대제(Charlemagne) 때에 디오니소스의 방식이 AUC을 대신했었다. 불행히도 계산상에 착오가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출생을 AUC 754년으로 계산해서 A.D. 1년으로 잡았다. 그런데 헤롯 대왕의 죽음이 AUC 750년 유월절 이전에 있었다. 예수님의 출생은 헤롯대왕죽음 이전이니까 AUC 750년 유월절 이전, 곧 BC 5년 겨울에서 BC 4년 봄 사이가 된다. 디오니소스의 착오가 발견되었을 때는 과거의 모든 연대가 기록된 문서를 고치기에는 너무 늦어서 그대로 통용했다. 그리스도 탄생 이전을 기원전(Before Christ,)으로 불렀고, AUC 750년과 AUC 754년간의 4년 차이가 있게 되었다.
5. A.D.
전술한 바의 디오니스의 계산에 따라 Anno Domini(in the year of the Lord) 주후, 서력 등의 예수님 탄생 이후의 그리스도인 시대를 표시하는 방식이다.
6. B.C.
Before Christ(BC로 略), 주전, 기원전 등의 예수님 탄생 이전의 연대 계산 방법이다. AD와 BC 사이에는 "0"년이 없다. 즉 AD 1년에서 BC 1년 사이에는 0년이 없기 때문에 2년간이 아니고 1년 차이가 있다.
D. 연구의 출처
구약 성서의 근본은 현존하지 않고, 단지 여러 사본들이 있는데 창세기의 연대 문제를 관련하여 다음의 것들을 살펴보겠다. 1.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 MT)
AD 6-11세기 경에 유대인 학자들이 구약 성경을 단락별로 구분했고 성경 절들의 위치를 구분하기 위해 기호(symbols)들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약 본문에 관한 전통을 영구화시킨 유대 학자들을 마소라(Masoretes) 학자들이라 불렀다. 이들이 후대에 성경 본문을 정확하게 전수하려고 노력했다. 히브리어가 수세기 동안 死가 되고 아람어(Aramaic)에 의해 완전히 대치되어 발음이 완전히 忘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마소라 학자들이 히브리 자음에 모음을 추가하는 체계를 고안했다. 이 마소라 학자들 중 갈리리 지방의 티베리아스(Tiberias)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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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아셀(Ben Asher) 가문에서 만든 사본이 현 히브리어 성경의 기초가된다. 현존하는 사본 중 카이로 사본(Cairo Codex)이 AD 895년으로가장 오래되었고 그 다음이 레닌그라드(Leningrad)의 후기 선지서 사본으로서 AD 916년에 기록되었다. 현재 널리 쓰이는 히브리어 성경(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BHS)이 대부분 이 사본에 기초했다.또한 유명한 알렙포 사본(Aleppo Codex)은 930 AD에 만들어 진 것으로 이것에 근거하여 현재 히브리 대학교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편찬 중에 있다.
현존하는 히브리어 사본들의 결핍은 낡고 헐어버린 성경의 사용을금하는 유대법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할까봐 소각 또는 매장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사본들에 대한 극도의주의는 현존하는 성경 사본들의 정확성에 대한 보장이 된다. 사해 사본(BC 2세기-AD 1세기)의 발굴로 구약의 본문들이 예수님께서 아셨던 그러한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수되었음이 입증되었다. 개역 한글판및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을 위시한 대부분의 성경의 번역 기초가 되었다.
2. 70인역 (Septuagint, LXX)
이것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이다. 이집트의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이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70 또는 72명의 유대인 번역가들에 의해 72일 동안에만들어졌다는 전승이 있다. 프톨레미 2세(Ptolemy II) 필라델프스(Philadelphus)와 치세(BC 284-247) 기간에 이루어졌다. 70인역 성경의번역자들은 원본의 문자에 가감하려고 하지 않았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과는 달리 성경 본문을 그 당대의 문화와 학문에 조화되도록 고쳤다.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하고 모순점이라고 간주되었던 것을 제거하고자본문을 수정했다.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에 번역본이 적용되도록 시도했다. 그래서 그 때 이집트에서 널리 퍼졌던 고대의 관념들에 성서상의 연대 문제가 조화되도록 부조들의 나이에 100년씩을 추가했다.
3.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 SP)
이 사본의 기원은 BC 2세기 경 마카비 (Maccabees) 시대로 여겨진다. 이것은 아시리아 제국(Sargon, Ashubanipal 등)의 북방 이스라엘멸망시에 남아있던 므낫세와 에브라임 자손들의 후예라는 주장과 아시리아 점령지 제국 정책에 의해 사마리아로 유입된(왕하 17:24) 혼합 인종의 후손들 가운데서 유행했던 사관으로써 히브리어 본문을 수정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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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이다. 150 여개의 사본이 현존하고 있고, 9세기 AD부터 필사된 것이있고, 대부분은 14-15 세기의 것들이다. 마소라 사본이나 칠십인역 사본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신명기 27:4의 에발(Ebal)을 그리심(Gerazim)으로 고쳤고, 그곳에 제단을 세우라는 것(출 20:7) 등이다.마소라 사본 등에 유입된 필경의 오류들을 검토하는데 유익한 자료이다. 창세기 5장과 11장의 연대기 문제에서 홍수 전의 야렛, 므두셀라,라멕 그리고 홍수 후의 셈의 후손들의 나이에서 마소라 본문 및 70인역사본과 다르다.
MTc. 600-1100 AD표 1. 성서 사본의 기원히브리어 원본(C. 1600-400 BC)LXXC.SP C. 2세기 BC150BC후기 사본들c. 1400 ADKJV, 한글 성경및 기타 번역판
상기 사본들의 각 연대 기록 중 지구 연대 6,000 구도와 관련되는문제들만을 중심으로 주로 다루고, 저명한 유대인 저술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의 연대기도 비교한다.
또한 성서 연대 6,000년 설과 관련하여 이에 대한 대단히 영향을끼친 성공회의 알마그(Armagh) 대주교이며 아일랜드(Ireland) 교회의석학 중의 한 분인 엇셔(James Ussher, AD 1581-1656)의 연대기를 참고했다. 그의 연대기 후에 로이드(William Lloyd)에 의해 수정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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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1701년 이후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에 포함되게 되었다. 그는 임으로 창조 사건을 BC 4004년으로 계산했다. 그의 연대기가 그후 250여년 간 대영 제국 및 기독교계에 널리 사용되었고 연대기 성경의 기초가 된다.
II. 구약성서 연대기
A. 연대의 상이성(相異性)
엇셔는 창조 일 시를 임의로 BC 4004년 10월 22일 저녁(추분점의일요일)으로 설정하고 AM 1년으로 계산했다. 그리스어 학자로 캠임브리지(Cambridge)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라이푸트(John Lighfoot)는 인간이 BC 3928년 어느 금요일 오전 9시에 출생했다고 했다. BC 3세기 바벨론의 학자였던 베로수스(Berosus)는 노아 홍수를 BC 36323년, 창조를BC 2148323년으로 잡았다. BC 4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은홍수가 2억만년 전에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BC 2세기의 이집트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155,625년의 지구 연대를 제안했다. 힌두교철학자들은 세상의 시작을 1,972,949,085년 전의 사건으로 보기도 했다.반면에 지난 100여 년 동안 진화론측의 견해는 유성(遊星) 지구가 45억-50억만년 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물학에서는 생명체의 탄생을 30-35억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조상인 유인원은 100만 여년 전에 생존했다가 멸망했고 신인(Homo sapiens)인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ensis)은 5-6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렇듯지구와 인간 기원에 관한 한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문자적 7일간의창조주간(hexameron)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즉각적 창조(fiatcreation) 사실과 무에서 유를 창조(ex nihilo)하는 삼위 하나님의 지구성 창조 행위의 현장에 인간 가족 중 아무 목격자도 없었고, 시조 아담이후 어떤 성서 저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연대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며, 창조 행위는
인간 경험이나 이해 이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서 연대기 중 왕정 시대에 이르러서는 연대 계산에 있어서차이점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각 나라마다 연도의 시작점이 다르다. 니산(Nisan)월 방식은 봄에서 한 해가 시작되는 역법이고 티시리(Tishri) 월력은 가을에서 한 해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히브리의 종교력은 니산월을 민력은 티쉬리월에서 시작한다. 북방 이스라엘은 니산월에서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니산월부터 시작했다. 또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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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즉위 방법에도 차이가 있는데, 즉위년(accession year)과 무즉위년(non accession year/antedating) 방식이 있다. 왕의 즉위년 방식는 왕이 왕위에 오르는 해를 즉위년이라 부르고 통치 첫해는 즉위년 다음해의 신년부터 계산하는 방식이고, 무즉위년 방식은 왕의 즉위한 해를 즉위년으로 하지 않고 바로 통치 첫해로 계산하고 다음 신년은 통치 2년이 되는 방식이다. 남방 유다의 르호보암에서 여호사밧왕까지는 즉위년 방식을 여호람에서 요아스왕까지는 무즉위년 그리고 아마사왕 이후는 다시 즉위년 제도를 썼다. 반면 북방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에서 예후까지는 무즉위년 방식을 요아스 이후의 왕들은 즉위년 방식을 취했다. 기타, 섭정, 공위 기간 등의 요소들도 고려해야 한다.
B. 연대 계산의 발전
엇셔의 연대기가 현대 고고학의 출현 시까지는 성서 연대 문제에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었다. 1799년 이집트의 로제타 석비(RosettaStone) 발견과 샹폴리옹(Champollion)에 의해 1820년대에 그것이 해독되자 비명(碑銘)의 문자들과 파피루스(Papyrus)에 기록된 왕들에 대한새로운 해석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 또한 시리우스(Sirius, 天狼星 혹은Dog Star) 별 관측에 의한 소틱 주기(Sothic cycle)가 개발되었다. 고대 근동학의 발전으로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 이후 아시리아, 바벨론,그리고 힛타이트(Hittite) 제국의 점토판 설형문자 문서들이 해독되게이르렀다. 이로써 각 열국들의 왕들의 통치 기간들이 이집트 바로(Pharaoh)들과 상호 관련하여 연구되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2000년전후의 연대 문제 산출을 가능하게 했다. 바벨론에서 태양, 달, 그리고유성(遊星) 현상들의 천체 기록이 발견되어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왕 8년에 유대왕 여호야긴(Jehoiachin)이 포로로 잡힌날을 BC 597년 3월 16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왕하 24:12). 또다른 중요한 사건은 BC 853년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Ⅱ)의 콰르콰르(Qarqar) 전투의 기사에서 이스라엘 왕 아합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아합왕의 마지막 해였다. 또한 살만에셀의 유명한 흑색방첩비(obelisk)의 비문은 이스라엘의 왕 예후(Jehu)가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는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BC 841년의 일이다. 성경에서 아합과 예후에 12년의 차가 있음을 보게 된다. 아시리아의 자료들의 왕들 및 연도, 그리고 천문학 자료들(eclipses)과 이집트의 프톨레미 정경(Canon of Ptolemy/Almagest, Claudius Ptolemaeus, 127-145 AD)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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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월식, 및 왕들의 연대기 등, 그리고 성경의 자료들과 상호 관련하여 BC 853년을 다윗 시대까지의 히브리 왕들의 연대 계산의 기초로 잡는다. 여기서 왕상 6장 1절엔 출애굽과 솔로몬 왕의 재위 4년 2월, 곧출애굽한지 480년이 되는 해에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거슬려 출애굽 연대를 계산하게 된다(1445/1450 BC). (출애굽이후 히브리 왕정 시대의 연대기에 대한 문제는 본 교단의 석학 EdwinR. Thiele, Siegfried H. Horn, 및 William Shea 박사의 공헌이 지대하며, 창세기 5장과 11장의 연대가는 Warren H. Johns의 연구가 중요하게 사용된다).
C. 홍수 이전의 연대
창조와 노아 홍수 사건 등의 연대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을까?문제의 발단은 성서 저자들이 현재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연대 관념을가졌었고 또한 창세기 족보상의 표현이 각기 다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홍수 이전의 부조를 연대 문제에 있어 각 사본들의 숫자가 다양하게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서기관이나 필생(copyists)들이 숫자 자료의 내재적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고침으로 숫자상의 문제를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서기관들은 그들의 선입관적인 연대 구조에 맞추려고 성경상의 숫자 자료를 수정할 수 있었다는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족보 계열에 있어 이름들을 생략할 수 있다는것이다. 각 사본들의 홍수 이전 부조들의 연대기 문제를 살펴보자.표 2. 홍수전 연대기 (창세기 5장)
동시대성/M나이 아들을 낳은 나이생존 나이창조후 연대NOT부조MT LXX | SP Jos MT LXX SP Jos MTLXX SP1 아담 130 2302 셋 105 205인물 기간130 230 930 930 930 930 930 930 930105 205 912 912 912 912 1042 1142 1042아담 8003에노스아담5 마할랄렐 65 1656야렛 162 1627에녹 65 165167/90 1904 게난 70 17090 190 905 905 905 905 1140 1340 114062 162 962 962 847 962 1422 1922 1307*65 165 366 365 365 365 987 1487 887695아담 605아담 535아담 470아답 30870 170 910 910 910 910 1235 1535 123565 165 895 895 895 895 1290 1690 12908 므두셀라 18767 187 969 969 720 969 1656 2256 1307"아답 24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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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성/M'나이 아들을 낳은 나이생존 나이창조후 연대 NOT부조 MT LXX SP Jos MT LXX SP Jos MT LXX SP 인물 기간 9라멕 182 18853 182 777 753 653 777 1651 2207 1307"아담 566대와 10 노아 500 500500 500 950 950 950 950 2006 2592 165711 셈동시대 노아 450100 100 600 600 600 600 600 2156 2742 1807창조-홍수: 1656 2242 1307 2756 므두셀라는 홍수 후까지 생존한 연대가 됨으로 187세로 수정함: 에녹은 숭천함. LXX는 다른 사본에 의해 120년의 차이가 있음. "SP는 세 부조: 야렛, 므두셀라, 라멕에 같은 해에 즉 홍수 해에 사망한 것으로 고친 흔적을 볼 수 있음.
상기 도표에서 사마리아 사본에서처럼 야렛, 므두셀라, 그리고 라멕이 성서 상의 홍수 이후에 생존했던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의 연대기 학자들은 연대계산에 BC를 사용하지 않고 부조들의 족보를 근거로 계산하여 AM 연대 방식을 사용했다. 창세기 5장의 족보 문제에서 사마리아 사본과 위경서들 중 요벨서(Book of Jubilees)와 일자에 있어 일치한다. 즉, A.M. 1307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홍수 일자에 관해 MT는 AM 1656년, LXX는 AM 2262년으로 보았다. 반면 요세푸스는 AM 2256년으로 계산했다.
표 2에서 야렛, 므두셀라, 그리고 라멕이 SP에 의하면 모두 홍수가 나던 해 곧 AM 1307년에 죽었다. 그러나 MT와 LXX는 이들 3명의 부조들 생존 해수에 대해 SP의 나이보다 적어도 100년 이상을 더 산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초기의 사본들(SP 이전) 중의 어떤 것들은 아담부터 라멕까지의 9명의 부조들 중 이 세명의 부조들이 AM 1307년 곧 홍수 이후 100여년 이상 산 것으로 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홍수 때에 오직 노아의 직계 가족 8명만 생존했다(벧전 3:20)는 성경의 말씀과는 모순되는 사실이었다.
MT, LXX, SP 등은 세 가지의 분명하고도 다른 시도를 가해서 이와 같은 모순들을 해결하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첫째, SP는 문제의 세 인물(야렛, 므두셀라, 라멕)의 생존 해수를 줄여서 세 분 모두가 동일한 해, 곧 노아 홍수가 나던 해 AM 1307 년에 죽었던 것처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야렛이 손자 므두셀라, 그리고 증손 라멕과 같이 동일한 해에 죽었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LXX는 홍수 전 부조들의 아들을 낳은 해에 각 100년을 더해서 홍수 일자를 고쳤다. 그래서 문제의 세 부조들이 홍수 이전에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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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처럼 했다. 셋째, MT는 문제의 세명에 대해서 아들은 낳은 해에 SP보다 야렛은 100, 므두셀라는 120년, 라멕은 129년을 각각 더해서 그들 모두가 홍수 이전에 죽은 것처럼 했다. MT는 야렛의 부친인 마할랄렐에 대해서는 그가 AM 1290년에 죽었기 때문에, 또한 야렛의 아들 에녹은 홍수 수세기 전에 승천했기 때문에 이들 두명의 아들을 낳은 해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았다. 이와 같은 논리는 MT의 경우 아들을 낳은 해수의 문제에서 아담부터 마할랄렐까지의 5명의 부조들, 그리고 에녹의 해수는 SP와 같고 야렛, 므두셀라, 그리고 라멕의 해수는 틀리게 한 이유가 된다.
이렇게 홍수 전 시대에 대해 모든 중요 사본들이 일연의 수정을 거친 것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창세기 5장을 근거로 한 정확한 연대계산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D. 홍수 이후의 연대
홍수 이후의 시대 족보상(창 11:10-32)에서도 홍수 이전의 문제들처럼 비슷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MT가 SP 및 LXX와 100년의 차이가 있다. 아들을 낳은 해수에서 LXX와 SP는 MT에 100년을 더했든지 또는 MT가 LXX와 SP에서 100년을 뺀 수치이다. 이러한 불일치 문제에 대한 이유들 중 하나는 서기관들이나 필생들이 선입관적 연대 구조를 입증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LXX는 홍수 이후의 부조들 명부에 노아 후의 4번째로 가이난(창 11:12, LXX; 눅 3:36)을 추가시켰다. 노아로부터 홍수 후 4대째 순서인 가이난은 홍수 전의 부조들 중 4번째인 게난과 이름이 비슷하고 가이안의 아들인 셀라와 아들을 낳는 해와 그리고 생존 나이에 있어서도 같다. 계보상 다른 어떤 인물도 이름이나 수치상에 같은 것이 없다. 이것은 아마도 어떤 선입견적 구도에 맞추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견해들 중 간단한 한 설명은 천년기사상(millennial speculation)이다. 다음의 표 4와 같이 LXX는 창조시부터 출애굽 사건까지를 4000년으로 보고 율법이 주어진 때가 창조 후 4000년 뒤였다는 것이다.
또한 LXX는 출애굽에서 아닥사스다왕 7년(스 7, 8장)에 에스라의 지휘하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의 귀환까지를 1000년으로 계산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으로부터의 해방과 바벨론 포수로부터의 마지막 주요 귀환 사건을 천년기 사관에 연결시켰다.
280 삼옥신학포럼
표 3. 홍수후 연대기(창세기 11장)
나이No부조아들을 낳은 나이MT LXX SP Jos1 아르박삭2 가이난35 135 135 135130438 2096MT LXX SP MT LXX SP438 565460생존 나이 창조후 연대(A.M.) 동시대성/MT인물 기간28091747 노아, 셈 35028393셀라 30130130 130 433 4604에벨34134134 1344645벨렉30130130 130 2396르우32132132 130 239504339339433 2126504 2187 314329691877 노아, 셈 3152078 노아, 셈 285239 1996 31121947 노아, 셈 251239 2026 32422077 노아, 셈 2197스룩 301308나홀299데라130 130 70130 132 230 33079179 79 120 148 20870230 2049 33652200노아, 셈 189148 1997 (3469) 22480,159205 2051452083 (3549) 2324 노아, 셈 130홍수아브라함창조-홍수3501 1130230 94016562242-220LXX의 작은 숫자는 사본에 따라 다른 숫자를 표시한것임.1307홍수아르박삭 출생 222
창조아브라함출생 2008 33741 2249
표 4. LXX의 천년기 구조NO.사건연수참고1창조-홍수2262 년2홍수 기간1년창 5장(LXX Alexandrinus)창 7:11, 8:14홍수-아브라함31307년창 11, 12장(LXX Vaticanus)소명4체류 기간430년출 12:40총 기간4000년(창조-출애굽)
표 5. MT의 천년기 구조
NO.사건연수참고1창조-홍수1656년창 5장2 홍수아르박삭 출생2년창 11:103아르박삭 출생-아브라함 출생350년창 11:12-324 아브라함의 소명75년창 12:7|5|6|7체류 기간(아브라함 소명-출애굽)430년창 15:13; 갈 3:17출애굽-성전건축480년왕상 6:1성전건축 기간7년왕상 6:38총 기간3000년
MT와 LXX 연대기의 천년기 사관은 창조 사건과 유대 역사의 두
성서연대기 281
가지 중대 사건들, 즉 율법의 선포와 성전 건축을 연결시킨다. 유대의연대 개념에서 홍수 사건보다는 창조 사건이 중심이 된다.
후대 유대 사상에서 천년기 사관은 매시야 대망(大望)과 연결되게되었고 이러한 유대의 천년기 사관이 엇셔같은 기독교 시대의 연대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진술할 바와 같이 엇셔는 임의로 BC 4004년을 창조의 해로 잡고 AM 1년으로 계산했다. 즉 예수님 이전의 4000년과 그리스도 이후의 2000년 지구 역사라는 6000년 이론과 조화되는사상이었다. 또 솔로몬 성전 완공과 예수님 탄생을 1000간격으로 보았다.
6000년 이론(6000-year theory)은 많은 종교 저술가들에 의해서 아담 이후 세상의 경과된 기간의 추측으로 사용된 예언적 이론이다. 즉창조 주간의 6일 후엔 안식일이 따르는데,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벧후 3:8)는 말씀에서 유추된 하나의 예언적이론이다. 즉 세상은 6000년간 계속될 것이며, 7번째 천년은 휴식의 천년기 안식(Sabbath) 기간이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러한 6000년 이론의 예언 기간이 없다. 이 사상은 페르샤나 에트루스칸(Etruscan) 등의고대 신화와 창조 주간의 일자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유추(analogy)에서기인되었다(SDABC, I:195). 위경서(pseudepigrapha)에는 지구 역사를700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2 Enoch 33:1). 바나바 서신(Epistle ofBarnabas)에도 지구 역사가 6000년으로 끝나며 천년기가 올 것으로 말한다(15:8-9). 이 사상이 일레니우스(Irenaeus of Lyon) 등의 초대교부들과 어거스틴 그리고 종교 개혁자들에게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널리 보급되게 되었고, 재립 운동의 선구자 윌리엄 밀러나 엘렌지. 화잇도 이 사상을 견지한다. 물론 천년기 사상은성경에 나오지만(계 20:2-4), 6000년 예언적 이론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
각 사본들간의 불일치 문제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세기를 통해연구해왔다. 구약 연대에 희년 개념을 도입해서 연구하려고도 했고, 바벨론의 60진법 개념 등으로도 연구했다. 그러나 LXX의 경우 이집트에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이집트 제사장들에 의해 허황되게 주장된 그들의오랜 역사 문제를 알고서 유대 민족의 고대 기원을 당시 알렉산드리아지식 사회에 유행했던 개념들에 조화시키고자 홍수 이전의 부조들의 연대를 586년 홍수 후에서 아브라함까지는 780(880)년을 MT보다 더 많게했다. 또한 LXX의 가나안 추가는 타당하다는 견해도 있다. 가나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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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는 신약 성서의 저자 누가가 입증했다(눅 3:35-46). 모세 및 역대상기자(대상 1:24)와 누가 및 LXX의 차이는 성서 연대 문제상의 관행(貫行)이라는 것이다. 성서는 연대 계보상의 이름을 생략하는 경우가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스라도 자신의 족보를 아론까지 거슬러올려가면서 적어도 6명의 이름을 생략했다(스 7:1-5; 대상 6:3-15). 마태의 예수님에 대한 유대왕들 계보에도 주님의 몇 선조들을 생략했다(마 1:8, 17; 대상 3:10-12, 15, 16). 이러한 문제들이 있지만 아담부터셈까지는 중단되지 않은 계보였고 그 부조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후대에 전수했다.
E. 체류 기간 문제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체류 기간에 대해 215년, 400년, 그리고430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출애굽과 관련된 연대에 대해 각 사본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2장 41, 41절의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MT: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라 430년이 마치는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 즉"
LXX: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과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거주한 지 430년이라"
SP: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의 조상들이 가나안 땅과 애굽 땅에 거주한 지 40년이라"
여기에서 히브리 사본에 따르면 애굽의 체류 기간은 야곱이 그의자손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입경(入境)한 그 때로부터이다(창 47장). 또70인역과 사마리아역 성경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입경한 때부터이다(창 12장).
여기에서 체류 기간의 장, 단기 차이가 아래와 같다.
1. 단기 체류(LXX, SP)
야곱의 애굽 입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지도하에 출애굽하는 그간이 215년이라는 것이다.
표 6. 애굽의 단기 체류 기간
장소사건연대참고아브라함의 소명, 가나안 입경25년 창 11:29-12:4, 21:1-5이삭 출생이삭 출생-야곱 출생60년 창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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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사건연대참고가나안 야곱 출생-애굽 입경130년 창 47:9계215년애굽야곱 애굽 입경-출애굽총 기간(아브라함 소명-출애굽)215년 창 47:9; 민 33:3-15430년
2. 장기 체류(MT)
창 25:13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행 7:6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400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출 12: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라"
이러한 성경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이 400년의 압제 또는 430년의 체류 기간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즉, 야곱의 애굽 입경 시부터 출애굽까지의 기간이 430년 또는 400년이라는것이다.
3. 단기 체류와 장기 체류의 조화
아브라함 자손의 이방에서의 고난 및 거주 기간의 오해는 연대 계산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시켜왔다. 그러나 만약 430년을 아브라함이75세 때에 소명을 받던 시기로부터 계산하고 400년은 이삭이 약속의 후사로 확증된 뒤 (창 21:8-12) 이스마엘로부터 박해를 받던 시기인 30년후부터 계산한다면 400년과 430년 기간은 조화될 수 있다.
표 7. 장·단기 기간의 조화
430년(출 12:41; 갈 3:17)이삭 출생(창 21:1-5)75세시 아브라함소명 및 가나안야곱 출생 야곱의 애굽 입경(창(창 25:26)출애굽시47:9)율법의 선포입경(민 33:3-15)(창 11:29-12:4)2560130애굽에서의가나안에서의 215년215년25 (5)400(창 15:3)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소명은 받은때를 첫 언약으로 보는 것 같다(창 12:1-3). 그때 아브라함은 75세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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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4), 430년이 시작된다. 400년의 예언(창 15:13)은 30년 후 아브라함이 105세이고 이삭이 5살 되던 때(창 21:5)부터 시작된다. 그때 육체를 따라 난 자(이스마엘)가 성령을 따라 난자(이삭)를 핍박했다(갈 4:29;창 21:9-11).
이때 아브라함의 씨가 고난을 받기 시작했고, 출애굽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삭은 그의 이복 형제 이스마엘 뿐 아니라 블레셋(창26:15, 20, 21)과도 어려움이 있었다.
야곱은 에서로부터 도망했고(창 27:41-43), 후에는 라반(창 31:21), 그리고는 다시 에서 때문에 위험에 처했었다(창 32:8). 또한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고(창 37:2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러 해 동안 애굽에서 압제를 받았다(출 1:14). 아브라함의 소명에서 야곱의 애굽 입경까지는 215년이다. 아브라함의 소명과 이삭의 출생시까지 25년(창 12:4, 21:5), 이사의 출생에서 야곱 출생시까지 60년(창 25:26), 야곱의 입경시까지가 130년(창 47:9)의 기간을 합하면 가나안 땅에서 215년이 된다. 그리고 430년에서 나머지 215년은 애굽에서 보낸 기간이 된다. 출 12장 40절의 430년은 부조들이 애굽과 가나안 땅에서 거주한 기간을 모두 포함한다. 모세 시대 이후로 가나안은 애굽 제국에 속해있어서 그 당시 저술가들이 가나안을 “애굽"이라는 용어에 포함시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70인역 성경의 번역자들도 430년의 기간에 부조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것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출애굽기 12장 40절의 번역에 가나안이라는 표현을 했다. 또한 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의 4대 째에 출애굽하라는 예언(창 15:16)과 이 말씀의 성취에서도(출 6:16-20) 해석상의 일치를 보게 된다.
F. 출애굽 연대기
출애굽 연대도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것으로 남아있다. 이 문제는 성서적 자료에 의한 연대기와 성서 밖의 자료에 의한 연대가 상이하다. 대표적인 두 이론은 까지 15세기설과 13세기설이 있는데, 15세기설은 성경의 자료들과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들이 일치하는 반면, 13세기설은 주로 고고학적 증거에 의존하고 있다.
1. 15세기 출애굽(1445/ 1450년 BC)
a. 성서상의 자료
열상 6:1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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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여기서 재위 4년이 되는 해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966 BC로 결정되어졌고 성서적 출애굽 연대 연대가 1445 BC라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SDABC 입장; Dr. Hom). 반면 William Shea박사는 솔로몬이 그의 부친 다윗과 섭정한 것을 주장하여 출애굽 연대를 4년 더 뒤로 계산하여 재위 4년째를 970 BC로 계산한다. 이 구도에 의하면 출애굽이 1450 BC가 된다.
사사기 11:26엔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는 말씀을 근거하여 가나안 정복에서부터 입다(Jephthah)까지가 300년이다. 입다가 치리했던 때가 약 1100 BC이다. 그래서 3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략 1400 BC가출애굽 연대가 된다.
b. 성서외적 자료
(1) 메르넵타 석비(Merneptah Stele/Israel Stele)
메르넵타는 19왕조(1223-1214 BC)의 한 왕이며, 람세스 2세의 후계자이다. 석비는 터베(Thebes)의 유골신전(funeral temple)의 마당에 세워져 있는데 28행의 글로 1207 BC에 세워졌다. 여기에 정복된 민족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이 언급된다. "이스라엘은 황폐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국가가 아닌 민족이나 백성임을 나타낸다.
(2) 카낙 부조(Karmak Reliefs)
람세스 2세의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그의 아들 메르넵타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집. 메르넵타 석비와 비슷한 내용의 것을 그림으로 제공하는데, 세 개의 도성(Ashkelon, Gezer(추정)와 Yano'am)가 공격받고 있고, 한 무리의 아시아 인들이 이스라엘 들판에 있음.
(3) 아마르나 서신 (Amarna Letters)
델 엘 아마르나(18왕조 아멘호텝 IV세의 수도, Akhetaton)에서 300 이상의 점토판이 발굴되어 하비루(Habiruw 'Ap(biru의 침입에 대해서 군주였던 애굽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문서이다. 출애굽 후 가나안 정복시 가나안 도시 국가의 화급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은 15세기 출애굽을 증거한다.
C. 애굽의 19왕조의 역사:
아멘호텝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11세, 핫세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텝 2세, 투트모세 IV세, 아멘호텝 III세, 그리고 아케나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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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왕조사의 대부분 역사적 사실들은 성경의 출애굽 상황과 일치한다.2. 후기 연대설(1280 BC):
출 1:11엔 히브리인들이 두 국고성 비돔(Pithom)과 람세스(Ramses)를 건설했다고 했다. 람세스왕(람세스 2세, c. 1290-1211 BC)는 13세기까지는 통치하지 않았다. 이 연대기에 의하면 람세스성을 건축한 것으로 되어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1200 BC까지 애굽에 있었다는 것이 된다. 즉 1450 BC에 출애굽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람세스라는 말은 이미 요셉의 이야기에도 언급되고 있는 점을 볼 때(창 47:11),후대의 필사가가 쓸 때 그 당시의 지명을 따라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불 수 있다. 이것이 13세기 출애굽의 주요 성경절이다.
팔레스타인에 몇 도시들의 파괴(c. 1280 BC)되고, 19왕조까지는 델타지역 (고센 지방)에 왕이 없었으며, 요단강 서안 탐사(Nelson Glueck)에서도 1300 BC까지는 백성이 살지 않았다는 것과 다른 지역들(Lachish, Tell Beit Mirsim, Bethel, Hazor등)의 파괴 시기가 대략 123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단 동편 지역의 유물들 즉 세공품, 도자기,기름병, 부적, 비녀, 핀 등들은 1600 BC의 것으로 추정되며, 동기 II 시대(13세기 BC)의 출애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이론은 성서의연대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다.
G. 히브리 연대기
1. 연대기의 상호 관련성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출애굽 이전의 연대기는 사본들 간의 차이와 해석상의 문제 등으로 불확실성이 있다. 특히 출애굽을 위로 거슬려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묘연해 진다. 그러나 히브리 왕정 대 이후는확고한 고고학적, 천문학적 및 역사적 토대에서 규명되었다. 이 시기는대체로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가나안 연대기가 상호 관련되고 역사적으로, 천문학적으로 확증되었다. 이는 어는 한 지역의 사건이 그곳의 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타 세력권과 상호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대 근동학의 발전과 고고학 등의 발전으로이러한 연대가 잘 규명되기에 이르렀다.
고대 이집트(Canon of Ptolemy), 아시리아 연대기(Royal AssyrianInscriptions, Eponym lists), 바벨론의 열왕기(Babylonian Chronicles),페니시아 지역의 자료들 중 히브리어 및 아랍어 도편(Hebrew andAramaic Ostraca), 아랍어 파피루스(Aramaic Papyri), 그리고 가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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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자료로서 성서 역사서에 해당되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 하, 역대기 상.하 등의 자료들이 있다. 이 세 문명권의상호 관련 연대를 종합한 도표가 별지에 있다. 연대의 상호 관련 자료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 살만에셀 3세(859-824 BC)의 왕궁 비문(Shalmaneser's Royal Inscription):
암석비문(Monoloth inscription)에는 그의 재위 6년 콰르콰르(Qarqar) 전투에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맹군들과 전투를 벌였다고기록했고, 그 왕들 중에 이스라엘의 아합왕의 10,000명의 군대와 싸웠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해가 바로 기원전 853년이 된다. 그리고 그의재위 14년 흑색방첩비(Black Obelisk)엔 이스라엘 왕 예후(Jehu)가 살만에셀 3세에게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이해가 기원전 841년이 된다.
b. 티글랏빌레셀 3세(745-727 BC)의 서진(進) 정책
북방 이스라엘의 메나헴과 남방 유다의 아하스왕으로부터 조공을받고(왕하 15:19-20), 북방 이스라엘의 베가왕을 폐위하고, 호세아를 즉위시킴 (왕하 15:19-20).
C. 살만에셀 5세 (727-723 BC)/ 살곤 2세(722-705 BC)의 사마리아멸망(722/721 BC):
살만에셀 3세가 북방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포위를 시작했고,그의 사후 사령관인 살곤 2세의 통치 초에 그 도성이 무너진 것으로 보임.
d. 산헤립 (705-681 BC)의 히스기야 포위(701 BC):
산헤립은 남방 유다의 히스기야왕을 새장 안의 새처럼 가두었다고주장함(왕하 18:13; 사 36:1).
e. 느브갓네살의 2차 예루살렘 포위(597년 3월 16일 BC):여호야긴의 재위 3개월째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10,000명의 포로와함께, 성전 기명들을 바벨론으로 이송함(왕하 24:8-13).
f. 예루살렘의 멸망(BC 586년 8월 15-18):
느브갓네살의 재위 18년 남방 유다의 시드기아 10년에 남방 유다수도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이송됨.
이렇게 해서 기원전 다윗 왕정 시대 이후의 대부분의 성경 기록들이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이 입증되었고 이것에 관해서는 거의문제가 없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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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민족 자체 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문명권 사이의 파란 만장하고도 또 역동적으로 상호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방 유다가 신바벨론의 포수 경험 이후 귀환하여 왕이 없는 제사장 체제하에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복쪽의 시리아의 셀루커스 왕조와 남쪽 프톨레미 왕가의 각축전에서 시달리며 마카비 왕조의 시기를 거친 뒤,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전략하게 된다. 이 기간을 신구약 중간사라하며,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땅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기원전 4년에 탄생하시여, 인류 죄악의 대속적 삶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금년이 예수 탄생 2,000년 기념이되는 해이다.
H. 연대기 해석 문제
지구 역사의 초기 부분에 대해 성경은 어떤 사건에 대한 연대를제시하지 않고 부조들의 족보와 수명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참고로 다양한 계산이 가능하지만, 마소라 본문(MT)을 따를 경우 대략적으로 지구 창조 BC 3963년(단기체류)/ BC4178년(장기체류), 노아 홍수는 BC 2307년(AM 1656), 아브라함의 출생은 BC 1955년(AM 2008년, 단기)/ BC 2170년(장기), 그의 소명은 BC1880년(단기)/ BC 2095(장기), 출애굽은 BC 1450년이 된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여기에 솔로몬의 성전 건축 해를 출애굽 480년 후(왕상6:1)로 보고 바로 그 해가 BC 970년으로 잡고 계산한 것이다. 위에서본 바와 같이 MT 사본의 경우에도 애굽 체류의 단기체류(215년)과 장기체류(430년)의 차이에 따른 출애굽 이전의 연도 계산은 다르게 된다.더욱이 물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각 사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모든 연대 즉 출애굽 이전의 연대 계산은 개략적인 것이다. MT 이외의 다른 사본으로 지구 창조 연대를 대략 계산해도 다양한 계산이 가능하다. LXX의 경우에는 약 BC 5664년(일부 사본)/ 5450년(천년기 구도), SP는 BC 4204년(단기)/ 4419년(장기)이 된다. 물론이러한 연대기는 사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이상 성서 사본들의 연대 문제를 살펴본 바와 같이 사본 자체의 내적 모순들이 있었고(홍수전 SP 사본의 3代 부조들이 홍수가 나던 그해에 사망한 연대 경우) 또는 서기관들이나 필경사들이 그들의 선입관적 구조(scheme)에 맞추려고(홍수후 LXX, MT의 천년기 구조) 연대의수정 가능성이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엘렌 G. 화잇 여사는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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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영감의 기별을 증거하신다:
“나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특별히 보존하셨음을 보았다. 성경의 사본들이 적었을 때에 어떤 경우 학식 있는 사람들이 그 말씀들을 고쳤다. 그들은 그 말씀이 더욱 분명해지도록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명백한 말씀을 전통에 지배받은 그들의 선입견에 맞춤으로 모호하게 만들었다"(EW, 220-221).
성경상의 이러한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진리를 위탁하신 신실한 증인들을 가지고 계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의 사본들은 수세기를 걸쳐 하나님의 기적에 의해서 보전되어 왔다"(EGW Letter 32, 1899). 그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직 성경, 성경만이 진리와 믿음의 유일한 척도요 하나님의 권위있고 엄숙한 계시라고 말씀하셨다.
성서의 연대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빛이 제시될 때까지는 아브라함 이전의 연대는 대략적(approximate)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출애굽에서 바벨론 포로 귀환까지의 연대는 고고학적, 천문학적, 그리고 역사적인 건전하고도 훌륭한 상호 연구를 통해서 잘 입증되었다. 성경 사본들의 내적 문제와 수정에도 불구하고 아담에서부터 노아 홍수, 아브라함, 그리고 출애굽에 이르는 기간은 불과 수 천년의 기간이지 수천만년 혹은 수억년의 기간이 아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된 구속사는 아담에서 노아의 아버지 라멕까지가 동시대로 살았고, 노아와 셈이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와 동시대성을 보인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야곱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가르쳤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인 레위의 딸 요게벳에서 모세가 그의 조상의 하나님의 전승된 진리 말씀을 듣고서 창세기를 기록했다. 그래서 아담 창조시부터 모세의 창세기 저작까지는 수천년의 기간이 있었지만, 구두 전승의 역사는 대략 4-5세대 군(generation belt)의 전승대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출애굽 이전으로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신비의 영역으로 가리워 놓은 것처럼 여겨진다. 만약 창조와 타락, 그리고 계속되는 각각의 중요한 사건들의 정확한 연대들을 기록해 놓았다면, 그래서 이런 자료를 기준으로 해서 예수님의 재림 일자를 인간의 논리와 이성으로 정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 될 것인가. 지구성의 운명에 관련되는 연대문제는 신성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항상 인간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지해서 사는 자세를 겸비해야 한다. 그래서 출애굽 이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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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에 대해서는 개략적 연대로 보아야 하고 이 분야의 빛이 더 주어질 때까지 희망적 연구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를 근거로 한 여하한 시도도 경계하여야 한다.
III. 결론
A. 요약
출애굽 이전의 연대기는 연도의 계산 및 기록 방법, 그리고 자료의 미비 및 해석상의 문제들로 견해의 차이와 불확실한 면이 있다. 모든 사본에 근거해서 볼 때, 히브리 왕정 시대 이후의 연대는 고대 근동의 천문학과 기타 여러 자료들의 의해서 확립되었다. 그러나 출애굽을 거슬려 올라가는 연대는 대략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창조연대를 확정하려는 어떤 시도도 불확실하고 개략적인 자료를 의지하기 때문에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 창조는 수 백만년 또는 수십억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대략 6-7천 여년 전의 사건임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본이라도 창조 연대를 정확히 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계보상의 나이 문제는 서기관이나 필생들의 선입관 내지 본문 자체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숫자상의 수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인간 역사는 불과 몇 천년에 불과하다. 특히 출애굽 이전의 연대문제는 하나님께서 신비의 베일에 가려놓으신 것 같고, 이러한 연대 계산에 근거한 여하한 논의도 우리 믿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섭리를 기다리고 그분의 은혜를 믿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B. 제안
연대기 연구를 통해서 시간의 엄숙성을 볼 수가 있다. 현재 인간이 將인 지구에서 누리는 생애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범죄한 인류에 대한 사형 집행 정지 및 집행 유예 기간에 불과하다. 우리를 대신해서 사망 선고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서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유예 기간이 계속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현재 존속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 직분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가 심지어 이 세상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이다. 우리가 먹는 빵은 그분이 상하신 몸 값으로 사신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그 분의 흘리신 피로써 사신 바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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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자든 죄인이든 간에 그가 매일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써 양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인간의 연대를 정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이 오래 참으시며 사랑과 자비의 구속 사업을 성취시키시고 있다(행 17:26, 27; 벧후 3:8). "우리에게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기도한 시인의 믿음으로 지구 역사가 끝나가려는 이 세상에서 앞으로 남은 기간을 영원을 위해 준비하며 살고,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의 발전을 위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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