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참 전에 가입하고 본글은 처음 세웁니다. 나그네 님, 권종상 님이 꾸준히 글을 올리셨던 걸 보니 마치 사시모 카페에 와있는 듯 합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알량한 지식 다 동원해서 쓴 것인데, 컴퓨터를 바꾸면서 하드 정리하다가 다시 발견하곤 문득 여기 고수님들의 검증을 받고 싶어져서 올립니다.)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는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이것은, 역사가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나 해석을 하지 말고 그저 사실 그 자체만 밝혀 기술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죠. 근대 이전 역사학이 정치의 종속물이었던 것에서 벗어나 ‘역사’가 정치로부터 독립하고 하나의 ‘과학’으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랑케의 실증주의는 이후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역사가가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 그것입니다. 과거의 사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역사로서의 사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며 (이 취사선택 과정에서 벌써 역사가의 주관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때만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역사로서의 사실’이 됩니다.
상대주의 역사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즉 역사는 현재 존재하는 역사가에 의해, 그의 주관에 의해 해석되어진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면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제 생각으로, 이런 주장들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된 것은 E. H 카아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합니다. 객관적 사실은 충실하게 밝히되 그것은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 재해석의 기반은 그 역사가가 속한 시대와 사회 안에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무리를 지어 행진하는 군중에 비유합니다. 역사가는 그 군중 밖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고고하게’ 그 무리를 바라보며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군중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군중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같이 겪는 것이죠. 즉, 현 시대와 사회의 제약 속에서 그 자신의 의식과 주관이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객관적 사실을 바라보게 되고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눈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며, 과거 사실에 대한 규명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좀더 진보적인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역사학의 임무이며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라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역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작업도 충실해야 하며, 그것에 대한 의미도 지금 우리가 처한 시공간, 즉 시대와 사회 속에서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는 지침서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크게 신경을 썼던 것이 역사 왜곡입니다. 조선은 고대 노예제 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정체성론이나 만주사의 일부라는 만선사관을 퍼뜨립니다. 즉, 자기들이 새로 점령하는 건 조선의 역사에 있어 특이한 것도 아닐뿐더러 오리혀 자기들이 근대화를 시켜줄테니 감사하라는 ‘개소리’입니다.
그 식민주의 사학의 새로운 버전이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일본 학자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가 이론화한 것을 뉴또라이트 이사장이며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 이사장이었던 안병직이 국내에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죠.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농업 생산력의 향상, GDP의 증가, 인구의 증가 등을 근거로 들며, 일제시대는 수탈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나라가 근대화의 기반을 닦은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종군 위안부, 즉 성노예가 강제동원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주장 역시 빼놓지 않죠.
그들의 눈에는 숫자만 보일 뿐 인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숫자의 ‘증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보지 않습니다. 일제 통치 하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개처럼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다 고문당하고 죽어간 ‘객관적 사실’에는 별 큰 관심이 없습니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이들 돼지들에겐 진주목걸이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신봉하는 ‘숫자의 미신’도 붕괴되고 있습니다. "자금 유출입과 관련, 일제가 패전때까지 조선에 투여한 자금이 60억-70억엔인데 비하여 유출된 자금은 가시적으로 드러난 통계에 의해서만 보더라도 302억엔이고 물자유출분 140억엔을 합하면 440억엔이 넘어 유입자금의 6.3∼7.4배에 이르렀으며"(숙명여대 이만열), 농업생산의 경우1910년 이후 30년 동안 미곡 생산량이 52.3% 증가한 데 비해 조선인 농업 인구는 63.8% 늘어나 농업 인구 1인당 미곡 생산량은 감소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또 일본인들이 비옥한 경작 지역에 집중해 조선 논의 5분의 1을 소유하고 있어 조선인에게 돌아갈 소득이 매우 적었다는 것, 그리고 근대적 공장공업의 80%가 일본인 소유였다는 것, 그리고 광복 직후 조선의 1인당 국민총생산이 616달러로, 1911년의 777달러에도 못미쳤다는 것, (충남대 허수열), 인도차이나 반도의 식민지 국가들보다 민생 예산은 적었고, 치안과 행정력 유지에 들어간 예산은 훨씬 더 많았다는 것, 일반사망률 지표를 보면 조선은 23%로 말레이시아(21)나 타이(22)보다 높았으며, 1937~1939년 1인당 구입 가능한 미곡량에서도, 조선은 91㎏으로 타이(181), 인도차이나 지역(140), 필리핀(97)에 비해 적었다는 것, 신장 증감률에서도 1920년대생부터 키가 줄다가 1950년대 초반 이 추세가 반전됐다는 (영국 런던대 앤 부스) ‘객관적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뉴또라이트들은 오히려 지금 명박정부 아래서 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렴하기 짝이없는 명박이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되는 서글픈 현 시대와 사회가 낳은, 역사에 대한 ‘강간범’일뿐입니다. 역사를 ‘능욕’하는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객관적 사실’로서의 일제시대 역사는 현재의 우리와 ‘대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뉴또라이트와 수구세력의 역사왜곡 책동을 분쇄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희망차고 발전된 미래를 열어가라고…. 그것이 지금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제 식민의 역사를 대하고 해석하는 본연의 자세일 것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작에 자주 좀 올려주셨어야 하는데요^^ 저의 은사이신 강만길 선생님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데, 무엇을 위해 대화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가 너무나 교묘해서 일반인들은 그들의 글만 읽으면 그냥 넘어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저는 역사 교사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봤습니다. ㅠㅠ
앞부분의 역사철학과 뒷부분의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을 억지로 꿰어맞춘 글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장황한 수치를 늘어놓으면 일반인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쉬운 게 사실이지요. 식민지근대화론 분쇄를 위해서는 '근대'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부터 다시 하면서 우리나라의 '전근대'(?)가 우리에게 남겼던 것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