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같다’ 했는데,
꿈속에서는 실제로 일이 없거늘 이것을 실제라고 여기다가
깨어난 뒤에 없는 것임을 알고 혼자 웃는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結使]의 꿈속에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없지만
집착하다가 도를 얻어 깨어난 뒤에는 비로소 실제로는 없는 것임을 알고 혼자 웃는다.
이런 까닭에 ‘꿈과 같다’고 말한다.
또한 꿈은 잠의 힘 때문에 아무런 법도 없는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명이라는 잠의 힘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있다고 보나니,
이른바 나/내 것/남자/여자 등이다.
또한 꿈속에는 기쁠 것이 없는데 기뻐하고,
성낼 것이 없는데 성내고,
두려울 것이 없는데 두려워한다.
삼계의 중생도 그와 같아서 무명의 잠 때문에 성내지 않을 일에 성내고,
기뻐하지 않을 일에 기뻐하고, 두려워 않을 일에 두려워한다.
또한 꿈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몸이 고르지 못하거나 열기가 많으면 꿈에 불을 보거나 노란빛과 붉은빛을 보는 일이 많고,
냉기가 많으면 물을 보거나 흰빛을 보는 일이 많으며,
풍기가 많으면 꿈에 날아다니거나 검은빛을 보는 일이 많다.
또한 듣거나 본 일을 많이 생각하면 곧 꿈에서 보게 되며,
혹은 신[天]이 꿈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섯 가지 꿈은 모두가 실제의 일이 없거늘 거짓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다섯 길[吾道]의 중생은 신견(身見)의 힘을 인연하는 까닭에
네 가지 나를 보게 되니,
이른바 ‘색음(色陰)이 곧 나인가,’
‘색이 곧 내 것인가,’
‘나 가운데 색인가,’
‘색 가운데 나인가’ 한다.
색과 마찬가지로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그와 같으니,
결국 넷에 다섯을 곱해 모두 스무 가지가 된다.
그러나 도를 얻은 진실한 지혜로 깨달으면 실체란 없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