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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투어 국가보훈처 KO-RAIL에서 기획-수립-후원되어 하나투어 문화재단 &(사)독립유공자유족회가 협력해서 지구별 ★ 여행학교 희망여행프로젝트를 독립유공자 후손 & 이리 남초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임시정부 발자취 역사탐방이 2019.12.11(수)~13(금), 2박3일간
뜻 깊은 시간 시간이 되었다. 특히 인천공항 만남의 장소에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이리남초등학교 5~6학년생 11명은 너무나도 순박하고도 귀여웠고 첫 해외 역사탐방에 꿈이 차 있었음을 느꼈다. 권미숙교장선생님과
이득승(남),손은(여)두 지도교사가 학생들을 돌봄이로 따라오셨다.
정말 학생들을 당신들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는 분들이시다.
편집기자(Essayist) 양세희님께서
사진과 상해의 가는 곳곳마다 인터넷을 읽고 현지의 실물과 비교
검토하시는 꼼꼼함도 보여주셨다.
유족은(7명) 홍주현 김세걸 우용준 최숙경 양혜신 태현식 황긍재였다. 3개월 전 이리 남초교 권미숙교장선생님의 건의를 하나투어의 Chief Manager 김정민 과장께서 쾌히 받아들여 계획 했다고 한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상해 탐방프로젝트를 성공리에 후원 단체의 결재도 득했다고 한다. 어린 이리 남초등학교는 1학년~ 6학년까지 총원 33명의 소수이고
농촌의 학생들로서 부모님과 해외
여행은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가이드까지 총23명의 구룹투어다.
10시20분에 인천공항 3층서
만나다. 우선 환전소에서 189.47원=1위안으로 바꾸었다. 첵크인하여 비행기에 탑승수속
끝나고 12:55이룩하여 1시간 지나니 13:55상해
공항이다. 제주도나 마찬가지 거리로 바다 한번 건너니 도착 착륙한다. 시차는 1시간 한국보다 늦다. 현지가이드 '이미나'가 반겨 주었고, 한국어 잘하고 싹싹한 조선족이다. 학생1명이 백팩이 짐 찾는데 안나온 것이다. 수하물 Claim 센타에 가서 가이드와 중국서 귀화한 우용준대의원이 가서 요구했다. CCTV로 확인하니 구석에 걸려 안나온게 확인되어 찾아서 버스로 와 모두 환호의 박수로 기뻐하며 버스가 식당으로 /유명한 동방명주 타워 쪽으로 20분쯤 달렸을까?~"내짐 2개! 안 실었다! 어쩌지요? 황이사님! 모르시나요?!" 첵크아웃 해 짐찾는 공항대합실서 담배피우러 나간 (H) 한분이 대합실에서 8번출구 밖으로 나갈때 일행 <T>에게 짐보따리 2개를 봐달라고 했건만~가이드 따라서 버스타러 한층 올라가 6번출구로 나가 각자의 짐을 갖고 버스타러 이동시 부탁 받은 (T) 사람이 자기 짐만 갖고 와서 버스짐칸에 싣고
승차한 것이다.~~~~
버스를 되돌려 공항으로 되돌아가니, 짐봇따리 2개를 중국 공안 4명이 둘러싸서 지키고 있어 찼았다고 한다. 공산 국가의 사회는 남의 물건을 가져가면 큰일 나는 일이 있나보죠? 찾아 오는 짐 위수탁자 2명과 현지가이드
모두 일행의 박수를 받고, 두번째
해피 해프닝이 있었다.(16:00)
버스에서 간단한 중국말 배우기를 하고는~중국의 자랑거리인
만리장성, 인공대운하, 1994년 세운 동방명주 (중앙방송방송탑) 탑=467m <회전하는 일반전망대 267m>
{참고로,중국의 제일 높은건물은 632m, 세계2위} '황포강' 유람선 타며, 보는 "밤야경", 식사는 사천요리고, 실크, 은,자기, 차 등등 설명을 들었다. 동방명주 관광후
사천요리 식사 hao chi [하오츠;맛있다] 저녁식사를 잘 하고 20:12 유람선을 타러갔다. 100년 이상 된 구건물과 새로 신축한 초고층 건물등과 어울려진 황포강 좌우 네온 싸인 야경이 볼만했다, 평당 2억원하는 100평 면적의 200억원 상당의 아파트도 상해의 황포강을 View하는 주거공간이 있음을 들으니 상해는 부자만 살 수 있는 도시인듯 생각된다. 중국의 땅이 한국의 96배이고, 인구는 14억만명, 상해는 서울땅 크기의 10.5배란다. 상해인구는 24 백만 명,[충칭3천만, 북경21백만, 천진15백만, 광주14백만~~
] 상해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상업, 금융, 산업, 통신 중심지이기도하다. 20세기 초반엔 이미 뉴욕과 런던 다음 가는 세계적 금융 중심지이자 극동의 가장 큰 국제적 상업도시가 되었단다. 1949년 등소평이 중화인민공화국 을 건국한 후엔(장개석은 대만국가로 갈라짐) 중앙정부의 고세금 , 외국인 투자 중지 등이 겹쳐 한동안 쇄퇴했지만, 1992년 재개발 되면서 지금은 초기 경제 특구였던 심천과 광주를 능가, 중국의 경제중심도시로 다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미 차량 구입전 번호판 값을 내고 등록해야 하는데 숫자 8번이 제일 비싸다고 함. 번호판값이 평균 2천만원 이라고한다. 관광객 위해 상해의 야경 전기요금이 10억원중
90%는 정부에서 지불하고 10%는
기업 광고주들이 지불한다고 한다.
20:10 식당서 황포강으로 줄발했다
유람선 제일 높은 3층에서 황홀함에
동영상 3번 촬영후 1층 객실에서 차 한잔 하며~ 김구선생, 이봉창, 윤봉길 의사를 그려 보았다.
처가권속 다 버리고 살신구국의 일념만이 그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파묻혀서 일본인들을 피해 이렇게 먼 대국 이국 땅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1919년 4월11일] 수립하고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이봉창거사(1932.1/8)에 실패에 이어, 일제의 상하이사변 성공의
전승경축식과 (1932.1/28)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1932.4/29)에 윤봉길의사가 물통폭탄을 정확히 투척 성공 몰살시킴으로 중국의 수많은 군사도 일제 저지에 패한 것을 윤봉길 의사 혼자서 상해사변 원융들을 없앤 공로의 치하에 등소평과 그 당시 100만의 군대를 거느린 장개석도 인정 칭찬했고, 돕겠다 약속했다고 한다. 전 세계가 우리의 거사에 귀를 기울인 현장으로 내일 갈 것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피곤한 몸이나 상해와 1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에 5성급 호털에서 자게 됨을 고. 독립운동 애국지사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D+1Day (12월12일) 07시30분
상해☞가흥; 임시정부/김구 피난처 에 갔다.
윤봉길의사가 성공적인 의거로 일제의 탄압은 더 심해졌고 김구선생을 현상금부쳐 쫓기는 신세로 13년간의 상해를 정리 후 양자강 주변도시 중국국민당 정부가 몰래 제공한 가흥으로 피신시켜 주었다. 저보성의 양아들 진동생의 주택(청나라 말기 중화민국초기에 지은 건축물)한국 독립기념관과 가흥시 문물관리소가 협력 보수공사를 20004년 완료했다. 2001년 가흥시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했다. 2012년 현재의 모습으로 1층에는 김구선생의 동상과 독립운동의 내용을 담은 새로운 전시 시설이 보였다. 백범 김구의 사무보던 책상과 침대에 앉아서 박범께 감사하고 수고하셨다고 말을 걸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시다. 원래 과묵하신건지 죽은 자는 말이
없는것인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작은 비상구에서 강물에
띄어 놓은 배로 직접 승선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며, 위급시 도망갈 수 있는 작은 배가 신기했다.장신의 거구이신 김구선생님이 목욕하시던 욕탕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주방 등등 모두가 1919년~1932년 그리고 그후의 고된 생활고를 느낄 수 있었다.
홍커우공원 ('뤼슨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에 가서 나의 임무인 윤봉길의사의 "장부출가생불환" [사나이대장부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않는다.]휴다폰에 저장된 묵념 음악을 틀어 묵념을 하고, 모든
일행 앞에서 준비한 자료와 메모 한것을 힘 있게 목메어 설명했다! "윤봉길의사는 이시간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입시다! 윤봉길의사는 언제 여기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계속~1932년 4월 29일~처음 행사장에 입장시 경비원들이 입장권을 내보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일본말에 능숙한 윤봉길의사는,'와다구시와 니혼진데스! 일본사람이 일본왕 생일축하 행사장에 들어가는데 무슨 입장권이 필요하단 말인가!.'하고, 큰소리치고 07시50분 미리 봐 두었던 자리에 가서 서서 ~폭탄을 터트려~상하이 사변 원흉들과 주요인물들을 성공적으로 처단했던 큰 일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 1937중일전쟁때 공원내의 건물이 파괴되었고, 1942년 일본군의
군사용지로 사용하다 1945 일본군 패망후, 장제스에 의해 중정공원이라고 개칭 되었으나 1950년 다시 옛 이름인 홍커우이라고 불렀다. 공원이
아름답고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있고 베드민턴 등도 즐긴다. 이쁜 외국인 여자 두 여성과도 환담과 사진(폴란드& 프랑스) 찍고 내 명함 주고는 속히 일행들의 뒤를 겨우 찾았다. 그 담에는 마지막 코스
☞ 상해 임시정부청사 &신천지로 향했다. 독립투사들의 행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우리나라의 임시청사로 사용했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이 있는 곳. 상하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던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들이
활동하던 곳이다.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4월13일 한성 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중 이곳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청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는 신천지 스타일 후문
부근에 위치해 있다. 신천지에 왔기에 잊지않고 이곳을 방문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그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군 분투했을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애국의 마음을 다져봤다.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쇼핑센터
들이 자리한 신천지는주변분위기에 좋은 테라스 카페, 바, 레스토랑, 갤러리, 등이 즐비했다. 상하이의 이태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로 유럽풍의 건물이 많이 보였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상하이 작은 Europe'이라고 말들
한다고 한다. 상해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석고문, 스쿠먼 가옥과
유럽식의 주택양식이 결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최근에는
이러한 석고문 가옥들에는 유명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들어와 현대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많은 사진을 찍고서
밀집되어있는 남대문 시장같은 쇼핑가로 한참을 걸어갔다. 쇼핑 끝나고 버스타러 일행을 뒤따르다가
신천지 거리에서 나와 2명의 여성 유족 Y & C 길을 잊어 안절부절 하니 일행중 태현식군이 찾으러 와
줘서 해결이됐다.신천지 거리는 버스가 오래 정차가 안되는고로 단체행동 조심해야 됨을 반성했다. 6조로편성해, 각조당 스텝1,조장(유족)1(220위안을 하나투어에서 기부 받음 ),이천 남초등학교생2명으로 조직
/각 유족조장은
두명의 학생에게 1인당 60위안의
(2개 120위안) 선물을 사서 저녁식사후 선물교환하기로함. 그 반면에 학생 두명도 각자가 조장에게 60위안 (한화11,000원정도)의 선물을 사서 주는 이벤트 행사다.
나는 고심 끝에 가죽으로 만든 소형
황소 동전지갑과 올빼미 모양 동전지갑을 한개당 68위안 주고
두개(136위안)를 샀다. 윤봉길의 물폭탄과 비슷해서 선택 구입한 것이다~~
★호텔 식당에서 파티(크리스마스캐롤 송 나오고~)
저녁식사가 끝나고 즐거운 행사시
우리 5조 차례가 왔다.
5학년 서제영010 5638 6236
6학년 이도규 010 7620 6557 앞에서 내선물을 주고 학생들이 주는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노래를 흥겹게 불렀다. "숲속 작은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마리가 달려와 문두드리며 하는 말,~"날 좀 살려 주세요.~2회~날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와서 총을 빵~! 쏜데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노래를 흥있게 마쳤다. 한 학생은 동방명주타워를 중심으로 멋진 입체형 사진과 작은 로봇, 또 다른 학생은 윤봉길 주머니 시계 와" I LOVE♥SH"키 체인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윤봉길이 던진 물폭탄이 생각나서 이 가죽
동전지갑을 선택 했으니, 나라를 새랑했던 김구 이봉창 윤봉길과 임정부 요인들을 잊지말기를 바라며 모든 이리남초등교장선생님과 두교사님들 그리고 에세이스트님
하나투어 김정민 췹메니저님과
독립유공자유족분들께 메리크리스마스♥!!!이런 스케즐에
동의 해 주시고 후원 해주시며~
브리핑의 주요 맥락까지 공훈록 책 찾아서 코치 해 주신 (사)독립유공자유족회회장이시고,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의100인중 한분의 발전의원 되시며
3.1운동 거사 100주년기념탑 건립위원회 회장님이신 김삼열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의 역사탐방의 시종일관 계획 과 진행 모두 Smart하게 안전하게
진행 해 주신 하나투어 김정민
Chief Manager 의 수고와 친철하심 재삼 감사드립니다.
얼마 안 남은 2019년도 잘보내세요. 화이팅! Merry Christmas ♥! 감사드립니다.
D+2 일(13일) 9시30분 호텔 첵크아웃 하고, 14시30분 상해를
출국하여 15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나투어 김정민과장의
대표인사가 끝나고 서로간 인사후
헤어졌다. 감사합니다.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2019년 12월 14일
(사)독립유공자유족회
상임이사 황긍재 올림
첫댓글 대한민국의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심어주시기 위해
이역만리 중국땅까지 인솔하며 다녀오신 황긍재 이사님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외조카님♥! 외할아버지 카페를 잘 작성하시고 계시는데
제가 신경 못써 죄송해요.
권숙자 여성교장 선생님의 취미가 서각이라
좋았죠.
올 지나서 은퇴 하신다고 마지막 인사에 눈시울을
적시더라고요.
아이들 사랑이 남다르심에 감명 깊었죠.
체끼가 있는
학생 데려다 약먹이고
바늘로 양쪽 따서 피내시고~~
교역자는 독립운동 하시는 것보다 힝드실 것 같더군요
남다른 사명감도 따라줘야 스승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