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입시전쟁 잔혹사』
1. 2009년 발간된 강준만의 <입시전쟁 잔혹사>는 출세와 성공 그리고 계급투쟁의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교두보를 선취하기 위한 ‘입시전쟁’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입시를 통해 명문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일생을 좌우하는 일이었고, 개인의 삶에 분명한 족적을 제시하는 치명적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입시일은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출퇴근이 조정되며, 거리의 교통이 통제되는 것이다. 시험을 통한 경쟁 결과는 누군가에는 환호를, 누군가에는 좌절을 안겨주며, 우리 시대에 일정한 사회지위적 구분과 계급적 위계를 규정짓는 척도로 작용하였다.
2. 소위 SKY라는 명문대 진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출세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대한민국 파워엘리트의 대부분이 SKY 출신이라는 조사는 SKY의 현재적 위상을 강화시켰고, 끊임없이 입시생들의 선호를 통하여 확산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서울대 공화국’, ‘SKY 공화국’으로 변모하였다. 어느 나라든 특정 대학 출신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를 제공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그것은 다만 입시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공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명문대에 진학하여 그들의 ‘카르텔’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3. 명문대 진학을 둘러싼 입시생들의 심각한 부담을 덜어주고, 지나친 경쟁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교육개혁’, ‘입시개혁’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어떤 개혁이든, 서열이 분명하고 엄청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들이 존재하는 한, 어떤 입시든 ‘줄세우기’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육개혁의 핵심은 ‘입시제도’가 아니라, ‘서울대’, 또는 ‘SKY'의 특권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서울대를 비롯하여 전국의 국립대를 ’네트워크‘로 묶어 통합적으로 관리하자는 견해나,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의 정원을 감축하여 확산되는 영향력을 축소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서울대 개혁 프로그램은 항상 서울대 출신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정계, 학계, 언론계, 관료들의 저항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들은 항상 말한다. 서울대 개혁은 ’하향평준화‘를 가져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4. 강준만은 서울대 출신 권력자들의 탐욕뿐 아니라 진보인사들의 교육관도 비평한다. ‘학벌사회’를 철폐하자는 소위 ‘진보적 근본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모든 학벌을 없애 평등한 대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공허하다. 기득권이 철저하게 자리잡은 교육계에 대한 이들의 주장은 다만 대안없는 ‘주장을 위한 주장’에 불과하며, 다만 자신들의 철학을 설파하는 일종의 독백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는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개혁은 SKY 대학, 특히 서울대의 정원을 축소하여 ‘소수정예주의’로 운영하여 이들의 영향력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축소가 오히려 심각한 입시경쟁을 가져온다는 ‘진보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경쟁을 없앨 수 없는 현실적 상황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은 SKY 대학 정원을 축소하여 이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다수의 대학들이 같이 경쟁하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5. ‘대학입시’는 철저하게 인간의 탐욕과 성공의 가능성이 결합하여 작동되는 공간이다. 대학입시의 문제점을 공격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사들은 몰래 특수학교나 유학 그리고 편법을 통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최근 ‘조국’의 몰락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이다. 더 큰 문제는 자녀에 대한 불법적인 교육이나 탐욕을 ‘부모의 마음’이라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다. 온정주의와 타인에 대한 관용이 잘못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우리의 교육, 특히 대학입시는 망가져버렸고,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와 관련되어 만들어진 가능성과 야망은 잘못된 교육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를 망각시켰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녀의 입시가 끝나면 대부분 ‘대학입시’ 문제에는 무관심해진다. 그러한 탐욕과 무지 속에서 특정 학교를 둘러싼 권력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학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6. 대학입시를 둘러싸고 벌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을 보면서, 대학의 서열을 바꿀 획기적인 방법과 능력이 부족하다면, 대학입시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나가는 쪽으로 입시제도가 개정해야 할 것이다. 단순하고 분명하게 입시제도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학생들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수많은 개혁 정책이 입시생들에게 혼돈과 좌절을 가져오고, 복잡한 정책을 이해 못한 학부모들의 불안을 이용하여 사교육의 확장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첫댓글 --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무기 명문대 졸업장,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사건 속에 매몰되어가는 시간. 출발선의 정의와 평등을 위해 수많은 노력들이 있어 왔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