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거짓 신호
Hypocrisy 偽善
위선(僞善)은 착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착하지 않은 것이다. 거짓 선인 위선은 언행의 표현과 실제가 다른 것이다. 위선의 도덕적 기준과 선(good, 善)의 도덕적 기준은 같다. 모든 문화권에서 선의 기준은 올바르고 착한 도덕이다. 도덕적 선은 평범한 사람들의 양심과 사회적 관습에 비추어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다. 그러니까 선은 실제 실행을 전제로 한다. 착한 사람의 뜻은 (마음이 착하다는 뜻보다는) 실제 착한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위선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착한 척하는 사람인 위선자는, 드러난 언행의 표현과 실제가 괴리되는 이중성을 보였을 때 쓰는 말이다. 위선은 한 사람의 부분적 언행에만 해당할 수도 있고 전체적 언행에도 해당할 수도 있다. 위선을 행한 사람을 위선자라고 한다. 위선자(hypocrite, 僞善者)의 위선은 선을 가장하여 타인을 기만하고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조작한 행위다.
위선은 ‘a.실제로는 선하지 않은 자기, b.표면적으로는 선한 자기’의 인격적 이중성으로 드러난다. 이중인격(dual personality, 二重人格)은 한 사람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교하게 조작하여 자신을 선(善)하게 연출하는 것이다. 위선적 이중인격은 정신분열증이나 정체성 장애와는 다르다. 정신분열증이나 정체성 장애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인 것과 달리 위선적 이중인격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다. 위선적 이중인격은 정신분석학자 융(C.G. Jung)이 말하는 남성의 여성적 아니마와 여성의 남성적 아니무스와 같은 성격의 이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위선적 이중인격은 ‘a.실제로는 선하지 않은 자기’가 ‘b.표면적으로는 선한 자기’를 연출하여 좋은 평판과 이익을 얻고자 하는 위장과 기만이다. 원래 위선은 타인을 속이는 행위지만 의도적인 자기분열과 자기기만이기도 하다.
자기기만은 자기가 자기를 속인다는 뜻으로, 자신의 신념, 도덕, 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위선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조작된 기만이다. 그래서 위선은 단순한 거짓말보다 더 강한 비난을 받는다. 예일대학에서는 거짓신호이론(Theory of False Signaling)으로 위선을 분석했다. 원래 신호이론은 의사소통이론 중 신호의 기능에 대한 이론인데 이를 발전시킨 거짓신호이론은 거짓 신호가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이다. 거짓신호는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의사소통을 교란한다. 연구자 조던과 소머스는 환경운동가를 예로 들었다. 환경운동가는 직장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하지 않는 동료를 비난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환경운동가는 집에서 쓰레기 재활용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중적 기준을 가진 두 얼굴의 위선자였다. 그렇다면 이 환경운동가의 동료 비난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위선적 환경운동가를 거짓말한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은 거짓말인 기만보다 조작된 위선을 더 부정적으로 보는 또 다른 도덕적 기준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운동가에 대한 도덕적 권위와 지지를 철회하고 강력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환경운동가가 직장에서 쓰레기 재활용하지 않는 동료를 비난한 것과 자신이 집에서 쓰레기 재활용하지 않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 오히려 직장 동료에게 쓰레기 재활용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고 재활용하도록 한 것은 권장할만한 언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작된 위선으로 선을 가장했기 때문에 더 큰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사람들은 정직한 신호(honest signaling)를 발신하지 않고 부정직한 신호(dishonest signaling)를 발신하여 의사소통을 교란한 사람을 강력하게 비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위선은 단순히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나쁜 언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이중적 기만이다. 위선은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강한 도덕적 거짓 신호다. 위선자를 비난하는 강도는 위선에 비례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의사소통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훼손한 것을 거짓말보다 더 큰 문제로 여긴다. 그래서 부정직한 신호를 보낸 위선자보다 정직한 위선자가 덜 비난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집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하지 못하지만, 당신들은 쓰레기 재활용하지 않았으니 비난받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덜 위선적으로 여긴다. 한편 위선자는 정교하게 조작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자기기만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반면 마키아벨리(N. Machiavelli)의 예에서 보듯이 정치적 위선이나 사회적 위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김승환)
*참고문헌 Jordan, J. J., Sommers, R., Bloom, P., & Rand, D. G. (2017). “Why do we hate hypocrites? Evidence for a theory of false signaling”, Psychological Science, 28(3), 356-368.
*참조 <도덕>, <마키아벨리즘>, <선>,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정체성>, <자기기만>, <자기부정>, <정신분열증>, <정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