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에 다녀 오다.>
결혼식에 다녀 왔다. 예식장이 서울 헤화동 <엘가 모아>란 예식장이었는데 건물이 아주 아름다운 것이 마치 외국 어느 성지 순례를 온듯한 기분이들었다. 규모는 아담하였지만 말이다.
미리 차표를 예약하지 않았더니, 모바일로 표를 구하려 했더니 08시부터 10시사이의 표는 모두 매진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매표소까지 가서 남부 터미널은 어떤가 알아 보았더니 역시 마찬가지 였다. 동서울로 가는 표도 07시 05분 것이 있어서 다행이 한장을 구입하여 두었다. 아침 일찍 올라가도 예식 시간이 12시 30분이라서 기다리는 시간이 어처구니 없이 많아서 걱정도 했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한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서울 살던 인맥을 이용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고전 연구회 소속의 ㅂ교수를 불러서 차를 한잔 하려고 했으나 그도 역시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는 귀하신 몸이라 쉽지가 않을 터인데....
아침시간은 혼자서 해결하기로 하고 서울행을 했다.
세월이 정말 달려가는 적토마 같고 항우가 타던 오추마 같이 쉬지도 않고 잘도 달려간다.
오늘 혼주인 ㄱ 는 99년도 내가 항공여단장 시절 여단 인사 참모였던 사람이다. 그 인사 참모였던 부하장교의 첫 딸이 오늘 결혼식을 올렸다. 몇해 전인가 그의 아버님이 별세 하셨을 당시 장암동 어딘가에 살고 있었는데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고 있을 당시 다녀왔는데 그 당시 그는 원양 어선의 탑재 헬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였는데 충주 어딘가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지어 보겠노라고 하더니 지금은 산림청 항공대에 근무를 하는데 근무지가 안동이라고 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이 대부분 그의 친구들인지라 나와는 연령대가 10년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80년대 나의 부하였던 사람과 90년대 부하였던 사람, 그리고 그후 2천년대의 근무 동료들.....
친척 일부를 제하고는 하객중에 내가 제일 연장자라서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잘 견디고 나왔다. 젊은 이들의 자녀들 답게 예식 절차가 달랐다. 주례선생도 없고 신랑 신부가 만든 영상을 시청하고 서로 사랑의 맹세를 낭독하고 신랑과 신부의 아버지가나와서 결혼하는 자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신부 아버지 친구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나와서 축가를 하는 것도 보기가 괜찮았다
축하객 중에 그 당시에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 그 시절 이야기, 최근 근황들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 늦게 귀가를 했다. 젊게만 여겨지던 그 사람들이 한갑이 된다고 하니 새삼 수유같은 세월을 실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