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평발
백현숙
꿈에서도 오고 싶지 않은 곳, 여기는 응급실이다. 새벽녘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이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꾸 제자리에 꼬꾸라졌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부랴부랴 병원에 와서 이것저것 검사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구석에 자리한 침대에서 설핏 잠들어 있는 남편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어수선한 응급실 분위기에 위축되어 휘청거리는 눈을 둘 데가 없다. 이불 밖으로 삐죽이 삐쳐 나온 남편의 발을 들여다본다.
삼십 육 년 전,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눈부시던 오월의 어느 날, 시장 근처의 이 층 다방에서 맞선을 봤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커녕 이상형조차 꿈꿔보지 않은 숙맥인 두 사람은 선생 며느리를 구하는 시어머니와 점잖은 집안의 지차(之次) 아들을 사위로 원했던 친정어머니의 바람대로 천생연분 짝이 되었다. 가을에는 농사철이라 혼사를 치르기 힘드니 차라리 더 더워지기 전에 식을 올리자는 시부모님의 재촉을 거절하지 못했다.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결혼식을 치르고 부부가 되다 보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 나는 혼자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당시에는 여자가 안경을 끼는 것이 결혼 조건에서 흠이었다. 나는 시력이 나빠서 렌즈를 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남편 몰래 아침에는 렌즈를 끼고, 저녁에는 빼느라 꽤 고생했다. 방학이나 명절 때 시댁인 시골에 가면 더 고역이었다. 몇 번의 들킬 고비를 넘긴 후,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눈이 나쁘다는 고백을 하고 대성통곡을 하며 엉엉 울었다. 별 큰일이 아니라는 듯 받아들이는 남편의 태도에 그간의 고생이 서러워서 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후로 대놓고 안경을 끼지만, 시댁 식구 누구도 내가 속인 걸 두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남편은 평발을 속였다. 나는 평발이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발을 보았고 편평하게 생긴 발바닥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발이 왜 이러냐고 물었지만,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 없이 얼른 발을 숨겼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냥 사람마다 신체의 모습이 다르듯이 남편의 발이 유독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게 남편의 약점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평발은 발바닥에 있는 아치형 모양의 장심이 뚜렷하지 않아 발바닥 전체가 평평한 발이다. 정상인은 장심이 잘 드러나 있어 걷거나 운동할 때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평발을 가진 사람은 오래 걸으면 힘들어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지며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끼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보청기를 끼면 되듯이 평발을 가진 사람은 어릴 때 신발에 교정 깔창을 끼워 신으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남편은 자신의 발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어릴 때 뛰어다니거나 오래 걸으면 발이 아팠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농사를 지으면서 양조장을 운영했던 부모님은 칠 남매 중 여섯째 아들의 발바닥에까지 눈길을 주지 못하셨다. 군대 갈 즈음이 되어 비로소 자신의 발이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발의 실체를 알고 난 뒤에 남편이 나를 속이고 결혼했다고 지청구를 해댔다. 지인들과 모임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남편은 평발이라 군대에 못 가고 방위를 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 그의 치부를 장난삼아 드러냈다. 남들과 같이 등산을 하거나 하다못해 가까운 거리를 산책하더라도 항상 걸음이 뒤처졌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왜 그리 못 걷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허우대만 멀쩡하고 운동도 못 하는 남편이 부끄러웠다.
나는 결혼했지만, 임신이 늦어 삼십 대 초반에야 첫 아이를 가졌다. 그때는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던 시절이어서 삼십 대 산모는 노산이었다. 노산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들은 터라 걱정이 많았다.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무사히 아기를 낳을 수 있는지, 배 속의 아기가 정상적인 모습인지 물었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도 믿지 못하고 혼자서 속앓이를 했다. 아기를 낳고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이 정상인지 걱정하는 나와 달리 남편이 제일 먼저 찾아본 것은 아기의 발바닥이었다. 그동안 속내를 숨겼지만, 아기가 배 속에 있는 열 달 동안 제발 평발이 아니기를 바라고 기도했단다. 그의 깊은 곳에 그런 고민이 있었는지 몰랐다.
내가 시력이 안 좋은 것과 그의 발이 평발인 것의 차이가 무어라고. 내가 눈이 나쁜 것은 괜찮고 남편이 평발인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나는 무조건 옳다는 꼰대 정신으로 세상을 대하고 살았다. 가랑잎이 솔잎에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더니 꼭 나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뼈아픈 교훈이다. 나는 시력이 나빠 렌즈를 꼈다고 이실직고했을 때 말없이 받아들여 준 남편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아름을 날린 박지성 선수도 평발을 가졌다. 운동선수에게 특히, 지치도록 뛰어야 하는 축구선수에게 평발은 치명적인 약점이겠지만, 그는 극복해냈다. 다름을 인정하고 최고의 경기를 펼치고자 노력하며, 자신감과 정신력으로 세계 제패를 이루어냈다. 아내의 철없는 구박을 다 받아주고 다른 사람의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온 남편 또한 진정한 승자이다. 참 열심히 살아온 남편에게 박수를 보낸다.
병원 문을 나선다. 건물들 사이로 해가 붉은 빛으로 걸쳐져 있다. 돌아보니 초췌한 그의 얼굴에도 노을이 내려앉았다. 조금은 겸연쩍어하는 남편의 얼굴과 떨떠름한 내 표정이 마주 보고 웃는다. 뇌졸중인가 싶어 정밀 검사를 했지만, 체한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안심되는 동시에 호들갑을 떤 남편에게 살짝 미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반신불수 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음이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평발인들 어떠리. 조금 더디 가더라도 이렇게 뚜벅뚜벅 같이 걸어 나갈 수 있어 감사하다.
(《수필문예》 제19집, 2020.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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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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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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