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의 시 <청포도>에
"청포를 입은 손님이 고달픈 몸으로 배를 타고 온다"는 이미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이것이 두보의 시 <徒步歸行>에 "靑袍朝士最困者"와 <至後>에 "靑袍白馬有何意", 그리고 <草堂>에 <門泊東吳萬理船>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두보의 시어를 철저히 이용하여 쓴 석북 신광수의 <登岳陽樓嘆關山戎馬>중 "靑袍一上萬里船 洞庭如天波始秋"(푸른도포 입고 만리를 떠돌아다닐 배에 오르니 하늘같이 넓은 동정호에 가을 물결이 일어난다.)에서 온 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석북이 두보의 시어를 차용했 듯이 한시를 공부한 육사가 두보나 석북의 시어를 차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남엔 두시를 읽은 선비는 있어도 석북을 아는 선비가 없는데 육사는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석북을 접할 수 있었을까?
이에 의문을 가지던 중 나는 우연히 신광수와 신석초의 씨족관계에 그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해서 요즘 자주 만나는 석북연구자인 안동대 신두환 한문과 교수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내게 신광수는 신석초 시인의 6대조라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육사가 친하게 지냈던 문우 신석초를 통해 6대조 신광수의 문집을 읽을 수 있었겠구나! 한시를 지을 정도로 한문에 능했던 육사가 한 때 두보와 석북에 푹 빠져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