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부산 출생. 대학 졸업 후 연구직 공무원으로 근무 중 임신으로 퇴직, 두 아이 육아에만 몰두하다가 삼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다. 귀국 후 식음료 회사 홍보실에서 5년여 근무한 뒤 독립해서 필디자인연구소를 설립,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커뮤니케이션아트와 색채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석사를 마친다. 우연한 기회에 '솟대'란 제목의 시가 가곡으로 작곡이 되어 문단과 인연을 맺는다. 2003년 월간 시사문단지에 시'할머니의 금가락지' 외 3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현대시인협회와 예술가곡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필디자인연구소 대표, 서울시 도시디자인위원회와 도시공원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있다.
가곡 '솟대'에 얽힌 얘기는 조각 이불의 조각처럼 많기도 하고 햇수로 치면 길기도 합니다. 모든 개인적 경험이 그러하듯 저에게는 소중한 감동의 단면들이지만 타인에게 내보일 만큼 공감할 거리는 아닌듯해서 대화 속에서만 몇 번 거론한 적이 있고 글로 남긴 적은 없었습니다. 일전에 어느 가곡 애호가께서 가곡 '솟대'에 얽힌 얘기를 궁금해하신 일도 있고 해서 이참에 제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 둘 짜 맞추어 적어 보겠습니다.
2003년 4월로 기억하는데 안면도에 저의 일 관련으로 프로젝트가 생겨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일 년 가까이 왕래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은 일터로 갈 때 보아 두었던 풍경이나 도로표지판에 이끌려 돌아올 때 일부러 그곳에 들러 보곤 했지요. 그날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간월도(看月島) 표지판을 보고는 그쪽으로 꺾어 들어갔습니다. 간월도는 비끼는 저녁 햇살에 검붉게 물든 소나무 숲이 무척 아름다운 육지섬이었습니다.
섬을 한 바퀴 돌다가 해안가 도로변에 줄지어 선 솟대들을 보았지요. 어떤 행사에서 소임을 다하고 행사 끝난 후 묵묵히 서 있는 듯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솟대들이 당당하고 멋스러웠지요.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간절함도 서려 있었구요. 장대 위에 앉은 새들의 시선이 먼 수평선을 향하고 있어서 더욱 간절해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 2시간 반의 상경길 내내 따라오던 솟대의 잔영은 좀처럼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귀가하자 말자 그 아련하고도 모호한 느낌을 긁적거렸습니다.
얼마나 아리면 저리도 기인 꼿발로 섰을까 가슴에 안으면 저려서 가슴에 묻으면 아려서 기인 기다림 풀어풀어 기러기 나래 위에 올려놓았나 행여 높으면 보이려나 나래 타면 행여 닿으려나 오늘도 기인 기다림 속절없이 높아만 가고 한 뼘 길어진 꼿발은 아린 가슴으로 야위어 가는가
자문자답 식으로 써 내려간 자유시였지요. 기다림과 그리움을 꼿발(까치발)로 표현해서 간절함을 형상화 시켰는데 솟대를 의인화하니 감정이입이 자연스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찍은 사진과 시를 당시 활동하던 '내 마음의 노래'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 긁적거린 글을 작곡가 이안삼 선생님께서 보시고 곡을 붙이고 싶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시와 노랫말은 차이가 있으므로 작곡을 하신다면 노랫말로 수정해 드리려고 며칠 간의 말미를 얻어 시를 노랫말로 바꾸는 작업을 했고 미흡한 부분은 이안삼 선생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작곡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녹음은 테너 박세원 교수가 피아노는 권경순 교수께서 맡아 주셨고 그해 9월에 한국예술가곡연합회 신작가곡 제1집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예술의전당에서 '2003년 MBC 가곡의 밤'에 신작으로는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날 공연도 박세원 교수가 김덕기 씨가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의 반주로 연주되었습니다.
이후 가곡 '솟대'는 가곡 애호가들의 성원에 힘입어 KBS FM 정다운 가곡 시간에 방송빈도가 높은 곡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지금까지도 애호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곡이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게 시심을 일으켜 준 간월도 솟대 입니다. 마지막 사진 두 장은 가곡 '솟대' 애호가 한 분이 손수 깎아서 제게 보내주신 건데 이 솟대는 '안산시립합창단 한국가곡 제3집' 음반 표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솟대를 깎으신 분은 지금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의 솟대는 가곡 '솟대'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 이글은 가곡 애호가 아이반호 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게된 글임을 밝힙니다, 아이반호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배경 음악은 안산시립합창단(지휘: 박신화)이 연주한 합창곡 '솟대'입니다.
첫댓글 김평은선생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