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우리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중국 북겨에서 세례를 받으며 공식적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정조 때인 1791년부터 1886년 조불수호 통상조약이 맺어질 때까지 거의 100년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박해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은 천주교를 사학, 곧 사악한 종교로 규정하고 이를 신봉하거나 따르는 이들은 지위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죄인으로 취급하여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신분 박탈과 재산 몰수, 귀양과 처형 등의 형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배교하여 살아남고, 누구는 신앙을 지켜 순교하고,
누구는 고발하고 누구는 잡혀가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신앙을 지키고자 집과 재산을 버리고 먼 타향으로,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교우촌에서 신자들끼리 어울려 살며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신부님이 찾아오면 미사도 드릴 수 있어 좋았지만,
언제든 잡혀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경제적으로 궁핍함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박해자들은 순교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신앙을 말살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박해가 우리 선조 신앙인들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박해를 통해 "용광로 속의 금처럼 단련되어" 더욱 순수하고
강해졌으며 박해를 하면 할수록 그 신앙은, 그 복음은 조금씩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박해 시대 때 천주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신분과 재산, 인간관계만이 아니라 목숨까지 위협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어떻게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하여 만여 명에 달하는 순교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그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숨과 세상 모든 것은 천주님의 것이고,
천주님을 소유하는 것이 모든 것을 가지는 것, 참된 행복이라 여기며
천주님을 따르기 위해 주어지는 십자가를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영광으로 여기며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들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에 따라서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잘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의 삶에서 십자가는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지난 9월 14일에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누가 그 위에 계십니까?
바로 십자가 위에는 우리 예수님이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삶의 고통, 힘겨움이라는 십자가는 분명히 나 혼자서 겪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 길을 먼저 가신, 길 자체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또한 나의 가족들과 공동체가 기도와 힘을 실어주고 있고 함께 어려움에 동참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동참하고 계시고,
그 뒤에 김대건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와 우리 순교자들이 계십니다.
따라서, 혼자가 아니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 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바로 십자가는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십자가 하면 연상되는 것들은, 희생, 고통, 버림,
내 뜻과 욕심을 포기함, 관계가 어려운 가족 등등의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나를 완성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인간다운 삶으로 인도해 준 것들이었습니다.
분명합니다.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은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기꺼이 선택해서 살아갔을 때, 우리들의 삶에 후회도 없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영적으로 성장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즉,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속성, 십자가는 누구나 지고 가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따라서, 비교할 것도 불평할 것도 주저앉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안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며,
각자의 머리카락까지도 헤아리고 계신다는 말씀 안에서 희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이시기에 분명히 우리 각자의 십자가의 길을 나쁜 것이 아닌, 좋은 결실로 이끄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나의 십자가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십자가이고, 꼭 필요한 십자가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상에 부활과 생명, 희망이 왔듯이
또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을 바친 십자가로 인해 그분들은 성인들이 되시고, 오늘날 후손들의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가능해졌듯이 지금의 우리 각자의 이 십자가들은 우리를 새로운 재생의 삶으로, 부활의 삶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