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19-28 만나는 하나님의 시험 도구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배고픔에 호소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비 같이 내리게 해 주셨다.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으로써 날마다 가족 수대로 한 사람 당 한 오멜(약 2리터)씩 먹을 만큼만 거두는 것(4,16)이니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만나)을 남겨두지 말라”(19) 하루하루의 양식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식주에 대한 모든 염려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4)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에 순종하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지도자 모세에게 순종하지 않고(20) 만나의 일부를 아침까지 남겨두었다. 왜 순종하지 않고 아침까지 남겼을까? 2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의심이고 다른 하나는 욕심 때문이다. ❶‘만에 하나 내일 하나님이 만나(돈)를 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굶을 수밖에 없잖아!’라는 두려움/의심이 그들에게 있었다. 이런 두려움과 의심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남겨야만 했다.
(청중)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내 스스로 안전장치를 몰래 준비한다. 각종 보험, 노후대책, 적금, 비상금, 학자금 ….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지혜이다. 그러나 이런 준비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나머지 준비한 것이라면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다. 깊이 분별해 보길 바란다. *약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의심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뜻이다.
❷이스라엘이 만나를 남긴 이유는 의심뿐만 아니라 아껴서 내일 것까지 더 합쳐서 배불리 먹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는 내일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과한 욕심은 불신을 낳는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욕심(이기심)이 강해지면 내 주장/생각/논리가 강해지고, 그 생각/논리/주장을 고수하고 펼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다. 교만으로 발전한다. 사사건건 하나님과 부딪친다. 남기지 말라고 하는데 남긴다. 청개구리. 시소게임. *약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교만)를 낳고 죄(교만)가 장성한즉 사망(거절/불순종)을 낳느니라 /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욕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기쁨/행복)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
그들은 어제 남긴 만나를 먹을 수 있었을까? 그들의 계산대로라면 어제 것과 오늘 것까지 합하여 풍족하게 먹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계산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싱싱했던 만나를 다음날 아침이 되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도록 하셨기 때문(20)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는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불신(의심)과 욕심 때문이다. 슬픈 일이다. 이에 대해 리더 모세는 하나님과 동일한 심정으로 분노했다(20). 의심과 욕심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리더와 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의심과 욕심을 회개하라. 그리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나는 현재 그 말씀을 어느 정도 습득했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가?’를 자문하여 항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에게 계속 설교했다.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마다 2배의 오멜을 거두라! 일곱째 날은 거룩한(구별된) 안식일이니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고 쉬는 날이다.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아침까지 보관하여 그것을 먹으라. 안식일에는 들에 나가도 만나가 없으니 얻지 못할 것이다”(23-26)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만나를 수확해 본 결과,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리 싱싱한 만나라할지라도(신선도를 높였다할지라도)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났다. 그렇다면 어제 거둔 만나가 안식일 아침이라고 신선할 수 있겠는가? 없다. 따라서 남겨 놓아서는 안 된다. 모세의 설교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모세의 명령대로 다음날 안식일 아침까지 보관했다. 안식일 만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해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야할 만나가 어떤 냄새도 벌레도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신선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과학적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들로 나갔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부지런하다고 칭찬을 해 주어야 할까? 하나님은 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셨는가?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28)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부정적이셨고, 동시에 몹시 화를 내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했다. “불신증후군”, “순종불감증”에 걸려 있었다. 불순종하여 들로 나간 그들은 만나를 얻었는가? 역시 전혀 얻지 못했다(27). 하나님께서 내려주지 않은 만나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청중) 우리는 재물이 부자에게 속한 것 같고, 열심히 일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부지런하면 부하게 된다고 성경도 인정한다(잠 10:4, 12:27). 하지만 우리는 만나를 통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재물의 공급자가 누구이며, 그 재물은 누구의 통제를 받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나는 사람이 생산한 음식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먹을거리이다.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다.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얻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얻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많이 거둔다고 남는 것도 아니었고, 남겨 둔다고 해서 축적되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거두고 싶을 때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아침에만 거둘 수 있었다. 여섯째 날에는 2인분을 거둬들어야 했고, 안식일에는 거두고 싶어도 걷을 수 없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재물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재물은 철저히 하나님이 공급하시며, 하나님의 통제를 받을 때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다.
사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재물이 이와 같다. 하나님은 돈을 벌어서 누리라(전 3:13, 5:19)고 말씀하셨다. 번 돈으로 마음껏 누리길 바란다. 그러나 그 재물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날엔 우리에게 재앙이 찾아온다. 재물이 우리를 지배하고 노예 다루듯이 우리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부정직과 사기라는 죄를 지어서라도 재물을 모으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신 안식일/주일도 이제 서슴없이 범하게 된다. 처음엔 죄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죄가 반복될수록 무뎌져서 주일성수하지 않는 것이 아예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합리화한다. 입장은 이해하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결합된 불순종이다. 이들에겐 딤전 6:10 말씀처럼, 그들이 좋아하던 재물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시작해서 미혹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그 재물 때문에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는 삶을 산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욕심에 빠진 것을 회개하라. 돌이키길 바란다.
왜 여섯째 날에 양식을 2배로 주었을까? 6일간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일곱째 날에는 안식(휴식)하라는 것이다(29). 6일 동안 바쁘게 살면서 생긴 육체의 피곤함을 풀 뿐만 아니라 6일 동안 살면서 영혼에 쌓인 수고와 번민을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안식(평안/휴식)을 누리라는 것이다. ‘내가 이토록 고생하며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말씀대로 잘 가고 있는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묵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기도하고, 성경을 배우며(공부), 서로 교제를 통해 세상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돈에 노예가 되어 ‘돈을 벌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라는 비성경적인 착각에 빠져 하나님의 진리를 깨버린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눅 12:15)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현재 수입으론 한 달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되면,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일을 범하고 돈 벌러 나가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나쁜 것인가? 아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 보기 좋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일을 범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이 재물의 공급처/소유주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나의 성공을 이끌어 줄 동아줄을 찾아 헤맨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28)
순종은 훈련이다. 히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예수님도 고난 중에 순종을 배우셨고, 순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매우 애를 쓰셨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내 멋대로 하고 싶은 교만과 싸워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통과하길 바란다.
“11041 운동”을 하고 있다. “매일 성경 10장 이상 읽어서 4개월에 1독 하자!”는 성경읽기 운동이다. “피곤하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눈이 어둡다”라고 변명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길 바란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한 만나(재물)를 주셨다. 앞으로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주신 만나(재물)를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는지 시험해 보신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욕심을 버림으로써 시험에 통과/합격하길 바란다. 6일 동안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쓸 만큼을 충분히 주셨다. ‘안 주시면 어떡하지?’하며 의심하지도 말고, ‘더 벌어야겠다!’는 욕심으로 주일까지 범하지 말기 바란다. 주신 것에 감사하고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