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최원현
nulsaem@hanmail.net
어느새 새해 한 달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한데 내 경험칙에 의한다면 이 2월이 가장 힘이 드는 때인 것 같다. 새해 첫 달은 여러 가지 계획과 시작으로 정말 바쁘다. 그런데 그 한 달이 지나고 두 번째 달로 접어들면 의욕도 반감되고 무엇보다 시작 때의 열정이 식어진다. 첫 고비를 맞게 된다고나 할까. 문제는 이 때에 제대로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고 재정비를 하지 못하면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는 것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에 <걷는 사람>이란 게 있다. <걷는 사람>(L’Homme Qui Marche I)은 미술작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스위스 출신 현대 미술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청동 조각상 제목이다.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영국 돈 6500만 1250파운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1197억원에 팔리며 미술작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청동조각각상 작품이다. 이 조각상은 걸어가는 남자 모습의 실제 크기란다. 자코메티가 전성기였던 1961년의 작품인데 가늘고 긴 골격은 작은 충격에도 금방 부서질 것 같은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독일 드레스너방크가 1980년대 초에 사들였던 것을 은행을 인수한 코메르츠방크 소유로 넘어갔다가 경매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미술작품 최고 경매가는 2004년 뉴욕 경매에서 1억 416만 8천달러(약 1196억원)에 팔린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파이프를 든 소년’이었는데 그 기록이 깨지게 된 셈이다.
사람은 직립동물이다. 필요에 따라 걷거나 뛰며 이동한다. 그러나 기본은 걷기이다. 뛰는 것은 빠르지만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걷는 것은 오래도록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1월 한 달부터 뛰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걸을 생각을 했다면 더 마음의 여유도 갖고 아주 천천히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앞섰거나 욕심을 내었기에 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가 아닌 뛰는 속도가 되어버렸고 이내 얼마 못가 숨을 할딱이며 주저앉게 된 것일 터였다.
얼마 전 ‘달빛 걷기대회’에 참가했었다. ‘걷고 싶은 아름다운 다리 광진교’를 걷는 행사였다. 그런데 비가 와서 달빛 속 걷기가 아니라 빗속 걷기대회가 되었다. 꼭 행사가 아니라도 이곳은 늘 사람들이 많이 걷는 곳이다. 이곳 뿐 아니라 아침이고 저녁이고 공원이나 한강변을 나가보면 걷는 사람 천지다.
건강을 위해서는 걷는 운동이 가장 좋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나도 요즘엔 그 중 한 사람이 되어 있다. 나이가 드니 심한 운동은 오히려 위험하다 하여 처방 받은 것이 걷기이다. 그러나 뛰는 운동이나 등산 등 운동효과보단 왠지 약한 거 같아 약간의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걷기운동은 상당한 지구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잠깐 걷거나 천천히 걸으면 운동효과가 없다고 한다. 적당한 보폭과 속도와 자세로 걸어야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내가 택하는 걷기 코스로는 올림픽 공원의 몽촌토성과 천호공원이다. 몽촌토성은 오르고 내리기의 편차도 있는데다 한 바퀴가 2,340미터로 한 바퀴만 돌아도 30분이 소요되는 운동이다. 천호공원은 한 바퀴가 450미터인데 최소한 다섯 바퀴는 넘게 걸어야 한다. 그런데 걷기에 나서보면 사람이 부딪힐 정도로 걷는 사람이 많다.
자코메티는 <걷는 사람>을 통해 50년 전에 이미 ‘걷기’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이 아닐까. 직립동물인 인간이 제대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바른 자세로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것과 사람이란 부지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자세를 보면 보통걷기가 아니다. 보폭도 넓고 허리의 구부린 각도로 보아 상당히 빠른 걸음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아주 안정된 걸음걸이다. 오랫동안 걸어왔을 것 같은데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얼마든 더 걷겠다는 그런 자세다.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큼이나 걸었고 얼마나 뛰었으며 얼마나 달려 왔을까. 어떤 사람은 줄곧 달려왔을 수도 있을 게다. 어떤 사람은 걷다가 뛰고 뛰다가 걸으며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걸어왔을 것이다.
목표가 있는 걷기일 때 효과적일 수 있다. 운동도 혼자보다는 둘이 같이 걸으면 더 오래 걸을 수 있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작품성에 이런 여러 가지 메시지적 가치가 더해진 것이 아닐까. 뛰는 사람, 달리는 사람보다 열심히 걷는 사람에게 더 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 나도 그 중 하나여서일지 모르겠다.
어두워지기 전에 오늘도 아내랑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으로 걷기운동을 나서야겠다. 걸을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만 내려진 특권이요 축복이 아닌가. 내게도 걷는 시간은 분명 그 축복을 맘껏 누리는 시간이다. 땅을 보고 걷기보다 하늘을 보고 걷는 시간, 하늘에서 아름다운 은총의 별빛이 마구 쏟아질 것 같다.
행복한 우리집 2011.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