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줄거리>
비정규직 은행원이던 희원은 공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스물일곱에 대학교 3학년 편입생이 된 희원은 영문과 전공수업에서 강사인 그녀를 처음 만난다. 원어민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용기있는 강사라고 느낀다. 수업도중 갑자기 터진 생리로 인해 그녀의 사적인 공간을 보고 난 뒤 가까워 느낌을 받는다. 이후 희원은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고, 그녀의 정보를 찾던 중 자전적 에세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제고를 힘들게 찾아 읽게 된다. 그 책에서 그녀도 희원과 같이 용산 그 어디쯤에서 살았고, 영인문고라는 헌책방에 대해 추억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반가워한다. 하지만 그녀의 에세이는 다른 결이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며 자신의 약점과 단점,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도 있는 감정을 미화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쓴 그녀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용산 참사 가 벌어지고 있을 때 논문을 쓰고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희원은 그런 그녀가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으로 보였고,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강사와 학생 사이였지만 그들의 글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학기 마지막 즈음 강의 시간에 희원이 제출한 글을 가지고 학생들과 서로 의견을 나눈다. 어떤 학생이 희원의 글이 균형감 있게 쓴 글이라고 한다. 하지만 희원은 자신의 글에서 남에게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 받을 까 두려워 안전한 글쓰기를 택한 자신이 부끄러워한다. 그녀도 어떤 사안에 대해 입장이 없다는 것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희원이 그 말에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썼지만 희원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다. 얼마 후 우연히 만난 그녀는 희원의 글이 자기 입장 없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간 제출한 희원의 에세이들에 대해 좋은 평을 한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몇 몇 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희원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한다. 희원의 말에 그녀의 얼굴색이 바뀐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못마땅했던 희원은 “여자 강사일 뿐”이라는 말로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결국 그녀는 희원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헤어진다. 그 후 희원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녀와 같이 강사가 된다. 힘들 때 마다 희원은 그녀가 자신보다는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희원은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떠올린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꼈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더 가보고 싶다.”
희원은 언젠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긴 숨을 내쉬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느낀점>
소설은 임팩트는 있는 사건이 있거나 주인공의 처절한 인생 굴곡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잔잔하고 긴 여운을 준다. 소설에서 용산 참사 이야기를 하지만 직접적 사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희원과 그녀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작가는 사건을 직접 묘사하지 않지만 그들을 기억해 내고, 그들과 같은 공간 속에서 숨 쉬던 우리들의 기억으로 사건을 간접적으로 되살려 냄으로써 모든 것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희원과 그녀는 각별한 사이는 아니도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을 달랐지만 그들의 글들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이해한다. 그녀가 그녀를 닮아가고 싶어 하는 희원의 손을 선뜻 잡지 않는다. 아마 희원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희원의 말에 그녀는 얼굴색이 바뀐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삶을 생각하면 희원의 선택을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끝내 말을 마무리 하지 않고 헤어짐으로서 희원의 선택을 지지한 것으로 본다.
작가는 소설 제목처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작은 희망이 보인다면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고통의 연속이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주인공 희원의 선택에서 보여준다. 용산 참사를 보여주는 방법이나 희원과 그녀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는다. 비록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희원과 그녀를 괴롭게 하겠지만 희원과 그녀는 결코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직업이 형사인 사람의 생활은 얼마나 고될까?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글도 읽고 쓴다니. 그것도 몇년씩 오랜 기간. 그 내공이 쌓이고 발효된 사람이 곁에 있다니. 자세를 고쳐 앉아 발제문을 읽었습니다. ㅎㅎㅎ
올해는 워터파크 미끄럼틀 타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미끄러지듯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도 글자 읽는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속이 좀 상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올려주신 발제문을 읽고 나니 무언가가 트이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그 뜻이었군요. 작은 희망이 보인다면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고통의 연속이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단호한 의지. 그 한 문장이 오늘 제 하루도, 제 남은 생애도 환하게 비춰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새벽에라도 일어나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