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을 핑계 삼아, 연일 보도되는 코로나 소식과 마스크를 핑계 삼아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가지 않았다. 모처럼 집에 들러서도 반찬만 축내는 게 민망하고 번듯한 이름 없이는 가기 민망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바람이 솔솔 불어서, 우렁찬 매미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서 용인 시골 언저리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이 있는 용인과 내가 자취하는 이곳은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거리, 자차로 약 45분여가 걸리는 거리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이지만, 핑곗거리가 많은 나는 두 달째 안부 연락으로만 퉁치고 집에 가지 않았다.
버스도 어쩌다 한번 오는 이 시골 촌구석이 참 싫었다. 이마트가 아니라 하나로 마트나 파머스 마켓이 제일인 이 동네가 참 좁고 낡은 곳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대학과 취업을 핑계 삼아 아파트와 조명이 가득한 곳으로 나왔다. 참 간사하게도, 오랜만에 이 초록한 길과 거름 내음을 맡으니 휴가 온 것 같이 마음 어딘가가 편해진다.
핑곗거리 많은 불효자는 자동차 악셀 한 번에 집으로 곧장 향하지 않았다. 큰 저수지를 끼고 있는 카페로 먼저 향했다. 웰시코기 강아지가 먼저 손님을 반기고, 맞은편 저수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카페의 2층 오픈 테라스에는 띄엄띄엄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카페 모안의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웰시코기 강아지의 이름은 멍멍이라고 한다.
카페 모안(@cafemoan)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호수로 188 (두창리 1634)
070 -8883- 2220
대표메뉴 : 모안라떼 7000원 / 아메리카노 4500원
대중교통이 편리한 위치가 아니라 자차이용을 권한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면, 용인 터미널에서는 10-4번을, 백암 터미널에서는 76-9번을 타면 두창저수지에 도착할 수 있다.
모안의 대표 커피인 모안 라떼는 모카와 초콜릿이 섞인 듯 달달한 맛이 나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카페 모안은 앞에는 넓은 마당이 뒤에는 작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옆에는 작은 식물원이 있고, 주문을 받는 곳에 원데이 클래스 안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관련 수업을 진행하는 듯하다.
아쉽게도 이번 방문에는 식물 공간은 닫혀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내부를 염탐하며 후에 미래에 언젠간 이런 작업실 겸 스튜디오를 갖고 싶다는 꿈을 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의 컨테이너 안에 나만의 공간을 두고 살고 싶어라. 카페 모안은 탁 트이는 전경과 더불어 사장님이 정성스레 꾸며놓은 전경들에 절로 부푼 낭만을 꾸게 된다.
카페 모안은 한 번에 쓱 둘러보기엔 앉아서 눈에 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고 싶은 곳들이 많은 장소다. 흔한 철제의자도 앉아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다. 눈에 계속해서 담기는 적갈색의 벽돌과 초록색 잔디들이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멍멍이와 한바탕 놀고, 수다를 떨고 난 뒤 카페 옆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카페모안의 다른 공간 앤드모안이 있다. 삼각형 모양의 개별 공간에서 예약하고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여느 작은 공원 남부럽지 않은 이곳은 들판과 커다란 나무가 지키고 있다.
빅배드민턴 놀이 용품이 있어 배드민턴을 한 판했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것이 반가운지 몸의 근육들이 옴짝달싹하는 게 시원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서도 숨이 답답하지 않고, 라켓을 휘두르는 몸짓이 재미있다. 아무 할 것 없는 이 촌구석이 싫다고 떠났던 고향인데, 어느새 웃고 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배가 출출하다. 삼겹살이 먹고 싶다. 원래 계획은 카페만 들리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늘 먹는 배달 삼겹살 말고 집 마당에서 먹는 삼겹살이 먹고 싶다. 한 계절 내내 전화로 안부만 묻고, 부탁에는 귀찮아하던 불효자는 대뜸 아빠에게 전화 걸어서 집에 버너와 고기 구울 판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마침 아직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기에 곧장 고기를 사서 집으로 가겠다 통보했다.
가면서도, 우리 부모님을 처음 뵙게 될 친구에게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사실, 주의사항은 친구가 아니라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 공개하는 집의 민낯에 민망한 내가 나 스스로 진정하라고 조잘댔다. 처음으로 공개하는 나의 시골집, 고향, 초등학교, 낡디 낡은 그 집이 보이는 것이 민망하면서도 재미있다.
부랴부랴 근처의 하나로 마트에서 고기 2근과 버섯, 소주 한 병, 사이다 한 병들고 집으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너무 작아 내비게이션은 일찍이 종료해놨다. 좁디좁은 길을 지나 집 앞으로 다 왔다. 미리 연락을 받은 아빠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집에 올 때마다 우리 집 대문은 닫혀 있던 적이 없었다.
난 소주를 마시지 못하니 음료수를 마시고 친구가 대신해서 부모님과 대작한다. 집 앞에서 뜯은 배춧잎으로 만든 겉절이와 깻잎 반찬,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아무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찾아온 집 마당에서 먹는 고기가 맛있다. 자취방이었으면 설었거나 찰기 없는 흰쌀밥을 꾸역꾸역 먹었을 텐데, 부모님 집에서 먹는 옥수수와 콩을 넣은 밥이 맛있다. 찰기 있고 고기만큼 넣어도 물리지 않는다. 아빠도 오랜만에 온 손님이 신난 듯 각종 가재도구를 꺼내고 최대한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캠핑용 헤드 랜턴을 꺼내와 친구와 내 머리에 하나씩 달았다.
ⓒ목화씨(mokhwa_sea)
머리에 조명 하나씩 달고 고기를 굽고, 먹고 마셨다.
별거 아닌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버스 타면 2시간 거리라고, 바쁘다고 별 핑계를 다 대며 피했던 곳인데, 아무 기대하지도 않고 쉽게 찾아온 오늘의 집은 정말 반갑다. 연일 들리는 뉴스 소식에, 하루하루가 보이지 않는 불안에 동했던 마음이 집에 오고 나서야 가라앉는다.
ⓒ목화씨(mokhwa_sea)
마음이 동할 때마다 찾게 되는 곳, 고향. 용인이다.
가족들이 있는 곳, 고기 두 근을 사서 갑자기 들이닥쳐도 어색하지 않은 곳, 우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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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박앤비 (@parkandb)
일러스트 : 목화씨 (@mokhwa_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