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는다고 덮어질까요?
김치냉장고 위, 보자기가 눈에 띕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건데 오늘에서야 말이죠. 작정을 하고 보자기를 치웠습니다. 켜켜이 쌓아놓은 진료 영수증과 팜플렛, 그리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이 대부분입니다. 당장 어디에 넣어두긴 애매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하자는 생각에서 그리 밀쳐둔 겁니다. 그런데 자꾸만 올려놓다 보니 미관상 지저분하고, 누가 와서 볼까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내친김에 치우면 좋았으련만 예쁜 보자기를 꺼내다 덮어버렸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 안 보이니 나름 성공한 방법같았습니다.
방송작가로 분주하게 살 땐 집안 일 하는 것도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후배 작가의 집에 갔는데 거실과 주방 곳곳을 흰 천으로 덮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방에는 옷장의 서랍까지 꺼내져 있었고, 그 위를 흰 천으로 가려놓았더군요.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언니가 온다니 치울 시간은 없고, 놔두자니 우리 집 민낯이 드러날 것 같아서, 급조한 아이디어랍니다. 기가 막힌 광경이지만 흉을 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배의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게 되었습니다. 예쁜 보자기만 보면 고이 접어 보관했다가 뭔가를 숨기고 덮을 때 사용했으니 말이에요.
그 후배와 저는 왜 눈에 거슬리거나 보기 싫은 것들을 숨기고 덮어야만 했을까요. 있는 그대로 봐 주기가 힘들었던 걸까요. 나의 안 좋은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을까요.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뭔가 잘하거나 옳은 일을 하면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방을 치우지 않고 책가방 정리를 안 하면 부모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숙제를 못하고 준비물을 챙기지 않으면 선생님께 된통 혼났습니다. 뭔가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곤욕을 치렀습니다. ‘ㅇㅇ하지 않으면, ㅇㅇ를 못하면’ 영락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 부정적인 기억과 경험 때문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끄러움 없이 봐주고 드러내는 걸 두려워합니다.
나 자신의 못생긴 부분과 부족함, 단점과 결함 역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의 또 다른 일부였음을 인정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부족함과 결점에도 너그럽지 못하고, 생긴 그대로의 민낯을 외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각자의 한계를 존중하지 못하고, 남 보기에 좋고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일
것입니다.
김치냉장고 위에 쌓아놓은 것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없는 것처럼 덮어버리거나, 더 근사하게 포장해서 있어 보이게 한 욕망이 바로 보자기였던 겁니다. 내 눈에 좀 거슬리면 어떤가요. 남들이 보면 또 어때서요. 나약한 우리가 완벽하기를 바란다면 그게 욕심 아닐까요. 덮는다고 덮어지는 거라면, 세상에 보자기는 남아나질 않을 거예요. 나 자신이든 남이든, 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좀 봐주고, ‘그래, 이런 면도 있었네.’라고 이해하면서 보자기가 아닌 마음으로 덮어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는 나와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마음이 곧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오늘은 당신의 이웃을,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나약함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리지외의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께 드리는 9일기도 다섯째 날 ‘겸손’)
첫댓글 의정부 주보에도 박지현 요셉피나님의 글이....
대단하십니다요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