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혹자는 말한다.
나도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동네의 한 어르신을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나의 사고가 얼마나 편협하고 경직되어 있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지난 일년, 함께 하수관거 투쟁을 해오면서 많은 도움을 주시기는 했지만 순간 순간의 이기심을 억제하지 못해
꽤나 나를 힘들게 하셨던 분이 변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변했다.
어린이재단 후원에 동참하셨고, 지난 설 명절 전에는 동네의 어려운분들을 위해 기꺼이 여러 가마니의 쌀을 내놓으셨다.
더 나아가 독거노인들의 정기적으로 후원하시겠다는 의사를 밝혀오셨다.
더욱이 놀랜것은 농성. 화정동 주민들을 위한 '생활정치 문화센터'가 시작된다면 30평 규모의 자신의 상가사무실을
무상으로 내놓겠다고 제안까지 하셨다. 놀랍고도 고마운 말씀이다. ^^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활정치는 나의 오랜 꿈이자 이상이다.
오래 전 몇번의 당적이 바뀌는 뒤엉박 진보정당 활동을 해오면서 나의 가치와 대중이 멀어져 가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고민이 컸다. 그런 고민의 끝은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일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이 동네사람으로 살았다.
재주는 부족하지만 이곳 빈민촌 주민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함께 하려 애썼다.
하수관거 투쟁을 비롯해 하릴없이 바쁜 일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이렇다.
시.구의원, 국회의원 등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것과 그것을 준비하는 활동 및 더 나아가 국가권력을 획득·유지·조정·
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등으로 국한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이렇다.
보편적 인간가치실현을 위한 문화적 활동이 원할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행위를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말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밥먹고 아이들 학교보내고 일터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여가를 즐기는 삶
자체가 아닐까 싶다.
내가 사는 이곳은 참 특이한 곳이다.
이곳은 부자라고 해봐야 대체적으로 다른 신도심의 소형아파트에 못미치는 가격정도의 상가나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재력가를 통한다. 그러한 반증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상대적으로 월 10만에서 20 여만의 쪽방살이 빈곤층이 많다.
구조가 그러하다 보니 내가 예전에 살았던 소도시 화순보다 분위기가 훨씬 삭막하다.
주민들간 갈등이 매우 심하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더미, 하나 둘 비어가는 상가들과 늘어가는 빈집들!
자치단체의 무관심과 주민들의 의욕상실로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는 마을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 해법을 찾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정기적으로 주민들이 회합을 갖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 마을 현안에 대해 토의하고
함께 영화도 보고, 연극도 직접 공연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생활자치말이다.
더 나아가 협동조합개념의 공동 수익사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시.구의원 구청장을 초청해서 지역현안에 대해 질의하는 시간을 갖고 요구할것은 요구하고
주민정치역량강화를 위해 정치학교를 여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문학강좌를 여는것이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우리 주민들이 마르크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행사가 이뤄질려면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하여 고민끝에 우리집을 이러한 공간으로 내놓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2층은 '작은어린이도서관'으로 활용하고 1층 사무실을 내가 구상하는 장소로 사용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내는 펄쩍 뛰었다. 그럴만하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겠다는 나의 의지를 꺽을 수 없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애당초 없는 살림에 9천여만의 큰 돈의 대출을 안고 이곳으로 이사온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의 끈질긴 설득에 이곳을 떠나 살집을 만들어 준다는 단서조건으로 아내의 허락 받았다.
솔직히 자신없는 이야기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
아내는 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지지자이다.
궁핍한 살림에 늘 일만 떠넘기는 듯 싶어 늘 미안하다.
아내의 허락을 받아낸 그날이 작년, 10월 11일 저녁이었다.
신의 저주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그 다음날!
10월 12일, 계속되는 두통을 의심스러워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는 11월 9일 4시간 30분에 걸친 뇌수술을 받고, 한달여간을 입원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현미잡곡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바꿨다.
그토록 좋아하던 삽결살, 라면 밀가루 음식들은 모두 끊었다.
술 한잔을 안 마신것은 말할것도 없다.
아내가 지시(?)하는 암환자를 위한 건강법을 철저하게 따른다.
늘어가는 약병들!.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다. ^^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면 괜시리 울화가 치민다
몸을 혹사하 듯 운동장을 독하게 달린다.
솔직히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기본상식 보다는 답답한 현실을 화풀이 하듯 미친듯이 달린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더더구나 어제 오후 노회찬대표가 어이없는 판결로 사법살인을 당했다.
오늘은 동네 어른신과 참 많은이야기를 나눴다.
"자네 뜻에 감동받았네 자네는 내게 새로운 삶을 열어 주었다네! 고맙네!"
"기회가 되면 나도 동참하겠네" 이렇게 말씀하시면 당신의 사무실을 주민정치학교 공간으로 내놓게다고 제안을 하셨다.
한 말씀 더 거드셨다
"자네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 주민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자네는 모를것이네"
"우리 주민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네를 걱정하고 있으니, 이제는 자네 혼자몸이라 여기지 말고 건강 잘 챙기시게!
자네는 공인일세! 이 사람아!
지난번 자네와 함께 경로당 갔을 때 노인들이 자네를 얼마나 걱정하고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네!
자네는 의술로 살아난것이 아니라 자네를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 때문에 그 뜻이 하늘에 닿은것이라고 생각하네!"
참 고마우신 말씀이다.
작년 일년 광주시와 건설사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고, 어르신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2층 규모로 경로당을 지었다.
나의 공은 그다지 많지 안다. 모든게 주민들의 단합된 힘의 결실이다.
제법 날씨가 풀렸다.
이제 드디어 봄이 오려나보다.
날이 풀리면서 이곳 사람들의 마음도 바빠진다.
우리집을 찾는 어른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하수관거 공사로 인한 하자보수가 겨울로 넘어 오면서 중단되었는데 이제 다시 논의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22일(금)날 올해 들어 첫 모임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