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게리스, 후안(Rodriquez, Juan·1559∼1663)
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세례명은 요한. 중국명은 육약한(陸若漢). 1559년 포르투칼의 알쿠제(Alcouche)에서 태어나 1576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사제 서품을 받고 1583년에 인도로 파견된 로드리게스 신부는, 그 후 다시 일본으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오랫동안 사목하면서 일본어로 된 많은 서적을 남겼다. 특히 일본의 우상 숭배 종교들을 비판하고자 일본어로 된 교리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1612년 중국으로 건너가 밀교(密敎) 교리를 연구하던 중, 1630년 요동을 점령하고 있던 달단족을 몰아내기 위해 마카오 총독이 파견한 텍세이라 코레아(Gonzales Texeira Correa)의 통역으로 일하면서, 400명의 지원군을 마카오에서 북경까지 안내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북경으로 가던 중 일부만 남고 마카오로 돌아오라는 황제의 명을 받은 그는, 남은 군인들과 함께 정주(定州)까지 가서 텍세이라를 만났다. 그 당시는 명나라와 청나라 간의 군사적 갈등이 심한 시기였는데, 로드리게스 신부는 북경 산동성(山東省) 등주(登州)의 명나라 방위군 최고 지휘관이면서 천주교 신자인 손원화(孫元化, 이냐시오)의 초청으로 그곳에 가 서양식 병기를 전수해 주는 군사 고문이 되었다.
한편 군사·천문·역법·지리·풍속 등에 모두 뛰어났던 로드리게스 신부는 1631년 진주사(陳奏使)로 명나라에 파견된 조선 사신 정두원(鄭斗源)이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그를 직접 방문하여 필담을 나누었다. 정두원이 조선에 돌아갈 때에는 예수회 신부들에 제작한 홍이포(紅夷砲)를 비롯하여 천리경(千里鏡), 자명종(自鳴鐘) 등의 과학 기구와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인 《치력연기》(治曆緣紀), 《천문서》(天文書), 《원경서》(遠鏡書), 《직방외기》(職方外記), 《천리경설》(千里鏡設), 《서양국 풍속기》(西洋國風俗記), 《서양국공헌신위대경소》(西洋國貢獻神威大鏡疏) 등과 지도 <천문도 남북극>(天文圖南北極), <천주광교>(天主廣敎), <만리전도>(萬里全圖), 그리고 홍이포 제본(紅夷砲題本) 등을 선물로 주었다.
특히 명나라 포수 박무길(朴武吉)을 정두원과 함께 조선에 보내어 인조(仁祖) 앞에서 발포 시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는 우리나라에 서양 문물이 전개되는 데 많은 공헌을 하게 되는데, 훗날 정두원은 그의 용모에 대해 “나이 97세에 정신이 날카롭고 활달하여 표표한 것이 신선과 같았다”(陸若漢 年九十七 其精神秀麗 飄飄然若神仙中人[육약한 연구십칠 기정신수려 표표연약신선중인])라고 기록하고 있다.
1623년 불만을 품은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켜 손원화와 텍세이라를 비롯한 포르투칼인들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때 로드리게스 신부와 다른 세 사람만은 위기를 모면하고 북경을 거쳐 마카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끊임없이 전교 활동을 벌이며 서양의 선진 과학 문물은 전파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힘썼던 로드리게스 신부는, 74세 때인 1633년 광동(廣東)에서 사망하였다.
출처:가톨릭 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