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보기 / 수필울 제 3 집 수록
권 덕 봉
나는 발가락양말만 신는다. 젊어 한때 무좀에 시달린 후에 생긴 습관이다. 발가락양말의 세탁과 건조에는 보통의 양말보다 귀찮은 점이 있다. 세탁기를 거쳐나온 세탁물이 내 앞에 놓이면 양말을 골라낸다. 건조대에 널기 전에 뒤집고, 건조 후에 다시 뒤집어 개는 일이 내 몫이다. 양말의 발가락 하나하나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뒤집는 일은 성가신 일이다. 최근 이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 건조대에 널기 위하여 발가락양말을 뒤집으면 허연 피부 조각들이 우수수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무좀을 앓았을 때도 보이지 않던 현상이다. 자가면역질환이라고 알려진 건선이 발바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보습제 바르기를 며칠 놓치면 더 심해진다. 방바닥을 닦으며 투덜대었더니 아내가 말했다.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담을 때 뒤집어서 허물을 털어버려. 한꺼번에 뒤집을 때보다 덜 보이겠지. 그리고 양말 뒤집는 횟수도 같아.”
아내가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보고 왔다. 가 채점을 하더니 한 문제 틀렸다고 한다. 한 달을 교재와 씨름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적당히 해. 당신이 다 맞추면 다음 회차 응시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야. 또 출제위원들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 수고까지 끼치지 말고.”
오래전 함께 자영업에 종사할 때, 아내가 이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해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곧 보호받아야 할 나이가 될 터인데 무슨 소리냐며 말렸었다. 남을 돌보는 일이 쉽겠냐는 말을 덧붙였다. 돈벌이에서 물러나자 아내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와 돌보아야 했다.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리듬을 잘 조절하여 장모님을 오래도록 모시면 좋겠다고 아내에게 말해주었다.
장모님이 장기요양급여 수급자이니 요양보호사의 방문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고, 하루에 세 시간 동안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이를 마다하고 온종일 장모를 돌보았다. 한 시간 단위로 이동식 변기에 앉혀주기를 청하는 장모님 돌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야간에 숙면에 들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세월이 흘렀다. 같이 사는 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아내의 변한 모습을 본 딸이 말했다.
“엄마, 폭삭 늙었어.”
아내가 두 손 들었다. 친정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후 며칠을 앓아누웠다. 긴장이 풀린 탓이리라. 이후로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답답해하더니 요양보호사 공부를 다시 들고나왔다. 아내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기사 노릇을 자청했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를 한 달간 하였다. 수강생 중에 팔십 대 남자도 있고 그분은 아내를 돌보고 있다더라며 나에게도 해보라는 압력을 넣는다. 다음 시험에는 내가 응시하고 아내에게 운전을 부탁해야겠다.
흔히 백세시대라고 한다. 현재의 출산율이 유지되면 2035년이 되면 여성의 세 명 중 하나는 예순다섯 이상이고 2040년이 되면 전인구의 네 명 중 하나는 일흔다섯 이상이 된다고 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삶에 변화와 곡절이 생길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변화에 직면하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판단이 적절하면 이후의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부적절하면 부정적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적절한 판단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늙은이가 늙은이를 돌보아야 하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온다.1960년 기준 여자 평균수명이 쉰넷이었으니 자식들이 그 부모를 돌봐야 하는 기간은 대략 다섯 해 정도였다. 게다가 가족이 대부분 같이 모여 살던 때이다. 그런데 2018년 기준 여자 평균수명이 여든여섯에 달해 그 기간이 삼십 년 이상 늘었다. 가족의 주거 형태는 어떠한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외에도 가 있으니 어떻게 자식에게 그 짐을 지라 할 수 있겠나. 노인의 돌봄은 배우자가 하면 금상첨화다. 배우자가 없다면 조금 더 건강한 늙은이가 하는 것이 옳다. 그러면 조만간 다가올 자기의 모습이 투영된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고 더 진실하게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났건 못났건 대부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배우자나 자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여기밖에 없다. 한번 이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의든 타의든 유배되기 전에 ‘존엄을 지키며 내 몸이 온 별로 되돌아갈 방법’이 용인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