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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삼상 9:1-27)
1.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깃보르 하일)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백성들이 요구한 왕은 베냐민 지파를 두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야곱의 유언에 따르면 왕은 유다 지파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메시야가 유다 지파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베냐민 지파는 숫적으로 가장 미약한 지파였다. 깃보르 하일은 강력한 용사라는 의미를 갖는다. 깃보르는 능력있는 자, 하일은 강력한 힘이라는 의미다. 집안이 대단한 힘(부와 권력)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토브) 소년(바하르)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가보아)
샤알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자라는 의미에서, 샤알이 사울이다. 토브는 잘 생긴, 바하르는 청년이다. 소년이라기 보다 잘생기고 건장한 청년이 되는 것이다. 키가 컸으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왕으로 추대될만한 그런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판단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눈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적 눈이 필요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가보아는 키가 크다 라고 번역되었지만, 교만한 이라는 의미도 있다. 사무엘상 2장 3절에서『심히 교만한(가보아)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강력한 용사였는데, 용사를 네피림(영웅)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피림은 아낙자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보았던 사람들이다. 네피림은 용사, 영웅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고자 하는 자의 모습이다. 신도들의 심령 속에 옛사람이 바로 네피림이다. 이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3-4.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나귀는 짐을 옮기는 교통수단이었다. 나귀는 재산목록에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동물이며, 나귀가 있는 집안은 부자에 속한 것이다. 사울이 에브라임 산지, 살리사 땅, 사알림 땅의 베냐만 지파의 온 땅을 두루다녔지만 암나귀를 찾지 못했다. 나귀를 찾는 여정이 사울이 왕이 되는 여정 중에 하나로 포함된다. 나귀를 찾지 못하므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5-6.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상 1장 1절에서 보면『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사울이 숩 땅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갈길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는 암나귀가 있는 것이지만, 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받는 것이다. 이 말은 사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왕을 찾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세상의 왕을 세우기 위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성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알려준다는 말이다.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이 사울을 인도해서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7-8.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나비)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나비는 선지자라는 의미가 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말이다. 사울을 인도하게 될 선지자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은 한 세겔은 약 11.5g에 해당되며, 따라서 사분 일 세겔은 약2.9g이다. 선지자에게 반드시 예물을 바쳐야만 그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사환은 다만 그 당시의 풍습에 합당한 기본적 예의를 갖춘 후 선지자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9.(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나비)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로에)라 일컬었더라)
나비는 선지자이고, 로에는 선견자이다. 선견자는 앞날을 보다라는 의미에서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자라는 의미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전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왕정시대 이후에는 선견자가 나비(선지자)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선지자는 나바(선포하다, 예언하다)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왕이나 백성들에게 경고하고 바르게 가도록 인도하는 자였다.
10-12.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바마)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바마는 높은 곳인데, 많은 곳은 우상숭배를 하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성막이 없는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는데, 그 이전에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것이다.
13.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바라크)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산당에 제사를 지낸 후 먹으러 간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화목제에 해당될 것이다. 화목제는 참여했던 모두가 제물을 함께 먹는 것이다. 하나님과 백성간에 친교를 상징하는 것이다. 바라크는 축사하다 라는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는 기도하다 라는 의미다. 청함을 받은 자는 제사와 관계되는 자들과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사울이 왕으로 추대될 것이고, 사무엘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도자들을 초대해서 왕으로 추대되는 증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14.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사무엘과 사울이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진행하는 것이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렸고, 사울과 사환은 암나귀를 찾으러 베냐민 지파의 온 지역을 다니다가 숩 지역에 이르고, 다시 성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물길으러 가는 소녀들을 만나서 산당에서 제사지내는 곳으로 가도록 하고, 그곳에 올라가는데, 사무엘과 딱 마주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상황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성도는 살아가는데,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15-16.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갈라 에트 오젠)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나기드)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가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갈라 에트 오젠”은 귀에 대고 속삭이다 라는 표현이다. 나기드는 지도자라는 의미다. 사울은 하나님이 택했지만, 진정한 왕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왕은 다윗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으로부터 메시야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택하신 이유는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백성들을 구해내는 역할을 하는 정치적 지도자였던 것이다.
17.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아짜르) 하시니라
아짜르는 억압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울이 백성들의 왕(지도자)이 되는데, 백성들을 억압하는 그런 존재라는 말이다. 영적으로 세상의 왕을 표현할 때는 애굽의 바로(사탄을 상징)를 들 수 있다. 출애굽 당시 백성들을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혹독한 지배로부터 구원해주기를 부르짖은 것이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찾아가신다. 백성들이 사울의 지배하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보내주시는 것이다.
18-19.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이 말 속에는 사울이 먼저가고, 사무엘이 뒤따르는 모습인데, 사울이 왕이 된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식사교제를 통해서 사울은 왕이요, 사무엘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들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사무엘은 사울의 마음에 원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는 것이다.
20.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사무엘은 사울에게 나귀를 찾는 지엽적인 것은 걱정하지 말고, 이제 나라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라는 큰 그림에서 생각해라는 말이다. 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왕으로 추대해서 왕정시대를 보고싶어 한다는 것이다. 왕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그런 것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21.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사울이 자기를 낮추어서 사무엘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떨결에 사사무엘부터 왕으로 추대받은 사울은 자신이 왕이 된다는 마음의 부담부담부터 나온 말이다. 이는 마치 출애굽 당시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모세의 이야기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모세는 자신은 지도자로서 능력이 없다는 말을 하나님께 헸다.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모든 일을 행하시므로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지만 두차례 거절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22-24.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객실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 제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서 그 음식을 먹던 곳이었다. 청한 자는 삼십명이었는데, 사울이 가장 상석에 앉았다. 이는 왕으로서 추대되는 모습이다. 삼십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성기 부분)을 먹는 표현은 맹세와 관계된다. 아브라함과 그의 하인 엘리에셀이 이삭의 베필을 보러 가는데, 그의 하인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허벅지 쪽으로 손을 넣어서 맹세를 하는 모습을 본다. 이러한 맹세의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사무엘과 참여한 삼십명은 사울이 왕이 되는 증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울의 아버지가 나귀를 잃어버리고, 사울이 그것을 찾으러 다니고, 함께 동행한 사환이 은 사분 일 세겔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사를 지내고 있는 산당에 선견자를 첮으러 가며, 그곳에서 사무엘을 만난 것은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라고 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서『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세상에서 일어난 일은 우연히 일어난 일은 없다 라는 말씀이다.
누가복음 13장 4-5절에서『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갑자기 당한 사건으로 죽은 자가 있을 때, 이는 하나님이 회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지명하여 왕이 되게 한 것은 마치 율법아래 있던 사울을 택하여 바울이 되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사울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으나,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는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고 말을 한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마치 사울이 죽고, 다윗이 참 왕으로 거듭난 것과 같은 모양이다.
25-27.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으로 추대되는 의식을 행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동틀 때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라는 말씀이며, 기름붓는 의식을 행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