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호 씨와 처음으로 정해지지 않은, 예비하지 않은 무언가를 회의하는 날이었다.
반복해서 묻자, 반복해서 답했다. 반복해서 다른 데 시선을 돌리자, 반복해서 회유했다.
어려웠다. 오늘은 김희호 씨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김희호 씨는 종종 “국장님이 내일 카드 챙겨주신대.”, “엄마가 교회 오래.”, “여행 준비해? 샴푸 준비해야 해?”, “오늘 자? 자고 가?”, “내일 또 와?”, “두 밤 자?”, “이** 선생님 허리 아프대.” 하시며 다른 길로 샜다. 하나하나 답을 해드리고. 다시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다. 도서관 하나 정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릴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본다. 이 마을에는 도서관이 별로 없다고. 가려면 멀리 버스 타고 가야 한다고. 김희호 씨가 익숙한 동네로 가야 하며 다른 동네는 무리라 무조건 이 안에서만 골라야 한다고. 이러한 조건 때문에 더욱 찾기 어렵다고. 양어머니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고. 김희호 씨와 함께 여행 계획을 짜고, 어머니께도 묻고, 알려야 한다고.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본다. 금요일의 첫 대화처럼 잘 이루어지겠지. 기대하였다. '도서관 정하기'이니 분명 쉽게,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앞서갔다.
생각해 보면 김희호 씨와 오래 대화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정해지지 않은 것,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나누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한다는 게 늘 그렇다. 서로 눈치 보느라 바쁘다.
다른 때에도 회의하다 보면 주제가 이리 튈 수도, 저리 튈 수도 있다.
김희호 씨가 원하는 게 그 길이라면 그리로 가도 상관없다. 김희호 씨의 일이니까.
최대한 묻고자 하였고, 함께하고자 했다. 타자 치며 휴대폰으로 검색하는 등 나 혼자 해야 하는 일이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해 드리며 행했다. 이따금 김희호 씨가 흥미를 잃은 표정이나 동의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이면 괜찮은지 여쭈었다. 그러면 “아니야, 괜찮아.”, “아니야, 재미있어.”라고 하셨다. 느껴지는 본마음과 다르게 괜찮다고 하시니 더 죄송했다. 내가 억지로 끌고 가는 기분이었다. 김희호 씨 여행이라며 회의에 협조하기를 청하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김희호 씨는 여행 가기를 원하신다. 기대하고 계신다. 여행을 가려면 여행지를 정해야 하고, 여행지를 찾으려면 조사를 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조사할지도 정해야 한다. 이제 알아가고 계신다. 어렵다. 나는 여행을 통해 관계를 살리러 온 사람인가, 여행 준비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치러 온 선생님인가. 혼란스러웠다.
회의하며 지쳤다는 게 언뜻 드러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아쉽다. 내일은 더 잘 물어보겠다.
2024년 6월 30일 일요일, 이다정
※김희호, 준비, 24-3, 도서관 찾기, 한 시간 삼십 분
첫댓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성찰하고 또 성찰 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성찰 하는 다정 학생의 모습 여전히 아름다워요.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순간이 있었네요.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힘든 순간이 나를 란 걸음 나아가게 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것 같습니다.
이다정 학생에게도 그런 순간일겁니다
이다정 학생을 보면 이 시간도 잘 이겨낼거라 생각됩니다.
하고싶은 일이 있을때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지요!
계획하는 일이 조금은 생소 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다정 학생이 희호 씨를 도우려 하는 일이고,다정 씨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희호 씨의 모습이 느겨집니다.
이런 저런 과정을 지나며 둘의 관계가 더욱 빛나고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을 수 있게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