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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두꺼비
이 홍사
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대체공휴일을 만들어놓고 또 놀려주어야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말에 줏대가 없는 정부는 징검다리 휴일에 임시공휴일까지 만들어 공표하면서 어지간히 지루한 연휴였다. 공무원들은 황금연휴라고 했지만 월급을 주는 입장에서 보면 똥빛연휴다.
사무실 집무용 책상에 놓인 박스형 책꽂이 위에 금두꺼비가 나를 노려본다. 그 두꺼비와 눈싸움을 하고 있노라니 옆집 뒤편 깎아지른 벼랑 위에서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불어오는 들국화향이 후각을 감미롭게 자극했다.
창을 열어두길 잘 했다.
옆집 옥상에 들국화를 키우는 화분이 빼곡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들국화 밭이다. 키우긴 옆집 아줌마가 키웠는데 그 수혜를 오로지 내가 입는 것 같다. 창을 열면 손에 잡힐 듯 바로 구절초가 지천으로 늘려있다. 꽃잎을 말려서 약에 쓴다며 애써 옥상 전체를 들국화 밭으로 만들어놓았다. 크고 작은 화분이 족히 백 개는 넘을 것인데 꽃은 지금이 절정이다.
경리부장인 막내 여동생이 출근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여동생이 오면 사무실을 맡기고 낙동강변의 노후수도관 교체 작업현장을 둘러보아야겠다. 긴급복구 공사인데 엊그제부터 포클레인을 두 대나 보낸 현장이다.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어젯밤에는 예비 기사를 보내 철야작업을 했다. 취수장에서 정수장까지 송수하는 대형 수도관인데 오늘까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정수장에 받아놓은 물이 고갈되어 시내 전역 단수가 불가피하다. 까딱 하다간 오늘도 철야작업까지도 불사해야하는, 초를 다투는 현장이다. 그런 현장에 중기 차주가 얼굴도 디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음료수나 몇 박스 사가서 인부들에게 돌리며 현장소장과 얼굴도장을 찍어야할 일이다.
그건 동생이 나오면 할 일이고. 구절초향기를 맡으며 금두꺼비를 이윽히 바라본다. 눈길을 주니 방금 파리를 잡아먹었는지 시치미를 뚝 떼고 입을 앙 다물고 내 눈길을 외면하고 있다. 금두꺼비라 했지만 사실은 금으로 만든 게 아니라 주물로 찍어낸 것인데 금분을 칠해서 금두꺼비라고 명명한다. 두꺼비 등에 상평통보 엽전의 문양을 다섯 개나 새겨 두꺼비가 돈을 물고 오라는 염원을 담은 듯이 보이는 조형물이다. 그리 귀한 골동품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차라리 브론즈, 청동으로 만든 것이면 더 좋았을 건데.......
박스형 책꽂이 위에는 두꺼비뿐만 아니라 몇 개의 조형물이 얹혀 있다.
조막만한 청동 코끼리.
이놈은 몽골에서 사업을 할 적에 고비사막의 도로공사 현장을 들락거리다가 취한 물건이다. 어느 날 자고나니 우리 현장 사무실 옆에 게르가 하나 생겼다. 유목을 하는 민족이라 우리 현장의 물을 사용하기 위해 그곳에 이동식 게르를 설치한 모양이었다. 사막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인사차 가서 말 젖을 발효시켜, 영판 우리나라 막걸리와 색깔이 같고 맛도 비슷한 아이락을 얻어 마시고 한참 수다를 떨다가 불상 옆에 얹혀 있는 놈을 만지작거리니 손님이 귀해 인심이 후덕할 수밖에 없는 안주인이 가져가라고 준 코끼리다. 옆에 있는 동자승이 불경 책을 깔고 앉아 불경을 읽고 있는 석고상은 둘째 놈이 중학교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사온 것이니 십 년은 족히 넘게 저 곳에 앉아있는 물건인데 색깔이 조금 빛바래고 손때가 묻어있는, 눈 안의 든 물건이다.
그리고 금두꺼비만한 두꺼비가 또 한 마리 있다. 이건 나무로 만든 두꺼비인데, 몽골 사업을 완전히 접은 다음에 미얀마에 일을 벌여놓고 참깨가 질이 좋고 싸다고 해서 참깨를 사러 농산물 시장에 가서 이상한 물건을 보았다. 나무로 만든 두꺼비인데 목탁처럼 중간을 깎아내서 그 구멍에 두드리는 채를 꽂아두었다. 신기한 목탁이라 생각하고 채를 빼서 목탁처럼 두들겨 보았다. 참깨를 담던 주인이 웃으면서 그렇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다. 내 손에 있는 채를 빼앗아 요철로 깎은 등을 긁으니 공명음으로 두꺼비 울음소리를 내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눈을 감고 등을 긁으면 영판 두꺼비 울음이다. 너무 신기해서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 어느 파고다에 가면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름이 ‘팟부’라고 했다. 파고다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것을 팔라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팟부라는 이름만 외우고 다음날 거바예 파고다에 갔다. 거바예 파고다는 바로 우리 숙소에 걸어서 십 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파고다 들어가는 입구에 불상과 코끼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동물을 조각하는 손재주가 좋은 장인들의 점포가 많이 있다는 걸 여러 번 보아서 알고 있었다. 아마 팟부도 깎지 싶어 손짓을 하며 묻고 찾아다니니 딱 한 집에 팟부가 있었다. 그걸 달라는 값을 다 주고 사서 숙소에 와서 지겹도록 등을 굵어 보았다. 영락없는 두꺼비 울음소리였다. 지금도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이따금 한 번씩 긁어보고 두꺼비 울음소리를 듣는다. 눈을 감고 그 놈의 등을 긁으면 어린 시절 장마철에 듣던 두꺼비 울음소리가 들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진기한 물건이다.
소파에서 조간신문을 훑다가 인터넷을 검색하기 위해 집무용 책상으로 왔다. 내가 검색하고 싶은 것은 방금 사회면에서 보았던 고독사가 얼마만큼 일어나고 있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부팅되는 동안 잠시 금두꺼비에게 눈길이 잡힌 것이다. 입은 앙 다물고 있지만 책꽂이 위에 놓인 금두꺼비는 우리 시대 고독사를 대변한다.
고독사孤獨死! 우리 시대의 고독사를 읽으려면 저 금두꺼비의 출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저 물건은 고등학교 동기 녀석의 사무실에 있는 것을 집어온 것이다. 녀석의 사무실에는 잡다한 조형물이 많다. 전선 제조회사에 삼십 년을 넘게 다니다 명퇴하고, 명퇴금을 왕창 받아서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작년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이란 바로 유품 처리 대행업이란 이름의 생소한 업이다. 이 시대에 뜨는 사업이라고 했다. 사업이라곤 사 자도 모르는 녀석이 회사를 그만 두고 사무실을 내고 하는 사업이 유품처리 대행업이라니, 걱정도 되었지만 놀랍기 그지없었다.
어디에서 그런 사업 아이템을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사업을 한다!’고 말하고는 거침없이 진행했다. 녀석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그런 사업을 해 본 놈처럼 사무실을 내고 직원 둘을 구하고 광고를 내고 바로 일에 뛰어들었다. 물론 나름대로 명퇴하기 전부터 오래 숙고하고 시작한 사업이겠지만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어느 날, 졸지에, 느닷없이 시작한, 난데하기 짝이 없는 사업이다. 다행히 사업자금은 그리 많이 들지 않고 발로 뛰는 업이라 ‘말아 먹는다’ 해도 살림을 거들 낼 일은 없었다. 녀석은 유품정리 대행업이라고 온갖 매체에 광고를 내고 일이 들어오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사무실은 이 작은 도시의 변두리, 이 층 비어있는 사무실을 엄청 싸게 얻었다. 사무실을 이런 후진 곳에 얻었냐고 핀잔을 주자 그냥 전화만 받는 메인 본부이지 사무실로 찾아오는 고객은 없으니 상관없다며 임대료가 싸고 주차시키기 좋은 곳이면 된다고 했다.
대전에서 일을 한다고 한 사나흘 간 머물다가 전화하면 부산 어디라고 했고, 부산인가 싶어 전화를 하면 춘천이라고 했다. 전국을 무대로 뛰는 녀석의 사업은 장례대행업과는 성격이 완연히 다르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 집안을 정리하는 서비스업이라고 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핵가족 시대에서 더 나아가 독거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원룸의 수요가 늘면서 뜨는 사업이라고 했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녀석의 사업은 혼자서 원룸이나 ‘나 홀로’ 아파트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는 사람이 많아야 경기가 좋은 거란다. 사회적으로 볼 때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사업이다. 녀석은 일이 없으면 종일 사무실을 지키며 어느 누가 혼자서 쓸쓸히 임종을 맞고 뒤처리를 의뢰하는 전화를 기다리는 게 일이다. 가끔 짬이 나면 녀석의 사무실로 가서 자장면내기 바둑을 두며 그의 입을 통해 고독사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들을 수가 있다.
긴 연휴가 지루해서 엊그제 녀석에게 낮술이나 한잔하자고 전화를 했더니 천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연휴인데?
-뜨신 밥 처먹고 쉬어터진 소리하네! 사람이 연휴 골라가면서 죽나? 이 인간아!
-그런가?
녀석은 연휴라고 쉬는 게 아니다.
연휴라도 그런 일은 있는 모양이다.
녀석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고독사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정말 뒤처리 해 줄 친인척이 없어 남긴 살림살이들을 중고품 상사에 처분하여 그 돈으로 사망신고를 해주고 쓰레기처리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사망한 지 두어 달이 지나서 시신이 반쯤 부패되어 발견되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다. 그럴 땐 시신을 수습해 간 뒤에도 그 지독한 냄새가 남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어떤 이는 자살하고 나서 뒤처리를 하러 가서 보면 정말이지 집기라곤 돈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이 쓰레기뿐이라 쓰레기를 처리하면서도 돈이 들어가고 경비만 날리는 일도 있다고 하며 그럴 땐 마음을 깨끗이 비운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녀석에게 말한다.
-네가 그렇게 함으로서 후대에 복을 받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다만 외상 거래일뿐이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승 가면 갚아주시겠지.
녀석은 대답을 듣고 놀랐다. 그 일을 하며 나름대로 사업 철학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숙고하고 시작한 사업인지는 모르지만 남이 꺼리는 일을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게다. 농경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을 직업이다.
녀석의 말로는 후진국에는 없는 상당히 선진국 형태의 사업이라며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는 더 성행하고 있단다. 일본의 독거노인들은 그런 업체에 생전에 사전 위탁을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떠벌린 녀석의 말에 의하면, 일본 독거노인은 장례대행업과 유품 처리업체에 자신의 집 열쇠를 맡기고 사흘에 한 번씩 전화를 하도록 하며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으로 바로 방문하도록 만든다고 했다. 홀로 고독사를 해서 한 달이나 두 달간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물론 집을 비우거나 전화를 못 받을 사정이 생기면 어디로 여행을 간다고 위탁한 업체에 먼저 통보를 하고 떠난다고 했다.
녀석의 말이 사실인지는 파악할 길이 없으나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듣는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심지어 환갑을 맞은 초로의 독거 남자가 그런 업체를 찾아와 꼭 십년 후 이날 자살을 할 것이니 그날 와서 처리해달라고 자신의 재산 반을 선수금으로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마치 녀석이 본 것처럼 얘기를 했다. 상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하며 사회가 선진국 형태로 변하고 독신이 사용하는 원룸 수요가 많아지고 독거노인이 많아질수록 전망이 있는 사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얼마 전 수원에서 일을 할 적에 유명을 달리한 칠십 대 노인은 사망한지 달포가 넘어서 발견되어 시에서 무의탁 노인 장례를 치르고 시에서 자신에게 연락이 왔는데 일을 하며 이웃주민들이 여동생이 있다고 해서 핏줄을 찾아보니 같은 수원에 사는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그 여동생에게 어떻게 연락을 하여 어떻게 할까 물어보니 와보지도 않고 유품을 처리해서 처리비용을 가져가라고 했다며 형제도 소용없는 세상이라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녀석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녀석의 사무실, 장식장에 놓인 금 두꺼비를 바라보니 마음에 들면 뭐든 집어가라고 했다.
녀석의 사무실 장식장에는, 팔면 돈이 안 되고 버리기 아까운 소품들이 잔뜩 진열되어 골동품상처럼 보인다. 물론 주인은 다 저 세상 사람들이다. 손때가 꼬질꼬질 묻은 대금, 오래된 염주, 제조 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묵, 때가 끼어 윤이 나지 않는 놋재떨이, 그 품목들은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열어둔 창으로 초가을 볕과 함께 상큼하게 풍겨오는 들국화향기를 맡으며 금두꺼비를 보고 잠시 기억에 잠겼다.
그 동안 노트북은 부팅 되어 커서가 껌뻑거리고 있다.
뭘 찾아보려고 노트북을 켰더라?
그렇지! 고독사, 고독사를 찾아보려고 했지.
인터넷을 연결하고 검색창에 고독사를 치니 여러 개의 블로그가 떴다. 녀석의 회사 블로그가 맨 위에 떠 있었다. 언제 이런 곳까지 점령했는지 녀석의 블로그에 들어가 찬찬히 훑어보았다. 고독사, 자살 청소 대행업이라고 붙여놓고 상세내용에 특수청소, 시취제거, 구더기제거, 유품정리 등의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글로 써 놓았지만 시취는 아마 시체의 냄새를 말하는 것일 터이다. 구더기제거라는 글을 보니 구더기가 생길 때까지 방치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얼른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답게 집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집을 새로 꾸며주는 일까지 하는 모양이다. 순전히 녀석의 머리에서 나온 독창적인 사업인 줄 알았는데 인터넷으로 보니 그런 업체가 벌써 여러 개 있었다. 녀석에게 속은 기분은 들었다. 블로그를 찬찬히 훑어보니 눈여겨보기 힘든 흉측한 현장의 사진들을 올려놓았다. 몸서리가 쳐져 블로그를 얼른 닫았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형으로 노인 고독사가 가끔씩 뉴스에 오른다. 선진국의 병폐에 해당하겠지만 그 집계를 찾아보니 작년에 삼천오백 명 정도의 노인이 자살을 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거의가 독거노인이다. 자식이 없거나 있는 자식들을 도회로 내보내고 홀로 남아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에 못 이겨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모양이다. 또 불편한 몸으로 하여금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노인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보는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고 녀석의 사업이 불경기에 허덕이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막아야 할 일이다. 정부에서 시골마을의 경로당마다 넉넉하게 난방비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독거노인의 고독을 막는 방법 중의 하나다. 지금 현세는 초 고령사회로 엄청난 속도로 치닫고 있는데 우리 같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앞으로 나이를 더 먹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나는 어떻게 죽을까?
내가 죽은 다음에도 이런 위탁처리업체의 수혜를 받을까? 심각하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담배에 절로 손이 간다.
사무실은 이미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칸막이를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칸막이를 해서 사무실에 작은 방을 만들고부터 담배를 서너 대만 피워도 연기가 자욱하다. 칸막이를 하고 싶어 한 게 아니다. 사무실을 같이 쓰는 여동생의 눈총 때문이다. 옛날에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아무리 피워대도 무덤덤하게 아무소리도 안했는데 시대가 바뀌고 식당마다 금연을 법률로 제정하여 시행하고 담뱃값을 폭발적으로 인상하고 연일 매스컴에서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부터 아내도 그렇고 여동생도 그렇다. 담배연기가 조금만 있으면 질색을 한다. 호들갑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아래층 마당에 나가서 피우자니 보통 신경질 나는 게 아니었다. 뭔 고민을 하다가 담배를 피우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담배연기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니 일에 지장이 있다.
어느 대그룹의 중역 회의실은 지금도 흡연이 자유롭다는 소리를 들은바 있다. 수천억이 오가는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회장과 같이 담배를 피워가며 고민하고 자유롭게 견해를 밝힌다고 했다. 어차피 담배를 끊지 못 할 바에야 그게 바람직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그룹의 중역 회의실에서 결정한 사안은 분명 대성을 거두리라 믿는다.
겨우 둘이 쓰는 사무실에서 흡연에 관해 눈치를 보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견디다 못해 필요 없는 경비를 지출하며 길쭉한 사무실을 삼분의 일로 잘라서 조립식 칸막이를 설치하고 사무실 벽과 같은 색깔로 도배를 하고 문을 달아 내 방을 꾸몄다.
응접용 소파세트, 집무용 책상, 내가 직접 제작한 커다란 나무책장을 넣고 소품과 화분으로 장식을 하고 혼자 쓰는 아늑한 흡연실을 만들었다. 집무용 책상 뒤에는 간이침대를 넣어 전기장판을 깔아 놓고 점심을 먹고 한숨 자도 무방하다. 나는 흡연실이라 호칭하고 동생은 사장실이라고 부른다. 그게 지난해 봄이었다.
막상 분리하니 편리한 점도 있다. 동생의 업무 외의 사적인 통화내용을 듣지 않아서 좋고 방문객 중에서 꼭 필요한 업무로 오는 사람만 내 방으로 들어오게 동생이 먼저 걸러낸다. 그럴 땐 사장실이다. 인쇄물을 들고 와서 괴상한 종교로 나의 정신적 행복지수를 올려주려고 애쓰는 아줌마들, 내 노후의 행복을 책임져주려는 보험 설계사, 시민이 알 권리를 선사하려는 신문구독 모집자 등은 동생이 먼저 면담을 하고 돌려보낸다. 그런 방문객이 오면 나는 사장실, 아니 흡연실에 틀어박혀 내다보지도 않는다.
인터넷으로 고독사를 훑어보고 있는데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출근이 좀 늦다는 것이다. 이유는 출근하며 회계사무실에 바로 들러 종합소득세 중간정산에 자료를 맞추고 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무실에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음료수나 좀 사들고 상수도 긴급복구 현장에 나가봐야겠다. 노트북을 끄고 일어서려는데 이웃에 사는 J가 헛기침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출근복장이 아닌 트레이닝차림이다.
-어라? 출근 안하고? 연휴가 길어서 출근하는 날을 잊어버린 거 아니야?
-오늘은 연차고 내일은 월차고 쉬는 김에 왕창 쉬려고, 말년 병장인데 뭐!
-마실 커피는 입맛에 맞게 직접 타서 들어와.
J는 사회복지를 책임져 주는 공단에 근무하고 있다. 내년쯤이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차원에서 명예퇴직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임금 피크제가 도입되고 내년부터 임금이 삭감되기에 생각이 달라진 것이리라.
J!
생각하면 J와의 인연은 참 질기고 마디다. 훈련소에서 같은 소대의 동향으로 만나 제대하는 날까지 붙어 다녔다. 각기 다른 학교를 다녔어도 이웃면이어서 친구의 친구가 되는 셈이지만 군대 동기로 만나니 학교친구보다 더 각별했다. 같은 날 제대하고 잠시 연락이 끊어졌다가 취업을 하고 아파트 현관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만나고 보니 이미 결혼을 했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주공아파트에 살 때부터 이웃으로 붙어살았다.
그때가 신혼이었으니 근 삼십 년 넘게 이웃으로 살았다. 지금은 재개발 되었지만 열 평짜리 주공아파트에서 같은 동에 살다가 아이를 낳고 좁아터진 아파트가 체질에 맞지 않아 마당이 있는 아포의 촌집을 사서 이사를 가니 J가 두어 달 후에 그 촌집 이웃의 시골성당에 성당지기로 들어왔다. 성당 텃밭에 같이 배추를 심고 매년 김장을 같이하며 십일 년을 이웃으로 살았다. 그리고 신시가지 택지 개발지구에 땅을 사서 건물을 지으니 바로 백 여 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있었다. 내 건물은 주상복합 건물이고 J의 집은 단독주택이다. 집을 지은 지가 벌써 십오 년이 넘었다. 그간 이웃으로 살았다. 그렇게 하자고 약속 같은 건 한 적이 전혀 없는, 질긴 이웃인연이다.
뿐만 아니라 죽이 맞아 제주도에 공동명의로 땅을 사두었다. 후배가 제주도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데 녀석의 소개로 성산 일출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좋은 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같이 유람삼아 둘이서 내려갔다. 밭을 둘러보고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어 제주도에서 노후를 보내자며 공동으로 밀감 밭을 사두었으니 계획대로 된다면 평생 이웃, 생의 도반이 될 것 같다. 돌이키면 참으로 질기고 마딘 인연이다.
-서울은 잘 다녀왔어?
제가 마실 커피를 타서 종이컵을 들고 들어오는 J에게 물었다.
-문상 갔었는데, 잘 다녀오고 말고가 어디 있어?
-문상? 일박이일 출장이고 마누라와 같이 갔다며?
-응. 사실은 둘째처남이 돌아가셨어.
둘째처남이라면 들은바가 있다. 맏이는 장모님보다 일찍 돌아가시고 둘째처남이 맏이노릇을 한다고 했으며 처가의 모든 일은 둘째처남 위주로 돌아간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둘째처남이 월남 참전용사로 나가서 번 돈으로 막내인 J의 아내를, 시골중학교를 마치고 여공으로 간 막내 여동생을 공장에서 빼내 대구의 여상까지 공부를 시켰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월남 참전용사로 가서 번 돈으로 인쇄소를 차려 쇠락한 집안을 다시 일으킨 양반. 뵌 적은 없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던 양반이다.
-아! 그분? 연세가 얼만데?
-백세시대에 일찍 돌아가신 셈이야. 일흔다섯.
-일찍 돌아가셨네. 안타깝다.
-마누라가 심란해하지, 뭐! 칠남매 중에서 고인이 제일 총애했었고 마누라가 제일 믿고 따랐던 양반인데.......
-내가 부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소리할까봐 출장 간다고 했어. 이야! 구절초 죽인다.
J는 고개를 쭉 빼고 창 너머 옆집 옥상을 살폈다.
-이웃 잘 만나면 꽃밭에 살아요.
-아! 진짜 가을은 여기에 열려있네!
감탄을 하고 선 채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맞은 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은 J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유혹에 못이기는 듯 탁자에 놓인 담배를 한 개비를 뽑아 물고 한 모금 길게 빨았다가 뱉어냈다.
-끊었다던 담배는 왜? 흡연욕구를 채우러 왔구만.
-그게 아니고, 나 서울 가서 희한한 일을 봤어. 일명 아버지의 죽음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
호기심을 팽창시키게 만드는 말이었다. 둘째처남 자식들이 재산 문제로 인하여 장례도 치르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서 듣던 소린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가 아니고?
-아니야. 분명 아버지의 죽음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야. 담배가 쓰네. 공짜로 피워서 그런가?
반쯤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J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란 말로 시작한 J의 말은 둘째처남이 돌아가신 임종시간은 추석날 저녁이었다고 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연휴관계로 문상객들을 불편을 감안하여 나흘에 걸쳐 장례를 치르기로 두 아들이 상의를 하고 알맹이상주들만 영안실을 지키고 하루 늦추어서 연락을 했노라고 했다. J내외가 연락을 받은 것도 그 다음 날이었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지. 별로 문제될 게 없는데?
-처남 얘기가 아니야. 들어봐.
연락을 받은 J부부가 바쁘게 챙겨 입고 부랴부랴 찾아간 곳은 서울의 어느 대학병원 장례식장인 모양이다. 서울로 올라가면서 내 전화를 받았다며 운전 중이라 길게 통화하기가 뭣해서 출장이라고 둘러댔다는 것이었다. 매일 새벽 인터넷을 검색하러 오던 J가 오지 않아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했던 게 그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가면서 안내전광판을 보니 세 곳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는데 처남의 빈소만 파악하고 들어가서 조문을 했다고 했다. 조문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는데 뭔가가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거기까지 들으면서도 무엇이 이상한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냥 북적대는 장례식장만을 떠올렸다.
-뭐가 이상했는데?
-세 곳의 빈소라고 전광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처남 빈소를 제외하고 두 곳은 너무 조용한 거 있지. 문상객은 고사하고 상주들도 보이지 않는 거야.
J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분명히 전광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접빈실은 너무 조용했다는 것이다. 잘못 보았나 싶어 숟가락을 놓고 슬며시 밖으로 나가 다시 전광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전광판에는 분명히 세 곳의 안내문이 적혀있었는데 한 곳은 고인이 여든두 살의 남자인데 상주를 헤어보니 칠남매나 되고, 또 다른 곳은 여든여덟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오남매에 손자들이 아홉이나 된다고 했다. 일삼아서 그걸 꼼꼼히 세어보았다고 했다. 그 옆에 고인이 된 처남의 이름이 적혀있고 상주인 처조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사망 일자를 보니 처남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이라고 했다. 발인일은 아예 적혀 있지도 않았고,
-그 상주들은 다 어디 간 거야?
궁금증을 누르지 못하고 J가 뜸을 들이며 말을 하는 중간에 내가 불쑥 물었다.
-해외여행.
-해외여행?
-그렇다니까.
어이가 없어 웃음이 쿡 터져 나왔다.
-돌아가신 부모 안치실에 눕혀놓고 해외여행을 갔으면 어지간히 맘 편하게 놀다 오겠다.
-빈정거릴 일이 아니고 현실이 그랬어. 그 사실이 처남빈소에 찾아오는 문상객들의 안줏거리가 되었어. 도리어 마음이 편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생각해봐. 아버지 오늘내일하며 숨을 깔딱거리며 몰아쉬는데 해외여행을 갈 수가 있겠어? 이미 안치실에 눕혀놓았으니 급할 게 없잖아? 무엇보다 큰 문제는 추석연휴라 문상객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고 그것에 비례해서 가장 중요한 조의금이 줄어든다는 게 문제야. 어떤 사람은 그 집 형제간에 참 우애가 있다고 추켜세우는 사람들도 있더라. 상주 중에서 한 놈이라도 입바른 소리를 하며 반대를 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며 형제간에 죽이 잘 맞는 집안이라 장족의 발전을 할 집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해외여행은 적어도 두어 달 전에 계획을 세웠을 것이고 아버지는 느닷없이 돌아간 것이니 순서대로 하는 게 마땅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아무튼, 아버지의 죽음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안줏거리가 되었어. 오는 손님마다 그 얘기였어. 화장터도 연휴라 한산하더라. 화장터 관계자에게 들은 말인데 연휴가 지나면 미어터질 거라고 했어.
-빈소라도 만들어 놓고 상주가 많은데 해외여행 가지 않은 놈 한두 놈이라도 지키고 장례를 연휴가 끝날 때까지 미루면 되잖아? 똑같이 해외여행을 간 건 아닐 거잖아?
-모르는 소리, 그러면 접빈실 사용료가 들어가요. 안치실은 얼마 되지 않는데 접빈실은 사용료가 엄청 비싸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소문이 나잖아? 애비가 안치실에ㅔ 눕혀놓고 해외출장도 아니고 여행을 간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자고로 죽는 것도 날을 잘 잡아서 죽어야 된다고 입을 모았어. 문상객들 안줏거리로는 그만이었지.
-지금쯤 빈소를 꾸몄겠군.
-아마 그럴 걸.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농경사회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사상 최장의 연휴에 연휴기간동안 해외여행객이 백만을 돌파했고 인천공항은 마비될 지경이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 놈의 해외여행, 나라가 어떻게 되려나?
-익명의 시대 도회에 사는 현대인의 단면을 본 것이지. 부조금 왕창 받아서 상주들 모두 부자가 되겠지. 남의 일이지만 참 씁쓸하더라.
J의 말이 맞다. 익명성이 두터운 시대라서 그런 일도 있는 게다. 나는 J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차가운 안치실에 누워 자식들 해외여행 다녀오도록 기다리는 고인도 고독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아니 무자식의 고독사보다 더 처량할 거라고.
J의 얘기를 듣고 나도 작년에 본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 외가의 먼 친척 아저씨얘기인데 그 외아들이 서울 무슨 교회 담임목사였다. 일요일이 사흘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날인데 교회에 설교하러 간다고 장례를 하루 미루고 KTX를 타고 서울을 다녀오더라는 얘기를 하며 물었다.
-아버지, 안치실에 눕혀놓고 설교가 될까? 혀가 잘 돌아가겠나? 나는 황당하면서도 그게 궁금했어. 생각하면 닭살 돋는다.
-개독들은 다 그래. 죽은 아버지는 하나님아버지 다음이야. 아버지의 영생을 위해서 당연히 예배를 보러가야지. 명색이 담임목사인데. 놀랄 일도 아니구먼........
성당에 다니지만 기독교를 얘기하면 J는 언제나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언제나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지칭하고 교회 집사를 잡사라고 한다.
-정말 죽는 것도 날을 잘 잡아서 죽어야 되겠네.
-노인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잖아? 잘 죽어야 될 건데, 잘 죽어야 될 건데, 하며 노인들은 오로지 죽음에 대한 복을 거론하잖아?
-세월 가는 거 보니 우리도 멀지 않았네.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J에게 유품처리 대행업을 하는 고등학교 동기 녀석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 자주 만난다는 술친구. 고등학교 동기라고 했나?
-맞아. 그 녀석.
녀석의 얘기 뒤에 고독사에 대한 얘기가 따라왔고, 녀석에게 들은 일본의 경우도 들려주었으며 결국 금두꺼비를 가리키며 출처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었다.
-추석 명절 잘 보내고 씁쓸한 얘기 그만하자.
J가 손을 내두르며 탁자 위의 담배를 빼물었다. 한 모금 길게 내뿜고 담배가 오늘따라 쓰다고 했다. 가을볕과 함께 구절초향기가 창을 넘어오고 있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구절초가 여인이라면 가슴을 한번 만지고 싶다.
내 말에 금두꺼비가 구절초가 있는 창밖을 이윽히 넘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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