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자: 2026.01.4 주일 낮 예배
- 말씀: 빌3:14/찬323장-부름받아 나선 이몸
- 제목: 부름 받은 자의 사명(빌3:14)- Press on toward the Goal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 이덕휴목사
- 본문말씀 봉독: 빌3:14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은혜찬양 :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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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씀
믿음생활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는 것,
- Press on toward the Goal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현재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부름을 받은 자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부름받은 자의 자리에 섰습니다. 할렐루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곳에 모인 여러분과 저는 이미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땅의 가치는 잠시뿐임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영광과 소망을 붙들라는 권면이 오늘의 말씀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고전9:24)
오늘은 병오년을 맞은 우리 만나인들이 새해 첫 주일에 하나님의 초대에 임하였습니다. 환영합니다.
새해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해가 되게 합니다..푯대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우리늬 목표는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바, 가장 큰 새 계명을 받아 완주하는 마라톤 경기입니다.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일입니다.
1. 부르신 이의 부름의 상을 받으라
그리스도인에게 푯대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이 부르심의 상은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는 상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표창장이나 공로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예수 안에 있는 참 그리스도인만이 그 상을 목표로(푯대로) 하여 달려갈 수 있다.
바울은 이 푯대를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이라 하였다.
먼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성경이 많은 곳에서 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갚아 준다는 것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배상이 아니고 보상입니다. 배상이란 인간 세상에서 손해 본 자에 대한 손실을 치유해주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상은 각 사람이 그들이 행한 대로 주시는 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디모데서 후서 4장 8절을 보면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합니다. 의의 면류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나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의의 면류관에 대하여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이 내게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야고보서 1장 12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생명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누가 받는가 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주님을 믿는 자들이 받게 되는 구원을 증표로서 주어지는 면류관입니다.
세번째로 베드로전서 5장 3-4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관 즉 면류관을 말하고 있는데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라고 할 때에 이것에 대한 부연 설명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사라지지 않을 영광의 면류관으로 온전한 구원함을 얻은 가운데 영광스러운 주님의 거룩한 몸과 같이 시들지 않을 몸에 참여함과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한 자의 상징됨으로 영광의 면류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가시관
예수님은 왜 가시관을 쓰셨을까... 과연 가시관을 쓰셔야만 했을까?... 이유는, 먼저는 구약, 고난의 메시야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가시관은 고난의 메시야가 받아야할 고통스런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림(가시에 찔림, 창에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또한 예수님이 친히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거듭 하신 말씀이 또한 고난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총 3번 말씀하셨는데, 마 16:21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많은 고난을 받고... 여기에 가시관의 고난도 포함됩니다. 특히 가시관의 고난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셨기에 받아야만 했던 치욕스런 고난이었습니다. 그 고난까지도 다 받으셔야만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고, 세상 모든 죄인을 대속하고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시관의 고난마저도 친히 다 담당하신 겁니다.
가시관의 고난이 없이는 부활이 없다! 가시관의 고난이 없이는 영광의 관을 받을 수 없다!... 이 사실을 입증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가시관의 그 극한 고통도 다 참아내신 겁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몸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도저히 참기 힘들어서 벗어버리고 싶으셨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아내면서 가시관을 쓰고 계셨던 겁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영광의 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 사명을 수행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 역시 저절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경우처럼 오직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성경 곳곳에서 증거합니다.
3. 영원한 생명의 부활상
주님께서 속히 오시고 싶어하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에게 행위에 따라 상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상을 주시기 위해 속히 오시며, 그 상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면 영생의 부활이 틀림이 없는 것이며, 우리의 몸의 온전한 구원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 우리의 상급이며, 우리가 받게 될 상이라고 할 때에 어떤 이들은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얻었는데 그렇다면 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다른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좀더 생각해 보는 이들은 구원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을 때에 성령을 통하여 주신 것인데 성경은 상급에 대하여 앞으로 받을 것에 대하여 주님이 주실 것으로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이미 받은 것과 앞으로 받을 것에 대한 상충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성경의 증언을 종합할 때에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로 이야기 하는 것은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상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을 보면 에베소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NIV에서는 이것이 믿음을 가리키고 있음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지시 대명사인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믿음과 그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새해들어 첫 주일을 맞아 예배드리는 우리 만나인에게 새해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를 세상의 모든 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우리가 지금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데 푯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이 부르심을 받은 우리 만나인에게 주시는 상이며, 이 상은 그리스도 안에 부르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얻는 상이며, 이 상은 이 후에 받게 될 상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온전한 구원의 상인 것입니다.
- 마치는 말씀
우리를 부르심이 즉 구원을 위해 부르심이 얼마나 큰 상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값으로 살 수 없으며,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상을 우리는 받았고 받고 있고 앞으로 온전한 구원으로 새로운 죽지 않을 몸과 썩지 않을 몸, 그리고 죄를 지을 수 없는 몸, 병들지 않는 몸, 애통하는 것이 없는 삶으로 영생의 복락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부르심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디모데후서 1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예전 개역한글 성경은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즉 거룩한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닮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 달려 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과 이웃사랑하기를 아버지 하나님 대하듯 하는 일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드립니다.
우리의 푯대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 곧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사명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