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
나는 2남 2녀중 차남으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아버지,어머니와 형, 누나,아래로 여동생, 3대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살았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집안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고, 닭 대여섯 마리와 개 1마리가 우리와 같이 생활했다. 기르던 고양이에게 장난 걸다가 긁히기도 한 개구쟁이 시절
여름에는 등목을 하면서 더위를 날려 보내 시원함을 느낄수 있어 좋았다.
그때 그 시절이 마냥 그리운 건 나만의 생각일까.
할머니께서는 겉옷 주머니 안에 사탕을 넣어두셨다가 손자를 위해 말없이 손에 주시던 그 사탕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달고 맛이 좋았다.
늦둥이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가 어느 날 여동생에게 그 자리를 박탈당한 그때의 아쉬움과 서러움은 지금 생각하니 내리사랑의 표현인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어언 3년이 다 돼간다. 얼마 전 군위 카톨릭묘원에 다녀왔다. 사람은 떠나가면 잊어진다고 했듯이 이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차츰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고 하지만 너무 짧은 생을 사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끔 그리워진다.
아내와 나는 1녀 1남을 두었다. 둘 다 아직 미혼이다. 좋은 사람 만나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아직은 인연이 닿지 않은 것 같아 애가 타는데 인생사 모두가 사람의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도 있어 마음 편히 먹고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내와 나는 토닥거리며 종종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를 증명하듯 금방 화해하고 또 토닥거리다가 화해하곤 한다.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 같다.
딸은 독립하여 인근에서 생활하면서 1주일 혹은 격주로 집에 오곤 한다.
부녀간에 깊은 대화는 없어도 모녀간에는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가고 한다.
아들과 나는 부자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낸다.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이제는 가벼운 농담도 하고 그야말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간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와 같이 있으면서 진지한 대화나 친구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는데 요즘은 부자간에 친한 감정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많이 생겨나는 것 같아 좋은 현상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 혹은 1인 가구가 많이 생겨났다. 외국의 예를 들면 중국은 혼자 사는 젊은이가 5,800만명 이라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요양원 거주자의 60%가 방문객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2014년 영국에서는 전체 노년 인구의 2/5가, TV가 주된 친구이며,
미국 밀레니엄세대 5명 중 1명을 살짝 넘는 수가 친구가 1명도 없다는 통계자료가 발표된 바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 기대수명이 높아진다고 한다. 지금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경쟁사회이고 실적을 위주로 하는 사회이다. 서로가 배타적이고 관심을 기울이지않는 가운데 이웃 간의 정은 메말라 간다. 인간성 회복이 절실한 문제로 부상된다.
가족과 공동체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그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오순도순 살았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정과 인간미가 넘치는 것 같다.
무뚝뚝하고 예의 없는 사람을 떠나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첫댓글 사람이 그리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독불장군처럼 혼자 살아야 한다니 조금 서글프지요. 가족은 귀중합니다. 오손도손 즐거운 가족 생활 응원합니다.
가족의 형태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다정하고 인간미 있는 얼굴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이 됩니다